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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권 조성현 함경 새 역사를 쓰는 세 청년의 힘찬 숨소리
베를린의 관악주자 3인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9/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9월호 - 전체 보기 )



세 청년이 한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왼쪽에 앉은 바수니스트 유성권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칩니다. 플루티스트 조성현은 밝은 웃음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앉은 오보이스트 함경은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세 남자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유성권, 조성현, 함경.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목관악기 연주자라는 점과 현재 베를린에 살며,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 사람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 때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까요? 그에 앞서, 먼저 이들이 독일로 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셋 중 맏형 격인 유성권은 1988년생으로 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음악을 좋아한 어머니를 둔 외동아들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중 교회에서 바순을 연주하던 누나를 보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바순을 시작했죠. 김병엽을 사사했던 그는 예원학교에 입학합니다. 동기생인 피아니스트 김선욱과는 실내악 수업을 함께하곤 했습니다. 그가 3학년일 때 조성현은 1학년 신입생이었다고 하네요.

“실기 시험 끝나면 성권이 형한테 달려가서 점수 몇 점 받았느냐고 묻고는 했어요.”(조성현)

“맞아. 운동장에 있는데 네가 막 뛰어왔던 거 기억난다.”(유성권)

다른 전공에 비해 군기 셌던 관악반의 추억이 웃음소리와 함께 오고 가자 유성권이 “그때 군기 잡았으면 지금 큰일 날 뻔했네”라며 농담을 던집니다. 어쨌든 유성권은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베를린 국립음대로 유학을 갑니다.

1990년생인 조성현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플루트를 배웠습니다. 1998년에 처음 내한한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의 소리에 매료되어 플루트를 배운 일화와 파위에 대한 그의 애정은 이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예원학교 3학년 재학 중 유학을 떠난 미국 오벌린 음악원은 한국에서 살던 곳과는 다른, 시골이었습니다. 휴대전화조차 없었던 그의 일상은 영어공부와 악기 연습, 취미인 축구뿐이었다고 합니다. 둥글둥글한 성격 덕에 누구든지 호감을 품을 것 같은데, 역시나 오벌린에서도 입학 동기에 비해 나이가 어린 그를 누나와 형들이 잘 챙겨줬다고 하네요. 사실 그는 프랑스 유학을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방학 중 프랑스의 한 음악캠프에서 만난 미셸 드보스트 교수의 학습법에 매료됐고, 오벌린 음악원으로 간다는 교수의 이야기에 자신도 따라가겠노라 했던 거죠. 에마뉘엘 파위의 스승이 드보스트 교수였다는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이제 함경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셋 중 국내에 콩쿠르 입상 소식을 가장 많이 전해온 이는 아마도 함경일 겁니다. 1993년생인 함경은 음악을 하는 가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중앙대 함일규 교수, 어머니는 비올리스트 최정아, 그리고 형 함훈도 플루트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과 많은 이들이 그가 아버지에게 악기를 배웠다고 말해왔는데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의 문하생인 이정주 선생에게 배웠다고 하네요.

12세부터 오보에를 배운 함경은 서울예고 입학허가서를 받고는 곧 독일 트로싱겐 국립음대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의 취미는 사진입니다. 며칠 전에 로모카메라를 구입했다며 스튜디오에 전시된 여러 대의 카메라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함경은 조용하고 차분함을 매력으로 지닌 오보이스트인 거 같습니다. 함경이 예원학교 신입생일 때, 3학년이었던 조성현에게 함경을 추억해달라고 하자 “참하고, 차분하면서도 귀여웠던 후배”라고 합니다. 당시 선후배 간의 ‘군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베를린에서 둘도 없는 사이로 서로를 챙겨주고 있다는군요.

지금 세 음악가는 모두 베를린에 살고 있습니다. 유성권은 혼자, 조성현은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바순을 공부하는 동생과 함께, 함경은 룸메이트와 함께 말이죠.

여러분은 ‘베를린’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이들은 “오케스트라와 음악의 천국”이라는 데 입을 모읍니다. 유성권이 “언제나 좋은 오케스트라와 좋은 연주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운을 떼니 조성현과 함경은 “베를린에 있는 오케스트라의 목관은 어디 하나를 최고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다 좋은 거 같아요”라며 서로 아는 오케스트라를 늘어놓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그리고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슈타츠오퍼와 베를린 코미셰 오퍼… 이 오케스트라 중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에는 유성권이, 베를린 필하모닉에는 조성현과 함경이 있습니다.

 


미래를 향해 돌아가는 베를린의 시계

베를린에서 이들의 시계는 바쁘게 돌아갑니다. 먼저 “학교생활과 베를린 필하모닉 아카데미의 수업과 연주를 병행하는 성현이와 경이보단 오히려 제가 덜 바쁠 거 같은데요”라며 농담을 던지는 유성권의 일상을 한번 보도록 하죠.

유성권은 현재 마레크 야노프스키가 종신지휘자로 있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주자입니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한 달에 2~3회 공연을 갖고, 각 공연 당 2~3일 동안 집중적으로 연습을 합니다. 연습 시간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그 외의 시간에 유성권은 모교인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일주일에 6시간 정도 강의를 합니다.

조성현과 함경은 지하철로 약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습니다. 조성현은 오벌린 음악원 졸업 후,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를 거쳐 현재 뮌헨 국립음대에 재학 중이고, 함경은 트로싱겐 국립음대를 거쳐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수학하고 있죠.

어떻게 보면 그저 평범한 유학생 같죠? 하지만 두 사람은 베를린 필 아카데미의 ‘학생’이자 베를린 필의 정기연주회에 참여하는 ‘단원’이기도 합니다. 베를린 필 아카데미는 1972년 카라얀이 만든 일종의 인턴십 프로그램입니다. 2년간 베를린 필의 각 파트 수석주자들에게 교육을 받고 객원 단원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죠. 현재 베를린 필 단원 가운데 60퍼센트가 이 아카데미 출신이며, 그 외에 유럽 주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도 이 관문을 지났습니다. ‘아카데미’에 방점을 찍는다면 ‘입학’이라고 해야 맞겠지만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베를린 필과의 정식 연주는 물론 아카데미 학생들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연주 스케줄도 소화해야 하기에 ‘입단’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네요.

조성현과 함경의 스케줄은 한 달 평균 2회 공연을 갖는 베를린 필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아카데미 단원들만 참여하는 연습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시즌에 6회 정도의 공연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두 사람은 현재 영국 이튼 칼리지에 재학 중인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도 부지런히 만나면서 일본 바수니스트와 독일 호르니스트가 함께하는 목관 5중주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목관 5중주단의 이름은 ‘파이츠’. 파이츠는 독일 고어로 나무를 뜻합니다. 목관 앙상블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정말 바쁜 청춘들이죠? 국내 대학의 상황과 달리 독일은 학교가 주는 ‘명성’보다는 ‘좋은 선생’을 따라가는 편이라고 합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이들에게 좋은 선생은 각자가 몸을 담고 있는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조성현과 함경은 국내에서도 부지런히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지난 7월 31일과 8월 7일,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콘서트’에서 독주회를 가졌죠. 조성현은 텔레만·모차르트·바이제·슈베르트는 물론 20세기 현대 작곡가에 속하는 엘레르트·상캉·베리오의 곡을 선보였고, 함경은 슈만·프랑크와 함께 그 또한 현대 작곡가에 속하는 도라티·베넷·빙엄의 곡을 선보였습니다. 조성현과 함경 모두 현대음악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현대음악을 애호하는 베를린 필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영향 때문인 걸까요? 그래서 물어보니 공통분모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본인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대답이 돌아오네요.

유성권의 활약상은 의외로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2011년에 KBS교향악단과 모차르트 바순 협주곡을 선보인 거 외에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스케줄로 인해 한국에서의 활동이 드뭅니다. 그의 존재가 부각됐던 건 같은 해 마레크 야노프스크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함께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내한에 ‘수석’으로 함께했던 때였습니다.

 

▲ 조성현

▲ 함경

▲ 유성권

실력과 기회. 모두 내가 만든다

그럼 이제 유성권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입단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그의 이야기를 듣는 지금, 조성현은 “우아! 형 멋있다! 멋있어”라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함경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네요.

베를린에 도착한 17세의 유성권은 현지 적응을 위해 세 달간 어머니와 시간을 보냅니다. 어머니와 함께 간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공연이 끝나고 그는 “5년 안에 이 무대에 설게요”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갖는 청운의 꿈인 거죠. 당시를 회상하는 유성권은 제 스스로 “골 때리는” “어디서든 기죽지 않는” “욕심 많고 아무것도 모르는” “귀여운”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베를린 국립음대에 입학한 유성권은 레슨 첫 시간에 교수에게 “수석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2주자나 3주자가 연주하는 콘트라바순도 배우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고요. 만나는 사람마다 비웃든 말든 “나는 수석주자가 될 것”이라고 했고, 그 말에 누군가는 “네가 그 악단에 수석이 되면 내가 협연자로 가겠다”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에도 베를린 필처럼 관악부문에 아카데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성권은 그 오디션에 응시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바순 주자라면 응당 연주해야 할 콘트라바순 연주가 마지막 관문인지라 그걸 대비해서 딱 한 번 레슨을 받고 시험장으로 갔습니다.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켜본 심사위원들이 콘트라바순을 며칠 동안 배웠느냐고 물어봤답니다. 유성권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수석이 공석이라며 오디션에 응시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습니다.

그럼 잠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으로 날아든 이상한 편지(?)에 관한 일화를 듣고 가시죠. 2년 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앞으로 이상한 편지 한 통이 도착합니다.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바순을 전공하고 오케스트라 경력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포부를 담은 그 편지 끝에는 “이런 나에게 기회를 줄 수 있지 않느냐”고 쓰여 있었습니다. 단원들은 그 편지를 서로 돌려봤죠. 눈치 채셨겠지만 그 편지의 주인은 18세의 유성권이었습니다.

수석 자리를 놓고 오디션이 있던 기간 동안 100여 명에 이르는 후보들이 여섯 차례의 관문을 지나갔습니다. 오디션 과정마다 단원들은 유성권에게 그때 편지를 보낸 그 학생이 맞는지 확인했죠. 그들은 이 학생이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함께 꾸준히 과제를 내주었고 유성권은 그 관문들을 지나 21세에 수석으로 입단하여 6개월 뒤 종신단원이 되었습니다. 전 파트를 통틀어 최초의 최연소 수석이라고 하네요.

입단 후 첫 무대 프로그램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이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조성현이 놀라네요. 그 이유는 다들 아시겠죠?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도입부에서 나오는 바순 솔로는 그날의 분위기를 좌우하거든요. 갓 입단한 유성권이 거장 야노프스키가 노려보는 가운데 첫 대목을 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떨렸느냐고요? 전혀요. 저는 오히려 솔로가 있으면 안 떨려요. 사람들이 나만 보니까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긍정적인 떨림···? 아! 설렘 같은 거죠.”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속 그의 바순 소리는 펜타톤 레이블에서 발매된 ‘라인의 황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에 담기기도 했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열어줄 현재

“와··· 진짜 멋있다! 성권이 형. 저는 늦지 않았을까요? 형은 18세에 편지를 썼는데.”

조성현과 유성권 사이에서 “피콜로 배우지 마라” “래틀에게 편지를 쓰자” 등의 농담이 오고 가는 동안 이야기를 듣는 함경의 입이 살짝 벌어져 있네요.

그럼 이제 조성현과 함경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조성현은 2012년 제1회 세베리노 가첼로니 콩쿠르에서 입상했습니다. 미국 유학 후, 15세에 베이징에서 열린 니꼴레 콩쿠르를 첫 도전 삼아 지금까지 여러 콩쿠르에 참여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죠. 조성현은 니꼴레 콩쿠르를 경험한 이후에 “참가하는 재미”와 “떨어져도 위로받는 재미” 그리고 “도전과 경험을 쌓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하네요.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쪽에서는 “콩쿠르 오타쿠”라는 농담도 나옵니다. 세베리노 가첼로니 콩쿠르 입상 후, 현재 콩쿠르 측에서는 다양한 공연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솔리스트로 체급을 키우고 있던 조성현과 함경이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빠져든 건 의외로 이제 1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플루트는 솔로 악기라는 믿음이 강했어요. 오케스트라는 뭔가 무거워서 같이 하는 것에 매력을 못 느꼈거든요.”

2013년 9월 베를린 필 아카데미 오디션을 거쳐 10월에 들어간 조성현은 초반에 솔리스트를 향한 마음과 오케스트라 속에 앉아 있는 자기 자신, 그 사이에서 방황했다고 합니다. 입단 후 연주회 때, 지휘를 보며 자신의 솔로가 들어갈 부분을 기다리는 일도 힘들었고 신경이 하도 곤두서서 첫 한 달은 모든 연주회에서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고도 하네요. 플루트와 피콜로를 번갈아가며 불어야 했던 그는 “악기를 잘 불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번갈아 연주할 때 혹시 악기를 떨어뜨리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에 온몸이 긴장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에마뉘엘 파위를 화두 삼아 이야기를 한참 이어갑니다. 대화의 절반 이상이 파위의 이야기군요. 그리고 그는 지금 그토록 꿈꿔온 파위 곁에서 그와의 사랑(?)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플루트가 바로크 악기잖아요”라는 말과 함께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한껏 발산하는 이 청년이 베를린 필과 함께한 첫 무대는 바이올리니스트 라인하르트 괴벨의 베를린 필 데뷔 무대이기도 합니다. 현악기와 실내악, 바로크와 현대음악을 가리지 않고 애호하는 조성현에게 괴벨은 파위 다음으로 환상을 가졌던 대상인데, 그 환상이 그야말로 ‘리얼’이 되어 연주 파트너가 된 것이죠.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오보에가 더 재밌어지고, 더 잘하게 된 거 같다고 말하는 함경은 2013년 스위스 무리 오보에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인지도에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과묵하고 말을 아끼는 함경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2013년 5월에 오디션에 응시하고 9월에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 입성한 그는 조성현보다 ‘한 달’ 선배입니다. 예원학교 시절 후배였던 함경이 베를린에선 선배가 됐다고 하네요.

“저도 성현이 형처럼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 들어오면서 오케스트라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전문적인 오케스트라 주자로 연주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거든요. 저는 솔로와 실내악을 좋아해요. 하지만 혼자 연주할 때보다 함께할 때 뭔가 더 와 닿는 게 있더라고요. 물론 오케스트라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그 재미를 잘 몰랐던 거 같아요. 그리고 오케스트라 주자는 솔리스트로서 많은 것을 쌓고 나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연주에 대한 특별한 경험은 오케스트라 안에서 이뤄질 때가 많죠. 지금은 고인이 된 아바도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할 때가 생각나요. 그때는 제가 객원으로 활동하던 때였죠.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 들어온 후 첫 연주는 앨런 길버트와 함께한 버르토크의 ‘목각인형 왕자’예요. 3주자로 참여했는데 연주 당일 리허설에 2주자로 갑자기 교체되었어요. 못한다고 할 수 없잖아요(웃음). 너무 떨렸습니다. 사실 그 첫 무대를 앞두고 며칠 동안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그냥 오케스트라도 아니고 베를린 필이잖아요. 당일 늦잠 잘까봐 알람 몇 개를 맞춰놨는지 몰라요. 그때 ‘목각인형 왕자’가 끝난 후 길버트가 오보에 파트를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했는데 제 옆에는 알브레히트 마이어와 안드레아스 비트만, 크리스토퍼 하트만이 함께 서 있었습니다.”

잠시 휴가를 틈타, 또 리사이틀을 위해 한국에 들렸던 세 남자는 이제 베를린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을이면 시작될 2014/2015시즌에 참여하느라 역시나 바쁠 겁니다. 사실 이들의 이야기를 이 지면에 다 담기에는 좀 부족한 거 같습니다.

 

역사 속의 새로운 별이 되기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인 음악가’는 대부분 피아노·바이올린·첼로 주자입니다. 세계적인 콩쿠르의 종목도 현악기와 피아노에 치중되어 있죠. 관악 주자들은 유명 콩쿠르 입상보다는 오케스트라 입단을 통해서 빛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명성이 높은 오케스트라일수록 입단은 굉장히 어려운 관문입니다. 특히 전통과 명성을 지닌 오케스트라일수록 음악 외적인 문제도 많이 걸려 있죠.

한국 관악 주자들의 유명 오케스트라 입단의 역사는 짧고, 그 사례 또한 매우 적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성권·조성현·함경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이들이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77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20여 년간 수석 주자로 활동했던 클라리네티스트 오광호가 첫 사례일 것이고, 그다음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객원 수석으로 활동했던 클라리네티스트 김동진일 겁니다. 다양한 관악기 중 유독 클라리넷이 눈에 띄는 이유가 궁금하시죠? 사실 관악기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건 플루트인데 말입니다. 아마도 클라리넷은 사회적 제약을 많이 받는 여성에 비해 남성 연주자가 많아 유학과 현지 정착이 비교적 수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여성 주자들의 입단도 활발해졌습니다. 대표주자로 신시내티 심포니 부수석과 빈 심포니 수석을 역임한 플루티스트 최나경과 뉴욕 필하모닉의 손유빈을 꼽을 수 있겠네요. 근래에는 금관 주자들의 활동 또한 활발해졌습니다. 최근 스웨덴 왕립 오케스트라 제2수석으로 영입된 호르니스트 김홍박, 현재 충남대 교수로 재직 중인 트럼피터 성재창은 핀란드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부수석을 역임했습니다.

세 사람이 성장한 환경을 보면 한국의 관악기 교육환경 또한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몸이라 솔리스트로서 활동이 비교적 자유롭지 못합니다. 현악이나 피아노 솔리스트는 독주회를 통해 자신을 알릴 수 있지만 오케스트라 속에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이들은 오케스트라가 ‘통’으로 내한하지 않으면 국내에 잘 회자되지 않죠.

제트 프라잉 시대인 지금, 유럽의 명문 악단이 아시아 투어를 하고 내한하게 될 때면 오케스트라 속의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11년 야노프스키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이 내한했을 적에 유성권을 만날 수 있었고, 2013년 베를린 필의 아시아 투어에는 조성현과 함경이 함께 있었죠. 그때 저도 래틀의 지휘하에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연주하던 함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성권은 내년 3월, 야노프스키 지휘로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침머만,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내한한다고 합니다. 조성현과 함경에게는 2014/2015시즌이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서 보내는 마지막 1년이라고 하네요. 가까운 미래에 유럽의 유명 오케스트라 내한 무대에서 조성현의 플루트 소리와 함경의 오보에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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