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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박첨지’
떼이루 떼이루 띠어라 따!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12/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12월호 - 전체 보기 )



흥을 돋우는 북과 꽹과리 소리 사이, 꼭두각시 인형들의
걸쭉한 재담과 풍자가 쏟아진다


남사당놀이의 핵심, 꼭두각시극
지난 11월, 공연계에는 한태숙 연출의 ‘단테의 신곡’이 화제로 올랐다. 이 공연은 단 8일간의 짧은 공연 기간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1천5백 석의 대규모 극장이란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회 매진됐다. 공연의 성패를 떠나 ‘단테의 신곡’은 최근 고전 열풍의 흐름을 반영하면서 연계 강연 등의 마케팅을 통해 기획력의 승리를 보여줬다. 반면 이 작품이 창극의 현대화를 실험하고 있는 공연이라는 점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현재 국립극장의 중심축은 국립창극단이고, ‘단테의 신곡’ 대부분의 배역은 지현준(단테)·정동환(베르길리우스)·박정자(프란체스카)를 제외하곤 국립창극단 배우들이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단테의 신곡’은 국립창극단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이 공연이 창극 공연이라는 점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작품 자체가 워낙 유명한 서양고전이고, 주요 배역인 베아트리체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 정은혜의 창법도 현대적인 뮤지컬 창법에 가까워서다. 그 외에도 지옥 저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에 국립오페라단 출신의 바리톤 오승용을 캐스팅하는 등 창극과 오페라·뮤지컬의 창법을 장면과 캐릭터별로 정확하게 배치한 연출력도 한몫했다. 한태숙은 지난해 ‘스릴러 창극’을 표방한 ‘장화홍련’의 연출을 맡았으며, 정은혜는 올해 봄 그리스 비극을 창극화한 ‘메디아’(연출 서재형)의 주연배우였다. ‘단테의 신곡’은 국립창극단의 ‘창극 현대화’의 흐름을 잇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단테의 신곡’이 방대한 분량의 세계고전까지 품으며 대형 공연으로 이슈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 시점에 색다른 전통극 한 편이 12월, 무대에 오른다. 극단 미추와 극단 백수광부가 공동제작한 전통극 재발견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꼭두각시놀음 인형극 ‘돌아온 박첨지’가 그것이다. ‘단테의 신곡’이 창극의 현대화에 성공한 대형 블록버스터라면, 꼭두각시극 ‘돌아온 박첨지’는 가장 미니멀한 작품이다. 무대 높이 170센티미터, 폭 3미터의 포장 무대. 그 작은 무대 위에 서는 배우들은 70센티미터 가량의 키 작은 인형들이다.
그러나 무대가 작다고, 배우들이 나무를 깎아 만든 나무토막 인형이라고 결코 얕볼 수 없다. 이 공연에는 중요무형문화제 제3호 남사당놀이 보유자 김용태 선생이 제작한 인형 40여 개 한 벌이 사용되고 있다. 사물놀이 편성에 현대적인 타악기가 추가된 연주도 전문가급이다. 무엇보다 극단 미추에서 배우로 활동하면서 꼭두각시 인형극의 대잡이(인형조종수)로 인형극 공연을 전담해왔던 김학수가 연출을 맡았다.
극단 미추는 마당놀이를 통해 전통을 현대적 문화상품으로 히트시킨 동시에 ‘남사당의 하늘’(연출 손진책) 등의 공연을 통해 남사당의 공연 전통을 이어 내려오는 연극 단체다. 그러고 보면 ‘단테의 신곡’을 통해 창극의 실험과 현대화에 앞장서고 있는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김성녀도 극단 미추의 대표적인 간판배우이자 극단 미추 마당놀이를 통해 탄생한 전국 규모의 스타 배우다. 이번 꼭두각시극 ‘돌아온 박첨지’는 연출가 김학수라는 연결고리를 매개로, 극단 미추가 이어온 전통의 흐름이 극단 백수광부 배우들의 몸과 마음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광경이 흥미롭다. 일반 극단에서는 쉽게 엄두도 내지 못할 공연임에 분명하고, 그 못지않은 공력과 열성이 들어간 공연이다. 극단의 인적 자원을 통해 전통극의 흐름이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놀랍고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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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들의 표정은 현대 추상화의 붓놀림처럼 굵고 단순하고
현대적이다. 오방색의 알록달록한 인형의 입을 통해 나오는
재담과 풍자는 걸쭉하고 신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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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웃어라! 그 속에 풍자와 슬픔이 있나니

“어허허 아 헤헤/어허허 아 헤헤/떼이루 떼이루 띠어라 따/떼이루 떼이루 떼이루 야하!”
꼭두각시극 ‘돌아온 박첨지’의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다. 검정색 막 안쪽에는 인형을 놀리는 인형잽이가 자리하고 있고, 무대와 객석 경계선에는 산받이와 악사들이 앉아있다. 산받이는 판소리의 고수처럼 북으로 반주를 맞추고 인형과 대화를 나누면서 극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악사들은 북과 꽹과리와 태평소를 연주한다. 잠든 머리를 두드려 깨우고 피를 뜨겁게 달구는 소리들이다. “어허허 아 헤헤/떼이루 떼이루.” 인형잽이와 산받이와 악사들이 서로 소리를 맞추며 극의 시작을 열어젖힌다.
“떼이루” 소리와 함께 무대 한쪽에서 부채가 흔들리면 마술처럼 인형들이 하나씩 무대 위에 등장한다. 몽당연필을 깎아놓은 듯한 조그만 인형 세 개가 오종종 지나가고, 허연 백발이 성성한 얼굴 큰 박첨지가 지나가고, 노랗고 빨간 치마저고리를 입은 각시 인형들, 귀가 덜렁거리는 남자 인형도 지나가고, 곰보 자국으로 얼굴이 얽은 꼭두각시도 등장한다. 박첨지 손자인 작은박첨지 인형의 키는 40센티미터이고, 박첨지의 조카 홍동지는 75센티미터, 박첨지와 꼭두각시는 얼굴만 70센티 미터다. 그런가 하면 아예 손가락으로 조종하는 손가락 인형인 상좌는 얼굴만 10센티미터다. 인형의 캐릭터별로 팔다리가 다 붙어 있고 입술을 움직이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정교한 인형이 있는가 하면, 얼굴만 깎아놓고 빈 소매를 흔들며 흥겨운 춤을 보여주는 인형도 있다.
인형이기에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감하게 생략할 것은 생략하고 단순화시키는 반면, 강조할 것은 더 확실하게 강조하고 과장시킨다. 노인인 박첨지는 온 얼굴에 허연 백발과 수염이 뒤덮었는가 하면, 젊고 혈기왕성한 홍동지는 온몸이 붉은 알몸이고 성기까지 불룩 솟아 있다. 홍동지는 객석을 향해 시원한 오줌을 내지르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인형들의 표정이나 표현은 현대 추상화의 붓놀림처럼 굵고 단순하고 현대적이다. 오방색의 알록달록한 색채는 화려하면서 해학적이다. 철저히 원근법과 비례를 지키는 정물화나 풍경화의 방식이 아니라 자유분방한 피카소의 그림을 닮았다. 백남준의 유희 본능과 색동의 오브제들을 사용한 설치미술이 생각나기도 한다. 같은 전통극인 탈춤과 달리, 인형의 표현력이 극대화되어 있고 생략과 압축을 통한 단순미와 해학성이 현대적이다.
자유분방한 것은 인형의 표현만이 아니다. 인형의 입을 통해 나오는 재담과 풍자는 탈춤보다 걸쭉하고 신랄하다. 인형극이라고 해서 아기자기한 아동극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꼭두각시극은 남사당놀이패의 핵심적인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탈춤이 연희자의 춤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극이라면 꼭두각시극은 재담(才談)이라는 언어가 중심인 극이다. 탈춤보다 꼭두각시극이 훨씬 연극성과 언어극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그 언어는 민중극의 특성대로 해학적이고 신랄한 풍자의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한 이시미는 마을의 재앙으로 남아 동네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새로 부임한 평안감사는 백성들을 돌보기는커녕 꿩 사냥에만 허송세월 중이다. 홍동지는 이것저것 허례와 가식을 모두 벗어놓고 맨몸뚱이로, 뻘건 성기를 곧추세우고 그야말로 “꼴리는 대로” 걸쭉한 입담을 쏟아놓으며 공공의 적이자 재앙인 이시미를 물리치며, 낮잠 자다 개미에게 불알 물려 급사한 평안감사 상여 행차를 냄새 난다 비웃으며 치워버린다.
그런가 하면 외상 술값 떼먹으려고 붉은 얼굴을 홱 돌려 흰 얼굴을 들이밀며 시침 떼는 알코올중독자인 홍백가, 비단옷 입은 왕서방, “세상 고약하고 더러운 짓거리 보기 싫어서” 눈 딱 감고 다니는 묵대사, “똥딱기 똥딱” 춤추고 노래하며 등장하는 박첨지의 두 딸내미 피조리, 박첨지가 첩으로 얻은 젊은 술집여자 덜머리집 등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현실적이다. ‘돌아온 박첨지’에는 어느 전통극보다도 서민과 여자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김학수 연출이 꼭두각시극을 준비하면서 현대적인 변용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가 십분 이해된다.
연출가 김학수는 꼭두각시극이 남사당놀이의 핵심 레퍼토리임에도 전수의 어려움 때문에 점차 밀려나고 있는 상황에 거듭 안타까움을 표했다. 동시에 꼭두각시극이 연극성 강한 언어놀이라는 점에서 현대화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강한 확신을 드러냈다. 오늘날 꼭두각시극을 자주 볼 수 없는 현실적인 맥락을 고려해 꼭두각시극의 원형 그대로를 살려 공연하되, 차츰 창작극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현대적인 인물을 포함해 10여 개의 인형을 새로 제작하고, 현대적인 맥락에 맞게끔 대사를 매끄럽게 수정한 이번 공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훨씬 쉽고 재미있게 집중할 수 있도록 완성됐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는 김학수 연출 자신이 오랫동안 꼭두각시극 공연을 이끌어온 경험이 녹아들어갔다.
덧붙여 전통적인 연기 메소드의 훈련 방법이 배우들에게도 충분한 교육 효과가 있다는 연출가의 설명이 뒤따른다. 실제로 박첨지의 화술은 극단 백수광부의 ‘봄날’에서 배우 오현경의 연기와 화술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연출가 김학수는 배우들이 전통극을 접하고 훈련하는 방식이 공연을 통해 직접 만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더불어 극단 미추나 백수광부는 연기 메소드나 성격이 다른 집단이지만 이 모두가 ‘배우의 작업’일 뿐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거듭 확인시켰다. 전통극의 현대화에 관한 김학수의 의지와 방향은 매우 분명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전통극 재발견 시리즈 첫 공연인 꼭두각시극에 이어, 다음 무대에서는 무속을 주제로 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계획을 전했다.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살기 어렵다. 농사를 지어놓으면 새떼가 몰려와 곡식을 쪼아 먹는가 하면, 새로 부임하는 관리마다 기생 타령·꿩 사냥 타령으로 착취만 거듭한다. 그래도 평범한 서민들은 열심히 살아간다. 꼭두각시극은 민중들의 염원과 고통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해학과 풍자의 웃음으로 고통의 세계를 극복해나간다. 꼭두각시극의 마지막, 소원을 빌고 축원을 하며 절 짓고 허무는 장면은 꼭두각시극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소원을 비는 자리가 될 것이다. 애초 원시시대부터 인형의 태생 자체는 그렇게 제의적인 속성이 있지 아니하던가!
12월 11~29일, 예술공간 서울.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극단 백수광부


시작과 끝을 알리는 손가락 인형, 상좌(上佐)

꼭두각시극은 상좌들의 춤으로 시작해 상좌들이 절을 짓고 허무는 장면으로 끝난다. 꼭두각시극의 상좌는 손가락 인형이다. 한 명의 배우가 양손에 하나씩 상좌 인형을 끼고 손가락으로 연기를 한다. 상좌는 대사가 없다. 대신 손동작으로 다양한 마임을 만들어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앙증맞고 귀엽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상좌는 절을 짓기 전 미리 스트레칭을 하고, 힘들 땐 서로 안마도 해주면서 다정하게 함께 절을 짓는다. 실제로 손가락 인형인 상좌가 벽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리고, 지붕을 얹고, 다 지은 절의 문을 열어젖히며 관객들에게 환한 손짓을 할 땐 왠지 뭉클해진다. 마치 공든 탑을 쌓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손을 모으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 든다.
민중극인 탈춤과 꼭두각시극에는 당대의 민중들에게 가까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상좌나 목중, 높은 공덕을 쌓은 노스님인 노장은 불교의 인물들이면서 시끌벅적한 시장 통에 내려와 민중과 함께 어울리고 춤추는, 혹은 신랄하게 풍자되는 현실적인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극의 처음과 끝을 이들로 하여금 민중들의 염원을 빌고 축원하게 한다. 절실한 삶의 의지를 제의적인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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