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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진행자로 나선 해금 연주자 꽃별
일상이 음악으로 변하는 시간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6/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6월호 - 전체 보기 )

라디오 너머로 들려오는 차분한 목소리. 무대 위 해금주자로 관객과 만나왔던 꽃별이 최근 국악방송 라디오 진행자로 변신했다. 매일 저녁, 음악과 일상을 이어주고 있는 그녀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나는 해금연주자 꽃별에 관한 비밀스러운 풍경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꽃별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꽃별’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지만, 그녀의 원래 이름은 ‘이꽃별’이다. 당시 해금 파트를 주름 잡던 그녀와 마주했던 곳은, 정말이지 ‘객석’의 독자도 들으면 놀라겠지만 한적한 농구 코트였다. 거문고 전공의 남자 선배와 장난 삼아 농구공을 던지며 “슛! 골인”을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마치 궁중정재(궁중의 경사스런 잔치에 연행되던 춤) 가운데 공과 같은 채구를 던지며 춤을 추는 ‘포구락’의 무희 같았다고 할까. 그녀가 농구 코트의 한 송이 꽃으로 기억됐던 날이었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해금 주자 꽃별을 만나러 가는 길, 나는 지금 상암동 국악방송으로 가고 있다. 5월 12일부터 ‘맛있는 라디오, 꽃별입니다’의 진행을 맡은 꽃별을 만나러.

“맛있는 라디오, 꽃별입니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상암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국악방송국 11층 스튜디오. 그녀를 만나러 공연장으로 향하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첫인사를 나눈 뒤 바로 학창 시절의 꿈을 물었을 때, 라디오 진행자라는 대답이 나올 줄이야!

“어렸을 때, KBS 1FM이나 ‘별밤(별이 빛나는 밤에)’을 많이 들었어요. 디제이가 말할 때, ‘저 스타일은 좀 아닌데···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라면서요. 그랬던 제가 이렇게 진행을 맡을 줄이야.”

‘맛있는 라디오, 꽃별입니다’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6시부터 90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삶의 이야기와 국악을 맛있게 조리하여 청취자의 귓가로 정성스레 떠 넣어준다. 그래서인지 ‘맛있는 라디오’의 줄임말인 ‘맛라’라는 말에서 엄마의 정성스런 간식을 가득 머금고 “맛나!”라고 외치는 아이의 행복한 표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일별로 ‘맛라’에는 학자와 평론가들이 잠시 들린다. 그들은 월요일의 ‘공연실황’, 화요일의 ‘고전인문학’, 수요일의 ‘우리문화 다시 읽기’를 함께 한다. 금요일에는 옛적의 민요와 지금 불리고 있는 민요를 비교해서 들어보는 ‘두 곡 사이’가 방송된다. 무엇보다 목요일에 선보이는 ‘꽃별의 음악 노트’는 ‘연주자 꽃별’이 음악을 하면서 모아온 느낌을 ‘진행자 꽃별’의 입장에서 풀어내는 ‘맛라’만의 전매특허 코너다.

라디오 디제이를 시작한 것에 대해 꽃별은 “우연이었다”라고 말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에게 ‘맛라’는 물음표를 들고 떠난 긴 여행 끝에 놓인 삶의 해답이자 쉼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던 중 여동생과 스페인으로 긴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러 고민들을 한가득 안고 한 800킬로미터는 걸어다녔어요.”

“무슨 고민을?”

“‘내가 정말 무대와 어울리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요. 항상 슬럼프인데, 더 큰 슬럼프가 왔던 거죠. 사실 손에 꺾임 증세도 있어서 아팠어요. 여러 일이 겹치면서 ‘그래, 이꽃별. 너 진짜 열심히 했다. 이제 얼마나 더 할 거냐’라면서 해금과 싸우던 중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화해했죠. 해금과의 사랑은 여전해요. 지금은 6집 준비 중입니다.”

삶의 중요한 순간에 쉼표처럼 찾아온 ‘맛라’. 사실 많은 예술가들이 쉼표를 찾지 못한 채 마침표를 찍어 아쉬움을 남기는 경우도 많은데, 나 또한 그녀의 그런 이야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한 명의 예술가를 지켜보는 평론가로서. 그리고 팬으로서.

그런데 그런 나에게 그녀는 최근 결혼을 했다며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다. 이 서글픔은 뭘까. 이것은 팬으로서 느낄 수 있는 서글픔이었다. 그래서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꽃별 씨, 꿈에 그리던 첫사랑이 전화를 했어요. 오늘 오후 6시에 눈 내리는 광화문으로 나오래요. 그래요, 첫눈입니다. 싱숭생숭하겠죠. 그럼 방송과 첫사랑 중 어느 편을 택하겠어요?”

“괜찮아요. 방송국으로 오라고 하면 돼요. 지금 남편이 제 첫사랑이니까요.”

이 기사를 읽는 꽃별의 많은 남성 팬들이 눈물로 이 페이지를 적시리라.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이제 꽃별 씨 감금시대입니다. 스튜디오에, 그리고 남편 분에게!”

“그러네요!”라며 싱글벙글. 나의 머릿속에는 학창 시절에 농구코트에 서 있는 ‘이꽃별’의 표정이 떠오른다. 골인했을 때 지었던 밝은 표정과 웃음소리가.

 

90분간 음악과 이야기를 요리하는 스튜디오

‘맛라’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대본을 받은 꽃별은 분주하다. 입에 새기듯 읽어 내려가고 각 문장마다 ‘꽃별표’ 표정과 뉘앙스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저녁 6시가 되었다. 스튜디오 창문 밖의 상암동 일대에 서서히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ON AIR’에 불이 켜지자 시그널 음악 속의 생황 소리가 막을 연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는 7시 30분까지 스튜디오는 그녀만의 공간이 된다. 모니터로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전달되고, 꽃별은 자신의 목소리를 직시한다. 음악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음악이 나올 때, 스튜디오 안에서는 뭐 하나요?”

“음악 들어요. 저는 음악에 금방 빠져들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편이에요. 금방 웃고 울고 그치죠. 어디서든. 이 공간에서 듣는 음악은 훨씬 더 집중해서 듣게 돼요. 혼자 있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으니까요. 슬픈 곡이 끝날 때면 ‘다음 멘트를 어떻게 읽지’ 하면서 잠긴 목을 얼른 풀어요.”

음악이 끝나고 ‘ON AIR’에 불이 켜지기 바로 몇 초 전, 꽃별은 긴장된 마음을 다잡고 목소리에 맺히는 떨림을 감춘다.

“그럼 이 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뭘 거 같아요?”

마이크와 대면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름대로 폼을 잡고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물이 가장 중요해요. 그 다음은 시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 옆에는 90분을 버티게 하는 물 한 병과 시계가 놓여 있다. 일상에서는 시침과 분침을 보지만, 음악과 이야기가 살을 맞대는 이 공간에서는 분침과 초침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고 동글동글한 돌 같은 조개가 보인다. 자연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누군가 새겨 넣은듯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선명하다. 보라카이에서 주워온 조개인데 손에 꼭 쥐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무대나 방송이나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무대에서는 해금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관객이 있었다면, ‘맛라’에는 꽃별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수많은 청취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내는 문자 사연은 공연장 관객의 반응만큼 뜨겁다.

‘두 줄 해금 때리시듯, 다독거리시듯. 맑은 목소리 진행에 저녁 서산에 걸린 해가 같이 놀자는 듯 걸쳐 있네요.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라는 방송작가 압도형의 문구.

‘수국의 꽃내음보다 더 곱고 맑은 음성에 시간이 짧음을 느낍니다. 단아하신 진행에 큰 박수 보냅니다’라는 꽃 비유형.

‘라디오 돌리다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단아해서 국악이랑 잘 어울리네요. 앞으로 자주 듣겠습니다’라는 절대 각오형.

“그동안 해금 주자로서 관객을 만나왔는데, 이제 관객과 만나는 방법이 달라졌네요. 게다가 청취자들은 꽃별 씨를 일요일 빼고 매일매일 만날 수 있어서 좋겠어요.”

“관객은, 아니 청취자는 ‘맛라’를 함께 이끌어가는 존재라 생각해요. 무대에서는 음악을 책임져야 했는데 ‘맛라’에서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청취자들과 다리 역할을 하는 듯해요. 무대에서 만나는 관객보다 훨씬 더 친근한 거 같아요.

청취자들은 삶 속에 걸쳐 있는 만남의 행복과 이별의 사연을 꽃별에게 보낸다.

그중 꽃별의 음악을 틀어달라는 요청이 많은 양을 차지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2001년 일본 공연을 계기로 데뷔한 그녀는 1집 ‘Small Flowers’를 시작으로 ‘Star Garden’ ‘Fly Fly Fly’ ‘Yellow Butterfly’ ‘숲의 시간’까지 다섯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해오며 해금의 실험적인 면부터 단아한 음색 모두를 선사해왔기 때문이다. ‘시가 내게로 다가왔다’라는 김용택의 시선집 제목처럼 어쩌면 꽃별의 해금에 반한 그들은 후에 ‘꽃별의 해금이 내게로 왔다’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꽃별은 그렇게 자신의 음악을 기억해주는 청취자들과 함께 ‘맛있는 라디오’를 요리해간다.

꽃별이 음악과 이야기로 ‘맛라’를 요리하는 동안, 유리 너머로 장수홍 PD는 레시피를 꼼꼼히 검토한다. 꽃별의 이야기 끝에 곧 나올 음악이 머리를 들이밀고 으르렁거리고 있자 장수홍은 두 손을 높이 들어 둘만의 신호를 주고받기도 한다.

“제가 감성적이라면 장 피디님은 이성적이에요. 제가 임자 만난 거죠.”

“같이 진행한 지 며칠 안 됐는데, 꽃별 씨는 가능성이 많은 진행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금 주자 꽃별의 이미지만큼 어떤 친숙함이 목소리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져요. 꽃별 씨 덕분에 젊은 청취자들도 많이 늘 것 같고요. 한마디로 다양한 매력을 안고 있는 아티스트랄까요.”

누구에게나 추억 속의 디제이, 아니 라디오 스타가 있다. 지금 꽃별은 ‘맛라’를 통해 그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는 끝났고 스튜디오의 창문 너머로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건너편 빌딩 사무실 속 누군가의 컴퓨터 옆에 스피커가 보이고, 걸어 다니는 이들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맛라’가 전하는 국악이, 꽃별의 목소리가 그 안에 흐르고 있으면 좋겠다.

▲ 꽃별이 방송 시간을 맞추기위해 풀어놓은 시계와 애장 소품인 조개

▲ QR코드에 담긴 꽃별의 인터뷰 현장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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