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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오페라의 브리튼 페스티벌 중 ‘피터 그라임스’ ‘나사의 회전’
주인공의 죽음을 보는 두 가지 시선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5/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5월호 - 전체 보기 )



올해 개최된 벤저민 브리튼 페스티벌에서는 죽음을 다룬 오페라가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그라임스와 마일스, 두 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브리튼이 전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일까


▲ ‘피터 그라임즈’의 성공 뒤에는 여섯 유형의 등장 인물을 성공적으로 소화해 낸 배우들이 있다 ⓒJean Pierre Maurin

4월 10일부터 29일까지 리옹 오페라는 벤저민 브리튼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페스티벌은 브리튼의 대표적인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연출 요시 오이다)와 ‘나사의 회전’(연출 발렌티나 카라스코) 그리고 ‘컬루 강(연출 올리비에 피)’을 비롯해 여러 개의 실내악 연주회로 꾸며졌다. 세 편의 오페라는 3부작처럼 묶여 페스티벌 기간 동안 매일 차례로 공연됐다.
페스티벌 개막에 맞춰 찾은 리옹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이탈리아·벨기에·스위스 각지에서 온 기자들로 만원을 이뤘다. 여기에 리옹이 속한 론 알프스 지방협회의 후원 아래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초대되어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리옹 오페라 측이 학생들에게 오페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인데, 이는 오페라가 일부 엘리트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임을 강조하는 사회 참여의식이 드러나는 사례였다.
4월 10·11일 양일간 리옹 청중의 뜨거운 갈채 속에 막을 올린 ‘피터 그라임스’와 ‘나사의 회전’을 취재했다. 공통적으로 어둡고 심각한 분위기의 두 작품은 서로 상반된 연출이 대비된다. 나이 든 일본 연출가 요시 오이다가 ‘피터 그라임스’의 본질만을 짚어나갔다면, 젊은 브라질 연출가 발레티나 카라스코는 창조성과 시각성이 뛰어난 ‘나사의 회전’을 만들었다.

사회가 만들어낸 살인자, ‘피터 그라임스’

4월 10일에 공연된 ‘피터 그라임스’는 오노 가즈시의 지휘 아래 리옹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열연이 돋보였다. 연출을 맡은 요시 오이다는 피터 브룩의 연극 ‘마하바라타’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배우이기도 하다. 리옹 오페라에서는 2009년 브리튼의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 2012년 제롬 콩비에의 ‘재의 땅’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브리튼이 조지 크래브의 시 ‘버러의 사람들’에 부쳐 작곡한 것으로, 1945년 런던 새들러스웰즈 극장에서 초연됐다.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를 떠올리게 한다. ‘보체크’처럼 ‘피터 그라임스’도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을에서 떨어진 절벽에 사는 어부 그라임스에게는 견습공 소년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이 소년은 그라임스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주민들은 평소 성격이 괴팍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라임스가 소년을 학대하고 죽였다고 생각한다. 비난이 커지자 결국 그라임스는 홀로 배를 타고 나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방치한다. 요시 오이다는 그라임스가 45년 전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과도 같다고 말했다.
브리튼은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오페라세리아 형식으로 썼는데, 여섯 가지 유형의 등장인물은 자신들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레치타티보·아리아·듀오를 부르며 이 비극적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 첫 번째 유형은 피터 그라임스를 사랑하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를 두둔해주는 여교사 엘렌 오퍼드다.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강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라임스에게 등을 돌린다. 소프라노 미카엘라 카운은 검소함이 묻어나는 푸른 정장 차림으로 엘렌을 연기했다. 그녀는 고운 바이브레이션과 새콤한 음성으로 여교사의 풍부한 감수성을 돋보이게 했다.
두 번째는 세들리 부인으로, 겉으로는 도덕적인 척하지만 실은 허영에 넘치고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고약한 인물이다. 그녀는 엘렌과 그라임스의 대화를 엿듣고 거짓 소문을 퍼트려 마을 사람들을 선동한다. 스스로 고귀한 신분이라 자부하는 그녀는 술집 주인 탄틴의 조카들을 창녀라 부르며 천시한다. 키가 큰 메조소프라노 로절린드 플로라이트는 거만한 노부인 세들리의 이중성을 잘 소화했다.
세 번째는 탄틴과 두 조카로, 이들은 천한 신분이지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두 조카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 캐롤리 맥피와 로르 배라스는 이 어두운 작품에 유일하게 여흥을 선사한다. 그들이 주황색 치마를 걷어 올리고 가슴을 드러낸 채 부르는 감미로운 듀오는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네 번째는 애덤 목사와 스왈로 보안관으로 사회적 책임에도 불구하고 중론에 휩쓸리는 허약한 인물이다. 각각 테너 제프 마틴과 바리톤 카롤리 세메레디의 연기로 생명력을 얻었다.
다섯 번째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는 도착형 인물 밥 볼스다. 그는 트럼펫을 불며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폭력을 부추긴다. 거구의 콜린 저드슨은 어리석고 충동적인 이 배역을 잘 연기했다. 여섯 번째는 극중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인 그라임스의 친구 발스트로드다. 그는 그라임스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에게 붙잡혀 참형을 당하는 것보다 명예롭게 떠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이스바리톤 앤드루 포스터 윌리엄스가 발스트로드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테너 앨런 오크가 연기한 피터는 아웃사이더라기보다는 인생의 길을 잃은 허약한 성격의 소유자에 가까웠다. 그라임스는 주인공임에도 극중 역할 분량이 적은 편이었는데, 오크는 예민하고 병적인 그라임스를 압축적으로 잘 그려냈다. 이 작품이 호응을 얻은 것에는 오크를 비롯하여 각각의 인물 유형을 잘 살린 성공적인 캐스팅이 큰 몫을 했다.
오이다의 연출은 시적이긴 했으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파운트니의 연출에서는 견습공의 죽음에 대해 스왈로가 그라임스를 강하게 문책하는데 반면, 오이다는 단지 자초지종을 묻는 정도로만 그렸다. 또한 견습공 아이가 벼랑 아래로 떨어질 때 “악!” 하는 괴성만을 들려줄 뿐 생사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데, 이후 오이다는 어두운 절벽 위에 아이가 서 있는 장면을 삽입해 이 부분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오이다의 연출은 그라임스가 정말로 살인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뚜렷한 암시를 던지지 않는다. 다만 그를 살인자로, 정신병자로, 혹은 착하지만 운이 없는 어부로 보는 시선만을 제공할 뿐이다.
오이다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난센스도, 서프라이즈도 제공하지 않았다. 플롯은 지루할 만큼 단선적이었으나 음악적으로는 역동적인 타악기와 작렬하는 금관 소리가 돋보여 짜릿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연출은 오페라세리아로서 성악적 퍼포먼스를 극대화한 버전이라고 평할 수 있다.
리처드 허드슨의 무대 의상이 19세기 말을 보는 듯했던 반면 톰 솅크의 무대 장치는 무척 현대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둘은 바닷가 풍경 속에서 전혀 이질감 없었다. 무대 위에 빽빽이 들어선 컨테이너는 그라임스의 집으로, 배로, 교회로 다채롭게 탈바꿈했다. 배우들이 컨테이너 문을 열고 무대로 들어올 때마다 바닷가의 거친 바람이 객석 안으로 몰아치기도 했다. 무대 중앙에 걸린 거대한 커튼은 루츠 데페의 조명에 따라 바닷가의 여러 가지 분위기를 창출했다. 울긋불긋한 조명 속 커튼은 녹이 슨 배처럼 보였고, 푸른 조명 아래에서는 검푸른 바다로, 그리고 하얀 백색의 역광 조명 아래에서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의 그림자 같았다.


▲ 카를레스 베르가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호숫가로 재탄생한 무대 ⓒJean Louis Fernandez

붉은 스웨터를 벗고 어른이 된 소년, ‘나사의 회전’

4월 11일에 공연된 ‘나사의 회전’은 ‘피터 그라임스’와는 전혀 달랐다. 브리튼은 ‘나사의 회전’에서 ‘피터 그라임스’보다 훨씬 적은 규모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편성했으나 충분히 극적인 효과를 창출했다. 이 작품에서는 여성적이고 호기심이 강한 연출가 발렌티나 카라스코의 취향이 돋보였다. 카라스코의 미학적 바탕은 그녀가 몸담았던 연극단체 라 푸라 델즈 바우스로부터 오는 듯했다. 스페인 연극계의 귀재들이 모인 이 단체는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몽상적인 연출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아주 이상한 이야기였다…”라는 영상 자막으로 시작된다. 곧이어 영상은 금발에 하얀 스웨터를 입은 아이들이 붉은 털실로 매듭을 만들며 잔디 위에서 노는 장면을 비춘다. 카메라가 멀어지자,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은 사실 하얀 새장 속이란 것이 밝혀진다. 장면은 새장 밖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두 남녀를 비추다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의 뒷모습으로 전환되는데, 뒤이어 이 여성과 똑같은 차림을 하고 무대에 서 있는 보모 역의 소프라노 헤더 뉴하우스 위로 오버랩 된다.
블라이 가에 새로 온 보모는 플로라와 마일스 주위를 맴도는 외부인의 인기척을 느낀다. 그녀는 쫓겨난 하인 피터 퀸트와 죽은 가정교사 제셀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들의 유령이 아이들을 사로잡았다고 믿게 된다. 그녀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일념으로 아이들에게 과한 집착을 보인다. 보모는 마일스의 이상 행동이 유령 때문이라 생각해 마일스를 심하게 다그치는데, 결국 마일스가 보모의 품에서 숨을 거두며 극은 끝난다.
피터 반 프라트의 노란 역광 조명 가운데 방 안의 가구들은 종이처럼 납작하게 보인다. 이 가구는 모두 줄에 걸려 있는데, 유령이 나타나면 줄이 늘어나며 가구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간다. 이 무대 장치는 카를레스 베르가가 맡았다. 그는 플로라가 호숫가에서 잠을 자는 장면을 검푸른 조명 아래 낙엽과 나뭇가지가 아름답게 늘어져 있는 장치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붉은 털실을 모티브로 유년기의 죽음을 이야기한 발렌티나 카라스코의 연출은 여성적 감수성이 반짝이는 명해석이었다. 유령은 아이들과 이어진 붉은 털실로 ‘순진무구(innocent)’라는 단어를 만들며 돌아다닌다. 이후에 보모가 마일스의 붉은 스웨터를 벗겼을 때, 그는 퀸트의 이름을 외치며 벌거벗은 채 쓰러져 죽는다. 이를 통해 카라스코는 ‘순진무구함’이 제거되고 섹슈얼리티에 눈뜬 유년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보모 역을 맡은 헤더 뉴하우스의 노래는 볼륨은 다소 작았으나 테크닉적으로 안정되고 깨끗했다. 어린이 성악가 레모 라가네세와 랄러 파티에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가창력과 무대 연기로 청중을 놀라게 했다. 명확한 어택과 디테일 처리에 고심한 지휘자 오노 가즈시와 리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 역시 흠 잡을 곳 없었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사진 Opéra de L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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