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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고양이들의 영원한 노래 ‘캣츠’
오리지널부터 록 버전까지 다양한 취향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5/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5월호 - 전체 보기 )




1981년 초연된 이래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언어로 무대에 올려진 ‘캣츠’.

무대 위 고양이들에 얽힌 진실과 오해,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뮤지컬 넘버들에 관한 이야기

‘캣츠(Cats)’를 처음 만났던 1980년대의 런던은 지금도 생생하다. 로열 오페라하우스와 드루리 레인 왕립 극장에서 골목을 따라 북동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뉴 런던 극장이었다. 그곳은 실감 나는 말 소품이 감탄을 자아내는 ‘워 호스(War Horse)’가 장기 상연 중인 곳으로 유명하지만 ‘캣츠’가 공연될 당시에는 그야말로 매일 인산인해였다. 적은 객석수의 아담한 공연장을 오후 즈음 찾아가면 입구 한 쪽으로는 길게 늘어선 줄을 항상 볼 수 있었다. 예약이 취소된 환불 티켓을 구하기 위해 기다리던 대기자의 행렬이다. 반나절을 기다리고도 공연 10여분 남짓한 시간까지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마지막 행운이 찾아오길 기다리던 모습도 흔한 일상이었다. 뮤지컬 공연이 시작되고 끝날 즈음이면 마치 거대한 바다 생물의 촉수가 움츠렸다 펼쳐지듯, 공연장을 오가는 관객들로 장관을 이뤘다. 글로벌한 흥행 뮤지컬의 위용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던 진풍경이었다.
그 당시엔 ‘캣츠’의 우리말 공연을 살아생전 볼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우리에게 뮤지컬은 아직 ‘배고픈 예술’이었고, 무대 위 배우가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 등장하면 ‘예술을 버리고 돈을 택한 변절자’ 취급을 하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해적판 한국어 공연들이 난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 뜨거운 ‘도둑질’에 다름 아니지만, 그런 프로덕션이라도 뮤지컬에 목말라 한 관객들에겐 오랜 가뭄에 만난 단비처럼 달콤하고 신선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멀게만 보이던 ‘캣츠’는 이제 인터내셔널 캐스팅으로 구성된 월드 투어 팀의 내한 공연은 물론 우리말 버전의 앙코르 무대까지 막을 올리는 세상이 됐다. 격세지감을 지울 수 없다. 감개무량한 마음도 있다. 그만큼 우리 뮤지컬 산업의 역동적인 성장이 뒤따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직 창작 뮤지컬보다 수입 뮤지컬이 시장을 주도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마치 ‘캣츠’의 변화가 그러했듯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측도 해본다. 대한민국에서 꿈은 늘 실현되어오지 않았던가.


▲ 일레인 페이지는 1981년 그리자벨라역으로 웨스트엔드 초연 무대를 꾸미며 뮤지컬계의 전설이 됐다


▲ 1982년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에서는 베티 버클리의 폭발적인 목소리로 그리자벨라를 만날 수 있다

‘캣츠’에 얽힌 오해와 진실

사실 ‘캣츠’는 한국 뮤지컬의 근대사를 함께 살아온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기념비적 작품이다. 1990년대 말에는 해적판 공연이 원작자의 소송으로 법정 시비에 휩싸이는 송사가 벌어지기도 했고, 결국 공연중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수익금을 환수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당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풍경이었다. 심지어 국내 뮤지컬 제작자들과 프로듀서들은 해당 제작자에게 위로를 건네며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돕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캣츠’를 둘러싼 뒷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주인공 중 하나인 그리자벨라에 얽힌 이야기다. 해적판이 여럿 등장하던 시절, 우리나라 공연계에서는 이 고양이를 두고 창녀 고양이라는 해석을 덧붙인 프로덕션이 등장했다. ‘글래머 고양이’라는 노래의 부제도 그렇거니와, 낡은 코트 차림에 풍기는 이미지나 분위기도 제법 그럴싸해보였기 때문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이미지를 차용하려다 보니 그런 해석이 더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무대의 주축을 이뤘던 출연진이나 그 제작진이 비슷한 종교적 배경과 신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는 당시의 기록을 가져와 여전히 창녀 고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엉뚱하게 만드는 우를 범한다. 원작에서 그리자벨라가 창녀라는 표현이나 용어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스가 극장에 사는 늙은 배우 고양이라든지, 스킴블생크스가 기찻간 고양이고 미스터 미스토플리스가 마법사라는 말은 나오지만, 그리자벨라의 직업이나 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새벽녘까지 런던의 도심 한복판인 토트넘 코트 거리를 어슬렁거렸다거나, 우편배달부가 한숨을 쉬며 “저 늙고 보잘것없는 고양이가 왕년의 그 예쁜 고양이였나”라는 탄식만 노랫말로 등장할 뿐이다.
창녀 고양이로의 해석은 그리자벨라의 대표적인 노래인 ‘Memory’에서 관객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추억을 노래하며 그녀는 삶의 열정과 기쁨이 가득했던 과거로의 회귀를 목 놓아 부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노래는 인생의 반성이나 회환의 의미보다는 젊음에 대한 추억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찬미가 담겨 있다. 흘러간 세월을 반추하며 찬란한 젊음에 대한 그리움을 ‘추억’이라는 제목에 담아 노래하는 셈이다.
많은 고양이들은 그런 그녀의 노래를 듣고 고양이들만의 특권이자 한 마리 고양이로 선택되면 누릴 수 있는 환생의 기회를 양보한다. 그런데 창녀 고양이가 되면 이야기는 내용을 달리하게 된다.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자면, 남자 손님에게 큰 인기를 끌던 나이든 창녀 고양이가 화류계로의 귀환을 꿈꾸자 다른 고양이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양보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사실 그리자벨라는 한때 글래머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볼품없어진 고양이 정도로만 해석하는 것이 맞다. 군데군데 털이 숭숭 빠진, 그래서 마치 피부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보이는 늙고 추레한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부르는 노랫말은 “나를 쓰다듬어주면 진정한 행복을 이해할 수 있을 것(If you touch me, You′ll understand what happiness is)”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생의 단 맛, 쓴 맛을 모두 알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게 된 인생의 고단함과 회한의 감성인 셈이다. 창녀 고양이의 환생이라는 난해한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던 우리 관객들과 달리, 손바닥이 벌게질 때까지 박수를 치고 상기된 표정으로 공연장을 나서는 서구 관객들의 감동은 바로 여기에서 갈린다.

‘Memory’는
여러 진기록으로 유명하다.
오리지널 캐스트의 음원 말고도
약 150여 명의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린 역사 때문이다.
그중에는 배리 매닐로우 같은
남성 발라드 가수도 있고,
조수미 같은 성악가도 있다
뮤지컬 ‘캣츠’ 내한 공연


댄스 버전으로 편곡된 노래부터 음반에서만 들을 수 있는 뮤지컬 넘버까지

그리자벨라의 초연 무대를 꾸몄던 것은 일레인 페이지였다. 원래 제작진이 처음 작품을 구상했던 때에는 당시 영국의 인기 뮤지컬 배우였던 마티 웹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에비타’의 히로인이던 일레인 페이지에게 기회가 돌아갔고, 그녀는 이 역할로 뮤지컬계의 전설이 됐다. 기회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운명처럼 배우의 일생을 뒤바꿔놓기도 한다.
워낙 세계 각국에서 여러 언어로 번안되며 무대를 꾸미다 보니 음반 종류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영어권 음반이라도 캐스트에 따라 각기 다른 매력을 담고 있는데, 1981년도 웨스트엔드 캐스트 음반과 이듬해 나온 1982년도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은 재미난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처음 들어본 음반이 어느 지역 캐스트 음원이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도 있다. 그리자벨라의 경우 웨스트엔드 캐스트에서는 일레인 페이지, 브로드웨이 캐스트에서는 베티 버클리의 목소리로 만날 수 있고, 어린 고양이 제마이마는 웨스트엔드 캐스트에서는 세라 브라이트먼, 브로드웨이 캐스트에서는 캐롤 리처즈의 노래로 감상할 수 있다.
공연에서는 들을 수 없는 대신 음반에서만 즐길 수 있는 노래도 있다. 극장에 사는 늙은 배우 고양이 거스가 부르는 ‘Ballad of Billy McCow’가 대표적이다. 요즘 무대에 올라가는 실제 공연 버전에서는 이 장면의 음악이 해적 고양이가 되어 부르는 ‘Growl Tiger’s Last Stand’로 교체됐기 때문이다. 극적인 재미를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 특유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담겨 있는 뮤지컬 넘버를 더 이상 무대에서 감상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동시에 음반을 통해야만 감상할 수 있는 일종의 히든 트랙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Memory’는 여러 진기록으로 유명하다. 오리지널 캐스트의 음원 말고도 약 150여 명의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린 역사 때문이다. 그중에는 배리 매닐로우 같은 남성 발라드 가수도 있고, 조수미 같은 성악가도 있다. 내털리 그랜트가 불렀던 댄스 버전의 특이한 사례도 있다. 다양한 예술가들에 의해 여러 형태로 변주되었지만, 시대와 연령을 불문하고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는 게 공통점이다.
‘캣츠’는 광적인 팬이 많은 뮤지컬로도 유명하다. 일부 ‘캣츠’의 마니아들은 고양이별로 여러 가지 뒷이야기를 덧붙인다든지, 작품에선 설명되지 않는 뒷이야기를 인터넷에 설명하기를 즐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범죄자 고양이인 맥카비티가 나타날 때 항상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외치며 경계하는 것은 고양이 드미터인데, 작품에는 따로 설명이 없지만 여자 고양이 드미터는 어릴 적 맥카비티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그의 등장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고양이라는 설명 등이 있다.
명작이라 불리는 만큼 극의 줄거리 외에도 다양하고 치밀한 디테일의 완성도가 덧붙여져 사람들로 하여금 즐겨 이야기하게끔 한다는 것은 ‘캣츠’만의 큰 특징 중 하나다. 물론 음반도 이런 배경을 알고 들으면 더 흥미롭게 만끽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어느 때고 초대받고 싶은 고양이들의 멋진 향연이 기다려진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설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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