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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지운
그의 일상, 즉 환상
글 김나희(파리통신원) 4/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4월호 - 전체 보기 )



‘오늘은 뭘 먹지’라는 매일의 끼니 고민을 해결해주는 곳. 술을 마시듯 현실의 무의미함을 잊고 몰입할 수 있는 곳.
영화 현장에 대한 김지운 감독의 사랑고백은 ‘밥과 술’만큼이나 일상적이며 그래서 너무 강렬하다


2004년, 아시아 공포 영화의 전형을 깨트린 그의 ‘장화, 홍련’은 아름다운 미장센과 처연한 슬픔을 결합시킨 수작으로 평가 받으며 프랑스 제라르메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올해, 이 영화제는 김지운을 위해 전작 상영이라는 오마주를 준비했다. 현지 평론가들은 어느 장르에서든 독특한 감수성으로 극단적일 만큼 아름다운 미장센과 최대치의 결과물을 보여준다며 김지운을 가리켜 “블랙 다이아몬드”라 칭했다.
지난 2월, 제라르메 영화제의 트리뷰트 상을 수상하기 위해 프랑스를 찾은 영화감독 김지운을 파리에서 만났다. 김지운과 ‘객석’의 이야기는 영화 ‘달콤한 인생’에 등장하는 첼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 대화의 끝엔 밥과 술이라는 너무나 일상적인 애정의 대상이 등장한다.

‘달콤한 인생’의 희수(신민아)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첼로를 켠다고 설정되어 있었다. 굳이 첼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백남준의 퍼포먼스 작품에서 여자의 육체를 첼로로 치환한 걸 봐도, 기본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육체적이다. 첼로를 좋아해서 파블로 카살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오랫동안 들어왔다. 바이올린보다 특히 첼로에 끌린다. 낮은 음역대가 사람을 가라앉혀주고, 차분하게 해주고, 끓어오를 때도 더 묵직하고, 깊고, 은밀한 느낌도 있다. 한 번도 연주해본 적은 없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는 다른 생각 없이 무조건 첼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엘가 첼로 협주곡도 아주 좋아한다. 재클린 뒤 프레는 첼로를 연주할 때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실제로도 아름다운 ‘영국의 장미’ 아니었나.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해온 장한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첼리스트 정명화 등 첼로를 연주하는 여자들의 이미지가 내겐 익숙하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 육체적인 관계가 전혀 없이, 멜로의 느낌을 표현하려면 그래서 첼로가 걸 맞는 악기라고 생각했다. 악기를 안은 자세가 마치 희수가 남자를 끌어안고 있는 듯보이기도 하고, 선우(이병헌)는 자신이 안긴 듯 감정이입을 할 수도 있을 테고. 사랑이란 흔히 생각하듯 시간이 필요하고, 직접적인 육체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연주 장면을 촬영할 때, 신민아에게 연주 준비 동작을 더 신경 써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몸을 살짝 풀고, 지판을 짚기 전에 연주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동작을 해달라고. 실제로도 공연장에서 연주자들이 연주 직전 준비 자세를 취할 때 짜릿한 느낌이 든다. 이제 시작할거다, 예고하는 듯 긴장도 된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가 활을 현에 갖다 대기 직전, 플루트 같은 관악기도 연주를 위해 자세를 잡는 바로 그때. 마치 장갑을 손에 낄 때, 장갑과 손이 가장 잘 밀착되도록 손을 움직거리며 맞추는 듯한 느낌이다.

‘달콤한 인생’ 선우의 내레이션은 철학적이다. ‘인류멸망보고서’의 단편 ‘천상의 피조물’에서도 불교의 선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이 유럽사람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대사를 일부로 현학적으로 쓰거나 거기에 구태여 철학적인 깊이를 더하려 했던 건 아니다. 불경이든 성경이든 현실의 일반 철학이든, 어느 구절들을 인용했을 때 내가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구절을 잘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천상의 피조물’은 원작이 있었고, 대사를 살려서 원작의 메시지를 담아내려고 했다. ‘달콤한 인생’의 경우, 불교의 선문답을, 그 짧은 문답이 의미하는 지점을 현실로 가져온다면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장르 영화가 홀대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인류멸망보고서’가 2012년 캐나다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대상 격인 슈발누아르(Cheval Noir) 상을 받았을 때, 국내에선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흔히 장르 영화는 소수를 위한 취향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나마 유럽이 장르 영화를 예술적으로 수용하고, 우리나라는 장르 영화가 보편적 주제와 연결되지 않으면 너무 마니아적이라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내 영화 중에는 ‘장화, 홍련’과 ‘악마를 보았다’가 해외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았다. 이들 작품으로 제라르메 영화제에서 두 번이나 큰 상들을 받았는데, 막상 상을 받으러 이곳에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도 안 오니까 전작 상영을 한 건가도 싶다(웃음). 이번엔 트리뷰트 상을 받았는데 ‘이걸 왜 주지?’ 싶었다. 실은 ‘조용한 가족’부터 해외에서 상복이 있었다. 한국에서 장르 영화에 상을 준다는 것은 당시로는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상 받으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받으면 기쁘지만 감회를 이야기할 정도로 감정이 충만해지는 성격은 아니다. 일희일비하는 편이 아니어서 감정의 동요가 크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저평가든 상을 받든 내 입장에서는 똑같다. 이쪽에서는 내 영화를 덜 알아봐주고, 저쪽에서는 더 알아봐주니까 어떤 의미에선 제로섬인 셈이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감동해서 울컥할 수도 있다. 음악을 듣고 감정이 움직이는 건 정서를 건드리는 행위니까. 그러나 영화제의 수상 여부가 그런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진 않는다. 비유하자면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 받는 정도의 기쁨이랄까.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스크린엑스 기법을 쓴 ‘더 엑스’를 보면 더욱이.
장편이 아닌 단편은 특히 작업에 대한 명분이 필요하다.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시도하거나 역량을 늘리며 해낼 게 있는지 살펴본다. 돌이켜보면, ‘커밍아웃’은 최초로 디지털로 찍어봤고, ‘쓰리’는 다른 아시아 감독들과의 앤설러지 협업(‘메모리스’)이었다. ‘더 엑스’는 세계 최초 270도 3면 영사 영화이고, ‘사랑의 가위바위보’는 내 인생 최초 로맨틱 코미디라 장르적으로 새로운 시도다. 뭔가 새로운 것, 특별한 것이 있어야 작업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모색하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더 엑스’는 기존의 극장 스크린 프레임을 확장해 스크린과 극장의 양 벽을 연결한 경우다. 그림을 확장하여 3면을 만들었고 그 3면을 이용해 비주얼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스크린엑스 기법인데, 세계 최초로 이를 이용해 극영화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할리우드 진출도 비슷한 이유의 도전이었나.
‘장화, 홍련’ 이후 할리우드에서 많은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매번 한국 일정과도 안 맞고, 작품도 마음에 안 들었다. 만약 작품이 마음에 들면 이미 모든 판이 다 짜여 있어서 무작정 찍기만 하는 고용 감독이 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6~7년이 지나갔다. 할리우드의 러브콜에 대해 너무 변죽만 울리는 것 같았다. ‘악마를 보았다’부터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에 피로를 느꼈고 우울감이 몰려왔다. 두 번씩 상영불가를 받은 심의판정 문제도 한몫했다. 사실 ‘놈놈놈’ 이후부터 그랬다. 스스로 영화를 찍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악마를 보았다’를 찍으면서도 우울했고, 재미없었고, 뭔가 나를 크게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할리우드 가서 찍는 ‘라스트 스탠드’가 미치도록 하고 싶었던 작품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영화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악마를 보았다’는 너무 무겁고 잔인하고 어두워서 가볍고 밝은 영화를 찍고 싶었다.
주연 배우가 리엄 니슨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로 바뀌었을 때, 사실 안 하려고 했다. 아널드가 내 영화적 기질과 맞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블록버스터 속 캐릭터를 연기해왔고 나는 블록버스터를 찍는 감독이 아니니까. 미국 에이전트와 제작자가 찍든 안 찍든 한번 만나보라고 하여, 내가 생각하는 ‘라스트 스탠드’를 아널드에게 확실히 이야기하고 그게 수용이 되면 같이 하고 아니면 자신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밝힐 생각이었다. 아널드를 만나, 당신이 지금까지 스크린 속에서 전 세계 최강의 캐릭터로 존재했지만 이번에는 어딘가 초라하고 지친 노쇠한 이미지의 돌아온 영웅이며, 정서적인 측면도 필요하다고 했다. 지치고 힘들지만 그런 육체적 한계에서도 극복해내는, 그간 한 번도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고 했더니, 아널드가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니, 그의 적당히 아름답게 늙은 얼굴이 좋았다. 이 영화가 그의 커리어에서 특별하게 기억된다면, 그가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인간적인 모습과 보기 좋게 늙은 표정을 담아낸 덕분일 것이다.


▲ ‘달콤한 인생’의 희수로 분한 신민아








“나는 ‘패왕별희’보다 ‘터미네이터2’가 좋았다”

소문난 다독가라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이미 문학적인 재능이 있었나.
마음만 다독가이지 실제로는 책을 많이 못 읽어 불안해 하는 스타일이다. 영화를 하기 전까지는 글을 써본 적이 없었고, 습작 기간은 물론 일기도 안 썼으니 그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다. 태어나서 처음 쓴 시나리오가 당선이 되고, 두 번째로 쓴 것도 당선이 되고, 그걸로 영화까지 찍게 되고… 그런 식이었다(감독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은 1997년 제1회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다).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작업하는 편이라 다른 영화계 분들도 놀라워하고, 미국 스태프들도 내 각색 작업 속도에 놀란다. 누가 쓴 시나리오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상상력과 뉘앙스와 취향이 들어있는 완전한 내 작품을 하는 것이 제일 좋지 않겠나. 그만큼 힘들겠지만.

자신의 시나리오와 타인의 시나리오,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을 때면 남의 치수를 재고 정확하게 거기에 맞춰서 옷을 만드는 재단사가 된 느낌이다. 그 치수는 나 스스로의 판타지에서 나온 수치가 아닌 주문 받은 그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프로페셔널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 그것을 구현해야 한다고 찍었던 영화인데, 다 찍고 보니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독특함을 일찍부터 느꼈나.
스스로 의식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꾸 독특하고 이상하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물론 내가 어떤 현상의 내면을 보려고 했던 건 있었다. 1993년에 ‘터미네이터 2’와 ‘패왕별희’가 비슷하게 개봉을 했다. ‘터미네이터’는 오락영화로, ‘패왕별희’는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의 후광으로 마치 불멸의 걸작처럼 인식되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패왕별희’는 어딘가 가짜 영화 같고, 오히려 ‘터미네이터’가 진짜 영화 같았다. ‘패왕별희’가 어느 역사 속 인간의 서사를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엄청난 공을 들인 영화인 건 맞지만 어딘가 거짓 감동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이 너무 많고 인위적인 것들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 “‘패왕별희’보다 ‘터미네이터2’가 더 진짜 영화다”라고 했다가 그때 사람들한테 구박을 많이 받았다. 칸 영화제의 위상이 엄청날 때여서,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칸의 선택을 고작 그런 오락영화와 비교해서 진짜니 가짜니 운운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영화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말 듣기 딱 좋을 때였다.

현장 콘티도 그리고, 그림 솜씨가 남다르다고 들었다.
그림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렸는데, 학원을 다니거나 선생님 아래에서 배운 적 없는 독학이었다. 전체 콘티를 내가 그린 건 ‘조용한 가족’밖에 없다. ‘조용한 가족’ 이후부터 나는 주로 현장 콘티를 그린다. 촬영 중 5~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에 그린다. 찍고 싶은 장면들을 다시 시각화하는 거라 어렵지 않다. 미리 콘티 작가가 준비를 하지만 그래도 현장에 가보면 준비 상태가 제각각에 시간도 제한되어 있고, 기껏 준비한 장면들이 있는데 그걸 다 못 찍을 때도 있고, 불현듯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다. 그럴 때 스태프들에게 오늘은 이런 걸 이렇게 찍는다고, 현장 콘티를 직접 그려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화가 혹은 작곡가를 꼽는다면.
에드워드 호퍼. 좀더 어릴 때에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 앤디 워홀도 뉴욕 모마에서 봤을 때 참 좋았다. 작곡가는 누가 뭐래도 바흐. 그리고 후기 인상주의 작곡가들 사티·라벨·드뷔시·포레를 좋아한다.

단편·장편 합치면 데뷔 이후 단 한 해도 쉰 적이 없는데, 창작을 쉬지 않는 원동력은?
나는 기본적으로 워커홀릭이다. 일할 때는 그 상태에 몰입을 한다. 진정한 술꾼은 술이 좋아서도 마시지만 현실의 무의미함을 견딜 수가 없어 술을 마신다. 영화를 만들면서도 몰입하지 않으면 현실이 권태롭고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꾸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혼자 밥 먹기 싫어서다. 상당히 큰 이유인데, 현장에 나가면 때 되면 밥 나오고, 또 여럿이 같이 먹으니 더 좋다. 혼자 집에 있으면 매일 ‘뭘 먹어야 하나’가 큰 고민이다. 요리도 안 하고, 요리의 즐거움을 아는 것도 아니고, 해봤는데 시간을 너무 잡아먹더라.

어째 이 답변에서 영화 현장에 대한 애정이 깊게 느껴진다.
나는 현장이 제일 좋다. 평상시 잘 표현하지 않는 희로애락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현장에 다 있다. 그 희로애락을 꺼내보고 무언가를 만들고, 변화무쌍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걸 다 지켜보고… 표현하고 느낀다. 그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순간이라는 느낌이다.

글 김나희(파리 통신원)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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