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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모토 다이신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vs. 레이 천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과 소나타
진중함과 명랑함의 대결
글 최은규(음악 칼럼리스트) 4/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4월호 - 전체 보기 )




▲ 가시모토 다이신(바이올린)/콘스탄틴 리프시츠(피아노) Warner Classics 2564-63492-9 (4CD, DDD)


▲ 레이 천(바이올린)/크리스토프 에셴바흐(지휘·피아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Sony Classical S80013C/88765447752 (DDD) ★★★★

음악은 심오한 것인가 아니면 즐거운 것인가? 바이올리니스트 가시모토 다이신과 레이 천의 음반을 비교 감상하며 이런 의문이 생긴다. 가시모토의 진지한 베토벤 연주는 음악의 심오함을 말하고, 레이 천의 명랑한 모차르트 연주는 음악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으니 무엇이 정답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런 질문 자체가 우문인지도 모른다.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하니까.
가시모토 다이신과 레이 천. 두 동양인 남성 바이올리니스트가 나란히 음반을 발매해 눈길을 끈다. 피아니스트 콘스탄틴 리프시츠와 함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을 녹음한 가시모토 다이신은 1979년생으로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활약 중이다.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 함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소나타를 녹음한 레이 천은 1989년생으로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이후 주목 받고 있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다. 두 사람은 나이와 데뷔 시점은 차이가 있지만, 세계 정상에 오른 동양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연스레 비교 대상이 된다.
재미있게도 두 음악가는 일본인과 중국인의 음악성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깬 연주를 들려준다. 대개 일본인 음악가는 깔끔하고 완벽한 연주를 지향하나 감성적인 표현에 약하고, 중국인 음악가는 중후하고 풍부한 음색을 들려주나 감정 표현을 지나치게 과장한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주는 완전히 반대다. 가시모토의 연주는 일본의 핏줄을 이어받았음에도 중후하고, 반대로 중국 혈통의 레이 천의 연주는 명랑하면서도 섬세하다. 이는 두 음악가가 이미 대가의 경지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가시모토는 베토벤을 천은 모차르트를 연주했으니, 베토벤을 중후하게 모차르트를 명랑하게 연주하는 건 훌륭한 연주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이미 민족성을 넘어 작품에 따라 연주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먼저 레이 천의 모차르트 연주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섬세한 연주도 놀랍지만 직접 카덴차를 작곡해 연주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본래 연주자가 카덴차를 직접 작곡해 연주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연주와 작곡이란 행위가 엄격히 분리되기 이전 시대에는 말이다. 모차르트 시대의 작곡가들은 협연자 홀로 기량을 과시하는 카덴차 부분을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당연히 그 빈칸을 채우는 일은 자신의 기량을 최대로 발휘하는 법을 아는 연주자 자신의 몫이었으니까.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연주자는 연주만 하고 작곡가는 작곡만 하기 시작했고, 연주자들은 차츰 카덴차를 직접 작곡하는 대신 옛 거장들이 남겨놓은 카덴차 악보를 보고 그대로 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레이 천은 다르다. 연주뿐 아니라 작곡에도 재능이 있는 그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에 자신의 카덴차를 넣어 매우 독특한 모차르트 협주곡을 완성해냈다. 그의 카덴차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감성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덕분에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고전적이고 명랑하면서도 카덴차에서만큼은 대단히 감성적이어서 듣는 이에게 다양한 감흥을 전해준다. 물론 에셴바흐가 지휘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입체감 있는 연주도 천의 모차르트 연주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다이내믹 폭이 넓은 에셴바흐의 해석은 항상 듣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내곤 하는데, 이번 음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에셴바흐의 피아노 연주와 레이 천의 바이올린 연주가 함께 한 모차르트 소나타 22번에선 에셴바흐의 개성 있는 연주가 맛깔스러움을 더한다.
가시모토 다이신과 콘스탄틴 리프시츠의 연주 역시 대단히 개성 있으나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개성이다. 에셴바흐가 주로 다이내믹의 변화에 치중한다면 리프시츠는 템포와 타이밍에 중점을 두는 듯하다. 가시모토의 풍부하고 열정적인 바이올린 톤은 리프시츠의 독특한 타이밍 감각 덕분에 더욱 빛난다. 베토벤의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서 마치 두 검객이 대적하듯 차례로 등장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이 그토록 스릴 넘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은 리프시츠의 감각적인 타이밍 감각에 힘입은 바 크다. 아마도 바이올리니스트라면 가시모토의 풍부하고 찰진 톤에 부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처럼 풍요롭고 힘이 넘치는 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한 가지 스타일로만 일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로이처’를 비롯한 대부분의 베토벤 소나타에선 중후하면서도 심오한 표정을 보여주던 가시모토는 한결 명상적인 소나타 10번에선 전혀 다른 톤으로 부드러운 미풍 같은 음색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역시 가시모토의 진정한 매력은 격정적인 단조 음악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소나타 4번 A단조의 도입부에서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전할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는 흔치 않다. 또한 유명한 소나타 5번 ‘봄’도 그의 손을 거치면 더욱 탐스럽고 풍요로운 ‘봄’으로 재탄생한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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