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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과 클라라 주미 강
말 없 는 사 이
글 빅용완 기자 12/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12월호 - 전체 보기 )



듀오 리사이틀 앞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요정들
손열음과 클라라 주미 강
말없는 사이


서울 시내를 빠르게 관통하는 작은 왜건형 승용차. 운전석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매니저·공연기획자·기자·피아니스트·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1725년 산 과르네리가 빽빽이 타고 있다. 다섯 명 모두 20, 30대 젊은 여성이다. 그들은 대학로를 출발해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 목적지에서 또 한 무리의 기자들이 이들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촉박한 마음에 엑셀을 밟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매니저, 달리는 차 안에서 한 문장이라도 더 받아내겠다는 기자, 서로가 마냥 재미나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두 연주자, 어쩌면 유일한 남성으로서 침묵을 지키는 과르네리(바이올린은 프랑스어로 남성명사니까). 이 분주하고도 활력 넘치는 인터뷰 풍경은 오늘날 우리 클래식 음악계의 젊은 스타로 자리매김한 손열음·클라라 주미 강의 외부적 환경에 대한 하나의 ‘함축’이다.
지난 11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듀오 리사이틀(12월 7일)을 앞둔 두 사람이 공연 전 유일하게 서울에서 조우하는 날.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은 동숭동 ‘객석’ 사옥에서 커버 촬영을 마치고 일간지 문화부 기자들과의 작은 간담회 및 베를린 필 관람을 위해 서초동으로 이동 중이었고, ‘객석’은 그 차에 동승했다.

12월 전국을 도는 듀오 리사이틀이 열립니다. 두 사람이 뭉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듀오 리사이틀을 넘어선, 그 뭔가가 있을 것만 같거든요.

특정 연주를 위해 모인 사람들도 매력적인 연주를 들려줄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도 정말 잘 맞는 사람끼리 뭉쳤을 때 특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음이 진짜 잘 맞으면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열음 언니는요, 리사이틀 열기 위해 진짜 무식한 말로 “반주 좀 해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경우가 아닌, 바이올리니스트 입장에서 피아노에 기댈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에요.
저도 주미 의견과 비슷한데, 덧붙여서 제가 자신 있는 건 저랑 연주할 때 주미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이건 언니 의견이 아니라, 주변 친구들이 우리 연주를 듣고 그랬어요. “어, 강주미 좀 다르다.”
서로에 장단점도 매우 잘 알고 있겠죠?
장점이라 할 것도 없이, 주미는 정말 많은 걸 타고난 아이예요. 그게 단점이라고도 해야 하나. 사실 바이올린으로 담아내기에 너무 많은 재주를 타고났어요. 바이올린은 단선율 악기이고, ‘하이’에서 놀고, 그러니까 제 생각에 바이올린은 단순한 악기거든요.
음? 뭐라고?
단순한 게 나쁜 건 아니지. 아, 원초적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그에 비해 주미는 프리즘의 색깔이 너무 많아요. 굳이 단점을 꼽자면, 마음이 안 맞는 사람과 연주할 때 그게 딱 티가 나요.

한예종 시절에 처음 만나서 언니가
졸업 후 유학 갈 때까지 제 실기시험 반주는 늘 언니가 해줬어요.
둘이 연주하는 건 우리에겐 정말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예요
"


그렇다면 열음 씨의 장단점은요?
일단 단점은, 이건 정말 연주와는 별개의 문제인데 국적을 잘못 타고 태어났다? 언니는 러시아에서, 아니면 남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흠,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게 단점이군요.
유태인 여자도 괜찮겠네요.
그럼 이름은 뭐가 됐을까요?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정말 복잡한 이름이요. 하하하!
앞서 열음 씨가, 주미 씨는 마음이 안 맞으면 그게 연주에 여실히 반영된다고 했는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럼요. 다만 희한한 게, 저는 현악 앙상블을 할 때는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왜냐하면 항상 눈을 맞추고 있잖아요. 현악 4중주의 경우 작은 사인도 눈으로 주고받을 수 있죠. 그런데 피아노와는 그럴 수 없잖아요. 대신 상대에게 귀를 열죠. 흔히 ‘귀가 없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건 귀를 열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아까 언니가 바이올린이 단순한 악기라고 했는데, 바이올린 입장에서 다시 얘기하자면 이래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듀오 곡에서 화성과 프레이즈는 피아노가 다 갖고 있잖아요. 사실 바이올린은 비브라토를 하다가도 자칫 프레이징을 놓치기 쉬워요. 하지만 피아노는 화성이 있으니, 길을 잃을 리 없죠. 그래서 바이올린이 옆길로 새면 피아노가 잡아줘야 해요. 특히 이번에 하는 모차르트 소나타의 경우 피아노가 항상 먼저 나오기 때문에 바이올린은 자연스럽게 그 길을 받게 되죠. 쉽게 말해 피아노가 이끄는 소나타예요. 언니가 하고 싶어 했던 곡이고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동등한’ 프로그램

이번 리사이틀에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379를 연주합니다. 열음 씨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사랑한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왔지요. 특히 과거 음악가들의 연주를 좋아하고요.
손 지난 6월호에 안네 조피 무터가 ‘객석’ 커버 스토리의 주인공으로서 했던 인터뷰를 정말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보아온 음악가 인터뷰 중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중 이 질문에 답이 되는 그녀의 말이 기억나요. “그 세대의 거장들은 요즘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어떤 고귀함, 표현의 순수함이나 단정한 겸허함을 지니고 있었다.” 정명화 선생님께서도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 제 또래던 그 시절에 보았던 거장들의 그 ‘엘레강스’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그게 정말이지 답이에요. 어떤 고귀함이냐, 어떤 단정함이냐, 어떤 엘레강스냐고 묻는다면 답변하기 힘들지만, 글쎄요. 그냥 시몬 골드베르크와 릴리 크라우스의 연주를 한번 들어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난해 카네기홀 리사이틀을 앞두고 주미와 처음 연습하려고 만났을 때, 주미가 너무 안 어울리는 말을 하더라고요. 베토벤은 참 편한데 모차르트는 영 자신이 없다고, “모차르트는 언니의 ‘자기’니까 언니가 나 좀 가르쳐줘!” 사실, 놀랐어요. 주미가 노래를 정말 잘하거든요. 게다가 주미처럼 어렸을 적부터 오페라와 함께 자란 친구가 모차르트를 어려워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딱 한마디만 했죠. “너 노래하는 거랑 완전히 똑같이 하면 돼.”
모차르트의 기악음악은 정말이지 몽땅 오페라예요. 역시나 주미는 노래처럼 해보라는 제 주문에 단번에 다른 소리를 내줬어요. 그런데 이런 ‘반대 연상 작업’이 꼭 기악가로부터 성악가로 향할 필요는 없나 봐요. 주미 아버지이신 강병운 선생님의 최근 인터뷰에서 본 건데, 선생님이 어린 시절의 주미에게는 노래하듯이 악기 하라고 가르치셨다면, 요새는 오히려 선생님 제자들에게 선율 악기처럼 노래하라는 주문을 많이 하신다더라고요. 신기했어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아주 다르고 현실적인 얘기를 하나 해볼게요.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모 가수가 노래할 때 이상적인 소리가 ‘공기 반 소리 반’이라고 얘기했다죠. 제 생각에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바이올린이 그런 소리를 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러자면 기술적으로는 활도, 비브라토도 덜 눌러서 해야 하는데, 현대의 큰 홀들에서 그러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잖아요. 제가 가장 즐겨 듣는 20세기 초반 거장들의 음반이야 에코도 없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들이니 지금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크겠죠.
그렇다면 슈베르트 판타지처럼 다소 산발적인 곡을 이끌어가는 힘을 어디에 두는지 궁금합니다. 1악장 바이올린의 도입부는 주미 씨의 선 굵은 사운드가 잘 어울릴 듯하고요.
그야말로 ‘판타지’인 거 같아요. 처음 피아노가 트레몰로로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냥 저에게는 판타지입니다. 그 느낌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낼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슈베르트 가곡을 많이 듣고 자라서인지 몰라도, 슈베르트 하면 “한없이 긴 프레이징으로 노래하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실제로 바이올린의 첫 프레이즈가 무지 길어요. 한편 슈베르트가 쓴 바이올린 곡들을 잘 살펴보면, 빠른 부분은 항상 무척이나 ‘브릴리안테’ 하죠. 그 느낌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보기에 이 슈베르트 판타지는 일단 듀오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해석하기 쉬운 거 같아요. 왜냐. 악보에 너무나도 완벽한 정답이 다 쓰여 있으니까요.
슈베르트를 다른 작곡가와 제일 확연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키워드 두 개가 떠올랐는데 ‘방랑’과 ‘선함’이에요. 조금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모차르트의 방향이 ‘이렇게 가는 거니까’, 베토벤의 방향이 ‘이렇게 가야 하니까’라면 슈베르트는 ‘그저 이렇게 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이 주제 다음에 이 주제가 올까, 어쩌면 이 화성과 저 화성을 이렇게 병치할 수 있을까, 매 순간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황당한 천재가 바로 슈베르트죠. 모차르트처럼 마치 처음부터 곡 전체가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완벽함도, 베토벤처럼 가장 혁신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는 인간의 자유의지도 아닌 또 다른 환상의 세계 같아요. 그런 ‘정처 없음’을 가장 예쁘게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키워드 ‘선함’. 더 살다 보면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스스로의 의견인데, 적어도 현재 제 눈에 비치는 슈베르트의 방랑에는 악한 기운이 전혀 없다고 보이거든요. 슈베르트는 괴로워하고, 질투하고, 분노하기는 하지만 저주를 퍼붓거나 악에 받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이 정신을 고양하는 데 좋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하지는 않는 편인데 슈베르트의 음악이라면 확실히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이 듣기에 ‘아 정말 좋다’ 하다가 ‘어라 끝났네’ 하면 성공적인 연주를 한 거라고 생각해요.
2부 첫 곡으로는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1번을 연주합니다.
프로코피예프는 항상 ‘사르카즘’이라는 필터를 거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죠. 웃는 스스로를 조롱하고, 우는 스스로를 비웃는 게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인데 이 곡은 그야말로 ‘간만에’ 그 필터를 싹 걷어낸 음악이라고 봅니다. 1·3악장은 비감이 아주 단면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나마 경쾌할 거라 기대하는 2악장도 사실 다른 프로코피예프의 스케르초 악장(가벼운 중간 악장)에 비하면 하나도 ‘웃기지 않은’ 내용이죠. 나치 군대의 행군을 묘사한 거라는 설도 있고요. 결국 다소 프로코피예프답지 않은 작품이라는 건데, 그런 이 작품을 프로코피예프답게 만드는 유일한 요소가 바로 화성입니다. 지극히 프로코피예프적인 그 화성법은 물론 피아노의 담당이죠. 그래서 저는 이 곡에서 피아노의 역할이 다른 소나타 피아노의 역할보다도 더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이올린은? 그보다 더 중요하겠지요!
리사이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후버이의 ‘카르멘’은 흥겹고 재미난 곡이더군요. 프로코피예프 다음에 이 곡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후버이의 ‘카르멘’을 고른 이유는 셋이에요. 첫째, 프로코피예프 소나타의 어두운 색깔을 잘 이어받을 거라 예상했어요. 첫 부분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거든요. 둘째,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이 연주되지 않은 ‘카르멘’인데 한 2년 전부터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카르멘’이에요. 끝으로, 후버이의 ‘카르멘’에는 흔히 연주되는 사라사테나 왁스만 버전에 등장하지 않는 아리아와 테마들이 나와요. 그게 너무 새롭고 매력적이에요. 후버이의 버전이 오페라 ‘카르멘’과 가장 비슷한 거 같아요.
특히 저는 후버이가 프로코피예프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도 좋았어요. 평소 동시대 작곡가들을 엮어서 연주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봤구나, 그게 저에겐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해요. 특히 후버이는 헝가리 사람이니 사라사테나 왁스만에 비해 지형적으로도 프로코피예프와 가장 가까웠죠!
주미 씨, 열음 씨가 생각이 많고, 옛날 연주자 좋아하고, 음반 많이 듣고, 책 많이 읽고, 글 쓰는 거 좋아하는 게 가끔씩은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그 반대죠! 장점에서 그걸 뺐네요. 저번에 한번 뉴욕에서 언니 아이패드를 보니 세상에… 별별 음반들이 다 들어있는 거예요! 바이올린 곡도 당연히 너무너무 많고요. 언니는 바이올린을 정말이지 잘 알아요. 그 점이 진심으로 고마워요. 저는 생각보다 바이올린 음반을 많이 안 들어요. 이런저런 연주들을 듣다 보면 내 것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몇 년 전부터 들어서요. 언니처럼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저는 책이 그냥 좋아서 읽는 거고, 실제로 독서가 음악에 도움이 된다 아니다 증명할 만한 증거는 없죠. 아까 바이올린이 원초적인 악기라고 했는데, 바이올리니스트도 좀더 본능적·직접적인 게 맞다 생각해요. 성악가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점에서 피아니스트와는 달라야 해요.
전 소설을 좋아해요. 깊게 들어가거나 복잡한 건 싫어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일대일에 강하고.
바이올리니스트는 이래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 쌍둥이자리거든요. 단정 지을 수 없어요!

"
카네기홀 리사이틀 때도 그렇고,
뭘 하든 우리는 초견을 한번 쭉 해요. 그럼 끝나요.
오케이. 알겠어. 다시 해봐?
이게 하는 말의 거의 전부예요
"

연습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있나요?
슈베르트의 경우, 무대에서 보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반반을 담당하는데, 사실 피아노가 너무너무 어려워요. 프로코피예프도 피아노의 역할이 정말 크고요. 색깔을 피아노가 다 만드니까. 그래서 더욱 프로코피예프를 언니랑 연주해보고 싶었고요. 모차르트도 피아노가 이끌고…. 후버이는 그냥 재미있게?
그럼 다 피아노인데요? 주미 씨는 후버이만 가져간 여자?
제가 언니랑 왜 하겠어요. 헤헤.
서로의 연주 가운데 가장 감동받았던 건 언제인가요?
개인적으로 주미에게 베토벤이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일단 완벽한 자기 언어를 구사한다고 할까? 무슨 내용을 말하든지요. 관객으로 지켜봤을 때나 카네기홀에서 소나타 7번을 함께 연주했을 때나 제가 본 주미의 베토벤은 항상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놀라웠어요. 특히 바이올리니스트가 다른 작곡가도 아닌 베토벤에 그렇게 뛰어나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죠. 그래서 언젠가는 주미랑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단 제가 피아니스트처럼 피아노를 완벽히 알지 못하는 게 좋아요. 사실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보러 가면 아무리 음악에만 집중하고 또 즐기려고 해도 바이올린을 너무 잘 아는 사람으로서의 평가가 제 안에서 자꾸 꿈틀대요. 언니 연주를 볼 때는 전달하고자 하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귀가 호강합니다. 우울할 때도 언니 영상을 유튜브로 많이 챙겨 봐요. 며칠 전, 연습하다가 기운이 없어서 언니의 앙코르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거슈윈의 ‘Embraceable You’! 바로 힘이 나길래 악기를 다시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시절에 처음 만났다고 했지요. 주미 씨 1학년, 열음 씨 3학년. 하지만 공식적인 무대에서 듀오 연주를 들려준 건 지난해 카네기홀 리사이틀 등 최근의 일입니다. 국내에서의 본격적인 무대는 사실 이번 12월 리사이틀이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반갑고 놀랍다는 기대가 대부분이지만, 왜 둘이 뭉쳤는지에 대한 의아한 시선도 있습니다.
강 한예종 시절에 처음 만나서 언니가 졸업 후 유학 갈 때까지 제 실기시험 반주는 늘 언니가 해줬어요. 둘이 연주하는 건 우리에겐 정말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예요.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친했다는 걸 모른다면, 스타와 스타의 조합이라는 또 하나의 기획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럼 이렇게 표현을 해볼게요. 의아함이라기보다는 낯섦. 그런 건 분명 있어요.
강 그건 일종의 선입견 때문일 거예요. 실제로 여자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남자 피아니스트와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혹은 듀오 무대에 전문적으로 오르는 피아니스트라든가. 하지만 저는 언제나 확고했어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면 꼭 언니랑 하고 싶다! 언니가 동의하는 게 문제였죠. 실제로 제 주변 지인 분들이나 어르신들이 왜 열음이랑 하느냐, 남자랑 해야지라는 반응을 보이시더라고요. 지난해 둘이 카네기홀 갈 때도 그랬고요. 젊은 여자 바이올리니스트가 젊은 여자 피아니스트랑 하는 건 아니라고들 하셨는데, 옛날 마인드라고 하기엔 여전히 여자와 여자의 조합이 흔치 않은 게 사실이에요. 무터만 해도 그래요. 여자 피아니스트랑 하는 게 상상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요새는 좀 달라지는 듯해요. 엘렌 그리모와 솔 가베타(첼리스트)라든가.


두 여자의 눈물겨운 천생연분

그럼 한예종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음악을 만들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혹은 서로에게 놀란 순간.
대화가 필요 없다는 거 자체가 놀라웠어요. 카네기홀 리사이틀 때도 그렇고, 뭘 하든 우리는 초견을 한번 쭉 해요. 그럼 끝나요. 오케이. 알겠어. 다시 해봐? 이게 하는 말의 거의 전부예요. 사실 듀오를 하면서 사인이나 해석이 안 맞는 경우가 있죠. 그럼 보통은 ‘이야기’를 해요. 악기 딱 내려놓고요. 전 음악 만들다 말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게 별로예요. 근데 피아니스트들은 자꾸 얘기를 하려고 해요. 건반 위에 손가락 내려놓고 이렇게 묻죠. “너 여기 무슨 생각으로 해?” 나? 별 생각 없는데? 언니랑은 그런 걸 안 해서 좋아요.
필요 없으니까. 진짜 필요가 없어요. 예전에 김대진 선생님이 저더러 “얘는 다른 사람이 숨만 쉬어도 따라 쉰다”라고 하셨는데, 주미가 저에게 그래요. 제가 숨만 쉬어도 따라와요.
강 언니도 따라오니까.
주미는 정말 열려 있는 아이예요. 그래서 파트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져요. 사실 바이올린과의 듀오를 하다 보면 피아니스트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자, 주도적으로 말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주미는 항상 피아노에게 배우려 해요. “언니, 이건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뭘 해야 해?” 그 말을 많이 해요. 저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에요. 근데 주미는 먼저 원하니까 저도 아이디어를 말하게 되요. 사실 바이올린이란 악기 자체를 정말정말 좋아하고요.
그럼 열음 씨는 누구에게나 최상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하세요?
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만큼 레퍼토리를 많이 알고 그래서 자신은 좀 있어요. 소위 말해 ‘반주’도 현·목관·금관·성악… 성격이 다 달라요. 숨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다르고, 또 소리가 어느 시점에 나는지도 다르니까요. 저는 지금도 현악기가 편해요.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제가 좋아하니까, 익숙해서 그럴 거예요.
‘반주’라는 말을 들으면 피아니스트로서 어떤 기분이 드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사실 그런 곡들도 있어요. 아주 많이 있다고 봐요. 특히 관악기 쪽이 그렇죠. 이번에 주미랑 하는 곡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비중이 비슷해요. 특히 모차르트 소나타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이라고 명명돼 있잖아요. 그런 곡들은 정말 ‘실내악’이지 반주라고 생각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혹은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라는 이 동등한 관계 속에, 두 분은 계속 함께할 건가요?
네! 평생 같이하고 싶어요.
맞아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요.
예전에 언니가 우리 둘의 프로필을 보면서 평행이론이라고 했어요. 한예종 나온 것도, 지금 독일에 살고 있는 것도, 인디애나폴리스·밴 클라이번(미국에서 열리는 콩쿠르)에서 입상한 것도… 마침 그 프로필의 마지막 경력이 각각 러시아 지휘자인 페도세예프·게르기예프와의 협연이란 것도!
…그냥 “평행이론이란 게 있어”, 그랬지.
자기 왜 그래? 정말로 언니가 그랬어요. 먼저 내게 평행이론이라고 그랬잖아.
그, 그런 게 있다고 했지.
그래서 제가 언니한테 “그래? 평행이론이 뭔데?” 물었거든요. 그랬더니 언니가…
“parallel theory”라고 그랬지.
두 사람의 만담은 그렇게 한참을 평행하게 이어졌고, 다섯 여자와 한 대의 과르네리를 싣고 달리던 자동차는 드디어 예술의전당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주미 씨는 당연한 듯 ‘허그’를 청했다. 열음 씨와도 수줍지만 작은 포옹을 나눴다.
안녕, 귀여운 여인들. 다시 만나요, 12월의 주인공들.
글 박용완 가자(spirate@) 사진 전재호


손열음
 1986년 강원도 원주 생. 한예종 음악원에서 김대진을 사사했고,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에게 배운다. 일찍이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주목 받아온 손열음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과 함께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연주상 등을 수상했다. ‘중앙선데이’ 고정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젊은이다

클라라 주미 강 1987년 독일 만하임 생. 자카르 브론·도로시 딜레이·김남윤 등을 사사했고, 현재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과 공부 중이다.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를 석권했으며, 그 특전으로 지난해 5월 카네기홀 데뷔 리사이틀을 가졌다. 최근 삼성음악재단으로부터 1725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를 후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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