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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임선혜
즐거운 오르페오, 행복한 감상자
글 김여항 기자 3/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3월호 - 전체 보기 )




10월 ‘오르페오’를 주제로 아르모니아 문디를 통해 첫 솔로 앨범 발매를 앞둔 임선혜.
국립합창단 ‘마태 수난곡’으로 국내 팬을 먼저 만난다

한 번도 욕심을 부려본 적이 없다는 임선혜. 1999년 23세의 나이로 헤레베헤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후 유럽 전역을 누비며 고음악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해온 그녀는 늘 행복한 사람이었다. ‘조그마한 동양의 소프라노를 얼마나 믿겠나’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저 재밌고 신기해서 노래 부르다 보니 15년이 흘렀다고 말한다. 그동안 임선혜는 안팎으로 성장했다. 고음악 지휘자들의 총애를 받으며 20여 종에 달하는 음반 작업에 참여하는가 하면, 음악으로 희망을 나누고 싶다는 작은 소망은 ‘임선혜의 희망 콘서트’를 통해 꾸준히 실천되고 있다. 그리고 올해 10월경엔 10년을 계획해온 ‘오르페오 칸타타’ 솔로 음반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르네 야콥스가 야심차게 녹음한 ‘마태 수난곡’ 음반에 소프라노로 참여하면서 임선혜 또한 ‘마태 수난곡’에 대해 할 말이 많아졌다. 국립합창단과 ‘마태 수난곡’ 전곡 공연(3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앞두고 베를린에서 전화를 받은 임선혜는 ‘마태 수난곡’을 화두로 성악가로서의 인생관을 풀어놓았다.

지난해 10월 르네 야콥스와 작업한 ‘마태 수난곡’ 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바흐 종교음악에 다가가는 그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비평가들은 ‘우리에게 이 음반이 또 필요한가’라는 시선으로 접근하죠. 지휘자마다 자기만의 확실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이렇게 유명한 곡을 녹음하는 데 부담감이 있을 겁니다. 야콥스는 다독가예요. 작품에 관련된 모든 책을 읽고 고증하는 사람이죠. 그가 ‘마태 수난곡’에서 집중한 점은 토마스 교회에서의 초연 당시 두 대의 오르간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에요. ‘마태 수난곡’에는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는 두 팀의 합창단이 나오는데, 일반적으로는 제단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위치했을 거라 추측했어요. 그런데 야콥스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교회 앞과 뒤에서 서라운드 효과를 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교회는 많이 울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음향에서 가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야콥스는 당시 청중의 기대는 지금과 달랐을 거라 생각했죠.
근래 수십 년 간 최소 편성의 합창단 구성이 각광받아왔습니다. 20세기에 카라얀과 같은 거장들이 했던 대로 거대한 규모까지는 아니지만, 야콥스는 큰 교회에 맞는 어느 정도의 인원이 존재했으리라 보고 있어요. 라이프치히에 있는 토마스 교회와 니콜라이 교회의 합창단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도와가며 합동으로 공연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흐가 ‘마태 수난곡’을 작곡하면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바가 무엇이었을까 상상해보는 것이죠.

합창단 규모의 차이는 독창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나요?
마침 최근에 카위컨과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녹음했어요. 카위컨은 성부당 한 명으로 합창단을 구성해 독창자가 합창까지 담당하는 최소 편성 연주 쪽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음악가죠. 사실 우리 같은 성악가들은 ‘해석자의 해석자’입니다. 작곡가를 해석하는 지휘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들이 이끄는 방식에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죠. 그래도 무대 위에서 느끼는 바가 다른 건 확실합니다. 오케스트라가 크면 아무래도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납니다. 군중의 함성이나 내적인 지도가 담긴 코랄을 부를 때 포르테시모와 피아니시모로 다이내믹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 음악이 주는 드라마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요. 대신 최소 편성으로 노래 부를 땐 허영심이 빠지는 게 느껴져요. 이 곡이 원하는 바의 원초적인 면까지 들어가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돼요. 관객도, 성악가도 모두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내용에 집중하게 되니 노래에 기름기가 빠지죠. 작은 편성에서는 아무래도 내적으로 더욱 준비를 하게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음악을 부르는 자세가 아무래도 남다를까요.
야콥스는 대표적인 무신론자였어요. 그런 사람이 변화하는 걸 보면 참 재미있어요. 야콥스는 어려서부터 소년 합창단에서 활동했고, 신부님에게 오르간을 배우면서 음악의 길로 접어들 만큼 종교와 가까웠지만, 그런데도 그는 종교에 회의를 느낀 사람이었습니다. 야콥스가 종교곡을 연주할 때 자주 쓰는 성악가들 중 종교인이라고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있어요. 베르나르다 핑크나 저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죠. 야콥스는 종교인과 함께 작업할 땐 음악이 다르게 표현된다는 걸 느낀다고 말해요. ‘정신적인 면’에 대해 점차 가치를 두기 시작한 거죠. ‘마태 수난곡’ 부클릿에서 야콥스는 이 연주가 “바흐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요. 저에 대한 인터뷰에서 “임선혜의 정신적인 면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효과가 크다”라고 말한 적도 있고요.
신앙인이기에 저는 성악가로서 행복한 감상자가 될 수 있어요. 사실 바흐 종교곡에서 독창자는 큰 역할이 아닙니다. 음악을 끌고 가는 것은 합창단이고, 우리 독창자들도 의자에 앉아서 합창단의 음악을 들어야 해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다른 성악가들의 내밀한 떨림을 느끼며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면에서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실타래처럼 얽히는 과정을 느낄 수 있어요. 부활 이전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참 행복하죠.

길이가 길고 엄숙한 만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세요.
‘마태 수난곡’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것은 언어예요. 자막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독일어에 맞게끔 짜여 있기 때문에 그 나라 말을 쓰지 않으면 그 뜻이 온전히 와 닿을 수가 없죠. 각자의 역할과 구조를 알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에반겔리스트가 해설자 역할을 하고, 등장인물로는 예수 한 명만 나와요. 합창단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예언한 때부터 부활절까지의 사건에 대한 군중의 심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죠. 예수를 따르는 입장, 반대하는 입장 모두요.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감정을 대변하는 건 독창자들이에요. 줄거리가 전개되다가 독창자가 등장하면서 잠깐 중단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나쁜 것을 말한 적이 없다.” “우리를 위해서 한 것뿐이다” 하는 식으로요. 우리 인간들 중 어느 누군가가 나서서 얘기한다고 보면 됩니다. 야콥스는 이 곡에 에로틱함이 있다고 말해요. 아리아 가사를 보면,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오페라만큼이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처음으로 ‘마태 수난곡’을 접했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아르농쿠르의 음반을 통해서였어요. 박노경 교수님의 사부님께서 유학을 떠나는 제게 “세계 최고의 오라토리오 가수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씀하며 선물했죠. 라이브로 처음 들은 것은 독일의 어느 성당에서였어요. 처음으로 무대에 섰던 건 그로부터 1년 후였습니다. 동양에서 온 스물네 살의 어린 소프라노가 낯설 거라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어요. 공연을 마치고 출연자 대기실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할머니가 제 등에 얼굴을 파묻고 하염없이 울었어요. 내 노래가 누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내 마음속에 있는 소리를 전달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음악가로서의 소명 의식이 엿보이는 활동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 데뷔는 1999년, 한국에서의 첫 연주회는 2006년에 열렸습니다. 2008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독창회를 가진 후 한국에서도 공연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전까지 음악을 하는 의미를 찾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음악을 못 하면 죽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요. 제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성악가는 너무나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다가갈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음악을 통해 위로와 기쁨이 전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게 2009년에 시작한 ‘임선혜의 희망 콘서트’가 6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2년까지는 명동성당에서 공연을 열었는데, 지난해부터 장애인 복지관 등 찾아가는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어요. 희망 콘서트를 원하는 곳에서 신청을 받아 수익금을 받고, 그 수익금으로 공연장에 가지 못 하는 분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연주회를 여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1999년 헤레베헤의 러브콜을 받으며 혜성 같이 등장한 후 15년이 지났습니다. 그중 전환점이 된 시기는 언제일까요?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야콥스와의 ‘돈 조반니’ 무대에 체를리나로 올랐던 2006년이죠. 유럽 전역에 생방송되고, 음반과 DVD가 나오면서 저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뤄졌던 때입니다. 그때 이미 제가 참여한 음반이 다섯 종 나온 상태였는데,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죠. ‘돈 조반니’가 영상으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동양인은 연기를 못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씻을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연출가들로부터 제의도 많이 받고요. 이제 동양인과 함께 하면 두 배로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야콥스가 낸 자서전에 제가 언급됐다고 들었어요. “가수들 중에는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연기도 잘해서 배역과 스스로의 몸이 하나가 되는 가수가 있다. 임선혜와 스테판 드구, 그 둘은 가수이자 연기자다.”

가끔 ‘꼭 고증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바로크 오페라 리뷰들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낯선 작품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떤 고민을 갖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고음악을 부흥시키자는 운동이 이제 최절정에 이른 것 같아요. 고음악 분야에서 빨리 성공하고자 하는 음악가도 있고, 아무 곡이나 들고 나와서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정말 좋은 곡은 살아남아요. 2004년에 출반된 헨델의 오페라 ‘시로에’는 전 세계 최초 녹음이었는데, 이제는 유럽에서 몇 년에 한 번씩 오르는 레퍼토리로 정착됐습니다. 유명해진 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지만, 당시 상황 때문에 잊힌 곡들도 많습니다. 18세기 스페인 작곡가인 도메넥 테라데야스는 주변에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작품이 정말 좋은데도 후대에 잊혔습니다. 그런 곡들을 발견해서 연주할 때는 부담감이 매우 커요. 다시 수면 위에 뜬 그 작품의 사활이 우리 연주와 녹음에 달렸으니까요. 연주자들은 질적으로 좋은 작품을 고증하려고 노력하고, 청중은 호기심을 갖고 맛보기를 좋아하는 미식가적 태도로 접해줄 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겠죠.

첫 솔로 앨범 발매를 앞둔 올해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올해 제가 참여한 네 장의 음반이 나올 예정입니다. 데뷔 15년 만에 나오는 첫 솔로 앨범은 10월경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오르페오 칸타타’라는 주제로 발매됩니다. 베른하르트 포르크가 지휘하는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함께 오르페오와 관련된 칸타타를 모아 녹음을 진행했습니다. 남자인 오르페오 역을 소프라노인 저 혼자 맡아 부르고 해설도 하는, 모놀로그 같은 앨범이죠. 페르골레시·라모·스카를라티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바로크 작곡가들 작품을 모았습니다. 솔로 앨범 외엔 만프레트 호네크/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말러 교향곡 2번, 르네 야콥스/바로크 오케스트라 비로크(B´Rock)와의 헨델 오페라 ‘오를란도’, 그리고 시히스발트 카위컨/라 프피트 방드와의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음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국립합창단과 ‘마태 수난곡’을 하게 되어 기대가 큽니다. 한국에서는 국립합창단·국립오페라단과 함께 ‘이도메네오’와 ‘사랑의 묘약’을 무대에 올렸고, 2012년에는 서울시향과 모차르트 ‘레퀴엠’에 참여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합창이 곡 전체를 이끌어가는 바흐의 작품을 대학교 시절부터 존경해온 이상훈 지휘자와 함께 무대에 올리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글 김여항 기자(yeohang@gaeksuk.com) 사진 국립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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