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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부르크테아터의 셰익스피어 ‘리어 왕’
오열 대신 냉소를 택한 대배우
글 이설련(베를린 통신원) 3/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3월호 - 전체 보기 )



“리어 왕이 아닌 브란다워를 연기한 브란다워.” 독일 유력 일간지의 혹평은 혹평일 뿐,
실제 무대 위에서의 브란다워는 모두가 공감할 인간 리어의 모습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 현실의 비극에 눈 감은 리어 왕과 두 눈을 잃은 후, 진실을 마주하게 된 글로스터 백작 ⓒReinhard Werner/Burgtheater

빈 부르크테아터는 호화롭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 문화의 숨결이 여전히 느껴지는 유서 깊은 극장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름다운 천정화로도 유명하다. 과거 황실 극장으로 시작된 부르크테아터의 역사는 오늘날 프랑스 파리의 코메디 프랑세즈와 함께 유럽 공연예술과 문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연극 극장으로 계속되고 있다. 2013/2014 부르크테아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지난 12월 22일 첫 공연의 막이 오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전 ‘리어 왕’이다. 부르크테아터 측이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과 독일·오스트리아 연극계를 대표하는 대배우 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워(1943~)의 70세 생일을 기념하여 제작한 ‘리어 왕’은 저명한 연출가 페터 슈타인(1937~)의 때늦은 부르크테아터 첫 연출 데뷔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다.
슈타인과 브란다워는 원래 베를린의 유명 극장 베를리너 앙상블에서 ‘리어 왕’ 새 프로덕션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2007년 베를리너 앙상블에서 공연 시간만 6시간에 달하는 실러의 희곡 ‘발렌슈타인’을 텍스트 축약 없이 진득하게 무대에 올린 전적이 있다. 당시의 성공에 한껏 고무된 두 사람은 동 극장에서 다음 공연으로 ‘리어 왕’을 추진하였다. 유감스럽게도 베를리너 앙상블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공식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지만 무대 제작비를 제외하더라도 유럽예술계 최정상급에 해당하는 두 사람의 개런티부터 상당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리어 왕’ 제작이 어려워졌지만, 다행히도 브란다워는 자신의 예술적 고향과도 같은 부르크테아터에서 슈타인의 연출로 ‘리어 왕’을 공연할 수 있었다.

대배우와 저명 연출가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무대
평생 지켜온 왕국을 세 딸에게 넘겨주고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려던 리어 왕이 큰딸 거너릴과 둘째 딸 리건의 거짓 아첨에 속아 진실한 막내딸 코딜리어를 내쫓은 후 자신 역시 두 딸에게 배신당하고 광기에 이르는 비극을 다룬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 중에서도 특히 난해하게 여겨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작품이 이분법적인 기독교식 관점에서 줄거리가 전개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리어 왕’을 초·중·고 시절 줄거리 위주로 편집된 세계명작전집 등의 문고판을 통해 접하면 막내딸 코딜리어의 효성이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강조되어 마치 ‘영국판 효녀 심청’ 이야기처럼 읽히기 쉽다. 하지만 원작을 잘 읽어보면 선량한 코딜리어가 희생양으로 성스럽게 묘사되지 않으며, 전체 줄거리 역시 코딜리어의 시선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권선징악식 시선이 가미된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 ‘리어 왕’은 순결한 코딜리어가 살해당하고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암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줄거리로 인해 악이 승리하는 결말로 해석되면서 후대에 이르러 ‘이해 불가능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엄격한 도덕이 강조되던 19세기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는 심지어 코딜리어와 리어 왕이 구출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로 각색된 버전이 인기리에 공연되었다고 하니, ‘리어 왕’에 그려진 염세적인 분위기가 셰익스피어 당대뿐 아니라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얼마나 유럽사회를 당혹시켰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 자신의 막중한 의무를 넘기고자 세 딸에게 “아비를 얼마만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리어 왕 ⓒReinhard Werner/Burgtheater

유럽 고전 연극 속 주인공들이 대부분 자신의 잘못이 아닌 운명에 의해 장엄하게 파멸하는 것과 달리, 리어 왕과 그를 모시는 신하 글로스터 백작은 본인의 잘못으로 파국에 이른다. 따라서 고전 희곡 주인공의 기준으로 ‘리어 왕’ 속 주인공들의 행보를 바라보게 되면 마치 ‘제 무덤을 제가 판 듯한’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들기 쉽다. 이에 관하여 현대 영문학자들은 리어 왕의 광기를 부끄러움, 즉 체면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 결과로 빚어진 파국으로 해석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적한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리어 왕의 행동은 오히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자각한 왕이 죽음에 대하여 느끼는 공포심에 가깝다. 그가 세 딸에게 던지는 “아비를 얼마만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 역시 왕의 막중한 의무를 딸들에게 넘기고자 핑계로 던지는 의미 없는 화두처럼 보인다. 아버지의 의중을 꿰뚫어 본 코딜리어는 지극히 담담하게 대답하고, 자신의 속내를 들킨 리어 왕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권위를 내세워 코딜리어를 내친다. 이후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찾아온 코딜리어 앞에서 리어 왕이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본인의 잘못, 즉 자신이 초래한 현실의 비극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리어 왕의 분신처럼 묘사된 글로스터 백작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는다. 충실한 아들 에드거를 오해하여 추방시킨 글로스터 백작은 두 눈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진실을 마주한다.
‘재산을 둘러싼 자식과 권력자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리어 왕과 세 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상당히 현대적이다. 여기에 사생아라는 출생의 한계에 한을 품고 아버지 글로스터 백작과 장자인 이복형 에드거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에드먼드의 음모가 덧대어져 작품 속 ‘탐욕에 의해 희생되는 가정의 비극’은 더욱 강조된다. 주인공들의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을 ‘어머니’의 부재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 어머니가 될 수도 있었을 거너릴과 리건·코딜리어 모두 자식이 없는 것으로 설정된 극중 상황, 그리고 절망적으로 에드먼드에 집착하는 거너릴과 리건의 불륜은 그들의 세계가 미래 없는 암흑과도 같은 곳임을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죽고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은 20세기에 이르러 오히려 진실의 승리, 즉 암흑의 터널 저 건너편에 보이는 한 줄기 빛으로 재조명 받기에 이르렀다.


▲ 조용하고 냉소적인 모습으로 정신 착란에 이른 리어 왕을 연기한 브란다워 ⓒReinhard Werner/Burgtheater

절대 군주의 모습을 차갑게 그려낸 일흔의 대배우
주인공 리어 왕을 연기한 브란다워의 해석 역시 위와 같은 현대적인 시각으로부터 출발한 듯 했다. 브란다워의 리어 왕은 흔히 상상하기 쉬운 고대 그리스 비극 주인공들처럼 페이소스 가득한 장렬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극 초반 등장부터 시니컬한 음성으로 왕의 의무에 짓눌린 절대 군주의 모습을 차갑게 그려낸 브란다워는 대단히 냉소적인 연기로 무대를 압도했다. 그는 위엄에 찬 겉모습과 달리 노년에 이르러서야 본인이 원하는 진정한 인생을 찾으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나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욱 자신을 억누르다 광기 속에서야 비로소 정신의 자유를 찾는 늙은 왕의 복잡한 심리를 처연하게 표현하였다. 극중 광란의 장면이 있다 보니 오열과 고함으로 가득한 연기를 기대할 법도 한데, 브란다워는 오히려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정신 착란에 이른 리어 왕을 연기했다. 이를 두고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리어 왕이 아닌 브란다워를 연기한 브란다워”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브란다워의 리어 왕은 불필요한 페이소스를 제거한, 그리고 냉소적인 모습으로도 내면의 나약함을 감추지 못하는 인간 리어의 모습을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살아있게 그려낸 명연기였다.
브란다워가 탁월하게 주인공 역을 소화해낸 데 비해 슈타인의 연출은 다소 평이했다. 슈타인은 1980~1990년대 베를린 샤우뷔네를 중심으로 독일 연극계의 중흥을 불러왔던 인물이지만 이후 연출 작품들은 다소 빛이 바랜 느낌이다.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의 동시대성을 중요시하는 독일어권 극장에서 슈타인이 종종 불필요할 정도로 선보이는 고지식한 무대장치, 때로는 시대에 뒤처지다 못해 키치적인 시대극 의상은 ‘한물간 스타일’로 여겨진 지 오래다. 그런 그이기에 완전히 텅 빈 무대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왕의 의자, 몇 개의 탁자와 같은 일부 소품과 조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무대 장치 없이 공연되었는데, 이렇게 황량하게 펼쳐진 부르크테아터의 깊은 무대는 역으로 작품이 묘사하는 암울한 분위기를 대단히 탁월하게 그려냈으며, 황야 장면에서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다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레고 인형들이 연상되는 조역들의 중세풍 의상과 깃발들은 사순절 카니발 거리 행진에 더 어울릴 듯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리어 왕의 부하들이 들고 등장하는 커다란 박제 사슴이나 극 중반 무대 위에서 천천히 하강하는 프랑스 왕의 천막은 촌스럽다 못해 객석에서 실소가 들릴 지경이었다. 시각적으로도 극도로 단순한 무대장치와 주역들의 정제된 의상에서 오는 진중한 분위기를 방해했다. 전반적으로 연출의 특별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공연이었지만 4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내내 무대의 긴장감이 유지된 것 또한 연출의 덕분으로 생각된다.
70세 생일을 맞이한 브란다워에게 헌정된 프로덕션답게 모든 관심이 그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주·조역 배우들 역시 수준급이었다. 그중 냉혹한 첫째 딸 거너릴 역의 코리나 키르히호프가 특히 뛰어났다. 극 초반 아버지와의 대립 장면, 그리고 후반부 에드먼드를 둘러싸고 친동생이자 연적인 리건과 벌이는 거너릴의 암투는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이미 동 극장에서 여러 고전작품의 주역을 섭렵한 중견 배우답게 키르히호프의 연륜 있는 무게감은 브란다워와 팽팽한 긴장감을 이루었다. 광대 역의 미하엘 메르텐스, 글로스터 백작 역의 요아힘 비스마이어 역시 주목할 만했으며, 기타 배우들 역시 훌륭한 공연 수준에 일조했다. 공연 후 커튼콜에서 한참 동안 이어진 관객들의 박수는 비단 브란다워와 슈타인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글 이설련(베를린 통신원) 사진 Reinhard Werner/Burg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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