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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녹음 현장 취재
인고의 시간, 끝없는 다듬기
글 김여항 기자 2/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2월호 - 전체 보기 )



2011년 계약 이후 도이치 그라모폰과 6개의 음반을 발매한 서울시향. 음반 제작의 A to Z를 알아보기 위해 녹음 현장을 찾았다


서울시향이 최근 녹음한 진은숙 협주곡집엔 생황·피아노·첼로 세 개의 작품이 담긴다. 규모가 큰 생황 협주곡은 1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실황으로, 피아노 협주곡(13~14일)과 첼로 협주곡(17~18일)은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스튜디오 녹음으로 진행됐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을 맡은 13일 녹음 현장을 방문했다.

13:00 서울시향 녹음실 입장
13일 녹음은 10시부터 1시까지,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다. 1시 정각이 되니 단원들이 한꺼번에 밀폐된 문을 열고 나왔다. 연습실 깊숙한 곳에 위치한 쪽문을 열고 들어가 수많은 장비들을 제치며 걸어가니 큰 방이 나온다. 서울시향 연습실에 딸린 전용 컨트롤 룸이다. 서울시향의 첫 스튜디오 녹음 날. 실황 녹음 때와 달리 컨트롤 룸을 따로 대관하지 않고 편하게 녹음에 전념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어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참으로 밝아보였다.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작곡가 진은숙을 포함해 프로듀서 마이클 파인, 엔지니어 볼프 디터 카라바트키와 최진, 그리고 셈프레 라 무지카 팀원 김미나·오지영까지 총 7명이 방 안에 있었다. 파인은 전체 프로듀서이자 에디팅 작업을 맡고, 카라바트키는 리코딩 엔지니어로서 사운드 만들고 믹싱하는 작업을, 최진은 어시스턴트 엔지니어로서 전체적인 흐름을 잡으며 테크닉적인 부분이 안정되도록 돕는 일을 한다. 김선욱은 식사를 하러 빠르게 퇴장했고, 녹음팀은 취재를 위한 촬영에 들어갔다. 진은숙 작곡가도 엄연히 팀원으로서 녹음에 참여하니 함께 촬영. 사진작가가 작업 중인 콘셉트를 부탁하자 제각각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동작을 선보였다.


13:10 엔지니어 최진 인터뷰
빠르게 진행된 사진 촬영 뒤 인터뷰를 약속해준 최진만 남고 모두 퇴장했다. 서울시향은 지금까지 발매된 6장의 앨범을 모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녹음했다. 한 번도 빠짐없이 녹음에 참여한 그에게 “예술의전당이 녹음홀로 좋지 않다는 음악 애호가들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쁘지 않아요. ‘여기가 최고의 녹음 장소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원래 없어요. 예술의전당은 오케스트라의 음압을 받아내기 충분한 곳이에요. 어느 홀이나 마찬가진데 중요한 건 마이크를 어느 위치에 두느냐, 포인트를 잘 찾아내서 어떻게 배치하느냐입니다.”
녹음 세팅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생황 협주곡 공연에서 보았던 수많은 마이크들이 궁금해졌다. 서울시향은 이번 녹음에서 44채널, 즉 마이크 44개를 사용했다. 사전에 진행한 프로듀서 마이클 파인의 인터뷰에서 그는 44채널에 대해 “개별 연주자의 소리를 포착하는 데 좋고, 메인 마이크와 스폿 마이크의 적절한 혼합을 통해 좀더 색채감을 입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채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이번에 평소보다 많은 마이크를 사용한 것은 진은숙의 곡에 타악기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고 다이내믹의 폭이 넓기 때문입니다. 피아노가 네 개인 것부터 포르테가 네 개인 것까지 폭이 넓고 세분화되어 있죠. 세밀한 부분까지 잡아내기 위해서는 마이크가 여러 개 있는 게 좋아요. 쓸지 안 쓸지는 믹싱할 때 결정하는 거죠. 마이크가 여러 개 들어갈수록 소리가 섞이기 때문에 해상도가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혹자는 원 포인트, 혹은 투 채널이 가장 좋다고도 얘기해요. 독일의 유명한 어느 레이블은 사운드 체크만 여덟 시간 해요. 그렇게 하면 투 채널로도 가능하겠죠. 여덟 시간 동안 마이크 종류도 바꿔보고 위치도 옮겨보는 건데, 그러면 단원들은 진이 빠져요. 결국 음향을 듣느냐, 음악을 듣느냐 그 차이예요. 서울시향은 사운드 체크 거의 없이 녹음에 들어가죠. 한두 번의 녹음 경험으로는 적합한 지점을 알 수 없는 고난이도의 작업이에요.”
최진과 대화를 나누는데 피아노를 조율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일반적인 조율과 달리 음정만 다듬는 게 아니라 피아노의 색깔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독일에서 초청된 테크니션 게르트 핑켄슈타인이 녹음 일정에 맞춰 내한했다. 작은 편성일 경우엔 조율사가 녹음 내내 대기하고 있다가 몇 음만 나가도 바로 연주를 중단시키기도 한다. 피아노 줄이 그렇게나 예민한가 물으니 음정만 변화하는 게 아니라 조금만 오래 쳐도 해머가 딱딱해지거나 소리의 부드러움이 달라지는 등 미세한 변화들이 생긴다고.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서울시향 홍보 담당 장보라 씨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이제 진짜 식사하러 가셔야 되는데….”
시계를 보니 쉬는 시간이 겨우 30분 남았다.


▲ 움직이는 벽 사이로 촬영한 정명훈의 지휘 모습

13:50 리허설 시작 직전

20분간 서울시향의 3층 사무실에서 잠시 대기. 옆에선 녹음팀이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다음 리허설을 준비한다. 시작 10분 전, 다시 연습실로 올라갔다. 드디어 연습실에 단원이 차기 시작하자 사진작가는 분주해졌다. 우두커니 서서 두리번거리는데 최진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벽을 한번 보세요. 저게 움직여요. 울림의 정도나 음색을 다르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천장을 보면 엄청 높죠?” 일반 오케스트라 연습실이 아니라 녹음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탈바꿈된 요소들을 그 짧은 사이에 설명해준다. 빠르게 밥을 먹고 돌아온 단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메운다. 특이하게도 피아노를 중앙에 안고 있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고, 현은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가 모두 네 명, 더블베이스가 두 명으로 단출한 편이었다. 대신 기본적인 목금관 편성에다 첼레스타·하프·만돌린, 그리고 팀파니 포함 22종이나 되는 타악기까지 여러 악기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1시 59분. 지휘자 정명훈이 들어옴과 동시에 순식간에 리허설 모드로 돌변했다.

14:00~15:30 녹음 참관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신신당부를 받고 잔뜩 긴장한 채 만돌린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첼레스타와 만돌린의 신기한 음색 사용에 신이 나려는 찰나 빅브라더 같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어온다. 주인공은 마이클 파인이다. 파인과 정명훈은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누가 어느 부분을 다시 연주할지 결정했다. 두 마디 연주 후 방송, 다섯 마디 연주 후 방송. 단원들의 표정이 지쳐가려는 찰나 “다시 갑니다” 하고 파인이 한국말로 힘을 북돋운다. 그리고 또 스톱, 또 스톱…. 음색·밸런스·연주·다이내믹 등 모든 부분에서 주문이 들어온다. 지휘를 하다 멈추고 정명훈이 먼저 소리가 괜찮은지 파인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이때 갑자기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 “선욱아, 너무 느린가? 더 빨리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선욱. “네, 조금요.” 컨트롤 룸 안의 진은숙이다. 진은숙은 마이클 파인 옆에 앉아 세세한 사항을 챙긴다. 빠르기는 물론, 악기 간의 밸런스, 세밀하게는 타악기에 쓰이는 채의 종류까지 마이크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즉각적으로 조언을 한다. 지휘자와 작곡가, 그리고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까지. 이게 삼위일체구나 싶다.
이제 한참 봤나 싶어 시계를 슬쩍 보니 2시 15분. 세상에, 앞으로 한 시간도 더 남았다니 암담해지기 시작했다. 음악을 이어 듣는 게 아니니 1분이 10분같이 느껴지고, 중간에 나갈 수 없는 운명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20~30분 체크 차원에서 디테일하게 가고 시원하게 한 번 연주할 법도 한데, 열 마디를 넘기는 경우가 없는 것 같았다. 여지없이 방송이 들어왔다. 단원들을 슬쩍 봤다. 그들 얼굴에 표정이 없는 걸 보니 이게 얼마나 만만치 않은 작업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15:30 잠시 휴식
1시간 30분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기자는 서울시향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이들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그날 5시까지 또 녹음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종일 녹음. 단원들은 힘들지 않은가 궁금해 첼로 부수석 이정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유, 힘들어요. 이틀 녹음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디테일하게 체크해요. 이 곡 같은 경우는 연습을 하며 녹음을 진행하는 거라 특히 더 꼼꼼하게 갔어요. 다음 날 녹음할 때도 그렇게 일일이 체크하면서 다듬어갔어요. 지금까지는 실황으로 녹음했는데, 스튜디오 녹음이 훨씬 힘들어요. 그렇지만 대관 문제 때문에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마디마디 연습이 가능하니 정말 좋죠.”
서울시향의 녹음 과정 취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언론 홍보를 맡은 장보라 씨, 음반 발매 담당인 윤수연 씨, 리코딩 프로듀서 마이클 파인, 엔지니어 최진, 그리고 단원으로서 한 말씀 얹어준 첼로 부수석 이정란까지. 이들 모두 스튜디오로 탈바꿈한 연습실을 두고 “우리 집”이라는 표현을 썼다. 서울시향 홈그라운드에서 만들어진 진은숙의 협주곡집은 8월 해외 여름 축제에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 중인 김선욱

글 김여항 기자(yeohang@gaeksuk.com)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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