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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이발사’의 알마비바 백작
사랑을 위해 속고 속이는 남녀
글 김선영 기자 2/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2월호 - 전체 보기 )



목적을 위해 신분까지 속인 알마비바 백작. 그 계략에
넘어갔지만 결혼으로 신분 상승에 성공한 로시나.
누가 속이고 누가 속은 것일까?


▲ 일러스트 노성욱

마드리드에서 우연히 마음에 꼭 드는 처녀를 본 젊은 알마비바 백작은 그녀를 사귀려고 세비야까지 따라온다. 처녀의 이름은 로시나. 하지만 처녀의 젊음과 재산 양쪽에 다 욕심이 나서 로시나와 결혼하려는 후견인이 버티고 있다. 나이 많고 의심도 많은 의사 바르톨로다. 온 세상 남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그의 삼엄한 경계 때문에 어떤 남자도 로시나를 만날 수 없는 상황. 악사들을 이끌고 가 로시나의 창문 아래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던 백작은 운 좋게도 한때 자신의 하인이던 이발사 피가로를 우연히 만난다.
현재 자영업자 이발사로 일하는 피가로의 계략대로 백작은 평민으로 가장하고 린도로라는 가명을 써서 로시나의 사랑을 확인하는 데 성공한다. 후견인의 감시를 피해 로시나를 만나려는 백작은 한 번은 술 취한 군인, 한 번은 음악선생 바실리오의 대타로 변장하고 로시나의 집에 찾아온다. 이 시도는 두 번 다 들통이 나 실패로 돌아가지만, 밤에 로시나를 탈출시키려고 피가로와 함께 다시 잠입한 백작은 바르톨로가 불러놓은 공증인과 바실리오를 들러리 세워 바르톨로 대신 자신이 로시나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로시니의 성공작 ‘세비야의 이발사’(1816년, 로마 초연)는 희극 오페라의 전형적인 주제인 ‘젊음의 승리’를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신분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세대 차 때문에 대립하고, 귀족 대 평민이 아니라 젊은이(로시나·피가로·알마비바) 대 노인(바르톨로·바실리오)으로 맞선다. 그리고 이 오페라를 보는 관객들은 예외 없이 젊은이들을 응원하며, 로시나가 나이 든 후견인을 벗어나 젊은 알마비바 백작과 포옹할 때 비로소 안도하며 환호한다.
바로 여기 함정이 있다. 평민 신분인 로시나에게 접근하기 위해 백작은 귀족 신분을 속이고 린도로라는 이름의 평민 청년으로 가장한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도, 베르디의 ‘리골레토’에도 등장하는 귀족 청년의 이런 트릭은 물론 평민 처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조처였다. 당시 귀족이 평민 처녀를 농락하고 버리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처녀 입장에서는 귀족이라면 일단 경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평민 처녀들이 귀족과의 결혼을 마다한 것은 아니다. 불장난에 빠져들었다가 버림받아 영영 시집 못 가게 될 것을 두려워했을 뿐, 결혼에 이를 수만 있다면 신분의 차를 결코 거절의 이유로 삼지 않았다.
일단 로시나에게 빠진 백작은 철저하게 목표 지향적으로 행동한다. 원하는 대상을 얻기 위해 계략을 세우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협박과 매수도 서슴지 않는다. 돈을 들여 악사들을 고용하고, 피가로에게 돈주머니를 보여주면서 로시나와 만나게 도와달라 유혹하고, 노인이며 평민 신분인 바르톨로를 사정없이 무시하고, 바르톨로가 경찰에게 백작의 가택 침입 사실을 고발하자 경찰국장을 귀족 신분으로 압박해 체포를 면한다. 음악선생 바실리오로 변장했다가 진짜 바실리오가 나타나자 재빨리 돈주머니를 건네 매수하는가 하면, 바르톨로의 결혼식 증인으로 온 바실리오의 목에 총을 겨누고 협박까지 해 자신의 결혼식 증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부와 신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귀족 계급의 안하무인격 태도를 로시나가 진작 꿰뚫어보았더라면 ‘피가로의 결혼’과 ‘죄 많은 어머니’로 이어지는 바람둥이 독재자와의 끔찍한 결혼생활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시나 역시 순진한 희생자는 아니었다. 자신이 의도하진 않았으나 백작과의 결혼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해졌을 때 로시나의 반응을 보자. “린도로는 바람둥이 알마비바 백작에게 로시나를 팔아넘기려고 하는 하수인일 뿐”이라는 후견인 바르톨로의 말에 절망해 린도로와의 야반도주를 단념한 로시나 앞에서 백작은 자부심 가득한 결정타를 날린다. “내가 바로 알마비바예요, 린도로가 아니고!” 순수한 처녀라면 이 대목에서 자신을 속인 이 사기꾼에게 따귀를 선사해야 옳다. 그러나 로시나의 대응은 관객을 놀라게 한다. “아, 이게 웬 떡이야! 그가 바로? 맙소사! 이렇게 좋을 수가! 너무나 놀라고 기뻐서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야!” 물론 백작에게 대놓고 하는 말은 아니고 혼잣말이다. 여우 굴을 피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로시나. 신분 상승의 대가는 잔인하다.

교열완료_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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