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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암 100년, 근대가요 100년
빛과 그림자
글 윤중강(음악평론가) 2/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2월호 - 전체 보기 )



일제강점기 최고의 작사가 조명암. 비록 그의 삶 속에 친일과 월북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 시대의 노래로 출발해서, 세대를 거쳐 가며 살아남은 노래들. 민요와 가요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만요와 재즈를 희롱하듯 섭렵했던 노래 속에 조명암이 있다. 우리는 조명암을 제대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개야개야 삽살개야 삽살개야 삽살개야
가랑잎만 들썩해도 짖는 개야
청사초롱 불 밝히고 정든 님이 오시는데
개야개야 삽살개야 개야개야 삽살개야
(개 짖는 소리) 짖지 마라
-조명암 작사, 김영파 작곡, 이화자 노래,
오케레코드, 1939년

국악방송에서 거의 날마다 나오는 노래, ‘통영개타령’이다. 이 곡의 원래 제목은 ‘삽삽개타령’으로, 조명암이 작사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그 사실이 알려졌으면 일찍이 금지곡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민요 혹은 신민요로 알고 있는 ‘삽삽개타령’은 유성기 시대의 대표곡. 이 곡이 ‘통영개타령’으로 둔갑한 것도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연관이 있다.

조명암에 대하여
조명암(趙鳴岩, 북한 이름 조령출, 1911년 충남 아산 출생, 1993년 평양에서 사망). 일제 강점기에 ‘타령’이라는 제목으로 가요시(가사)를 썼다. ‘타령’은 이름 자체가 조선적·향토적 상징을 갖추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여덟 곡의 타령을 보면, 그의 우리말 다루는 솜씨에 탄복하게 된다. “어림마 얼싸 당기당 둥”이란 가야금의 의성어를 통해 사랑을 노래한 ‘당기당타령’을 시작으로 “아리랑바람에 가는 님의 허리를”이라는 가사가 있는 ‘금송아지타령’은 모두 ‘삽살개타령’처럼 이화자가 노래했다. “사대문 구멍으로 돈바람 불어온다”는 가사의 ‘돈타령’과 장터에서 불리는 품바타령을 운율감이 살아있는 가사로 다듬은 ‘팔도장타령’은 만요(漫謠)의 대가 김정구와 김해송이 불렀다. ‘쌍쌍타령’과 ‘신 곰베타령’은 지금의 소리꾼들이 불러 다시 유행시켰으면 좋겠다.
‘타령’을 제목에 붙이진 않았어도, 전통의 정서와 율격이 느껴지는 노래가 많다. ‘풋난봉’은 “난봉이로구나 난봉이로구나 얼싸 좋다 지화자 좋다”라는 후렴구가 있는데, 지금 국악계에서 불리는 ‘난봉가’류의 곡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에 민요가수 김세레나를 널리 알린 노래가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 그 곡은 이 시절에 처음 나온 노래로 알고 있지만, 원곡의 제목은 ‘온돌야화(溫突夜話)’다. 추운 겨울날에 따스한 온돌에서 새끼를 꼬면서 이러쿵저러쿵 나눈 이야기가 바로 노랫말이 됐다. 가야금병창곡으로 알려진 ‘노란저고리’도 가야금병창의 명인 고(故) 박귀희의 작사로 짐작하지만 조명암이 만든 가사가 뿌리가 된 노래다.
이렇듯 조명암은 박영호와 함께 일제강점기 최고의 작사가였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양적이나 질적 모두 우수한 ‘가요시’를 만들었다.
조명암은 당시 생생한 조선어를 살리면서, 전통적 정서를 당대의 공감으로 풀어낸 대가다. 그의 노래 중에는 ‘아리랑’을 제목으로 한 노래도 있고, ‘아리랑’의 운율이 가사에 들어간 곡들도 있다. “아리아리 둥둥 스리스리 둥둥” “아리덩더쿵 쓰리덩더쿵 어쩔 수 없네” “아리살짝쿵 응 쓰리쓰리 응”은 후렴구를 살려내면서 아리랑 계통의 노래를 보다 더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우며, 때론 애교 넘치는 노래로 만들어낸다. ‘조선의 처녀’ ‘파랑치마’ ‘아리랑삼천리’ ‘가거라 초립동’을 들어보시라! 아리랑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가를 확인하시라!

남녀 듀오 노래의 정착
조명암의 노랫말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저 서정적인 시어만 넘치거나, 해학적인 풍자로 채운 것이 아니다. 조명암은 일제강점기의 유성기 음반 속에 남녀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요즘말로 하면, 일찍이 그는 ‘스토리텔링’을 안 셈이다.
‘춘풍신호(春風信號)’란 노래는 봄바람 불어서 싱숭생숭하는 부부가 주인공이다. 당시 손목인(1913년생)이 작곡한 이 노래는 김정구와 장세정을 통해 알려졌다. 이 노래는 1970년대 고봉산과 하춘화가 ‘아베크 부부’라는 노래로 리메이크했다.
1930년대 외국영화 속 남녀 주인공에 반한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상황을 만요로 그려낸 ‘활동사진강짜’를 보면 한 시대를 짐작케 하는 노랫말, ‘리얼한 리포트’란 걸 실감하게 한다. 아마 그들도 처음에는 ‘신접살이 풍경’의 부부처럼 다정다감했으리라. 조명암의 노랫말을 통해 이렇게 일제감정기 부부의 풍속도를 보게 된다. 요즘말로 하면 그의 노랫말은 한 편의 시트콤이 된다.
조명암만큼 ‘봄’을 노래로 삼은 작사가가 있을까? ‘유쾌한 봄소식’은 근대화되어가는 당시 서울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시내를 활보하는 ‘버스’와 근대적 소비산업의 중심 ‘백화점’이 노래 속에 등장한다. “버스걸(bus girl) 웃음에도 봄빛이 으스러”지고, 봄이 되니 아가씨들의 웃음소리에 “백화점 육층 양옥이 무너질 듯”하다고 노래한다. ‘살랑춘풍’은 그 제목부터 시작해서 우리말이 가진 의성어와 의태어를 아주 잘 살려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조명암의 봄노래를 이야기하면서 피해갈 수 없는 것은 친일과 관련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앵화폭풍(櫻花暴風)’은 조명암(작사)·박시춘(작곡)·김정구(노래) 트리오의 걸작이다. 벚꽃(앵화)이 만발한 창경원(창경궁)의 모습을 그렸다. “영감상투는 비틀어지고 마누라신발은 도망을 쳤네”란 가사 등을 통해 당시 벚꽃놀이 풍경을 재미있게 묘사한 곡이지만, 앞에서 말했듯 여러 이유로 거명하기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노래의 인기는 꽤 대단했기에 1960년대 가수 김정구는 제목과 가사를 바꿔서 자신의 음반에 새롭게 담기도 했다.

기생의 대변자
퀴즈 하나를 내볼까? ‘기생’이란 직업을 대표하는 노래를 많이 쓴 작사가는 누굴까. 역시 조명암이다. “이름조차 기생이면 마음도 그러냐”는 가사로 더욱 유명해진 ‘화류춘몽(花柳春夢)은 기생들 주제곡이었다. 이 노래는 그가 선택한 한반도 북쪽에는 자취를 감췄지만, 오히려 남한에서는 황금심이 리바이벌해서 새롭게 널리 알려졌다.
‘기생수첩’ ‘영자야 가거라’ ‘화륜선아 가거라’ ‘외로운 화장대’ ‘화류잡기장(花柳雜記帳)’은 모두 기생들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하는 ‘그녀들의 노래’다. ‘눈물의 노리개’는 “아 그리운 님이여 모두가 오해입니다”라고 시작을 하고 “거문고 부여안고 우는 날 보고 가서”라는 가사도 나온다. 일제강점기의 기생이 ‘거문고’에서 ‘모던댄스’까지 두루 능통했음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준다. 반면 기생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시선을 알 수 있는 노래도 있다. “깨어진 색경(거울) 위에 시를 써놓고”라는 가사가 있는 ‘분 바른 청조(靑鳥)’는 지식인 남자가 ‘푸른 새’로 비유된 기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당대 최고 가수 남인수의 히트곡 중의 하나다.
‘세상은 요지경’(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김정구 노래)의 원곡도 그에게서 출발했다. 아울러 ‘동그랑 땡땡’이란 노래가 있다. “담 너머 오동집 첫째 딸이냐 응 고것 참 능청맞구나”라는 가사가 있다. 1절은 ‘고것 참 늘씬하구나’, 2절은 ‘고것 참 고와졌구나’, 3절은 ‘고것 참 능청맞구나’로 변해가는데 당시 가요심의위원회가 있다면 이 노래는 어쩌면 ‘19금’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를 노래다.
일제강점기의 많은 인물들이 그랬듯 조명암의 경우에도 ‘불편한 진실’이 있다. 바로 대표적 친일영화 ‘그대와 나(君と僕)’(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남인수 장세정 노래)와 관련되어 있다. 이 외에도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북한의 혁명가요 ‘조국보위의 노래’ ‘청년유격대’ ‘압록강 이천리’를 지었다. 조령출(조명암)이 리면상(이면상)과 짝을 이뤄서 만든 노래다. 이런 시절에 쓴 노랫말 중에 “쩔렁쩔렁 방울 소리에 정든 새도 반기는구나” “이내 원쑤를 갚아주는 인민군대를 찾아가자” “얼룩소야 어서가자”라 노래한다. ‘얼룩소야 어서가자’의 곡조는 김진명(1913~1997, 서도소리 명창이자 북한의 인민배우)이 고쳤다. 김진명은 지난 1991년 남북한의 음악인 교류(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 서울 송년통일전통음악회)가 있을 때, 남쪽에 와서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 무대에서 ‘서도소리’의 원형을 선보인 이다. 2013년은 김진명 명창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인데 아마 북한에서 큰 언급은 없을 것 같다. 더불어 남한 서도소리계의 조명도 궁금하다.
모든 사람의 삶, 특히 예술가의 예술에는 분명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지 않을까. 조명암은 한국 근대화 시기의 ‘현대시’를 쓴 한 사람이지만, 더불어 ‘가요시’라는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다. 이 땅의 토속적인 정서를 ‘신민요’라는 장르를 통해 정착시켰다. 근대 문물의 유입기에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요’와 ‘가요’의 틀 속에서 풀어냈다. 비록 그의 삶 속에 친일과 월북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고전 ‘춘향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더불어 그의 ‘조령출 희곡집’을 통해 한민족으로서 공유하게 되는 민족정서마저 부정할 순 없게 된다.
2013년, 조명암은 역시 가요계의 작곡가로서 친일과 관련해 자유롭지 못한 박시춘·손목인과 함께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1930년대, 이들이 조선의 음악적 정서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더불어서 조명암은 비록 몸은 북에 있었어도 1950년대, 1960년대까지도, 그의 노래는 쉬쉬하며 약간의 가사만 바꾸어가며 살아남았다. ‘알뜰한 당신’(조명암 작사, 전수린 작곡, 황금심 노래, 빅터레코드, 1937년)은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불멸의 명곡’으로 지금까지 당당하게 살아있는 대중가요의 명곡이다.
한 시대의 노래로 출발해서, 세대를 거쳐 가며 살아남은 노래들. 민요와 가요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만요와 재즈를 희롱하듯 섭렵했던 노래 속에 조명암이 있다. 조명암의 노랫말을 연결해보면, 그대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모습이 있다. 그의 노랫말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 케이팝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 즈음에 한국의 대중음악에서도 그 뿌리가 있음을 알리고, 전통예술 분야에서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1930년대 문화의 복원을 위해서도 우리는 조명암을 제대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 사람 삶의 명암이 비록 분명할지라도, 그것이 한 시대 우리 모습임을 숨길 수는 없지 않은가.
‘맘마미아’와 ‘락 오브 에이지’와 같은 서구 대중음악의 명곡들이 주크박스뮤지컬로 만들어지고, 우리의 경우도 고(故) 이영훈의 노래가 ‘광화문연가’로, 1980년·1990년대 가요 명곡을 쓴 오태호의 노래가 ‘내 사랑 내 곁에’란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조금 더 안목을 넓히고 뿌리를 찾는 의미에서, 1930년대 조명암과 같은 ‘가요시’를 쓴 작사가의 노래와 더불어 그와 함께 한 몇몇 작곡가들의 노래들, 탄생 100주년을 맞는 그들에게 작은 보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결국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얼싸안고 어루만지며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끝으로 그의 시 ‘가야금’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가야 가야라 우륵이 지으신 것
천 년 옛 소리 맑고도 고운 가락
늘도 둥당디 당실 산조에 실렸세라

사랑을 받았노라 수천 년 받았노라
무릎에 안기어서 두고 새록 받았노라
이후도 인민의 사랑 두고두고

보아서 정겨웁고 들어서 흥겨웁고
우륵이 다시 오면 이 줄을 다시 골라
만백성 즐기는 세월 새노래 지으시라

진양조 자진모리 휘모리 롱현(弄絃) 속에
산천이 명동하고 절절한 뜻이 있다
그중에 간절한 소원 삼천리 한 살림.

글 윤중강(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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