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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김세연
나는 춤이다
글 정우정 기자 3/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3월호 - 전체 보기 )







발레리나 김세연, 그녀가 스위스로 떠나 네덜란드를 거쳐, 지금의 스페인, 유럽의 무대를 장악한 지도 벌써 십 년이다.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유럽으로 떠나며 그녀는 잠시 다녀오듯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나 강산이 휘 변하는 십 년의 시간을 보내며 그녀가 만든 것은 춤 그 자체다. 자신을 춤으로 만들어버린 김세연과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2년 전에 스위스 취리히 발레에 잠깐 돌아가서 작업을 했었고, 지난해에 스페인 국립무용단으로 옮겼다. 그전 네덜란드 국립발레를 그만두면서는 좋아하는 춤을 추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각오가 컸다. 발레단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 취리히 발레의 하인츠 슈푀를리 예술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데,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슈푀를리의 제의는 나에게 거절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2011년에는 취리히에 있었다. 처음 슈푀를리의 작품을 만난 건 2003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있을 때였다. 그때 인연을 맺어 2004년에 취리히 발레로 옮기게 됐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안무가다.
지난해 스페인 국립무용단을 선택한 계기는.
이후 단체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스페인 국립무용단에서 취리히 공연을 보고 이적을 제안했다. 당시 스페인 국립무용단은 안무가 나초 두아토가 이끌다가 그가 그만두고 파리 오페라 발레의 스타 무용수 출신의 예술감독(호세 카를로스 마르티네스)이 새롭게 발레단을 맡으면서 과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곳 무용단에서는 클래식이나 컨템퍼러리를 다 할 수 있는 무용수가 필요했다. 예술감독에게도 신뢰가 느껴져 이적하게 됐다.
안무가가 이끄는 단체와는 조금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안무가가 이끄는 단체는 무용수들의 역할이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빨간색이면 빨간색, 파란색이면 파란색, 영화 주인공들처럼 한 이미지로 쭉 가는 것이 보통이다. 안무가가 무용수의 성격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끝까지 그 역할을 요구한다. 그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시선이지만, 무용수 출신의 안무가는 무용수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있다. 그들이 무용을 알고, 무용을 해봤기 때문에.
그곳 생활이나 무용단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신고전주의’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너무 고전도 너무 현대도 아닌 적당한 춤이 있다. 그리고 스페인은 날씨가 정말 좋다. 사람들이 소탈하고 성격 좋은 것 또한 스페인의 큰 매력이다.
최근 한국의 국립발레단 무대에 섰다(본지 107쪽 리뷰 참조).
나에게는 한국의 무대도 중요하다. 한국에 부모님이 계시고, 내게는 고향이니까. 지난해 여름, 국립발레단의 최태지 단장님께 만약 공연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달라 먼저 제안했다. 마침 ‘로미오와 줄리엣’을 두고 나를 생각했다며 연락을 주셨고, 몬테카를로에 직접 가서 장 크리스토프 마요에게 캐스팅 오디션을 볼 수 있겠냐고 해서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마담 캐퓰릿 역이었다.
캐퓰릿은 아주 매력적이다. 꼭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었다.
모던한 안목을 갖춘 장 크리스토프 마요의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나.
2001년 마요의 작품이 한국에서 초연됐을 때,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은은한 조명과 의상, 여러 가지 장식들을 제거한 간결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의 표현이 놀라웠다. 인테리어가 예쁜 공간을 보면 계속 그곳에 머물고 싶은 느낌이 있지 않나. 그와 비슷한 차원으로 그의 작품은 인상 깊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표현력이 있다.
그의 작품 형식에서의 구체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쓰는 것은 똑같은데, 고전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더욱 끌린다. 그것은 전통 안에서 창출되는 새로움이기도 하다. 직접 춤을 추면서는 더욱 디테일한 부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재미있게 작업을 했다.
김세연 씨가 추구하는 춤의 방식과도 비슷한 맥락인가.
고전 발레는 분명히 화려한 매력이 있다.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거나, 잘 알려진 무용곡으로 확실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현대 작품이라고 하면 뭔가 어두울 것 같고,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사이에 적절하게 조율된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클래식 발레처럼 정형화된 동작들이 아닌 안무작도 많다. 무용수나 관객들 모두에게 필요한 무용의 지점인 것 같고, 나 또한 그 부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현대 발레를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발레가 추구하는 유형의 대상이 있다면.
대부분은 동화 속에 사는 사람, 혹은 그 이외의 것들을 요구받게 된다. 나는 동화 속에 살고 있지 않다.
몇 해 전, 직접 기획했던 ‘플라잉 레슨’에서는 굉장히 자유로운 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나의 자연스러운 춤이 발견됐다면, 바로 나 자신을 춤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내가,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곧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그랬을 때 작품을 추기가 편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어하는 면은 ‘요정’이나 ‘백조’가 되어야 하는 주문이다.
인간적인 자유를 드러내기에 고전의 작품들이 한정적인 것은 사실이지 않나.
때문에 한국에서도 다양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어야지만 무용수들이 무언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나라도 좋은 안무가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춤을 인식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춰서 많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실, 일련의 컨템퍼러리 활동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발레인가, 현대무용인가 하는 애매모호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발레로서 굵직한 맥락을 긋고 있고, 또다시 ‘춤’이라는 대 전제를 포괄하고 있는 하나의 동작으로 읽히게 된다. 개인적으로 김세연 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와 닿는다. 때문에 현대 발레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고, 그러한 작업들을 기회가 있으면 계속 해나가고 싶다. 취리히에서 나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익숙하지 않던 안무가와의 작업은 내 몸을 알아가는 데 아주 큰 가르침이 됐다. 무용수로서의 중요한 작업 중 하나였다.
하인츠 슈푀를리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그는 말 한마디로 나를 바꿔놨다. 취리히로 가서 처음 작품을 할 때였다. 나는 클래식 발레를 많이 해왔고 누가 나를 위해 안무를 해준다는 것을 상상 못 했기 때문에 겁이 많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겁이 잔뜩 들어서 예술감독실 문을 들어서자 슈푀를리가 말했다. “저 문을 나가서 다시 들어와라. 발레리나로 말고, 인간으로 들어와라. 내가 너에게 원하는 건 인간이 추는 춤이지, 발레리나를 원하지 않는다.”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춤에 대해 임하는 마음가짐이 어떻게 달라졌나.
그 후로, 춤에 나를 끼워 맞추던 작업들이 ‘나’를 만들어가는 작업으로 변했다. 음악을 느끼는 방법도 그 즈음에 알게 됐던 것 같다.
춤의 변화는.
모든 동작에 의미가 있어야만 몸이 편하다. 동작의 연결마다 이유가 있고, 몸의 흐름과 감정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했다. 춤을 추기 전에는 안무가의 마음이 되고, 무용수의 마음이 되어 해독하려 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편인가.
완벽을 추구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호기심이 많으니까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은 있다. 나는 음악이 좋고 안무가 좋으면 좋다. 바흐나 모차르트 음악에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큰 단체들에서는 때때로 이상한 음악에 춤을 춰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그만둔다.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춤곡으로 만들어진 곡이 아님에도 그 음악에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발견이다.
과거의 무용수와 현대를 사는 무용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시대를 사는 무용수들은 테크닉은 뛰어나지만 에너지나 아우라가 예전보다는 덜한 것 같다. 전에는 무용수가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지 않았나. 꿈을 좇아서 살았다. 네덜란드 국립발레 같은 경우에는 정년이 보장되어 있다. 장점도 있지만, 무용수를 안일하게 만드는 부분도 없지 않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집중이라기보다는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때문에 예술가들이 현실적이 되고, 몰입하기가 힘든 구조 속에 놓인다.
발레리나로서 최상의 나이는 몇 살인가.
몸으로서의 나이는 이십대 후반이고, 그 이후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스텝의 의미를 생각하고, 음악을 들을 줄 알게 된다. 그러니 표현력은 이후에 생긴다고 해야 하나. 서른이 넘어가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간절한 마음도 춤을 추는 데에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욕심을 덜어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티켓 세일즈 붐을 일으키는 스타 무용수가 탄생하는 시대가 왔다. 개인적으로 욕심은 없나.
나의 스텝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나도 스타에 대한 갈망을 해보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도 뿌리친 기회들에 대해 ‘너 왜 그랬느냐’ 묻기도 한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난 좋은 무용수가 되고 싶다’.
‘좋은 무용수’가 뭔가.
글쎄. 지금도 해마다 새로운 여러 작품들을 만나고 있고, 그 안에서 새로움을 경험한다.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구나’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이것이 모두 ‘좋은 무용수’로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겠나.
춤을 추고, 쉬고 다시 일어나 춤을 추고… 지루하지 않나.
지루했는데, 아니 지루한데 사람의 식사가 연속이듯이, 당연히.


김세연의 생각 속에 거추장한 장식은 없었다. 오로지 ‘춤’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무용수 김세연’과 독대하고 있는지 ‘춤’과 함께 있는지, 자못 헛갈리기도 했다. 꿈을 좇아 살아가는 그녀의 열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 우리는 김세연의 표정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춤을 추고 있을 때에도, 춤을 말하고 있을 때에도 그의 표정은 ‘춤 자체’다. ‘춤’이라고 하는 거죽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적어도 예술가는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

글 정우정 기자(wjj@)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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