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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의 새 얼굴 김준수·민은경·이광복·이소연·정은혜·최호성
창극에 대한 논제
글 정우정 기자 3/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3월호 - 전체 보기 )




국립창극단이 십 년 만에 신입단원을 뽑았다. 외·내부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예술감독 김성녀는 전통예술로써 우리 삶의 소리를 담을 새 목소리를 찾았다. 자그마치 여섯 명이다. 젊은 소리꾼들의 대거 수혈은 앞으로 일어날 소리판을 흥미롭게 만든다. 이날 많은 질문을 가져갔지만, 이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어보기 위해 우리는 작은 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체, 창극이 뭡니까?"


창극이 뭡니까?
이광복 판소리는 1인 소리꾼의 형식으로 한 사람이 소리를 이끌어가지만 창극은 그 소리를 바탕으로 역할을 나누고 춤과 음악, 연기 등을 모두 섞어 가무악의 형태로 만든 무대예술입니다. 약 100년 전 원각사가 설립되면서 무대 형식으로 발전해갔지요. (정은혜가 “1930년대 송만갑·정정렬·김창환 선생님 등이 모여 만든 조선성악연구회의 발족이 시작”이라고 덧붙인다. 원각사의 설립 연도는 1908년이다) 그전에는 마당에 앉아 세태를 풍자하고, 해학을 섞어가며 판소리가 시대 속에 살지 않았습니까. 창극은 그러한 요소들을 무대화해서 작품의 형식으로 올린 것입니다. 극장 건립이라는 시대적인 문화 변동이 있기 때문이죠. 요즘은 뮤지컬이 각광을 받는 세대이기 때문에 또 다른 변화들이 창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극단에서도 기존의 춤과 손끝 발끝의 발림이 아닌, 몸 훈련도 필요로 하고 있고요. 창극을 대하는 입장 중에서도 우리가 서 있는 이 시점은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하고 요구받는 때인 것 같습니다.

이광복은 1983년 경기도 파주 출생으로 국악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판소리를 처음 만났다. 열세 살부터 김수연 명창에게 판소리를 사사했으며, 특히 계면조의 슬픈 소리를 좋아한다. 객원단원으로 국립창극단의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아왔던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자신을 바꾼 한 마디로 “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를 꼽았다.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 가운데 새로운 세대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겠습니다.
정은혜 모든 시대마다 과도기를 거쳐서 다음의 장르를 만들어냅니다. 판소리의 본 소리는 유지하지만 판소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창극을 만들었습니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돌아가신 김소희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창극단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셨고, 이곳에는 김소희 선생님의 계보를 이은 소릿제가 많습니다. 그 분과 동시대를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울 점을 많이 남겼다는 건 당시 예술적인 큰 획을 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창극단에 오랫동안 계셨던 선생님들은 종종 “우리 공부할 때는 이러이러했다”라고 많이 말씀해주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또 다른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희에게 맡겨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대학 졸업 후 국립극장이라는 큰 틀, 극장 밖에서의 실험적인 활동을 해왔습니다. 국립창극단이 펼치고 있는 창극의 작품들은 전통의 맥락 안에서의 좋은 교우로 인한 상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판소리에는 수많은 이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지요. 판소리를 매개로 우리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꺼내놓아야 합니다.
정은혜는 1984년 전북 전주 출생으로 일곱 살부터 최승희 명창에게 정정렬제 소리를 배웠다. 정정렬제 ‘춘향가’ 중 어렵기로 유명한 ‘천지 삼겨(생겨)’로 시작하는 ‘귀곡성 대목’을 특히 좋아하며, 스승 최승희와 이론가 오용록, 작곡가 장영규를 비롯해 예술은 사랑임을 깨닫게 해준 피나 바우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정은혜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에 입학 예정이다. 전통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있다.


이시대 창극에서 결여되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소연 판소리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소리와 발림과 추임새. 은혜 말대로 이면에 맞는 발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점점 더 극대화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창극이란 창에 극이라는 요소를 조금 더 집어넣은 것뿐입니다. 결코 다르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귀명창의 부재는 정말 안타까운 문제입니다. (다시 “지금의 창극은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자) 시대에 맞는 작가가 너무도 필요합니다. 저희는 음의 길을 알고 부르고 있지만, 이 시대의 소리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작가와 연출가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춘향가’나 ‘심청가’도 그 시대를 담은 감성이라고는 하지만, 어디 그랬겠습니까. 드라마틱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문학성의 인정이 있지 않았을까요. 배우의 입장으로서는 설득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소리꾼들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고, 음악적 테크닉을 보여주려고만 합니다.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소리꾼들의 연구와 집중을 위해서라도 작품을 위한 스태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연기에 집중할수록 많은 부분들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주문에 정확한 변화와 성실한 연기를 펼치는 선생님들을 존경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이소연은 1984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먼저 판소리를 배운 아버지를 따라 열두 살 무렵부터 송순섭 명창에게 박봉술제 소리를 사사했다. 판소리를 배운 지 10년 만에 ‘적벽가’ 아니리를 배운 날을 잊지 못한다는 그녀는 적절한 술책을 가지고 있는 적벽 이야기의 공명 역이 욕심난다고 한다. 특유의 연기력은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연출자 오성완과 배우 이당금의 영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최근 창극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무엇이며, 신구의 조화에 무엇을 기대합니까?
민은경 가령 국립창극단의 최근 작품 가운데 ‘장화홍련’ ‘서편제’ 등 새로운 레퍼토리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한 작품을 할 때에는 기존의 감성과 능력보다 더 섬세한 연기력을 요구받게 됩니다. 때문에 소리나 연기를 대할 때 더욱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이십대에 겪었던 대중적인 음악 활동이나 뮤지컬 참여 등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전통 안에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가 반갑습니다. 시대는 바뀌어 가고 있는데, 예술이 그 자리여야만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변화’는 어려운 일입니다. 정극의 연기를 한다는 건 음악을 위주로 활동해온 학생들이나 연주자들에게 굉장히 어려운 주문이거든요. (이소연이 “선생님들이 정극연기를 펼치고 있고, 연극계에서도 호평을 받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많은 과도기를 겪고 있지요. ‘전통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설은 오산입니다.
민은경은 1982년 서울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는 기질을 타고났다. 안애란·성우향 명창에게 강산제 소리를 사사한 그녀는 자신을 홀로 키운 아버지를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심청가’를 좋아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생각하고, 말하고, 마음먹는 대로 인생이 만들어진다는 뜻의 고어를 신조로 여긴다. 중앙대학교 국악대학과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최호성 소리꾼으로서, 배우로서의 색깔입니다. 창극을 하는 소리꾼들에게 색깔이란 ‘소리’를 의미합니다. (모두가 공감했다) 우리는 모두 판소리를 하지만, 누구도 동일할 수가 없는 다양한 소릿제들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성음을 구사합니다. 같은 대목을 불러도 시김새는 제각각입니다. 이럴 때는 합창할 때 ‘쥐약’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배우로서 굉장한 기질을 발휘합니다. 악기를 하는 친구들은 독주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우린 차라리 ‘혼자 노래해라’ 하면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그것이 판소리의 매력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생김 이러하여 ‘춘향가’에 이도령은 어울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최호성이 있더라’라고 하면 관객이 한 번 더 찾아오는 그런 존재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민은경이 말했다. “너도 이도령 할 수 있어.”) 아무리 훌륭한 소리꾼이라도 소리로 소통을 자아내지 못하면, 어디 산에나 들어가서 소리해야 합니다.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소리, 그리고 배우로서의 존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호성은 1987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무렵 당시 광주MBC에 교양 강의를 하러 온 고(故) 박동진 명창의 소리를 듣고 판소리를 처음 알게 됐으며, 부모님을 졸라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숙선·염경애·윤진철을 사사한 그는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과 성실의 자세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창극배우가 되겠다고 밝혔다. 최종의 목표는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예인이 되는 것.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 과정을 졸업했다.


배우로서 자신은 어떠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김준수 저는… 젊음이요. 같은 동기로 입단했지만, 여기 있는 형·누나들과 적게는 네 살, 많게는 아홉 살 터울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 창극단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직도 저를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것을 배워야하겠죠. 먼저 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들을 통해서는 ‘무대 예술에서 필요한 것은 끼’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 객원단원으로 참여한 ‘배비장전’에서의 배비장 역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직은 저와 성격이 맞지 않는 역할을 할 때 버겁기도 하지만, 또 알아가는 과정이 참 좋습니다. 이몽룡 역할이 저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허허.
김준수는 1991년 전남 강진 출생으로, 초등학생 경연대회에서 ‘도라지 타령’을 부르러 나갔다가 판소리를 하는 ‘어느 누나(?)’의 소리를 듣고, 판소리를 시작하게 됐다. 박방금·유미리에게 강산제 소리를 사사했으며, 처량한 신세를 노래하는 ‘흥부가’의 ‘가난타령’이 와 닿는다는 그는 요즘 혜민 스님의 글로 자신을 나무라는 중이라고 한다. 젊은 열정과 패기를 자랑하는 젊은 소리꾼 김준수는 현재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에 재학 중이다.

국립창극단의 신입단원 정은혜는 “창극은 판소리로부터 시청각적인 입체감이 부여됐고”, 이소연은 “연기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단면적으로 되었다”고 말했다. 민은경이 주창하는 “우리시대에 맞는 창극의 변화”와 더불어 이광복이 진중하게 느끼는 “접점에서의 책임감”, 든든한 최호성이 고민하고 있는 “소리로서의 무게감”, 끝으로 막내 김준수의 “형·누나의 의견에 공감한다”는 이들의 창극을 향한 논쟁. 같지만 너무도 다른 색깔의 배우들 덕분에 내일의 창극을 기대하게 된다. 배우들이여, 남은 숙제는 모두 그대들의 몫입니다.

글 정우정 기자(wjj@) 사진 심규태(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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