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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 레흐너 티엠포의 ‘탱고 랩소디’
못 말리는 피
글 하종욱(음악 칼럼니스트) 5/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5월호 - 전체 보기 )


반도네온이 빠진 탱고 연주를 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하다. 다소 과장을 보태자면 ‘팥소 없는 찐빵’을 먹는 기분이다. 이런 억측에 가까운 선입견을 주입시켜놓은 것도 아스트로 피아솔라였다. 피아솔라가 설립해놓은 뉴 탱고 퀸텟의 전형성을 피해간 다양한 스타일, 편성의 연주는 익숙함이 되었지만, 반도네온이 뿌리는 ‘탱고틱한’ 향기, 흥취는 탱고 사운드의 조미료가 아닌 주재료이기에 이것이 빠지면 괜히 허전하다. 특히나 이 음반은 두 대의 피아노로 앨범 전체를 메우고 있어 쉽게 경청의 마음이 허락되지 않았다. 멜로디ㆍ리듬ㆍ화성을 통째로 책임질 수 있는 작은 오케스트라 피아노이지만,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곡도 아닌 피아노 듀오의 쿵쾅거림을 한 시간 이상 버티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이 앨범을 읽기 전, 내 삐딱한 태도, 심정이었다. 내 오만과 편견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두 명의 피아니스트 카린 레흐너ㆍ세르히오 티엠포가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탱고 작품집 ‘탱고 랩소디’는 이런 허튼 선입견, 교만함을 가볍게 비웃어주는 음악이었다. 반도네온 없이도, 두 대의 피아노만으로도 탱고만이 담고 있는 오묘한 감정의 선을 능히 표현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놀라운 테크닉과 강렬한 에너지. 단단하게 묶인 호흡과 인터플레이, 치밀하게 설계된 편곡, 왜 피아솔라인가를 ‘역시’ ‘과연’으로 확인시켜주는 명곡의 또 다른 표정이 있어 이 음악을 통한 듣기, 읽기, 그리고 검색하기는 지난 한 달의 즐거움이었다.
탱고의 산지 아르헨티나 국적의 피아니스트 카린 레흐너, 그리고 세르히오 티엠포는 남매지간이다. 누나와 남동생. 이들의 음악 선생님은 어머니 릴 티엠포였다. 그들의 부모는 피아솔라 음악의 공식적 후계자 파블로 지글러와 두터운 음악적ㆍ인간적 교류를 쌓아왔으며, 할아버지는 피아솔라의 스승 알베르토 히나스테라와 절친한 친구였다. 남매는 이렇듯 아르헨티나 탱고의 본류를 가까이서 체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둘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듀오 앨범 작업을 가족 사진처럼 발표했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루가노 페스티벌을 통해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소개되었다. 특히 동생 세르히오 티엠포는 잦은 내한 공연으로 국내에도 팬층이 두텁다. 레흐너-티엠포는 벨기에의 레이블 아방티에서 2008년 탱고 작품집 ‘Tangologia’, 프랑스 클래식 작품들을 피아노 듀오로 갈무리한 ‘La Belle Epoque’를 발표한 바 있다.
피아노 듀오에 있어서는 구력 30여 년을 자랑하는 숙련공, 게다가 혈육의 끈으로 맺어진 풍부한 호흡, 게다가 ‘이 시대 최고의 직감을 지닌 피아니스트’와 같은 뜨거운 찬사, 수식을 달고 다녔던 테크니션, 솔리스트의 명성이 있기에 연주력에 대한 의심은 없다. 관건은 편곡이다. 시공 이전의 설계, 시공을 명령하는 설계이다. 이 열쇠를 쥐고 있는 두 명의 도우미 파블로 지글러와 페데리코 후시드의 존재는 참으로 든든하다. 지글러는 이매뉴얼 액스ㆍ크리스포터 오릴레이와의 피아노 듀오를 결성했던 ‘탱고-두 대의 피아노 영역’의 권위 있는 학자이다. 그는 두 남매의 성장을 지켜봤던 아저씨의 마음으로 자작곡의 피아노 듀오 편곡본을 선물하는 한편, 몸소 스승 피아솔라의 작품을 네 손을 위한 편곡으로 우아하고 뜨겁게 각색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클래식, 영화음악 작곡가 페데리코 후시드는 피아솔라의 ‘미켈란젤로 70’, 자신의 작곡 두 곡을 포함하여 세 곡의 편곡자로 참여했다. 18분여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곡 ‘두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탱고 랩소디’는 레흐너와 티엠포 남매를 위해 특별히 헌정된 공연본이다. 마지막 곡은 2010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던 영화 ‘엘 시크레토’의 타이틀 곡 ‘비밀의 눈동자’를 피아노 듀오 형식으로 재편했다. 세밀한 편곡에 의해 두 대의 피아노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거대하다. 스펙터클하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글리산도, 폭포처럼 쏟아지는 타건의 에너지는 리듬의 비중이 절대적인 탱고의 생명력, 역동의 맥박이다. 탱고가 지닌 정중동의 호흡을 직시하고 있는 질주와 정지, 고속과 저속의 완급 조절은 차라리 지성적·계산적이다. 능숙하고 능란하다. 악상의 연결, 하모니 감각 또한 견고한 짜임새가 있다.
누에보 탱고의 어제, 오늘의 영광을 상징했던 탱고 클래식으로 진열된 레흐너-티엠포 피아노 듀오의 탱고 열전은 낱낱의 연주를 논할 틈도 없이, 할 말이 많은 앨범이다. 동봉된 DVD에는 2010년ㆍ2011년 루가노 페스티벌에서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영상으로 옮겨놓았다. 이 앨범의 6~8번 트랙 ‘두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탱고 랩소디’의 실황이다. 유튜브에 남매의 이름 ‘Karin Lechner, Sergio Tiempo’를 검색하면 이들의 이중주 실황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이런 음악이라면 눈으로, 귀로, 심장으로 가까이에서 듣고 싶다.

글 하종욱(음악 칼럼니스트)


▲ 카린 레흐너ㆍ세르히오 티엠포(피아노)/야체크 카스프스지크(지휘)/오케스트라 델라 스비첼라 이탈리아나 Avanti Classic 5414 70610332 (DSD, 1 SACD Hybrid + 1 DV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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