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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윤
무엇이 보이는가 누구를 보았는가
글 빅용완 기자 5/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5월호 - 전체 보기 )




연민 가득한 성직자의 얼굴은, 거기서 눈을 조금만 치켜뜨고 검은 눈동자 가득 빛을 담으면 근엄한 군주의 그것으로 변한다. 얼굴을 측면으로 돌리며 옷깃을 여미자 계략을 품고 접근해오는 쇤 박사의 등장이다. 곧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다시 렌즈를 향하는 주인공은 상처 입은 왕 암포르타스. 이 모든 인물의 등퇴장이 그저 내 짐작이고 감상이겠지만, 네덜란드인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음은 확실했다. 7년 만에 한 번씩 뭍에 오른다는 전설의 유령선 선장이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낼 리 없다.
선과 악은 하나의 얼굴을 가졌다. 악인이 다가올 때, 그는 대개 천사 혹은 아이의 모습을 한다. 선의가 악의로 바뀌는 것도 순간이다. 길거리 소녀 룰루를 거둬 키운 쇤 박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룰루의 육체를 갈구한다. ‘룰루’의 쇤, ‘호프만의 이야기’ 미라클…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 연기해온 배역 중 상당수가 선이라는 인두겁 속에 악을 채운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 비하면, 쇤과 미라클은 비교적 연기하기 쉬운, 이해 가능한 인물이라고 사무엘 윤은 말한다. 알 수 없는 콤플렉스로 채워졌지만 그들은 적어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안식을 찾아 헤매는, ‘죽고 싶어 하는’ 영혼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글 박용완 기자(spirate@) 사진 박진호(studio BoB)

지난해 여름, 사무엘 윤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타이틀롤을 맡아 전 공연을 완주했다. 무대에 오르기로 예정됐던 예브게니 니키틴의 나치 문양 문신이 문제가 되어 첫 공연을 불과 사흘 앞두고 주역이 교체된 것이다. ‘바이로이트’라는 최고의 무대, 바이로이트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나치’의 망령. 두 거대한 이미지의 충돌. 그 자욱한 연기 속에 부상한 뜻밖의 이름 ‘사무엘 윤’은 낯선 만큼 강렬했다.
그러나 대화는 바이로이트가 아닌 쾰른에서부터 시작된다. 1999년부터 사무엘 윤이 정단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오페라극장이 위치한 도시. 그의 아내와 두 아이가 사는 도시. 일 년 11개월을 여행하는 그에게 ‘쾰른 오페라 정단원’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일종의 약속이고 등대다. 그리고 14년간 한 극장에서 일했다는 것은 이미 그곳의 한 부분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령’의 몇몇 가수들을 빼고, 1999년부터 쾰른 오페라극장을 지킨 가수는 사무엘 윤이 거의 유일하다. 극장장만 다섯을 거쳤다.
“제가 쾰른에서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극장은 하락세였어요. 과거 일급 극장이었나 싶을 정도로 많이 쇠락해 있었습니다. 베를린ㆍ뮌헨ㆍ함부르크ㆍ드레스덴, 네 극장이 독일에서 가장 명성이 높고 쾰른도 그 대열에 있었어요.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쾰른이 쏙 빠지고 그 자리를 슈투트가르트가 대신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다가, 다섯 번째 극장장 우베 라우펜베르크가 극장을 완전히 일으켜 세웠죠. 좋은 연출가와 캐스팅으로 다시금 명성을 얻기 시작하더니, 2012년에는 유럽 비평가들이 뽑은 최고의 오페라극장으로 선정됐습니다.”
홈팀의 급부상은 ‘바이로이트의 사무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바이로이트에 처음 초대된 2004년,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보면 쾰른 오페라 출신은 사무엘 윤 혼자이기 일쑤였다. 반면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온 연광철의 주변엔 베를린 동료들이 그득했다. 그러다 지난해 사무엘 윤이 네덜란드인을 부르고 쾰른 오페라는 유럽 최고의 극장으로 꼽힐 만큼 선전했으니, 바이로이트에서 체감한 홈팀의 위상은 남다르게 느껴졌으리라.
쾰른을 재건한 우베 라우펜베르크는 지난해 경질됐다. ‘너무 잘해서’ 경질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퀄리티 우선주의 노선을 걸으며 타협을 모르던 라우펜베르크가 어느덧 쾰른 문화계의 대명사가 되어버리자, 정치가들 혹은 정치가들을 잘 다루는 일부 예술가들이 그 존재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결국 쾰른 오페라극장의 예산을 쥔 시와 극장장 사이의 마찰은 극으로 치닫고, 라우펜베르크는 약속한 예산을 주지 않으면 다음 시즌 극장을 닫겠다는 강수를 날린다. ‘2012년 유럽 최고의 극장’은 ‘극장장과 시의 불화로 다음 시즌이 불투명’. 쾰른 오페라극장의 2012년은 낭보와 비보의 극단을 오갔다. 결국 정치가들은 경질의 수순을 밟았고, 이를 막기 위해 극장 소속 솔리스트와 합창단, 오케스트라는 반대 시위에 나섰다. 라우펜베르크가 최종 결정을 듣기 위해 시청을 찾았을 때, 쾰른 오페라 식구들은 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울며 노래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같은 상징적인 노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쾰른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라우펜베르크는 극장을 떠났다(그는 2015년부터 비스바덴 극장을 이끌 예정이다).
격동의 5월, 사무엘 윤은 또 다른 전투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바이로이트 이전에 쾰른에서 네덜란드인을 불렀다. 라우펜베르크가 이끈 쾰른 오페라 2011/2012 시즌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으로, 사무엘 윤의 네덜란드인 데뷔이기도 했다. 최고의 집중과 노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동료 대부분이 시위 현장에 가 있고 극장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사무엘 윤 자신도 가끔씩 시위에 동참했다. 다행히 그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독일 오페라의 원로 디트리히 힐스도르프가 연출한 쾰른 프로덕션은 성공리에 끝났고, 이 무대를 통해 사무엘 윤은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인 역에 데뷔한 사무엘 윤에게 바이로이트는 그해 자신들의 새 프로덕션에서 커버를 맡아달라 제안한다. 2010년 오른 ‘로엔그린’ 재공연으로 2012년에도 바이로이트행이 약속된 사무엘 윤은 기쁘게 커버를 수락한다.

바그너 가의 비밀
바이로이트는 매년 파격과 논쟁을 불러온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파격이 언제나 설득력을 지닌다는 점이다. 바이로이트는 어떻게 우리를 현혹하고 결국엔 설득하는가. 그 속에 깊게 들어가본 이는 그 비결을 알고 있을까.
“2004년 처음 갔을 때도 파격적이었지만, 과거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있었죠. 예를 들어, 연습에서 공연까지의 약 두 달 일정 가운데, 중요한 일이 있어서 반나절 정도는 연습을 빠지는 게 아예 불가능했어요. 심지어 도밍고조차 일정 중 다른 나라에서 연주가 있으니 연습을 빼줄 수 있겠냐 물었다가, ‘그럼 그냥 오지마’라는 답변을 받았으니까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죠. 볼프강 바그너의 두 번째 부인 구트룬이 세상을 뜨고, 볼프강 바그너도 세상을 뜨고, 캐스팅 권한을 갖고 있던 볼프강의 비서 도로테아마저 세상을 뜨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다가, 파스키에와 카타리나 자매가 총감독을 맡은 후 많은 것이 변했죠. 융통성이란 게 생겨났어요. 일례로 요나스 카우프만은 ‘로엔그린’의 한 달 반 연습 중 3주차부터 참여했어요.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주역 커버였던 자신이 프리미어는 물론 전 공연을 완주한 사건 또한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사무엘 윤은 말한다. 지난해 틸레만이 지휘한 ‘반지’에서 지크프리트를 노래한 스티븐 굴드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을 불렀던 가수다. 뮤지컬을 20년간 해왔지만 오페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틸레만이 좋다고 해서 덜컥 지크프리트를 맡게 된 경우. 지난해의 가장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사무엘 윤은 그 자신과 스티븐 굴드를 꼽았다.
“과거의 바이로이트는 예정된 파격을 쏟아낼지언정, 급작스러운 위험부담을 안지 않았어요.” 그럼 10년 전에 ‘나치 문신’ 사건이 일어났다면, 바이로이트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연세가 있는 ‘올드 마스터’를 모셔왔겠죠. 저 같은 사람을 기용하진 않았을 겁니다.”
호사가들이 혹할 만한, 21세기 바이로이트 역사 중 가장 ‘황당한’ 사건을 꼽으라면 2004년 ‘파르지팔’을 연출한 크리스토프 슐링겐지프의 기행일 것이다. 바그너의 초상화를 새긴 경주자동차로 여러 도시에서 바그너 랠리를 개최하며 성지 입성을 알린 슐링겐지프. 그렇게 시끌벅적 들어선 극장에서 연습이 시작되었는데, 총감독 볼프강 바그너가 이런저런 간섭을 하자 연출가는 온몸을 시퍼렇게 칠하고 팬티 바람에 리허설을 진행한다. 결국 스스로 뒷목 잡고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나가는 촌극까지 빚는다. 사무엘 윤은 그 ‘파르지팔’에서 제2성배기사를 맡았다.
“슐링겐지프가 욕을 참 많이 먹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아무도 할 수 없는 ‘파르지팔’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프로덕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970년대에 두 명의 프랑스인, 피에르 불레즈와 파트리스 셰로가 ‘반지’를 올렸을 때도 이건 바그너가 아니다, 프랑스로 돌아가라, 소란이 있었죠. 그 ‘반지’는 전설이 됐습니다. 바이로이트는 늘 기억에 남는 발자취를 남기고 있어요. 전통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가장 진취적인 연출을 제시하죠. 저를 캐스팅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요건 몰랐지? 좀 놀랐지?’, 이런 식이죠. 연광철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에서 지금 몇 시인지 알려주는 종을 연기하다가 ‘탄호이저’의 란트그라프로 확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강병운ㆍ연광철 선생님의 지난 행적을 제가 똑같이 밟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이죠.”
바이로이트는 모험을 멈추지 않는다. 모험하고, 그 모험에 실패하지 않는다. 사무엘 윤은 올여름에 ‘로엔그린’은 물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무대에 오른다. 그가 다시 네덜란드인을 노래하게 된 것은 지난해 사건보다 어쩌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첫째, 사무엘 윤의 파격적인 발탁은 행운이 아닌 실력의 결과였다. 둘째, 바이로이트는 사무엘 윤을 올해 다시금 네덜란드인으로 기용하며 특유의 모험이 여지없이 성공했음을 입증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바이로이트의 힘은 무엇인가.
“바그너 가족이 갖고 있는 비밀이에요. 볼프강 바그너가 연출을 하긴 했지만, 오직 연출가가 되기 위해 전문적으로 배워서 한 건 아니죠. 카타리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느 연출가들의 성장과는 다른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베를린ㆍ뮌헨ㆍ드레스덴도 앞서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선구자적 역할은 꼭 바이로이트가 해왔습니다. 그 비결이 뭔지 설명을 못 하겠어요. 바그너의 피, 그들이 갖고 있는 확신, 틸레만이 갖고 있는 확신이겠죠”


틸레만의 엄지
“마에스트로 틸레만께서 사무엘 윤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네덜란드인’ 첫 공연을 사흘 앞두고 펼쳐진 최종 리허설 직후, 사무엘 윤이 받은 질문이다. 그저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쫙 끼칠 정도다. 사무엘 윤이 전하는 그날 하루는 라디오 정치실록을 듣는 듯 흥미진진하다. 듣는 내내 “어머, 어머”의 연발이다.
- 그날도 ‘로엔그린’ 연습이 있었어요. 연습 후 숙소로 돌아와 네 시간 정도 잤을까. 아침 일찍 전화가 왔어요. “사무엘 , 어디야?” “자고 있어.”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죠. 그러고는 11시 반쯤 다시 전화가 왔어요. “올라와.” “왜?” “일단 빨리 와.” 갔더니 뭔 얘기도 없이 갑자기 분장을 시키고 의상 맞추고…. “내가 네덜란드인 하는 거야?” “99퍼센트.” “하는 거야?” “아직 몰라.” “그래서 뭐 어떻게 하는 거야? 나 악보 보는 거야?” “너 무대에서 노래할 거야.” 그게 오후 2시. 최종 리허설이 6시였는데 말이죠. 고민이고 뭐고 할 수가 없었어요.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는데,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너무 배가 고파서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어요. “밥 좀 먹으면 안 돼?” 그러자 요만한 뉘른베르크 소시지 다섯 개를 주더군요. 그거 먹고, 6시 최종 리허설이 시작됐죠. 가수에게는 최종 리허설이 개막 공연보다 더 어렵습니다. 개막에는 유명인사들이 오고, 최종 리허설에는 스칼라ㆍ메트ㆍ코벤트 가든 극장장들이 다 와요. 그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거예요. 가수들에겐 더 힘들고, 더 중요한 무대죠. 바이로이트에서 잘한 가수들이 세계 극장에서 활약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예요. 이 자리에서 증명 받거든요. 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
연출 동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바이로이트는 ‘제1캐스팅 가수들의 안정’을 이유로 연기 연습에 커버 가수를 참여시키지 않는다) 사무엘 윤의 노래를 들은 틸레만은 최종 리허설 후 중대하고도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틸레만은 2002년 도이치 오퍼 오디션에서 사무엘 윤의 노래를 듣고 바이로이트에 그를 추천했다. 즉 ‘바이로이트로 사무엘 윤을 보낸 사람’이 틸레만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틸레만과 사무엘 윤은 사적으로 밥 한 번 먹은 적 없고, 살가운 인사를 주고 받은 적도 없었다. 지금까지 사무엘 윤은 틸레만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잊고 있다고 여겨왔다.
과거 카라얀만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틸레만. 영향력만큼이나 엄격하기로 유명한 그가 ‘틸레만 강박’에 시달리는 무대 위 가수들에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보내는 유일한 희망이 있는데, 살며시 들어 올리는 엄지손가락이다.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그 엄지를 받는 게 쉽진 않다. 그런데 이 최종 리허설에서 틸레만은 사무엘 윤에게 스무 번도 넘게 엄지를 보냈다. 실제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틸레만이 보낸 응원의 메시지였다. 메르켈 총리가 참석했던 첫 공연, 그 뒤풀이 자리에서 사무엘 윤은 틸레만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 나 기억하긴 해?” 틸레만이 답한다. “왜 몰라. 내가 널 여기 보냈는데.”

음역이 아니라 배역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을 누군가는 헬덴(영웅) 바리톤이라 부른다. 사무엘 윤 자신은 어떻게 불리든 개의치 않는다. 가수에게는 배역이 중요하지, 음역에 따른 분류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수의 입장이 되어보면 정말 그렇다. 내가 어떤 배역을 부를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사람들이 나를 베이스라 부르든 바리톤이라 부르든 무슨 상관인가.
“음역보다 중요한 것은 색깔입니다. 배역에 맞는 음역을 갖고 있다 해도 겨우 두세 가지 색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음역이 조금 맞지 않지만 백 가지 색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없어요. 특히 보탄ㆍ네덜란드인 같은 배역은 음역 폭이 정말 넓죠. 신 혹은 초인적 존재이니 작곡가들도 인간과는 다르게 그려내야 했겠죠. 그렇게 넓은 음역을 넘나들면서, 광대한 편성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해야 합니다. 트럼펫과 호른이 빵빵 터지는 전쟁 같은 상황에 100명 오케스트라를 앞에 두고 노래하는데, 성대만 가지고는 절대 되지 않습니다. 캐릭터, 즉 색깔로 소화해내야죠.”
1998년 트레비소 콩쿠르에서 만난 한 심사위원은 사무엘 윤에게 “너는 바그너를 부를 팔자야”라고 말했다. 그게 대체 뭔 팔자인가. 이제껏 ‘음역이 아니라 배역을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이 중요하다’고 말한 사무엘 윤은 뜻밖에도 그 팔자가 “음역”이라 답했다. 폭넓은 음역을 가졌기에 바그너 부를 팔자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타고난 음역, 여기에 복잡다단하다 못해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배역에 대한 이해, 그 이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백 가지 색깔. 그러고 보면 ‘바그너 가수’가 되기란 팔자를 타고나는 것, 그 이상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한 우리의 ‘바그너 가수’들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쥐가 득실대는 한스 노이엔펠스 연출 ‘로엔그린’, 냉혹한 자본주의를 그린 얀 필리프 글로거 연출 ‘네덜란드인’ 무대에서 ‘동양인 가수’ 사무엘 윤은 시각적으로 그 어떤 요철 없이 전체와 어우러졌다. 유럽 민화 속의 주인공이었던 유령선 선장 네덜란드인은 반 은행가ㆍ반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하고 21세기 바이로이트에 나타난다. 말쑥한 양복에 바퀴 달린 신상 리모와 가방을 끌고 다니는 그는 서울ㆍ도쿄ㆍ뉴욕ㆍ런던ㆍ베를린 등 대도시 공항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동양인 사업가의 모습이다. 만약 그 사업가가 ‘네덜란드인’이라면, 그저 국적이 네덜란드일 것이다.
우리 가수들이 최근 유럽의 주류 무대에서 노래는 물론 시각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유로, 나는 현대적 연출이 가져온 ‘범세계적 배경’을 꼽곤 했다. 오페라의 성에 사는 왕자ㆍ공주는 더 이상 ‘어깨 뽕 소매’에 팔을 끼지 않는다. 연출가가 극도의 동시대적 사실주의를 추구하여 공주에게 보란 듯 샤넬 블랙 미니 드레스‘까지’ 입히지 않더라도, 20ㆍ21세기의 ‘범세계’에서 나고 자란 연출가 혹은 무대 미술가가 그려낸 환상에서 범세계라는 동시대성이 깡그리 배제될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서양의 무대 위 동양인 가수가 전처럼 붕 떠보이지 않는다’라는 의견에 동의하는지 묻자, 사무엘 윤은 조금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선배들이 잘해주셨죠. 자신만의 캐릭터로 연출 콘셉트를 바꿔온 겁니다. ‘로엔그린’을 연출한 노이엔펠스의 경우도 그래요. ‘난 이런 헤랄트를 그리고 싶어’라며 그가 처음 보여준 이미지는 실제 무대 위에서 제가 연기한 것과 달랐어요. 그 이미지 속의 인물은 철학자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어요. 쇼펜하우어 머리처럼, 패셔너블하지 않고 그저 제멋대로인 모양이었죠. 저를 만난 후에야 연출가는 (위로 바짝 선) 스타일을 고안해냈습니다. 올여름 바이로이트에서 ‘네덜란드인’과 ‘로엔그린’을 둘 다 부르기로 했는데, 그 헤랄트는 제 캐릭터니까 누가 와서 자리를 메우기가 어려워요. 나는 강병운이다, 나는 연광철이다…. 가수들이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이 연출 콘셉트와 만나 전에 없는 캐릭터로 재탄생해온 겁니다.”

인생의 우선순위
지난해 3월, 사무엘 윤은 클라우스 구트 연출 ‘그림자 없는 여인’의 카이코바트 역으로 라 스칼라 무대에 데뷔했다. 베르디 음악원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성악적 바탕을 완성한 사무엘 윤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그곳에 살았다. 12년 만에 돌아온 밀라노, 세계 3대 극장 중 하나인 라 스칼라 데뷔. 고대했던 무대였고, 공연을 마친 후 보람은 남달랐다. 그런데 기쁨과 함께 과거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왜 이 도시를 떠나야 했는지, 사랑하는 이탈리아어를 두고 독일로 가야만 했는지.
“에이전시가 제게 했던 지켜지지 않은 약속, 허풍과 과장, 여긴 오페라 가수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깨닫고 결심하며 떠났던 기억…. 살면서 잊었던 기억들이 두 달간 라 스칼라 무대를 준비하며 다시 나와버렸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계는 현재 심각한 하락세에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을 한 달 앞두고 공연 자체가 취소되는가 하면, 출연료 문제도 빈번하다. 오늘날 이탈리아는 문화에 대한 재정 감축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는 유럽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사무엘 윤이 참여하기로 예정됐던 이탈리아의 오페라 프로덕션 가운데 네 개가 취소됐다.
“3년 전 피렌체에서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그림자 없는 여인’ 공연에 참여했어요. 총 4회 공연이었는데, 1회를 올리고 단원들이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다며, 파업을 결정합니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다는 뜻이었죠. 저는 처음 겪는 일이라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나머지 세 공연 중 하나를 메타가 살려냅니다. 단원들을 설득한 거죠. 음악적 역량을 한 번만 보여주기엔 너무 아깝지 않느냐면서요. 결국 단원들이 두 번째 공연을 합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메타에게 마이크가 와요. 메타는 10분간 연설을 하죠. 여기 피렌체는 오페라가 태어난 곳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즐기고 있는 이 오페라를 연주하는 단원들이 어떠한 힘겨움을 겪고 있는지 아는가. 그러자 관객들이 웅성웅성거립니다. 당신들은 그저 즐기지만, 우리는 전쟁처럼 오페라를 한다. 그게 피렌체다. 그냥 즐기지 말고,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고 즐겨라. 그러고는 오페라가 시작됐어요. 단원들이 울면서 연주를 하더군요.”
이처럼, 유구한 역사의 문화 도시에도 흥망성쇠가 있을진대, 우리 인간 하나하나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성공과 좌절과 환희와 눈물이 있으랴. 사람들이 오늘도 사무엘 윤에게 묻는다. 라 스칼라와 바이로이트에 섰는데 메트로폴리탄은 언제 서죠? 코벤트 가든은요?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마도 마흔을 기점으로, 인생의 우선순위는 달라졌다. 나를 위한 우선순위가 아닌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우선순위. 변화의 배경은 신앙적인 것이다.
“스칼라에 서고 싶다, 메트에 서고 싶다… 누구나 꿀 수 있는 꿈이고 저도 한때 그런 꿈을 꿨어요. 사실 바이로이트에서 타이틀롤을 부른 건, 다 했단 얘기죠. 뭘 더 욕심 내요. 그래도 이런 질문을 받아요. 보탄도 해야죠, 언제 해요? 인간 욕심은 끝이 없는데, 그게 꿈이 되면, 제가 그걸 꿈이라고 쓰고 말하면 음악을 공부하는 후배들도 그런 꿈을 꾸게 됩니다. 언젠가 거기 이르겠죠. 그럼 이젠 뭘 해야 하나 싶어집니다. 계속 올라가야 해요. 의미가 없어요. 음악가로서의 꿈이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남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그 위치에 계신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무엘 윤은 자신이 베를린ㆍ파리ㆍ밀라노ㆍ바이로이트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세계 각지를 찾을 때에는 ‘무대’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방문할 도시가 정해지면 그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연락해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다 불러라’ 전한다. 도시에 도착하면, 수십 명의 음악학도들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매번 실패를 맛보는, 어려서부터 늘 잘해왔지만 막상 큰 어려움이 닥치자 맞서 싸울 힘이 없는… 여러 아픔의 유학생들이 모여 그를 기다린다. 사무엘 윤은 그들의 노래를 들어주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주고, 무엇보다 그 아픔과 희망, 꿈을 들어준다. 심지어 오페라극장 분장실에까지 학생들이 찾아와 노래를 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단다. “괜찮으시겠어요? 이 얘기가 기사화되면, 가는 도시마다 이제 수십이 아닌 수백의 학생들이 찾아올지도 몰라요.” 이 말에 사무엘 윤은 난색도 화색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표정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느꼈는가. 누구를 보았는가.


▲ 사무엘 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 오스월드 체임버스가 쓴 ‘주님은 나의 최고봉’, 그리고 십자가. 첫 오페라 무대였던 1997년 만초니 극장 ‘세비야의 이발사’ 안내지. 여기엔 사무엘 윤이 아닌 윤태현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옆은 사무엘 윤의 이름을 널린 알린 바이로이트 ‘로엔그린’의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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