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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액스의 베토벤·하이든·슈만 변주곡집
타협과 화합의 변주
글 김주영(피아니스트·서울예술종합학교 교수) 6/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6월호 - 전체 보기 )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의 음악은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특질을 지닌다. 음악가로서의 안팎이 모두 ‘빠른’ 첼리스트 요요 마와 절친이라는 점도 이색적이지만, 액스의 기질은 원만하고 푸근함, 따뜻한 정서 등으로 대표된다. 굳이 낙천적이라는 평을 달지 않아도 그의 해석은 어느 곡이든 여유롭고 풍성한 양감이 흘러넘치는 음향으로 채워진다. 인간적으로도 상당히 호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쯤 되면 작곡가의 의도를 우선적으로 생각해 어느 곡이든 모범답안을 내놓는 스타일로 오해하기 쉽지만, 액스의 해석이 보이는 프로세스는 그리 간단치 않다. 날카롭게 핵심을 찌르거나 모난 부분이 드러나지 않아 자기주장이 없는 듯하지만, 액스가 지닌 포용력은 어떤 곡이든 자신의 ‘둥글둥글한’ 논리로 포장해내는 비법을 지녔다. 문제는 연주자가 지닌 음악성의 본질이 워낙 유연하고 누구에게든 호감을 주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작곡가의 의도와 연주자의 기질적 요소를 구분해내기 어렵다는 점인데, 대가들의 풍모가 그러하듯 액스의 해석은 자신의 필터를 온전히 걸러낸 상태의 연주를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작곡가의 속마음이 보이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요컨대 작곡가의 영감에 대한 온전한 파악도, 전달자(피아니스트)의 스타일에 대한 청중의 이해도 오래 걸리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음악가가 액스라고 하겠다.
오랜만에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진 그의 신보 역시 작품에 대한 농익은 경험과 깊은 이해가 돋보인다. 타이틀곡이라 할 베토벤의 ‘에로이카 변주곡’ Op.35는 작곡가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연상시키는 폭넓은 음향감각과 정확하고 깔끔한 타건이 동시에 두드러지는 호연이다. 기분으로 프레이즈를 몰아가거나 다이내믹 레인지의 양쪽 한계점을 추구했다면 더욱 피아니스틱한 연주가 될 수 있었겠으나, 액스의 자세는 화려함보다는 견실함을 추구하며 자신의 음악적 흥취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풀어내며 작품이 지닌 스케일을 자연스레 확대시키고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애호가들과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이든의 변주곡 f단조의 연주는 앨범 전체에서 액스의 자의적 접근이 가장 두드러진다. 바꿔 말하자면 작품의 고전파적 특성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피아니스트 자신의 서술방법(예를 들어 쇼팽적인 서정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놓고 있는 식인데, 결과적으로 피상적인 표현에 그친 감이 있어 아쉬움을 준다. 오히려 좀더 무덤덤한 자세로 일관했더라면 더 강한 뉘앙스가 배어나왔을 가능성도 생각하게 하는 연주이다. 끈적이지 않는 루바토와 깔금한 아르페지오, 단단하고 균형 잡힌 화성감각이 과도하지 않은 비극성을 그려내는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Op.13은, 과거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액스의 타건과 음상 때문에 지나친 정감으로 마무리됐던 로맨틱 레퍼토리의 이상적인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절제된 페달링과 안정감 있는 기교가 적절히 발휘된 연습곡들과 좀더 환상곡적인 상상력을 보여주는 변주곡들의 구분도 훌륭히 이루어지며, 열띤 흥분이 겹쳐지는 피날레의 변주 역시 우아함과 여유가 넘친다. 언제 어디서든 원만하고 편안한 타협과 화합이 이루어지는 작곡가와 연주자의 만남이 지금껏 그랫듯 액스의 신보에서도 계속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서울예술종합학교 교수)

▲ 이매뉴얼 액스(피아노) Sony 88765420862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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