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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죽을 수 없는 춤, 춤의 아우라
글 정우정 기자 6/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6월호 - 전체 보기 )


역할의 연기력을 떠나 ‘춤의 아우라’를 만난 적이 있는가. 보는 이의 숨을 죽이는 춤에 대해 생각한 것은 2007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작품에서 ‘니키야의 죽음’을 연기한 김지영을 본 후다. 동시대 무용수들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 사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 감정의 지점을 찾아내는 현명한 무용수. 우리는 다행히도 ‘김지영’을 목격하고 있다.

먼저 밝힌다. 그의 뇌리에는 ‘움직임’밖에 없다
“주역을 하면 예민해진다. 실수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변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 클래식 발레는 완벽함을 추구한다. 동작을 향한 무수한 집착.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하다. 못 봐줄 정도다. 우리끼리는 서로 이해한다.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것이 예민한 우리가 예민하게 변해가는 과정이다.”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이 말했다.

자신의 모습이다, 인정하며 사는 건가.
그러려니.
춤과 성격은 함께 성장했을까.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다. 보통 몸이 약한 아이들은 신경이 과도하게 예민하다. 어려서부터 춤을 춰왔기 때문에 춤과 생활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춤을 추기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춤을 추기 때문에 괴로울 때가 더 많다. 그것이 아마 춤과 성격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춤이 내 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언제인가.
발레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 것 같다. 열 살 즈음. 그때는 지금보다 진지하게 춤에 다가갔다. 그 후로는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이 없었고, 유학도 스스로 간절하게 원해서 떠났다.
예원학교를 다니다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학교로 갔다. 1990년대 중반은 당시 발레로 유학을 많이 가는 풍토는 아니지 않았나.
당시는 예원·예고·이대가 엘리트 코스였는데, 나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유학을 간다 해도 볼쇼이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바가노바 발레 학교에서 더 깊은 전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바가노바 발레 학교는 1738년에 세워졌다_편집자 주). 남들과 똑같은 길은 싫었다. ‘난 좀 다르니까’라고 생각했나… 하하.
그 과정 중에 춤의 본질을 생각했나.
오히려 지금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 배우는 과정 중에는 단순하게 테크닉의 해결에 몰입할 뿐,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 좋아하니까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하니까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이런 것들?
1996년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이듬해 국립발레단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했다.
그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정신적 안정이 필요한 시기였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운명론자도 아닌데 한국인으로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비슷한 생김새의 무용수들이 모여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의 조합이 맞다는 생각도 자연스러웠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평단원으로 입단해 수석무용수로 승급하기까지도 쉽지 않았을 텐데.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해서 얻은 가장 큰 변화는 음악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부터도 음악을 좋아하고, 나름 몸에 음악성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스 판 마넌의 작품을 한 이후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당신의 춤에 영향을 준 사람이 궁금해진다.
영향을 받은 사람이 누구라고 꼽을 수는 없다. 내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발레 시작할 때에도 내가 좋아서 시작했지 강압적으로 누군가 나에게 시킨 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둔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지언정 나 자신에 대한 책임 때문에라도 그만둘 수 없다. 나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어쩌면 내가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춤추게 한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나’ 때문에 춤을 추는 것이다. 대의란 없다.
춤에 대한 고민은 어떤 식으로 하나.
춤에 대한 고민은 일상이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이 테크닉, 동작, 무용실에서의 나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의 삶이 녹아나는 춤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정신 상태나 삶의 자세가 무대와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절감한다.
발레와 컨템퍼러리를 넘나드는 무용수로 손꼽힌다. 몸은 어떤 춤을 출 때가 편한가.
안 출 때가 편한가? 하하. 요즘은 과도기인 것 같기도 하다. 모던도 재미있고. 지금은 왔다 갔다 한다.
소재나 대상의 범주를 확장한 컨템퍼러리에서는 어떠한가.
보다 자유롭다. 자기 것을 꺼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발레를 해오던 사람들은 어떠한 틀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나도 처음 시작할 때는 힘들었다.
좋아하는 안무가는.
조지 발란신도 좋고, 포사이스 좋아한다. 포사이스는 천재적인 안무가다. 킬리안이나 영국의 폴 라이트풋, 기회가 된다면 그들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
지난달 윌리엄 포사이스가 내한했다. 그 무대를 어떻게 봤나.
‘역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발레를 하는 포사이스와 이번에 온 포사이스는 참 달랐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니 재미가 없었다. 전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작품을 이해하게 된다. 이번 무대 역시 ‘아, 저래서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었나.
이르지 킬리안이나 포사이스는 현세대 안무가들에게 굉장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식의 연출은 다른 안무가들도 비슷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을 집중시키는 그만의 연출력을 흉내 낼 수는 없다. 자신의 전부를 걸고 하는 안무의 정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머리가 영악해서 계산적인 수법의 안무가 아닌, 진실이 느껴진다. 포사이스는 똑똑하고 진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예술가라는 생각을 한다.
작품을 만드는 데 정석은 없지 않나.
어떤 안무가의 작품이든 ‘얕고, 약은 느낌’이 없어야 한다. 그 사람 자체가 느껴져야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용수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나.
당연. 지금의 포사이스는 발레를 하는 무용수가 하기에는 힘들 것 같다. 나는 절대 할 수가 없다.
안무가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겪은 것과 경험이 토양이 되어 표출되기 때문이다. 무용수 역시 마찬가지인가.
물론이다. 클래식 발레 같은 경우는 몸의 퇴화가 오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용수들은 개인적인 노력을 하며 노화로 가는 시간을 벌고자 한다. 얼마나 잔인한 영역인가.
관록의 연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깊어지는 것. 때문에 할 수 있는 작품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나도 마흔이 넘어서까지 지젤을 연기하고 싶지는 않다. 관객도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에도 많은 레퍼토리가 생겨나야 한다.
그렇다. 한국 발레도 조금씩 많은 작품들을 보유해가고 있는 중이다. 유니버설발레단도 국립발레단도 그러한 작업을 늘려가고 있는 것 같다. 창작발레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창작발레 역시 한국 안무가에 의한 것은 드물다. 한국에는 왜 발레 안무가가 많이 생겨나지 않는 걸까.
아직 한국 발레의 역사는 짧다. 국립발레단도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외국은 몇 백 년의 역사 속에서 한두 명의 걸출한 안무가들을 키워내는 것을 성과로 본다. 우리는 당연하다. 기다리다보면 기대하는 결과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춤을 출 생각인가.
나는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둘 수 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의 무대를 간절하게 사랑하는 것으로 읽히는데.
맞다. 나는 춤을 추면서 ‘힐링’을 하는 느낌이다. 춤을 출 때마다 쏟아내기 때문일까. 다음을 향한 아쉬움은 없는 것 같다.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다. 지금은 무대가 좋다.
어떤 작품을 좋아하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확하게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나는 세 가지 버전의 작품을 했지만 다 좋다. 모던이든 클래식이든. 그것은 어쩌면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음악도 좋고.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
무용수라면 음악성은 타고나거나 노력하거나 혹은 음악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음악에 중점을 두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 그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특히 파트너와 듀엣을 출 때 같은 음악성이 아니면 춤을 추기가 아주 힘들다. 녹음된 음악(MR)일 경우는 덜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실제 연주에 공연을 할 때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때문에 같이 음악을 들어야 한다. 듣는 것이 다르면 답이 없다.
가장 잘 맞았던 파트너를 들자면.
외국 파트너들이 잘 맞는 것 같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터마시 너지, 당시 모로코 발레에 스페인 무용수인 이고르 예브라,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함께 췄던 스페인 무용수 아시에르는 정말로 함께 음악을 들었다. 그것은 곧 같이 호흡을 한다는 의미이므로 춤을 출 때 황홀하다. 우리나라 남자 무용수 이원국과 김용걸 씨와 호흡을 맞추었던 경험들도 나를 키웠던 작업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춤은, 발레는 도제식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진다.
맞다. 때문에 파트너가 정말 중요하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면 개인 역시 눈에 띄게 성장한다.
안무가 한스 판 마넌의 작품을 통해 음악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변화인가.
음악에 따라 춤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리듬이다. 리듬은 곧 춤이다. 리듬이 달라지면 몸이 달라진다. 또한 리듬을 탈 줄 안다는 것은 곧 호흡이다. 호흡을 잘 쓰는 것이 바로 춤이다. 그것이 추는 자신도 편해지고, 보는 이도 밋밋한 동작에서 재미나 감동을 부여하게 되는 촉매가 된다.
‘간판 무용수’ ‘스타 발레리나’ 등의 표식이 당신에게 늘 붙는다. 당신을 향한 관객의 기대나 반응에 민감한 편인가.
분위기가 좋으면 좋다. 관객의 반응은 물론 나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내가 만족스럽지 못한 연기를 펼친 후에도 관객의 반응이 좋을 때, 그때 역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들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된다. 나도 좋고, 관객도 좋아하는 공연. 그것만큼 좋은 공연은 없다.
차이콥스키가 ‘비창 교향곡’을 발표한 후 9일 만에 죽었다. 관객의 반응이 싸늘했던 그날, 차이콥스키가 무대의 포디움에서 내려오며 한 말, 혹시 알고 있나.
아니. 궁금하다.
“나는 이제 끝이구나.”
(한참을 말이 없다) 맞다. 관객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 우리 모두의 교감 안에 예술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춤을 통해 느끼는 것이 있다면.
각자의 개성과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잘 추는 춤, 못 추는 춤을 평가했다. 물론 그 시각과 기준은 여전히 있다. 다만 이제는 가능성에 더욱 주목한다. 이것은 국립 발레 학교 교장을 맡게 되면서도 더욱 느끼게 된 부분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김지영은 다가오는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2013 한팩 솔로이스트’ 무대에서 현대무용가 김보람의 작품 ‘혼돈’을,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국립발레단이 준비하고 있는 ‘차이콥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에서 차이콥스키의 부인 밀류코바 역을 맡았다. ‘라 바야데르’의 니키야에서처럼 그녀는 밀류코바 역시 몸으로 그려낼 아우라를 가볍게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음악을 그린 대작가 차이콥스키의 인생 역적으로 기록되고 있는 비운의 여인 밀류코바를 통해 우리는 또 김지영의 춤을 볼 수 있다.


글 정우정 기자(wjj@)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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