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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관찰기
이 청년을 위해 변죽을 울리겠소
글 빅용완 기자 7/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7월호 - 전체 보기 )




인터뷰와 촬영은 지난 3월 14일 진행됐다. 조성진은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뮌헨 필과의 내한 공연을 한 달 앞두고 짧게 한국을 찾았다. 우리는 목요일에 만났고, 이번 방문 중의 마지막 인터뷰라 했다. 며칠 사이 조성진은 나를 포함한 대략 17개 매체의 기자를 만났다. 월요일엔 무려 아홉 개 인터뷰가 있었다고. 동석한 기획사 직원이자 전 ‘객석’ 기자에게 “말이 돼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많은 곳에서 만나고 싶어 할지 나도 몰랐어요.” 그가 높은 목소리로 재빠르게 답했다. 이런 대화가 오갈 때 조성진은, 우리 나이로 딱 스물이 된 소년도 청년도 아닌 피아니스트는 마치 먼 나라 이야기를 듣는 듯 제 앞에 놓인 컵에 조용히 입을 갖다 댈 뿐이다. 보이지 않게 귀를 쫑긋했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가능한 겹치지 않는 질문을 뽑으려고, 요 며칠 사이에 났던 인터뷰를 다 읽고 왔어요. 라두 루푸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성진 씨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중 좋아하는 사람으로 라두 루푸를 꼽아요. 그가 왜 좋죠?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보통 피아니스들과 다른 면이 있어요. 물론 프레이징이나 음악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실제 공연을 몇 번 봤는데 분위기가 정말 달랐어요. 제가 알기로 살 플레옐에 피아노가 두 대예요. 하나는 옛날 것, 하나는 새 것. (조성진이 본 살 플레옐 공연 중) 폴리니는 자기 피아노로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그 두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라두 루푸는 그중 오래된 피아노를 택했어요. 하늘에서 신이 치고 있는 듯했어요. 정말 이렇게밖에 말 못 해요. 어떤 피아노를 쳐도 그 사람은 똑같은 소리를 낼 것 같았어요. 보이스 능력이 뛰어나고, 단순하면서도 특별하죠. 저는 그걸 높게 평가해요. 저도 그런 음악을 추구하고요. 단순하지만 특별하다. 정말 어려운 거잖아요. 그걸 자연스럽게 해내니까, 좋아요.
형언할 수 없는 흡입력이 있죠. 그걸 ‘타고났다’라고 설명하기엔 부족하지 않을까요?
근데 뭐라 더 말할 수 없는 게, 저는 남을 평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좋은 얘기는 많이 할 수 있지만, 파고드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이미 몇몇 매체에 공개된 얘기지만, 루푸에게 레슨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인터뷰 당시 협연을 앞두고 있었던) 베토벤 협주곡 4번에 대해 들은 조언이 있나요? 다른 곡도 레슨 받았나요?
그 곡만 받았어요.
어떤 얘기가 오갔나요?
그건 평생의 비밀이에요. (이 글에 쓰지 않지만, 조성진은 앞서 루푸와의 인연을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 사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겁나요. 루푸가 알면 좋아할까? 이런 얘기들이 루푸 중심으로 나오는 것을? 물론 흥미로운 얘기지만, 모두에게 얘기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레슨 내용은 비밀이라고 하니까 물어보지 않을게요. 이런 추측은 했어요. 베토벤 협주곡 4번 같은 대곡이 적막 속에 피아노 솔로로 시작되는데, 이에 관해 물어봤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조언을 해주지 않았을까.
4번은 정말 어려운 곡이죠. 시작도 특이하고. 하지만 부담을 갖고 시작하면 더 못할 것 같아요. 그냥 ‘시작하는구나, 시작해야지’, 이렇게 해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청자 입장에선 피아니스트가 어떤 식으로 그 첫 음을 칠까, 그때 어떤 기분일까, 여러 생각을 해요. 듣는 이에게 환상을 갖게 하는 특별한 도입부랄까요.
제가 무의식 중에 루푸가 한 얘기를 전할 수도 있는데, 저는 큰 부담을 갖고 시작하는 편은 아니고 그냥 ‘인식 정도’만 해요. 이건 굉장한 곡이고, 피아노가 시작을 한다, 딱 이 정도. 사실 첫 솔로 부분만 듣고 “잘한다” 혹은 “에에, 아니야”라고 평가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도 개의치 않아요. 시작보다 전체를 보는 편이니까요.
파리 고등음악원으로 떠나게 된 얘기를 좀 해볼까요? 미셸 베로프가 성진 씨를 택했다, 저는 처음에 그렇게 들었는데.
어디서요?
풍문으로 들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여름, 파리에서 했던 본지 인터뷰를 보면 학교에서 정해준 클래스에 들어갔다고 밝혔죠. 고등음악원은 학생이 선생님을 택할 기회,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없나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학교에 들어간 얘기를 하자면, 보통은 선생님을 보고 유학을 가잖아요. 또 보통은 선생님이 학생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을 하거나. 주변에 보면 그렇게 제안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전 그런 얘기를 한 번도, 아니 딱 한 번 들어봤어요. 아! 이 얘기는 정말 꼭 해야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나가기 전부터 저를 알던 니콜라이 페트로프가 자기랑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한번 말씀하신 적 있어요. 그분이 일 년에 한 번씩 러시아에서 연주할 기회도 주셨고, 실제로 닷새 정도 선생님 댁에 찾아가 레슨을 받은 적도 있고요. 세 번째 레슨 때인가, 그런 제안을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처음으로 ‘러브 콜’을 받았으니까요. 사실 러시아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에요. 특히 외국인들이 살기엔 쉽지 않죠. 그래도 갈 의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차이콥스키 콩쿠르 끝난 직후 페트로프가 돌아가셨어요. 전 진짜 러시아에 갈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파리로 간 얘기를 자세히 좀 해주세요.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봤지만 얘기가 다 달랐어요. 일례로 미국이 좋다는 사람은 미국이 최고고 독일은 아니다, 이런 식의 너무 개인적인 의견들이었어요. 사실 정답이 없죠. 그러니 조언을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요. 차이콥스키 콩쿠르 끝나고 유학 때문에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진짜 몇 달간 인터넷만 한 것 같아요. 근데 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맑은 느낌이 들었어요. 여기로 가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뭐가 터졌어요. 피아노 교수만도 열 명이었어요. 이중 아무한테나 배워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고집이 센 편이라 누가 뭐라 해도 영향을 크게 받진 않아요. 신수정 선생님께 배울 때도, 선생님이 무엇을 하라고 하셨을 때 제가 싫으면 절대 안 했어요. 프랑스에 간다는 생각에, 어쨌든 어학원에 등록했죠. ‘아베세데…’를 시작한 게 2011년 9월이었어요. 입학하기 전에 B1이라는 레벨을 받아야 했는데, 그 수준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한 3개월을 프랑스어만 했어요. 하루 7시간씩 공부했어요. 문제는 그 기간에 연주가 꽤 있었어요. 그때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3월 시험에서 레벨을 받지 못하면 5월로 넘어가는데, 5월 시험일에는 부산에서 김대진 선생님과 협연이 있었어요. 3월에 떨어지면 그냥 부산에서 시험 보고 저녁에 연주를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운 좋게 3월 시험에 붙었죠. 살면서 언제가 제일 기뻤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참 답하기 어렵잖아요. 근데 이제는 프랑스어 능력 시험 합격했을 때라고 말할 수 있어요.
파리로 입시를 보러 간 건 2월이었어요. 2월 며칠 아침에 학교로 오라는 서류를 우편으로 받았어요. 이메일 아닌 꼭 우편으로 하더라고요. 한국에 사는 저는 조금 늦게 받았겠죠. 쇤베르크 피아노를 위한 소품 Op.11, 베토벤 ‘고별’이 마지막 라운드의 지정곡이었어요. 결국 저는 지정곡도 늦게 안 거죠. 언젠가 블로그에서 보니까 1차는 시창청음이라 하기에 입시 첫날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학교에 갔어요. 근데 누가 연습실에서 리스트 에튀드를 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옷도 그냥 편하게 입고 갔는데! 갑자기 사인을 받더니, 연습실에 가두더라고요. (관계자에게) “나 오늘 피아노 쳐?”라고 물어보니까 진짜 이상한 애 보듯 하여 “위!’라는 거예요. 손에는 연필이랑 지우개 쥐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한참을 웃었어요. 어이가 없어서. 어찌됐든 에튀드 치고, 바흐 치고, 프로코피예프 치고 왔어요. 시창청음은, 얼마 전에 바뀌었대요. 이제 입학한 후에 시험을 본대요. 지정곡을 2차에서 쳤고요. 3월 1일이 합격자 발표일인데 저는 마침 모스크바에서 독주회가 있었어요. (파리에 사는) 아는 누나한테 합격을 전해 들었어요. 합격 통지도 인터넷에 올리는 게 아니고, 옛날 방식으로 학교 벽에 방을 붙여요. 거기 모여서 직접 당락을 확인해요. 1차 합격 통지도 그렇게 했었죠. 음, 그게 입시였고요, 다시 한국에 와서 프랑스어를 준비했어요. (이렇게나 자세하고 흥미진진하게 설명한 후) … 특별한 건 없었어요.
누가 오라고 해서 쉽게 간 줄 알았죠.
심지어 프로필 쓰는 칸도 없었어요. 성진 조, 열여덟 살, 서울예고 재학, 서울에서 왔다. 그게 전부였어요. 차이콥스키 콩쿠르, 이런 건 쓰지도 않고요.
베로프가 콩쿠르 당시 심사위원이었죠.
보통 콩쿠르 후 리셉션에서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말씀 드리고, 의견 듣고 그러잖아요. 베로프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후에 한 번도 서로 연락을 안 했고요. 음악원에 합격하니까 원하는 선생님 네 분 이름을 써내라 하더라고요. 저는 유학지를 결정할 때 학교가 중요했기에, 그래서 그냥 네 분을 써냈어요. 한 달 후 “베로프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연락을 받았죠. 베로프와는 일주일에 한 번, 어시스턴트와도 한 번, 이렇게 레슨을 받아요. 어시스턴트 얘기를 꼭 하고 싶은데, 정말 잘 쳐요. 베르트랑 샤마유, (임)동혁이 형이 롱 티보 1등 할 때 4등한 사람이에요. 살면서, 누구 연주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아 집에 가서 연습을 해야겠다라고 느낀 적이 두 번인데, 첫 번째는 ‘어떤 분’, 두 번째가 베르트랑이었어요.
레퍼토리는 어떻게 늘려가나요?
그냥 하고 싶은 걸 해요.
이번 학기에는 이걸 해보자, 선생님과 계획하거나 그러지 않나 봐요.
지금까지 베로프에게 두 번 이상 레슨 받은 곡이 없어요. 매주 다른 곡을 해요. 어떤 곡을 레슨 받았으면 다음 일주일간 새 곡을 해서 가져가요. 옛날에 했던 곡이더라도요. 신수정 선생님과 공부할 때도 레퍼토리는 제가 정했어요. 중학교 때부터요.
지난여름 파리 인터뷰 때, 협주곡 레퍼토리를 20곡 정도 해두었는데 50곡으로 늘리고 싶다 했죠.
40곡 정도라고 한 것 같은데(웃음). 지금 25곡 정도 했어요.
그중 가장 최근에 작곡된 곡은요?
프로코피예프와 라벨이겠죠. 베로프한테 언제까지 배울지 모르지만, 그분이 칠 줄 아는 건 다 배워보자 라는 생각이에요. 특히 음반으로 냈던 건 다 해보고 싶어요.
스트라빈스키도 해야겠네요.
‘페트루슈카’는 좀 익혔어요. 아직 레슨을 안 했지만요. 프로코피예프 전곡 가운데 1~3번을 레슨 받았고, 4~5번은 이제 해야 하고요. 드뷔시와 라벨도 물론 해야죠. 제가 연주회에서 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재산처럼 해놓아야죠.
바흐는요?
하고 싶을 때요. 너무 현실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곡을 지금 하고 싶어요. 물론 베토벤 소나타는 꾸준히 하고 있어요. 지금은 러시아 음악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최근 손열음 씨가 알캉ㆍ카푸스틴의 작품을 무대에서 선보였죠. 새로운, 혹은 남들이 잘 안 하는 레퍼토리는 어때요?
아직 한 번도 쳐보지 않았지만 기회가 되면 라모를 공부하고 싶어요. 소콜로프가 라모를 즐겨 치는데, 그의 어느 독주회 프로그램 중 라모가 제일 좋았어요.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나갈 거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아니군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묘한 말투로) 제가 퍼트린 소문이죠. 실제로 DVD까지 찍었고요. 그런데 등록을 안 했어요. 일단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저는 워낙 조심스러워서… 인터뷰가 아니면 말해드릴 수 있겠죠.
그래요. 그래서 파리는 좋아요?
물가 비싸고 언어 어려운 것 말고는 정말 만족해요. 새롭고 재미있어요. 성격도 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겁이 없어졌다 할까요. 전에는 약간 낯을 가렸는데, 이제 저는 편하고 남은 좀 불편한 그런….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무슨 이런 질문을 하냐는 듯) “도인이 됐다”라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욕심은 있죠. 근데 그게 어떤 욕심이냐는 다르죠. 연주로 돈을 많이 버는 연주자가 성공한 건가,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연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게 성공인가, 음악은 나를 위한 거라며 자기 방에서 자기 만족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게 성공인가… 성공이 뭐다, 정의는 없어요. 저는 꿈이 엄청 커요. 귀한 연주를 하고 싶어요. “조성진이 연주한단다” 그냥 그런 게 아니라, 루푸ㆍ소콜로프ㆍ페라이어처럼 귀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어떤 사람에겐 그것이 성공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꿈이 진짜 크네요. 아무나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큰 꿈이에요. 콩쿠르 일등 하는 것보다 훨씬 큰 꿈이에요.
루푸처럼 평생 인터뷰를 거절하고, 소콜로프처럼 비행기 여행을 싫어하진 않을 거죠?
저는 낯을 가리기는 하지만 사람들을 좋아하고 서로 잘 지내면서 살고 싶어요.
음반도 내고 싶나요?
아직까지 음반에 대한 생각은 없어요. 제안도 없었어요. 안 낸다고 서러워하지도 않고요.
의외로 제안이 없는 남자군요. 선생님에게도, 음반사로부터도….
사람들이 저를 보고 “주목받는 유망한 연주자”라고 하는데 누구한테 주목받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리하여 ‘21세기 피아니스트’는 20세기 피아니스트와 마찬가지로, 다시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을 뿐이다. 지난봄, 나를 포함하여 스무 명 가까운 기자들이 울려댄 변죽에 조성진은 관심이 없어보였고, 그것이야말로 참 다행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청년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관찰기를 널리 알리려 한다. 화려한 미래를 섣불리 단정하는 유혹적인 홍보문구가 훨훨 휘날리는 와중에도 그 누구보다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조성진의 ‘오늘’.

글 박용완 기자(spirate@)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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