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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보 두다멜(2)
꿈을 주는 교육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7/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7월호 - 전체 보기 )




▲ ⓒJean-Francois Leclercq

“빈민가에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아이들이 방과 후 쓸모 있는 시간을 보내게 했을 때, 그 가족들이 우리의 가장 든든한 편이 되었어요.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거리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마약이나 폭력, 아동 포르노 같은 위험에 노출되기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 훨씬 나으니까요. 가족에게 오케스트라는 외부 세계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주는 장벽 같은 것이었습니다.” -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모든 국민은 음악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영어ㆍ수학에 매몰된 우리 실정에서는 도무지 생뚱맞기만 한 이 구절은 베네수엘라 헌법에 당당히 명시된 내용이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1975년 2월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에 있는 낡은 차고에 여덟 명의 청년들을 모았다. 그중에는 전과 5범도 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는 단 1퍼센트도 보이지 않던 이들은 다시 악기를 잡았고 그해 4월 30일 첫 콘서트를 열었다. 3년 뒤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SBYO)로 이름을 바꾼 후안 호세 란다에타 국립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시작이었다. 한 끼의 빵이나 갱단에 맞서 자신을 지켜줄 총 대신 악기를 든 이들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기적처럼 일구었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아브레우가 있었다. 1939년에 태어난 그는 음악가이자 정치가ㆍ경제학자이며 베네수엘라의 대표 지성이다. 아브레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국의 푸른 새싹을 위해 온전히 헌신했다. 그 결과 국가와 뜻 있는 기업, 후원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오케스트라 창단 4년 만인 1979년 마침내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 재단(FESNOJIV)’, 즉 ‘엘 시스테마(El Sistema)’가 탄생해 그의 꿈은 현실로 변한다.
실로 서양음악의 본거지도 아닌,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남미의 변방에서 일어난 이 기막힌 ‘시스템’은 세계 클래식 음악의 지형도를 바꿀 만큼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누클레오(Nucleo, 베네수엘라 25개 주 221개 지역센터)가 운영하는 오케스트라는 500개를 훌쩍 넘는다. 5세부터 20세까지의 아이들 가운데 80퍼센트 이상이 빈곤층 출신이다. ‘산 빈센테 누클레오’는 쓰레기 매립지의 극빈층 자녀를 위해 현장에 지어진 센터다. 현재까지 40여 만 명이 거쳐 갔으니 베네수엘라 교육 가운데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이 거대 조직은 무엇보다 부패 하나 없이 깨끗하다. 엘 시스테마의 공동창립자이자 여전히 SBYO의 회장인 프랑크 디 폴로는 아직도 ‘프랑크의 차’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1975년에 구입한 ‘고물차’를 당당하게 타고 다닌다.
“엘 시스테마는 거대한 가족입니다. 아버지는 바로 아브레우 선생님이죠. 그분은 엘 시스테마에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아이디어가 베네수엘라를 바꿔놓았고,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힘주어 말한 대로 엘 시스테마는 두다멜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 LA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중의 한 명인 그의 모든 스케줄은 엘 시스테마와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어디 두다멜뿐이랴.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 창단 이후 역대 최연소 단원은 엘 시스테마에서 단지 7년 동안 베이스를 연주한 17세의 에딕손 루이스뿐이었다. 라 스칼라ㆍ산 카를로 극장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2012년 새 음악감독은 두다멜의 3년 후배이자 같은 고향인 바르키시메토 출신의 1984년생 디에고 마테우스다. 2006년 카라카스를 방문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의해 전격 발탁된 그는 220년 역사의 이 콧대 높은 극장의 지휘대를 호령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열 살짜리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할 수 있어
두다멜의 성공은 당연히 엘 시스테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피아노 앞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레슨을 받아야 하는 다른 나라 지휘 전공 학생에 비해, 베네수엘라에서는 열 살만 되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3관 편성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할 수 있다. 애초에 독주 위주보다는 단결과 협동의 덕목을 가르치는 오케스트라에서 출발하다 보니 음악을 보는 시야는 넓고 해석은 명징하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타고난 리듬감이 결합돼 두다멜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대단히 리드미컬하고 다이내믹하다. 그러면서도 무작정 내달리지 않고 절제와 평정을 잃지 않는다. 두다멜이 LA 필과 가장 최근에 선보인 말러 교향곡 9번의 4악장을 들어보라(본지 2013년 4월호 음반 리뷰 참조). 인생의 황혼기에 도달한 거장에게서나 감지할 수 있는 유장한 템포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천국적인 아다지오 악장에서 두다멜이 고하는 ‘안녕히(Lebe wohl)'는 분명 ’필즉사 필즉생(必卽死 必卽生)‘의 외침으로 다가온다. DG 40042/479 092-4, CD
다큐멘터리 영화 ‘엘 시스테마’를 보면 쓰레기 더미에 세워진 산 빈센테 누클레오에 소속된,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코흘리개 소녀 요와누스카 코르데로의 고백이 나온다. “우리가 했던 노래 중에 특히 마음에 드는 게 있어요. 손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노래요. 그 곡은 아베마리아인데 정말 좋아요!” 오로지 수화로 노래하는 코르데로의 깊디깊은 눈망울은 자연스레 두다멜의 아다지오 악장의 끝자락과 겹쳐진다. 천사의 영혼을 지닌 말 못하는 소녀가 하늘을 향해 휘젓는 손짓은 두다멜의 지휘봉 궤적과 합일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엘 시스테마 안에서 음악의 언어로 세상을 열어주고 있으니까. Aulos Media ADVD-012, DVD
두다멜의 말러 사랑은 각별하다. 1999년 아브레우 박사에게 교향곡 1번으로 지휘 공부를 시작했고, 2004년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총 299명의 지원자 가운데 두다멜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등에 뽑혔다. 당시 결선에서 객석에 있던 평론가 폴 무어는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가 흐를 때 끝내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건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말러를 향한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소속사 DG의 두 번째 앨범이 교향곡 5번으로 낙점되었기 때문이다.
1940년부터 유명 건축가 카를로스 라울이 디자인한 카라카스의 시우다드 대학은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상아탑이다. 이 대학 내 ‘아울라 마냐(Aula Magna)’는 학위 수여식이나 컨퍼런스뿐 아니라 드라마와 합창, 심지어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열리는 다목적 공간이다. 2,713석의 이 홀은 음향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두다멜은 2006년 2월 그의 첫 말러 녹음 장소를 아울라 마냐로 정하고 SYBO와 함께 심혈을 기울였다. ‘아다지에토’에서 빚어내는 심연의 빛은 이 혈기 왕성한 지휘자와 단원들의 솜씨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뿐만 아니다. 평론가들이 “에너지로 가득 찼다(so full of energy)”라고 극찬한 2악장은 댄스의 느낌으로 가득하다. 두다멜이 “내 인생의 음악적 기준점”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던 교향곡 5번의 완성도는 대단히 높다. DG 7504/466 654-5, CD
2004년 7월 18일 사이먼 래틀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카라카스에 도착했다. 베를린 필 음악감독으로는 최초의 베네수엘라 방문이었다. 래틀에게 두다멜은 지방에서 올라온 수백 명의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선물했다. 몬탈반 센터에서는 청각장애 청소년으로 구성된 ‘마노스 블랑카스 합창단’이 들려주는 노래에 부족함 없이 자랐을 자신의 아들과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두다멜이 지휘하는 800명의 카라카스 시립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연주 앞에서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래틀은 다섯 번의 리허설 끝에 7월 23일 테레사 카레뇨 극장에서 SBYO와 함께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했다. 두다멜에 의해 다듬어진 SBYO는 래틀에 의해 활활 타올랐다. 무려 7분이 넘는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더구나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가 인정한 세계 수준의 연주였다.
두다멜의 말러 여정은 2012년에 절정에 달한다. 말러 서거 100주기를 맞아 LA와 카라카스에서 번갈아가며 열 개의 교향곡 전곡 연주회의 대장정을 이끈 것이다. LA 필과 SBYO에서 이제는 성인이 된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SBSO), 두 악단은 한 지휘자에 의해 미국과 베네수엘라라는 기름과 물 관계의 두 나라가 어떻게 화합할 수 있는지 말러를 통해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그 피날레는 두 오케스트라가 하나 된 교향곡 8번으로 갈무리 되었다. 200명의 악단과 무려 2천 명의 합창단과 10명의 독창자는 한 사람의 지휘자 두다멜에 의해 하나로 반응했다.
2007년 ‘음악을 통한 사회 행동 센터’가 개관하기 전까지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콘서트홀은 테레사 카레뇨 극장이었다. 1983년 메인홀인 2,400석의 리오스 레이나홀과 440석의 호세 펠릭스 리바스홀을 거느리고 오픈한 극장은 베네수엘라 예술의 자존심과도 같다. 2012년 2월 17일, 공연을 위해 두다멜이 리오스 레이나홀 무대로 나가는 순간, 2,200명의 연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특히 베네수엘라 국기를 형상화한 띠를 두른 합창단은 그 자체로 숙연했다. “LA 필과 대가족이 된 느낌입니다. 서로 동질감도 들고 처음부터 정말 우리는 잘 맞았어요.” SBSO의 악장 알레산드로 카레뇨가 말한 대로 미국과 베네수엘라 오케스트라는 한 가족이었다. 그것은 1부 시작과 함께 굉음을 울리며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의 페달 저음과 합창단이 뿜어내는 거대한 음률에 의해 바로 감지된다. 마침내 대서사시가 끝나자 객석에 있던 73세의 아브레우 박사부터 기립하며 포옹한다. 엘 시스테마 산하 전국 각지의 센터에서 온 합창단원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결국 그들이 “베네수엘라!”를 연호할 때, 이것이 단지 한 회의 공연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음악을 통해 사랑을 전파하는 각본 없는 드라마임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DG DVU0177/073 488-4, DVD
두다멜은 2006년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둔 12월 21일 카라카스 교외 몬탈반에 있는 안드레아스 벨로 대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저널리스트이자 발레댄서이며 안무가, 상담사로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 엘로이사 마투렌이었다. 두다멜보다 1년 연상의 엘로이사는 분단위로 삶을 쪼개 사는 남편의 인터넷 홍보와 소셜네트워크를 담당하며 내조한다. 2011년 4월 1일에는 드디어 아들 마르틴이 태어나 가족은 더욱 충실해졌다. 비교적 일찍 가정을 꾸린 두다멜의 음악은 그래서 더 평탄해지고 멀리 보는 느낌이다.
결혼 후 두다멜의 첫 음반은 2007년 4월 17일 바티칸 파올로 6세 아울라에서 열린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생일축하 콘서트 실황이었다. 교황을 비롯해 무려 7천 명의 청중 앞에 선 베네수엘라의 26세 젊은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금관연주자 12명의 우렁찬 팡파르가 멋지기만 한 가브리엘리의 ‘신성 교향곡’을 지휘하는 두다멜의 얼굴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음악의 위대함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무대로 올라와 두다멜에게 진솔한 감사의 말을 전하는 교황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DG 00440 073 4357, DVD



제2, 제3의 두다멜ㆍ마테우스ㆍ루이스를 꿈꾸며
2008년 8월 29일 두다멜과 SBYO는 잘츠부르크에 나타났다. 이제 두다멜의 악단이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만이 초대되는 ‘잘츠부르크 축제급’의 콘서트 무대에 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베토벤의 3중 협주곡, 협연자의 면면도 최강이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르노ㆍ고티에 카퓌송 형제였다. 역시 젊었고, 심지어 아르헤리치조차도 그 젊은 축제에 몸을 맡기고 즐겼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SBYO의 실력을 극대화한 명연이었다. ‘키예프의 대문’은 드넓은 축제대극장이 좁다는 듯 광폭한 음량으로 휩쓸었다. 앙코르는 또 어떤가. 남미 작곡가 히나스테라의 ‘마지막 춤’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이들만의 선곡이었다. DG DVU0124/-73 451-5, DVD
SBYO와 LA 필로 양분되는 두다멜의 디스코그래피 사이에 보석처럼 빛나는 컬렉션이 있었으니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를 지휘한 일련의 녹음들이다. 2002년 2월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필두로, 닐센의 교향곡 4번과 5번, 그리고 2010년 3월에 레코딩한 시벨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애호가들에게는 덤으로 누리는 행복이다. 남아메리카의 후텁지근하고 끈적이는 열정을 잠시 벗어나 북구의 서늘한 기운이 두다멜의 손끝에서 감지된다. 특히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이 좋다. 1악장 알레그레토에서 새벽안개를 뚫고 번져오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호수의 일렁임은 단정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이렇게 변신할 수 있는지 두다멜 음악의 한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반면 브루크너의 교향곡 2악장 스케르초에서 내려치는 팀파니의 연타를 들어보라. 이보다 더 후련할 수 없다. DG 477 9449, 3CD
두다멜에게 가장 손쉽게 다가가고자 한다면 CD와 DVD가 커플링된 ‘Discov-eries’ 앨범을 권한다. SBYO, 예테보리 심포니는 물론 베를린 필과 빈 필까지 망라된 종합선물세트다. 특히 빈 필하모닉을 지휘해 LP 음반으로만 발매되었던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가운데 2악장을 CD로 들을 수 있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생상스 ‘삼손과 데릴라’ 3막 발레 장면을 연주하는 베를린 필과의 궁합도 훌륭하다. 다큐멘터리 ‘음악의 약속’이 함께 수록돼 인간 두다멜과 엘 시스테마까지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음반이다. DG 40012/470 006-9, CD
2012년 3월 두다멜은 SBYO에서 SBSO로 간판을 바꾼 자신의 악단과 함께 한층 숙성된 베토벤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SBYO와의 데뷔 앨범 이후 꼭 6년 만이었다. ‘영웅 교향곡’은 사뭇 진중하다. 두다멜의 절제하는 심성은 2악장 ‘장송 행진곡’을 17분 39초에 주파하며 끈질기게 템포를 가져간다. 피날레 악장의 광폭한 에너지는 여전하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에 이어 ‘에그몬트 서곡’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귀를 잡아 맨다. DG 40015/479 025-0, CD
빈 필과 초여름 밤의 데이트를 즐긴 ‘Dances and Waves’ 음반은 베토벤에게 짓눌린 이성의 무게를 살포시 덜어주며 쉬어가게 한다. 2012년 6월 7일 빈 쇤부른 궁전의 야외 음악회 라이브다. 차이콥스키ㆍ무소륵스키ㆍ보로딘 등 러시아 작곡가에서 드뷔시ㆍR. 슈트라우스ㆍ폰키엘리에 이르는 음악여행을 즐기고 나면 마지막에는 역시 스페인 작곡가 히메네스의 ‘알론소의 결혼’ 가운데 간주곡이 기다린다. 자신의 스페인적 리듬감을 빈 왈츠 전문 악단에게 투여하는 두다멜의 솜씨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DG 40017/476 471-7, CD
가장 최근에 발매된 두다멜의 음반은 2012년 5월 1일 빈 ‘스페인 승마학교’ 홀에서 열린 베를린 필이 자랑하는 유러피언 콘서트다. 바로크풍의 고즈넉한 내부 장식을 배경으로 두다멜과 베를린 필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역동적으로 엮어간다. 산뜻하기 그지없는 승마학교 건물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더없이 행복하다. 2008년 여름 잘츠부르크에서 두다멜과 만났던 고티에 카퓌송은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을 그윽하게 이끌어간다. DG DVU0190/073 493-1, DVD
두다멜이 팝과 록음악을 연주하면 어떨까? 올해 초 ‘LA 타임스’지에는 “그들은 클래식을 지휘하지만 팝과 록도 좋아한다”라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두다멜ㆍ리처드 이가ㆍ마이클 틸슨 토머스 등 지휘자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에어로스미스ㆍ프린스ㆍ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을 연주한다면…. 두다멜은 지난해 8월 할리우드 볼 무대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도미니카가 낳은 스타 후안 루이스 구에라와 함께 연주했다. 또한 그는 록그룹 에어로스미스의 온갖 자료를 모았을 만큼 광적인 팬이었다. 이는 두다멜의 향후 행보가 클래식을 넘어 세상의 모든 음악을 아우를 수 있음을 예견하게 한다. 언젠가 로열 필ㆍ보스턴 팝스ㆍ신시내티 팝스를 위협하는 두다멜의 크로스오버 음반이 우리 곁에 나타날지 모른다.
할머니가 “내 새끼(Mi Chiquito)”라며 귀여워하던 ‘아기 두다멜’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LA 필 취임 첫 시즌에 60만 명의 청중을 끌어 모아 전 해에 비해 무려 10만 명이나 늘이며 단숨에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10억 원의 연봉을 받아 거장급 지휘자의 대우를 받았다. 그해 LA 오페라의 총감독 플라시도 도밍고가 14억 원을 받았으니 두다멜이 미국에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엘 시스테마에서 배운 것은 음악을 통한 성공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두다멜은 언제나 겸손하다. 성공보다는 삶에 대한 자세가 그에게 더 소중한 것이다. 영화 ‘엘 시스테마’에서 SBYO가 멕시코 작곡가 아르투로 마르케스의 춤곡을 연주할 때 등장하는 베네수엘라 소녀의 고백을 끝으로 두다멜과의 행복했던 여정을 마무리한다.
“우리에 대해 뭘 알고 싶으세요?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요? 음악가, 바이올리니스트, 위대한 피아니스트요!”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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