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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집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8/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8월호 - 전체 보기 )


최근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이,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의 걸작들에 새로운 해석이나 신선한 실험을 하기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다른 작곡가라면 몰라도, 베토벤은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하고 연주자의 자의가 들어갈 부분이 지극히 적다’라는 견해인 셈이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최고의 문화유산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은 것은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욕심이다. 문제는 하나의 확실한 ‘실마리’의 발견이다. 연주자와 베토벤의 첫 만남을 떠올려야 할지, 아니면 두 존재의 영감이 맞부딪히는 순간을 찾아야 할지 그 단서를 잡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제는 40대의 노련한 중견이며 베토벤 연구에 있어서도 동년배의 프랑스인들 중 앞서 있는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에게도 이런 압박감은 적지 않다. 최근 세 번째 시리즈를 출시하며 완성된 소나타 전집에서 기는 자의의 해석을 텍스트가 주는 총체적 정보에 더한다기보다 오히려 ‘덜어내는’ 방법을 쓰고 있어 흥미롭다. 프랑스인다운 유연함과 은근한 위트, 재치 등이 함께하는 이 프로젝트는 라이브 녹음이 전달할 수 있는 긴장감을 여타의 편집 없이 그대로 담고 있어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녹음이 이루어진 프랑스 메츠 아스널 홀의 자연스런 공간감과 간간히 들리는 청중의 박수 소리 역시 어딘지 모르게 푸근하고 정겨워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더한다.
시리즈 중 마지막답게 가장 초기의 세 곡과 만년의 작품들이 함께 실려 있다. 전반적으로 구조 상의 커다란 전환이나 악상의 반전을 꾀하지 않고 스타일의 변화를 살짝 주어 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어 듣는 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Op.2의 세 곡 중에는 1번과 2번의 시도가 흥미로운데, 젊은 작곡가의 광포함을 표현하기 쉬운 1번의 4악장 프레스티시모에서는 날카로움 대신 중후한 루바토와 원만한 악상의 진행이 오히려 인상적이다. 강한 탄력과 리듬의 강조가 필수적인 2번의 1악장에서도 기의 해석은 날 선 ‘독기’를 빼고 여유롭고 낙천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두 번째 CD에 담긴 26번 ‘고별’ 역시 작품이 지닌 스케일을 교묘하게 축소시킨 해석으로 주목된다. 충분히 사색적이나 센티멘털이 느껴지지 않는 1악장, 서정적인 표현은 넉넉하나 쓸쓸하지는 않은 2악장을 거쳐, 의식적으로 강한 터치를 자제해 비르투오소적인 화려함을 덜어낸 3악장은 한결 가볍고 신선한 기분이다. 데뷔 때부터 자신하는 레퍼토리인 29번 ‘하머클라비어’는 이번 시리즈에서 해석의 중심을 잃은 느낌이라 아쉽다. 긴장감 때문인지 시종 쫓기는 듯한 진행을 보이며, 중심 악장이라 할 3악장의 비애감도 깊은 맛이 부족하다.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세 곡이 들어 있는 세 번째 CD에서는 종악장의 치밀한 연출이 탁월하다. 내면에 침잠하는 정서를 지닌 30번 소나타의 마지막 변주는 반짝이는 음색과 풍성한 페달링으로 세련미의 극치를 그려내고 있으며, ‘탄식의 노래’와 푸가의 반복을 한 호흡으로 연결하여 오히려 슬픔의 정서를 한 단계 끌어올린 31번의 피날레에서도 기의 해석은 논리와 감성 양면에서 훌륭하다. 32번 소나타의 아리에타 역시 다양한 뉘앙스를 담은 변주들을 하나의 거대한 호흡으로 수렴하여 통일된 아름다움을 지향한 기의 시도는 일견 평범한 듯하나 걸작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아주 새로운 조명 방법이라 할 만하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피아노) Zig-Zag Territoires ZZT 318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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