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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뉴 큐’
어른을 위한 인형들의 통쾌한 노래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8/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8월호 - 전체 보기 )




뮤지컬 애호가들의 재미난 취미가 있다. 음악을 통해 뮤지컬 감상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흠뻑 심취한 작품의 음반을 캐스트별로 수집하는 마니아도 적지 않다. 뮤지컬하면 그저 연극의 한 지류이고, 대사가 나오다 노래 한 소절 곁들이면 모든 것인 줄 착각하는 이들에겐 이런 모습이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뮤지컬은 엄연히 음악을 통해 무대를 즐기는 장르다. 연극이 아닌 오페라가 탄생의 단초이기에 가능한 배경이다. 때문에 뮤지컬 음반에는 작품 못지않은 재미가 담겨 있다. 물론 음원을 통해 뮤지컬을 곱씹어보는 맛도 일품이다. 무대와 떼려야 땔 수 없는, 때론 공연에서 다 알 수 없는 뒷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음악에 관해 앞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인형들이 모두 자라서 어른이 됐다면?”
병치레가 잦던 초등학생 시절, 몸살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토요일이면 몸이 아픈 대신 누리는 최고의 선물이 있었다. 바로 주한미군방송(AFKN)에서 방송하던 어린이용 프로그램들이다. 종일 방송이 없던 시절, 게다가 아동용 프로그램이라곤 오후 5~6시에 한 시간 남짓 편성만이 유일했던 당시에 공중파 채널 2번의 주한미군방송은 목마른 여행객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말도 알아들을 수 없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든 내용들이었지만,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프로그램들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당근을 씹으며 빈정대는 벅스 버니, 종일 쫓고 쫓기는 톰과 제리, 말 더듬던 포키 피그, 욕심 많은 오리 대피 덕 등 워너브라더스의 ‘루니 툰스’ 등장인물들은 요즘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연예인 캐릭터를 넘어서는 인기를 누렸다.
특히 ‘세서미 스트리트’는 남달랐다.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용 TV 시리즈물인 이 프로그램은, 인형들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온갖 해프닝을 보여줬다. 커다란 키의 노란 깃털이 인상적인 빅 버드, 쿠키만 보면 환장을 하는 쿠키 몬스터, 빨간 털북숭이 엘모 등 머펫이라 불리는 프로그램 속 인형들은 하나하나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지난 2009년에는 방송 40주년 기념 프로그램을 방영되기도 했는데, 역대 어린이용 미국 텔레비전 쇼 중에서는 열다섯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국의 미취학 아동 중 95퍼센트가 이 프로그램을 본 경험을 갖고 있다는 설문조사가 있는가 하면, 약 7천700만 명의 미국인들이 어린 시절 즐겨 보던 프로그램으로 이 방송물을 지목했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까지 여덟 개의 그래미상과 153개의 에미상을 수상한 진기록도 갖고 있다. 그야말로 말하면 입만 아픈, 미국 최고의 어린이용 방송 프로그램이었던 셈이다.
‘애비뉴 큐(Avenue Q)’ 뮤지컬 제작의 시발점이 된 것도 바로 이 TV 프로그램에서였다. 제작자인 로버트 로페스와 제프 맥스는 보통의 미국 사람들이 그렇듯 어린 시절부터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고 자란 신세대 예술가들이었고, 그래서 낯익은 인형들이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작품을 기획하는 데 쉽게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TV 프로그램의 무대화’에 국한하여 뮤지컬을 만들지 않았다. 두 젊은 제작자는 ‘세서미 스트리트’ 속 캐릭터들에게 무대만의 발칙한 예술적 환상과 상상력을 더해 “그때 그 인형들이 모두 자라서 어른이 됐다면?”이라는 별난 가정을 덧붙이며 아이디어를 집중시켰다. 덕분에 이야기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용 소재의 틀을 벗어나 성인들을 위한 온갖 은밀한 이야기들로 뒤바뀌는 일대 변화를 겪게 됐다.
‘애비뉴 큐’에는 도시의 어두운 한 편에서 살고 있는 달동네 보통 사람들의 삶과 고민·취업과 실업 문제·성 정체성에 대한 방황과 곤경·매춘·인터넷 야동 등 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여과 없이 투영되는 실험이 감행됐다. 흥미로운 것은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무거운 소재가 될 수 있는 어른들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인형들의 천연덕스런 연기와 인형이기에 뻔뻔스럽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사와 상황들로 다시 꾸며지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배꼽잡고 웃으며 낯 뜨거운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는 별난 체험을 즐기게 됐다.


인형들의 낯 뜨거우면서도 통쾌한 노랫말
‘애비뉴 큐’의 별난 재미를 가장 크게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은 무대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인 뮤지컬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음반을 통해 이해를 도모하는 것처럼 좋은 감상법도 없을 것이다. ‘애비뉴 큐’ 음반은 현재까지 총 세 장이 발매됐는데, 2003년 8월 뉴욕의 라이트트랙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은 뮤지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곡들을 담아내 애호가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후 전 세계로 흥행이 이어지며 2010년 에스파냐어로 된 마드리드 캐스트 음반과 지난 4월 독일어 캐스트 음반이 발매됐지만, 가장 널리 인기를 누린 것은 초연 캐스트 멤버들의 노래가 담긴 음반이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에 담긴 배우들의 면면을 알고 봐도 재미있다. 케이트 몬스터와 루시를 연기했던 스테퍼니 다브루초는 원래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인형들을 조종했던 배우였으며, 프린스턴과 로드를 다룬 존 타탈리아는 요즘 브로드웨이에서 인기 상한가를 기록 중인 새로운 디즈니 뮤지컬 ‘뉴시스’의 신문 배달 소년 중 한 명으로 맹활약 중이다. 능청스러운 인형 연기를 펼치던 배우들이 다른 가면을 쓰고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이 전혀 색다르고 상반된 이미지라 좋은 연기자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앨범에서 단연 압권을 이루는 노래는 트레키 몬스터와 케이트 몬스터의 뮤지컬 넘버다. 파격적인 내용은 노래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는데, 바로 ‘인터넷은 포르노를 위한 것(The Internet Is For Porn)’이다. 인터넷의 빠른 정보 전달 능력, 검색이나 쌍방향성, 동영상 기능은 남자들에게 야한 동영상을 보다 쉽게 볼 수 있게 하는 기술적 진보라는 인형들의 노랫말은 낯 뜨거우면서도 통쾌하다. 적나라하면서도 직설적인, 게다가 당당(?)하기까지 한 남자 인형들의 합창(예를 들어, “거기 잡고 더블 클릭!”이라는 직설적인 후렴구도 나온다)은 그야말로 객석의 관객을 폭소로 쥐락펴락한다. 코믹하고 유머가 가득한 상황 속에서 풍자와 해학이 담긴 대사와 노래로 기발한 상황이 전개된다.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초반부터 드러난다. 주인공 프린스턴은 대학에서 영문과를 갓 졸업한 남자 인형이다. 물론 ‘미국’에서 ‘영어’를 전공한 것은 별반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일이다. 당연히 취업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채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중 뉴욕 맨해튼의 ‘달동네’ 애비뉴 큐에 기거할 만한 방을 구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달동네에서의 첫날, 프린스턴은 ‘누구 인생이 가장 형편없나(It Sucks To Be Me)?’를 발랄한 템포와 멜로디로 내기하듯 외쳐대는 이웃들과 대면한다. 예쁘고 로맨틱하지만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경험하지 못한 여자 인형 케이트 몬스터, 일본계 이민자로 미국에 와 마사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아직 손님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크리스마스 이브, 서른세 살인데도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브의 약혼자 브라이언, 그리고 예전에는 잘나가던 아역 탤런트였지만 친구의 꼬임으로 주식에 투자했다 폭삭 망하고 이젠 아파트 관리자가 된 게리 콜먼이 차례로 등장한다. 1990년대 우리나라 공중파 TV에 방영됐던 ‘신 나는 개구쟁이’를 기억한다면, 터질 듯한 양 볼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귀엽던 흑인 꼬마배우 게리 콜먼을 떠올릴 것이다. 뮤지컬에서는 여배우가 이 역할로 등장하는데, 물론 ‘절대로’ 관객을 웃기고 말겠다는 의미를 담은 비장한 코믹 설정이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합창으로 부르는 ‘누구 인생이 가장 형편없나?’부터 ‘난 오늘 속옷을 입지 않았지(I′m Not Wearing Underwear Today)’ ‘사랑을 나눌 땐 원하는 만큼 소리 질러(You Can Be As Loud As The Hell You Want)’ 등의 노래는 제목만 봐도 이 작품에 꾹꾹 눌러 담긴 재치의 흔적을 실감하게 만든다.
흔히 인형극 하면 사람들이 세트 아래 숨어 인형을 조작하는 형태를 떠올리지만, 뮤지컬 ‘애비뉴 큐’는 보다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인 방식을 활용한다. 배우가 인형을 손에 끼고 무대에 등장해 인형과 표정을 함께하며 이야기에 동참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두 가지 인형을 동시에 조작하거나 두 사람이 각각 한 인형의 절반씩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덕분에 묘기 부리듯 능수능란한 인형 조작이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들어준다. 또, 어찌나 자연스레 인형들을 조작하고 각각의 캐릭터에 맞게 노래를 적절히 부르는지 박수가 쏟아지기 일쑤다. 심지어 남녀 주인공 인형들이 정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져 나온다. 물론 인형이 바뀔 때마다 목소리는 물론 눈빛까지 변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감상 포인트인데, 요즘 우리 무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일인다역의 멀티맨을 보는 재미가 인형극 안에 녹아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좋을 듯싶다.
‘애비뉴 큐’는 시각적인 효과뿐 아니라 노랫말과 재치, 풍자와 해학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8월 내한 공연(8월 23~10월 6일, 샤롯데씨어터)을 앞두고 음반으로 먼저 예습하는 약간의 노력(?)이 추가된다면 제대로 웃기는 뮤지컬을 오랜만에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설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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