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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키노·륄리·헨델·버트위슬·R. 슈트라우스·라모의 오페라, 라신·셰익스피어의 극에 담긴 테세우스 신화
글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2/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2월호 - 전체 보기 )




▲ 로랑 드 라 아이어 ‘테세우스와 아이트라’

키노·륄리·헨델·버트위슬·R. 슈트라우스·라모의 오페라, 라신·셰익스피어의 극에 담긴 테세우스 신화

영웅의 원형 페르세우스 이후 완력을 앞세운 힘센 영웅으로는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활동 권역은 조금 다른데, 헤라클레스가 광활한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권 전역을 누빈 반면, 테세우스는 그리스 역사와 문화의 중심인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 지역을 대표하는 영웅이다. 또한 아테네를 직접 통치한 왕으로도 유명하다. 일화의 양적 측면에서는 헤라클레스에 미치지 못하나, 그 다양성에서는 오히려 테세우스가 풍부하다는 생각도 든다.

숨겨진 칼로 아테네 왕위를 되찾다

그리스 로마신화에는 테세우스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라는 설과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들이 각광받던 시절이니 포세이돈을 부친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겠으나, 정작 유명한 일화는 그가 헤어졌던 아버지 아이게우스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이게우스는 친분이 있는 트로이의 왕 피테우스를 방문했다가 아이트라 공주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아이트라가 임신을 하자 아이게우스는 큰 바위 밑에 칼과 신발을 넣어두고 ‘아들이 바위를 치울 정도로 성장하거든 증표를 들고 아테네로 찾아오라’는 당부를 남기고 떠난다. 어느덧 열여섯 살이 된 테세우스는 쉽게 바위를 들어 올렸고, 아이게우스의 물건들을 손에 넣었다. 헌데, 이런 일화에도 불구하고 테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는 설은 왜 생긴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이트라가 포세이돈과 먼저 관계하여 아이를 가졌는데, 이를 아이게우스가 본인의 아들로 오해했다는 설명이 많다.

트로이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동쪽 끝에 있어 아테네로 가려면 바닷길을 이용하는 편이 나았지만, 테세우스는 육로를 택하여 악당과 괴물을 물리치고 아테네에 입성한다. 그러나 당시 아테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마법사 메데이아가 아이게우스를 유혹하여 정사를 주무르고 있었고, 왕의 동생 팔라스와 50명의 아들이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아테네에 입성했지만, 메데이아는 한눈에 그의 정체를 알아보고 아이게우스의 식사에 초대한다. 독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자리에서 고기를 써는 테세우스의 칼이 자신이 남긴 증표임을 알아본 아이게우스에 의해 쫓겨나고, 부자는 극적으로 상봉한다. 왕의 아들임이 확실했지만, 테세우스는 삼촌 및 사촌들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뒤에야 왕가의 후계자로 지목된다.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필리프 키노는 장 바티스트 륄리와 함께 아테네를 찾은 테세우스의 이야기를 ‘테제’라는 오페라로 만들었다. 이에 근거한 헨델의 ‘테세오’(1713)도 잘 알려져 있다. 헨델의 작품은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비극적인 내용의 정통 가극)에 속하면서도 프랑스 고전 연극을 다루어 륄리의 프랑스 궁정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5막 구성이란 점이 특이하다. 키노와 릴리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신화와는 제법 차이가 있다. 아이게우스가 부친인 사실을 모르는 테세우스가 메데이아, 에글레 공주와 사각관계를 이루다가 에글레와 맺어지고, 아버지와 재회하며 메데이아는 추방된다는 내용이다. 테세우스 신화를 인용했을 뿐, 바로크 오페라의 인물 구도 공식의 전형에 가깝게 개작된 셈이다.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이라는 미래에 안주하지 않고, 목숨을 건 모험에 나선다. 아테네는 신화 시대의 강국이었던 남쪽 섬나라 크레타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매년(3년 또는 9년이란 설도 있음) 청년과 처녀를 7명씩 공물로 바치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에게 바쳐지는 희생양이었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의 국왕 미노스에 내린 포세이돈의 징벌로, 파시파에 왕비가 황소에게 욕정을 품어 탄생한 반인반수 괴물이다.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왕비가 낳은 생명인지라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장인인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로 속에 숨겨둔 채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먹잇감으로 던져주었던 것이다. 테세우스는 이런 악습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물로 바쳐질 젊은이들 틈에 끼어 검은 돛을 단 배에 오른다.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이게우스에게는 ‘괴물을 죽인 후, 흰 돛을 달고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하며 크레타로 향한다.

이 신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다. 적국의 남자에게 반한 공주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운 좋게 죽이더라도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걱정한다. 사랑의 힘이 혜안을 일깨운 것일까.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건네고,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그가 풀어놓은 실을 따라 빠져나올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한다. 그리고 무사히 탈출한 테세우스와 함께 크레타 섬을 탈출한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낙소스 섬에 들렀다가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난다. 그 이유에 대해선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테세우스의 실수일 수도 있고 다른 여자 때문에 생긴 의도적인 유기일 수도 있으며, 아리아드네에게 반한 디오니소스의 가로채기일 수도 있다. 아무튼 아리아드네를 버린 죗값을 치르느라 테세우스는 돛 색깔을 흰색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잊은 채 아테네로 향하고, 절벽에 올라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이게우스는 검은 돛을 단 배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절망하여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만다. 이후 그가 뛰어든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뜻의 ‘에게 해’로 불리게 된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이야기는 작곡가 해리슨 버트위슬의 오페라 ‘미노타우로스’(2008)에 그려 있다. 신화에 상당히 충실한 편이지만, 괴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만큼 그에 대한 배려가 있다. 미노타우로스에게는 짐승적 측면과 더불어 인간적 면모가 있다. 깨어났을 때는 괴물이지만 잠들었을 때는 인간이요, 테세우스의 몽둥이에 죽어갈 때 다시금 인간의 면모를 찾게 된다. 오페라의 주인공이 됨으로써, 미노타우로스로 하여금 본질은 인간이되 부자연스러운 문명에 오염돼 비인간적으로 변해버린 현대인을 상상할 수 있기도 하다.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1912)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극 중 극의 주인공이다. 다만 이 극에선 테세우스가 등장하지 않고, 디오니소스(바쿠스)가 남자주인공이다. 지난해 5월호에 연재한 디오니소스 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결국 영웅도 빗겨가지 못한 비극


▲ 파리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

아테네 왕으로 즉위한 테세우스는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 아니라 신화 속에 등장하는 왕이지만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아티카 지역의 중심을 아테네로 확립했으며, 군 지휘권을 제외하고 민주정치를 시행했다는 식이다. 왕이 되었으니 결혼도 서둘러야 했다. 흑해 연안에 사는 여전사 부족 아마조네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여왕 히폴리테, 혹은 여왕의 동생 안티오페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안티오페와 결혼했다는 것이 다수설이지만 로마로, 또 다른 곳으로 전파되면서 히폴리테로 바뀐 경우가 많다.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아테네 인근 숲에서 벌어지는 요정왕 오베론과 여왕 타티아나 부부의 대립이 기둥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바깥쪽으로는 테세우스와 히폴리테의 결혼이 둘러싸고 있다. 아테네의 장인들이 몰래 연극 연습을 하는 것도 테세우스와 히폴리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함이다. 첫 아내가 안티오페든 히폴리테든 테세우스는 일찌감치 첫 아내를 잃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히폴리투스다.

두 번째로 맞이한 아내는 파이드라다. 얄궂게도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버린 아리아드네의 동생이다. 파이드라는 사실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투스를 사랑했다. 그러나 숲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추종하는 히폴리투스가 눈길조차 주지 않자, 오히려 히폴리투스가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테세우스에게 거짓말을 한다. 이에 격분한 테세우스는 포세이돈에게 아들을 벌할 것을 탄원하고, 히폴리투스는 포세이돈이 보낸 괴물을 보고 놀란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 소식을 들은 파이드라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파이드라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인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투스’, 프랑스 고전극인 장 라신의 ‘페드라’에 묘사되어 있지만, 줄스 다신 감독의 영화 ‘페드라’(1962)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테세우스는 그리스 북부의 영웅 페이리토스와의 우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라이벌로서 겨뤄보고자 만났지만, 곧 서로 호감을 갖는다. 테세우스가 아내를 잃은 후, 함께 스파르타의 미녀 헬레네를 납치하려다 너무 어린 나머지 포기한 적이 있고, 지하세계의 왕비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려다 하데스의 분노를 사서 붙잡히기도 했다. 그중 테세우스만이 헤라클레스에게 구출돼 지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테세우스가 지하세계에 다녀온 일을 파이드라, 히폴리투스와의 일화와 함께 엮은 오페라가 라신의 극을 원작으로 한 장 필리프 라모의 ‘이폴리트와 아리시’(1733)다. 뒤늦게 오페라 장르에 뛰어든 라모가 50세 나이로 완성한 오페라 초기작이며 이 작품으로 라모는 ‘우리 시대의 오르페우스’라는 격찬을 받는다. 프랑스 궁정 오페라의 거장인 륄리가 반세기 전에 확립한 ‘음악 비극’ 양식을 사용했지만, 륄리 지지파 중에는 라모의 새 오페라가 륄리 스타일의 전통을 파괴했다고 여긴 사람도 많았다. 이에 대해 라모는 “륄리를 닮고자 노력하지만 똑같이 따라 하지는 않는다. 륄리처럼 지극히 아름답고 단순한, 자연 그대로 모습을 모델로 삼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하며 논란을 일축했다. 제목에 등장하는 아리시는 히폴리투스가 사랑한 연인의 이름이며, 신화의 원래 이야기와 다르게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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