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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 오페라단
감동 가득한 무대를 위하여
글 김선영 기자 2/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2월호 - 전체 보기 )



2007년 ‘감동이 있는 공연’을 모토로 첫발을 내디딘 이강호 단장과 라벨라 오페라단은 초창기 소극장 오페라를 시작으로 지난해 올린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에 이르기까지, 무대 위에 다채로운 팔레트를 펼쳐왔다. 특히 ‘안드레아 셰니에’는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오페라단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올해 1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이강호 단장의 목소리에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가득했다.

“지난해 ‘안드레아 셰니에’를 관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한 관객을 봤습니다. 오페라를 지루하거나 어렵게 여기는 대중이 공연장에서 감동을 받기까지, 어떤 무대가 만들어져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요. 그저 ‘오페라 한 작품을 올렸다’는 것에 만족하기보다 ‘어떤 오페라를,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해야 할 시기죠. 그래서 ‘감동이 있는 오페라’에서 더 나아가 ‘믿고 보는 오페라’를 기치로 내세우며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오페라를 잘 모르는 대중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작품과 무대를 늘 염두에 뒀던 이강호 단장은 창단 초기, 소극장 오페라에 전념했다. 물론 신생 오페라단으로서 재정적인 모험이 쉽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랜드 오페라를 올리지 않는 라벨라 오페라단을 업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흔히 ‘오페라 대중화’를 말할 때 등장인물이 망가지거나 재밌는 내용을 다뤄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오페라가 예술성과 완성도를 추구할 때 관객이 감동받고 마니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관객의 심리적·경제적 부담을 감안해 선택이 용이한 소극장으로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대극장 오페라를 안 하면 실력이 없다고 판단하더군요. 5주년 때 용기를 내어 ‘돈 조반니’를 올렸는데, 흥행에 실패했어요. 그땐 그랜드 오페라를 올리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잘 몰랐죠.”

이후 ‘일 트로바토레’(2013), ‘라 보엠’(2014)을 제작해 매년 올리면서 프로덕션 노하우를 꾸준히 쌓아온 라벨라 오페라단은 2015년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 한국 초연으로 도전 위에 자신감을 내걸었고, 2016년 ‘안드레아 셰니에’로 오페라단의 개성을 인정받았다.


▲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2015)

라벨라 오페라단의 10년 발자취

2007년 창단 공연을 시작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라벨라 오페라단의 무대에는 우리네 성악진과 제작진이 모여 꿈과 열정으로 쌓아올린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간 오페라단 역사 가운데 기록적인 작품과 인상적인 순간들을 이강호 단장과 함께 살펴봤다.

2015년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 영국의 헨리 8세와 왕비 자리에 오른 지 1000일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앤 볼린의 실화로 소재로 한 작품은 공연 당시 한국 초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성악 면에서도 상당한 난이도를 가졌거니와 극적 전개에 따른 화려한 무대장치가 요구되어 해외에서도 자주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기에 당시 공연을 통해 라벨라 오페라단의 이름을 오페라 애호가들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주역인 안나 볼레나 역에 소프라노 강혜명, 엔리코 왕을 베이스 양석진이 맡았고 이회수 연출, 양진모 지휘에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아 벨칸토 오페라의 서정성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여기에 작품을 위해 새로이 제작한 르네상스풍 의상은 작품의 완성도에 한층 힘을 실어주었다. 이강호 단장은 “유명 작품을 답습하는 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품으로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흥행과 성공의 열쇠”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안나 볼레나’는 당시 개막 7개월 전, 일반 관객의 펀딩을 통해 공연을 제작하는 ‘안나 볼레나 펀드’를 진행하며 이래적인 제작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목표액 1억 원으로 펀드에 가입한 관객은 공연 티켓을 정상가보다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고,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그 때문에 ‘안나 볼레나’는 작품성뿐 아니라 국내 오페라계의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단계부터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이색적인 계기로 평가받았다.

2016년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스케일 면에서 민간 오페라단이 쉽게 소화할 수 없는 대작이다. 그보다 한 해 전,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이래 처음 이 작품을 올린 사실을 상기하더라도 민간 오페라단으로선 쉽사리 도전하기 어려운 수준. 이강호 단장은 한국 출신 제작진과 성악진으로 프로덕션을 꾸렸다. “한국 오페라계의 성장을 위해선 우리 성악가는 물론 연출가, 지휘자가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테너 이정원·국윤종, 소프라노 김유섬·오희진, 바리톤 박경준·장성일로 구성된 성악진과 ‘안나 볼레나’에 이어 함께 호흡을 맞춘 연출 이회수, 지휘 양진모, 여기에 경기 필의 연주가 더해졌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 전면에 채워진 프랑스 대혁명 인권 선언문은 혁명의 메시지 무게감 있게 전달했고, 1막부터 4막에 걸쳐 진행되는 사건과 인물의 심리 전개는 무대미술과 조명의 효과적인 배치로 극적 긴장이 더욱 극대화됐다. 라벨라 오페라단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같은 해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작품상 부문 대상, 한국음악비평가협회 선정 제18회 한국음악대상, 뉴데일리 선정 2016 한국음악대상을 수상했다. 이강호 단장은 “오페라는 어렵고 재미없다는 막연한 편견을 깨는 것, 오페라를 잘 모르는 관객도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도전의 무대”로 이 작품을 기억했다.

깊고 넓어지는, 다가올 작품과 무대


▲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2016)

지난 몇 년간 그랜드 오페라를 올려온 라벨라 오페라단과 이강호 단장은 소극장 오페라와 창작 오페라에 대한 관심과 노력 또한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 ‘심청’ 이야기를 소재로 최현석이 대본과 작곡을 맡은 ‘불량심청’(2016)이다. 오페라단 고유 레퍼토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대중성을 지닌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원작에서 심청과 뺑덕어멈의 성격을 뒤바꿔 서사에 흥미를 더한 오페라를 만들었다.

“2015년 ‘청 vs 뺑’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선보였고, 작년부턴 대중이 좀 더 쉽게 작품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제목을 바꿨어요. 오페라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작품에서 실험하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매년 공연할 생각입니다.”

라벨라 오페라단이 역점을 두고 있는 또 다른 영역은 인재양성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라벨라 성악 콩쿠르, 올해 6기를 선발하는 오페라 스튜디오는 미래를 내다보는 동시에 우리 오페라의 생태계를 가꿔나가기 위한 이강호 단장의 비전에서 비롯됐다.

오페라 스튜디오는 장학 제도로 운영된다. 학연이나 해외 유학 경험 같은 조건들을 배제한 채 매년 오디션을 통해 실력과 가능성으로 뽑힌 10명가량의 인원은 일련의 교육과정을 거친 뒤, 소극장 오페라 무대에 오른다. 공연 개런티를 받으며 프로 성악가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작품에는 스튜디오 출신뿐 아니라 기존 무대에서 활동 중인 성악가들도 함께 오른다.

“많은 성악학도가 유명하고 큰 무대에 서는 걸 꿈꾸죠. 하지만 유럽이든 한국이든 처음부터 대극장 무대에 서기란 쉽지 않아요. 작지만, 실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극장에서 충분한 과정을 거친 뒤에 큰 무대로 가야죠. 그런 시스템이 우리 오페라계에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페라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라벨라 오페라단은 올해 9회를 맞이하는 성악 콩쿠르를 통해 실력 있는 한국 출신 성악학도를 해외에 소개하는 장을 마련한다. 올해부터 린츠 성악 콩쿠르의 한국 지역 예선을 주관하게 된 것. 1999년 시작된 린츠 성악 콩쿠르는 매년 가을, 브루크너 페스티벌 기간 중 열리는데, 세계 14개국에서 현지 예선을 통과한 이들이 린츠에서 준결승과 결승을 치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테너 김우경도 린츠 콩쿠르 출신. 30여 명으로 구성된 콩쿠르 심사위원이 대부분 유럽의 주요 오페라 극장과 에이전시 관계자이기에, 대회 진출은 수상뿐 아니라 해외 주요 무대에 데뷔할 수 있는 기회와 직결된다. 지난 2016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이현재가 3위 및 특별상을 수상했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초청 및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디션 자격을 얻었다.

라벨라 오페라단은 매년 봄,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는 린츠 성악 콩쿠르 지역 예선 중 한국 예선을 올해부터 주관해 라벨라 성악 콩쿠르와 공동으로 치른다. 올해 대회는 아티스트·영아티스트 2개 부문으로 나누어 치르며, 지역 예선을 통과해 린츠에서 준결승을 치루는 이들의 항공료는 라벨라 오페라단이 지원하게 된다.

“우리 성악가들의 실력은, 유학 없이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다고 봅니다. 다만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이들이 설 수 있는, 재능을 갈고닦을 수 있는 국내 무대가 없다는 것이 문제죠. 오페라 스튜디오뿐 아니라 라벨라 오페라단이 주관하는 린츠 성악 콩쿠르 한국 예선을 통해 우리 성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계기가 조금씩 생겨나가길 바랍니다.”

2017년 라벨라 오페라단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상반기 중 10주년 갈라 콘서트와 린츠 성악 콩쿠르 한국 예선을 치르고 나면, 하반기에는 도니체티 ‘돈 파스콸레’와 창작 오페라 최현석 ‘불량심청’을 9월 한 달 간 교차하며 장기공연으로 올린다. 이후 11월 17~19일 모차르트 ‘돈 조반니’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리는 것으로 창단 10주년이 마무리된다. 올 한 해 라벨라 오페라단의 발걸음이 그 이름처럼 ‘아름다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무대와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라벨라 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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