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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하우스토크 취재 현장
‘다름’이 아닌 ‘같음’을 위하여
글 이재연(음악 칼럼니스트) 2/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2월호 - 전체 보기 )



 


▲ 피아니스트 김철웅


“2009년에 카네기홀에서 연주했는데, 하우스콘서트는 그때보다 더 떨립니다. 관객의 미세한 숨소리 하나까지 다 들리거든요.”

지난 1월 11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하우스토크에서 피아니스트 김철웅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1월 24일, 그는 성수동에 자리한 카페 성수에서 갖는 8년 만의 독주회를 앞두고, 관객과 밀도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하우스토크를 찾았다. 진행은 하우스콘서트의 대표이자 작곡가인 박창수가 맡았다. 매서운 날씨임에도 김철웅을 보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상기된 표정을 한 이들이 하나둘 예술가의집을 찾았다.

김철웅은 탈북한 천재 피아니스트다. 8세에 명문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조기 입학했고, 러시아 차이콥스키 음악원 졸업 후 25세에 최연소 평양국립교향악단 수석 피아니스트로 활약했다. 2002년부터는 대한민국에 들어와 여러 무대를 거치며 한세대학교·백제예술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고, 다양한 공연 기획을 주도했다. 요즘은 각종 방송에서 활발한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우스토크 내내, 그는 진솔하고 호방한 모습과 유창한 언변으로 청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피아니스트로서 대중매체에 너무 많이 노출되는 게 아닌가요?”라는 박창수 대표의 우려 섞인 질문에 김철웅은 단호히 답했다.

“현대사회에서 연주자가 연주로만 먹고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북한에선 피아노만 치면 됐는데, 이젠 먹고사는 일까지 걱정해야 하거든요. 가장이기도 하니까요. 방송을 통해 또 다른 저를 발견합니다만, 방송 일을 재밌게 하면서도 피아니스트라는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겠죠.”

그는 ‘피아니스트’보다 ‘탈북’에 방점을 찍어 선입견 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게 처음엔 불편하고 싫었단다. 그러나 ‘탈북’이라는 수식어는 탈피할 수 없는 정체성 그 자체임을 인정하고, ‘피할 수 없을 땐 즐겨라’라는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탈북 음악가이기에 갖는 홍보 효과도 있어 지금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본인이 북한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비춰질까 하는 우려도 존재한다. 북한에도 정말 실력이 출중한 피아니스트가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성실히 살아야겠다는 엄격한 자기반성을 하기도 한다고. 여유롭고 대범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아가는 근성이 돋보였다.


▲ 진행자 박창수

어떤 공연을 기획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세 차례에 걸쳐 ‘남북 가곡의 밤’을 기획했습니다. 테마를 정해 남한과 북한의 가곡을 번갈아 선보였죠. 삼천리금수강산에 관한 곡을 넣거나, 남한의 춘향가와 북한의 춘향가를 비교해보기도 했고요. 반응도 좋고 의미 있는 무대였지만, 지원 문제 등의 난항을 겪으면서 계속 이어나가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또 하고 싶네요. 공연 기획이라는 게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습니다.(웃음)”

그는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의 통일 교육은 체제의 다름만을 강조합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 우리 민족의 동일성을 보여드리고자 했어요. ‘가곡의 밤’은 그런 의도가 잘 반영된 무대였고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관심을 보내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임을 절감했습니다. 북한에서 온 피아니스트로서의 사명감을 느꼈달까요.”

통일에 관한 그의 견해도 경청할 만한 대목이었다. “내면에 자리한 북한의 고정된 이미지를 없애기 전에는 통일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북한 사람들은 별개로 봐야 해요. 통일의 경제 효과 혹은 정치적 부분을 생각하기 전에 선입견을 깨야 합니다. 한쪽이 양보 혹은 흡수한다고 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결국 우리에게 음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덧붙였다. “올바른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음악이에요. 지금 남한과 북한은 말이 통한다는 사실 외에 아무런 접점이 없잖아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먼 나라입니다. 개인적으로 북한 음악의 악보를 4만장 정도 수집해 갖고 있습니다만, 북한의 자료 중에서도 가치 있는 자산이 많고 연구해볼 만한 것이 상당합니다. 문화의 영역에서 훌륭함의 선후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듯, 성격이 다른 문화를 통해 서로를 좀 더 알아갔으면 합니다.” 예술가의 결이 아닌, 정책가 같은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답변이었다.

이어 김철웅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2주 후에 가질 독주회에서 연주할 쇼팽·드뷔시와 북한 작곡가의 작품 중 북한의 피아니스트 전건이 편곡한 ‘아리랑’을 선보였다. 모던함과 클래식함이 공존하는 곡이었다. 은은하고 서정적인 도입부로 시작해 점점 입체적인 아르페지오를 가미하며 변주해나갔다. 물결이 퍼지는 듯한 리듬이 인상적이었고, 계속된 전조로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는 듯한 화려함이 가미됐다. 현란한 기교를 요하는 주선율의 변주가 이어지다 종국엔 차분하게 마무리됐다. ‘리스트나 쇼팽이 아리랑을 편곡했다면 이런 톤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다채롭고 세련된 아리랑이었다.

연주 이후 그에게 한 청중은 ‘북한에서는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연주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북한은 월급에서 문화비를 공제해줍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퇴근 후 단체 관람을 하는 편이죠. 노동자도 있고 농민도 있는데, 관객의 편차가 거의 없습니다. 북한 예술인들은 덕분에 관객 걱정은 하지 않아요.”

몇몇 공연을 제외하고는 초대권으로 객석을 채워야 하는 우리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북한의 아티스트들 사이에도 새롭고 실험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흐름이 있느냐’는 질문이 뒤따랐다.

“1947년 9월 9일 북한 창립 이후, 안타깝게도 북한의 음악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바뀔 수도 없고요. 외국 유학을 다녀오고 그들의 문물을 교육받더라도 실질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체제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시도는 절대로 나올 수 없죠. 음악의 역할은 선전과 선동의 도구일 뿐입니다. 1980년대 김정일 체제로 바뀌면서 전면적인 세뇌와 수령 우상화가 시작됐습니다. 북한의 문예정책은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 것’이고, 익숙한 음악에 사회주의의 우월성, 수령에 대한 존경심을 넣습니다. 또 모든 예술 작품은 국가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되어야 발표할 수 있습니다.” 북한 체제의 견고함과 고집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 민주주의. 그 자유로움 안에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예술가들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마지막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더 열정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 설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이 약 5670명 정도 되는데, 그들은 본인이 지닌 재능을 모릅니다.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발굴해 음악교육을 시키고 싶어요. 음악은 가장 효과적인 정서 안정제 역할을 하잖아요. 오케스트라라는 장(場)을 통해 낯선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법과 양보, 배려를 배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이들이 음악을 통한 평화의 상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이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터, 독일 베를린 장벽, 더 크게는 UN 무대에서 연주함으로써 말이죠.”

말 한 마디마다 김철웅의 포부와 패기가 오롯이 배어 있어 필자 또한,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 듯했다. 대체 불가능한 김철웅식 결과물을 우리에게 선보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피아니스트 김철웅과 함께한 하우스토크는 대체로 진중하면서도, 간혹 빛나는 유머가 더해져 유쾌하고 훈훈한, 정감어린 자리였다. 그는 수많은 색깔을 지니고 변신을 거듭하는 카멜레온 같았다. 호기심 많고 열정적인 태도, 행동가다운 다부진 모습으로 시종일관 반짝거렸다. 그러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예술가의 오라가 뿜어났다. 돌아가는 길, 필자는 그의 다종다양한 재능이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지 궁금해졌다.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모습을 상상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진 전성빈(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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