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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혁
소년, 음악을 먹고 자라다
글 이정은 기자 2/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2월호 - 전체 보기 )




2000년 서울 출생
2012년 제8회 쇼팽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우승
2014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부속 중앙음악학교 입학
2015년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3위
2016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입학
제10회 파데레프스키 피아노 콩쿠르 우승

6시간의 시차를 건너 모스크바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사진만큼이나 앳되었다. 열일곱 살. 말투는 사뭇 의젓했지만 아직 변성기의 정점에 놓인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튜브에서 본 그의 능란한 연주가 묘하게 오버랩됐다.

어린 시절 국내 콩쿠르 1위를 휩쓸던 이혁은 열두 살 나이에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눈여겨본 두산연강재단은 2012년부터 그를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11월, 이혁은 폴란드의 파데레프스키 콩쿠르에서 주니어가 아닌 성인으로서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4년째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음악적 기반을 착실하게 다져나가고 있다. 작은 새싹 같던 어린 소년은 이제 막 굵직한 가지를 뻗기 시작하는 참이다.

나, 이혁의 시작
두 살 무렵부터 음악 소리가 들려오면 몸을 흔들고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놀았다고 해요. 어머니가 장난감 키보드를 가지고 놀아주셨는데, 어느 날 제가 모든 건반의 음을 보지 않고도 다 맞혔다고 해요. 장난감 바이올린을 가지고 놀 때도 동요의 선율을 알려주면 바로 따라서 잘 켰다고 합니다. 세 살부터 동네에 있는 음악교실에 놀러 다녔고, 그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이란 악기를 접하게 된 것이 제 음악의 시작이었어요.

차이콥스키 음악원 생활
현재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재학 중이에요. 제 스승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옵친니코프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특히 음악을 향한 그분의 한결같은 진실함은 저에게 많은 자극이 되고 있습니다. 항상 자만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교수님은 작품에 숨은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세요. 동시에 그 속에는 자신만의 개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도요. 또한 피아노 전공 수업뿐 아니라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과목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화성학, 음악사, 실내악 수업 등 모든 것들이 제가 음악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 충분한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해요.

연주자로서 전환점이 된 순간
지난해 11월 폴란드에서 있었던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결선 무대였어요. 연주를 마치자 많은 관객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환호했죠. 제가 준비한 것들을 잘 연주할 수 있어 기뻤는데, 청중이 다 같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제가 연주자로서 역할에 충실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순간 많이 행복했습니다.

평단과 대중에게 꼭 듣고 싶은 말
최대한 작곡가의 원곡을 건드리지 않되, 자신만의 해석이 잘 어우러진 개성 있는 연주를 보여준다는 평을 듣고 싶어요. 저는 지금보다 항상 조금씩 더 발전하는 연주자로 청중의 마음속에 남고 싶습니다. 반대로 작곡가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연주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음반뿐 아니라 유튜브 등 다양한 경로로 많은 연주를 듣는데, 지금은 호로비츠의 연주가 참 좋아요. 독특한 방식으로 연주하면서도 그 음색은 너무나 아름답잖아요. 동시에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고요. 저도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피아니스트로서 라흐마니노프도 좋아해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
그동안 쇼팽이나 브람스 등 낭만 작품을 많이 연주해왔는데, 앞으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더 깊이 몰두하고 싶어요. 특히 후기 소나타들요. 한편으로는 라흐마니노프 같은 스케일이 큰 곡에 욕심이 나기도 해요.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당시 어느 심사위원이 제게 ‘지금 네 나이에서는 좀 더 화려한 작품을 연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거든요. 결국 레퍼토리를 점차 다양하게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래야 그 안에서 제게 잘 맞는 것을 찾게 될 테니까요.

앙상블에 대한 관심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블라디미르 옵친니코프 교수님과 피아노 듀엣을 해보고 싶어요. 실내악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음악적 이해를 같이하고 서로에 대한 조화로운 배려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모스크바에서의 일상
연습 이외의 시간에는 취미로 체스를 종종 둬요. 예전부터 즐기던 취미예요. 이곳 러시아 사람들은 체스를 참 좋아하더라고요. 체스를 통해 여러 분야의 사람과 교류할 수 있어서, 여유로울 땐 체스에 관한 책을 보며 공부를 하거나 인터넷에서 온라인 체스 대전을 즐기기도 합니다. 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저만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보면서 즐거움을 찾기도 합니다.

2017년의 계획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우승으로 여러 곳에서 연주회 일정이 계획돼 있습니다. 곧 일본에서 공연을 하고, 8월에는 폴란드의 쇼팽 페스티벌에 참여합니다. 그 외에 폴란드 주요 도시와 미국, 네덜란드 등에서 연주 일정이 있습니다. 이 연주회들을 통해 제가 또 한 번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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