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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허용순
봄에 피어날 비극적 사랑의 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2/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2월호 - 전체 보기 )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없었다면 우리는 ‘사랑’을 논하기 위해 그들을 발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눈물의 원천지이자, 오늘날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샘물이다. 허용순 역시 전막 발레를 만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의 눈물이 담긴 샘물을 들이켰다.

허용순은 선화예고 재학 중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레, 스위스 취리히 발레와 바젤 발레를 거쳐 현재 독일 뒤셀도르프에 정착하여 안무가 및 도이치오퍼 암 라인 발레학교 교사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마츠 에크가 안무한 ‘카르멘’에서 동양 출신으로는 처음 타이틀 롤을 맡으며 무용수로 ‘빛났고’, 마츠 에크·윌리엄 포사이스·우베 숄츠 등 안무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안무 기법으로 무용수들을 ‘빛내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녀가 빚은 33편의 작품은 부지런히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2007년 독일 북부에 자리한 슈베린 발레에 의해 초연된 허용순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 일부는 2011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 공연’에서 황혜민·엄재용 커플(유니버설발레단)의 파드되로 그 일부를 드러냈다. 약 11분 동안 관객은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며 숨죽였다. 그리고 4월에 180분 분량의 전막(3막)이 광주시립발레단(예술감독 신순주)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합작으로 광주의 봄을 수놓는다.


▲ 아우크스부르크 발레의 ‘로미오와 줄리엣’

당신이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국에 처음으로 오른다.

한국 초연이라는 것 외에 내게는 의미가 많은 작품이다. 2007년에 슈베린 발레에 의해 초연되었는데, 그 전에도 30~40분 분량의 작품들을 안무하기 했지만, 전막 발레 창작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슈베린 발레에서 의뢰할 때, 스토리가 강한 작품을 원했다. 나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를 좋아했고,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좋아하여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작품을 갈구하는 광주시립발레단 신순주 예술감독의 의욕,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셰익스피어 시리즈와 맞물리며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감사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케네스 맥밀런·존 크랭코 등 기존 버전도 많고, 한국에도 여러 버전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안무할 때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안무가들이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내가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캐퓰릿 가와 몬터규 가의 대립이 일어나는 곳은 당구장이고, 2막도 도심 속 광장이 배경이다. 특정 시간대를 재현했다기보다 모던한 요소들을 통해 오늘의 시간대로 작품을 끌어왔다. 140~150분에 달하는 프로코피예프의 음악도 부분적으로 사용한다. 2007년 슈베린 발레에서 초연 후 반응이 좋아 그 극장의 세 번째 시즌까지 매번 공연되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발레에 의해 또다시 오르며 국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우크스부르크 극장의 2011/2012 시즌에 ‘카르미나 부라나’를 선보인 적이 있다. 당시 깊은 인상을 받은 아우크스부르크 발레의 예술감독 로버트 콘의 초청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시 올릴 수 있었다. 아우크스부르크 발레는 바이에른 발레가 있는 뮌헨과 30분, 강수진이 활약했던 슈투트가르트와 40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18~22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발레단이었는데, 뮌헨과 슈투트가르트 사이에서 콘 감독은 아우크스부르크 발레만의 특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로미오와 줄리엣’을 택한 것이다. 존 크랭코 버전 등을 포함하여 여러 버전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2014년에 다시 올리자는 제안을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것은 초연 버전인가, 개작 버전인가?

2007년 초연 이후 내 안무의 방향도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아우크스부르크 발레 버전에서 의상과 세트 등을 변형했다. 무용수들의 동작과 움직임, 음악에서 크게 바뀐 것은 없지만 의상, 조명, 세트는 절반 이상 바꾸었다. 수정과 재안무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으로서 안정감을 갖추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와 달라진 것이 있는가?

연극의 이야기를 꼼꼼히 따라간다. 1막, 인터미션, 2·3막으로 구성되었다.

안무의 성향을 보니 캐릭터의 성격을 강하게 가져간다. 코르 드 발레(군무)에서도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길 원한다고 들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하지만 머큐시오의 존재감이 크다. 그는 로미오의 친구로, 두 가문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자 캐퓰릿 가의 티발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격분한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 티발트를 죽인다. 아우크스부르크 발레의 공연에서 많은 이가 머큐시오 역이 로미오인 줄 알았단다. 그만큼 공을 들인 거지. 머큐시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도 그렇다. 그의 죽음이 곧 로미오의 복수심을 불태우고 비극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지 않는가. 머큐시오는 줄리엣이 속한 캐퓰릿 가문도, 로미오와 속한 몬터규 가문도 아니다. 자신이 두 가문의 싸움에 껴서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씁쓸함을 표정과 춤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 캐퓰릿 가와 몬터규 가의 대립은 당구장에서 시작된다

작품을 만들 때 특정 습관 같은 것이 있는가?

내 자신을 연습실에 감금시킨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드는 석 달 동안 나는 늘 혼자였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몸에 입고, 각각의 캐릭터가 되어 춤을 추고,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모니터했다.

영감을 받을 때는?

무용수들의 특징에서 영감을 받는다. 발레단과 무용수들의 느낌이 각각 다르지 않은가. 당연히 광주시립발레단도 아우크스부르크 발레와 느낌이 다르다.

캐스팅은 누구인가?

박경애(광주시립발레단 상임)와 김주원(특별초청)이 줄리엣 역을, 보그단 플로피누(광주시립발레단 비상임)와 윤전일(특별초청)이 로미오 역을 맡는다. 로미오 역과 줄리엣 역에 맞는 최고 무용수가 나타나길 늘 바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역할을 맡음으로써 무용수와 발레단의 수준이 향상되는 것이다.

로미오 역과 줄리엣 역을 위해 무용수에게 필요한 조건은?

줄리엣은 당연히 예뻐야 하고.(웃음) 그런데 처음부터 완벽한 무용수는 없다. 광주시립발레단에서 오디션을 하면서 무용수들에게 많은 것을 요청했다. 클래식 발레의 테크닉은 물론 바닥을 구르거나 감정 표현에 있어 온몸을 다 쓰는 것 등. 예를 들어 ‘나와 결혼해달라’는 표현은 연극의 대사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작품에는 ‘가짜’가 없다. ‘진짜’로 만지고, 밀치고, 쓰러뜨리고, 넘어져야 한다. 나도 늘 무용수들에게 그 ‘진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안무가란 지도만 하는 게 아니라 무용수가 ‘아!’라는 감탄사와 함께 감동받고 바로 움직임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무용수와 발레단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광주에만 오른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16년에 광주시립발레단은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많은 이가 광주에 시립발레단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서 줄곧 생활해왔기 때문에 광주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다. 이번에 광주시립발레단과 함께한다고 하니 많은 지인이 발레단의 수준을 올려놓는 데 큰 힘이 되라며 응원을 보냈다. 이 과정은 참 힘들다. 하지만 발레단이나 무용단과 함께한다는 것은 늘 즐겁다. 나는 워커홀릭이다. 연습 때는 잘 쉬지도 않는다. 내가 에너지가 끊기는 순간이 무용수들에게 겨우 주어지는 잠깐의 휴식이다.(웃음) 함께 일하면서 내가 원하던 것이 그들의 춤으로 나올 때, 그리고 그것이 그들 역시 꿈꾸고 바라던 수준일 때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가?

8월에 미국 털사 발레에, 9월에 아우크스부르크 발레에 초연 작품을 선보인다. 2018년 2월에는 일본에서 공연이 있다. 광주에 오는 동안 일본에도 틈틈이 방문하여 미리 세팅을 해놓아야 한다.

“사랑이 나를 여기로 이끌어 왔소.”(로미오)
“밤의 장막이 가려 주지 않았더라면 제 뺨을 붉게 물들였을 거예요. 왜냐면 당신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사랑의 고백을 엿들었으니까요.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제 가슴 깊은 속에서부터 당신을 사랑하니까요.”(줄리엣)

사랑에 관한 주옥같은 대사들. 아니 사랑을 담았기 때문에 이미 주옥이 되어버린 대사와 감정들. 그것이 허용순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춤춘다. 4월의 봄, 광주에서.

사진 박진호(studio BoB)

국립아시아문화전당·광주시립발레단 공동기획 ‘로미오와 줄리엣’
4월 7~8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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