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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2/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2월호 - 전체 보기 )



1월 10~2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영리하고 충실한 창작의 탄생


뮤지컬 산업의 위기가 심심찮게 언론지상에 오르내린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파동에 이어 올해는 부정청탁금지법 그리고 국정 농단 사건까지 이어지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화예술계의 소비 심리 위축을 점점 가속화하는 형세다. 일부 대형 제작사들 중심으로 이뤄진 수입 뮤지컬 시장의 급속한 팽창이 한국 뮤지컬 산업의 내실을 다지지 못한 채 겉모습만 비대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인기 배우와 외국 원작자만 배 불리는 시장이라는 하소연이다.

결국 활로는 창작 뮤지컬에서 찾아야 한다. 유명 연예인이나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워 단기간 ‘티켓 팔기’에만 집중하기보다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숙성되어 해외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국내 공연계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다품종 한탕주의’보다 ‘소품종 우수 장기 공연’의 등장을 꿈꿔야 한다. 이 과정 가운데 실력 있는 창작 집단을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이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이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창작 뮤지컬 지원 프로그램 등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뮤지컬 ‘레드북’은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의 우수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인기를 누리던 작가 한정석과 작곡가 이선영의 작품으로 이들 콤비가 거의 4년여 만에 발표한 신작이다. 당연히 무대가 올려지기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기대를 모았다. 아이돌이 아닌 제작진에 눈길을 돌리는 시장의 진화도 반가운 풍경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작품은 영리하고 재미있다. 요즘 대중, 특히 여성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로맨스 요소가 모두 담겨 있어서다. 성별에 따른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이 극심하던 19세기 빅토리안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일탈과 파격을 시도한 여성 작가 안나(유리아 분)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며 점차 변화하는 남자 브라운(박은석 분)의 모습은 웬만한 드라마 속 커플보다 달콤하고 알콩달콩한 연애 이야기를 솔깃하게 들려준다. ‘우울할 땐 야한 상상을 한다’는 극적 설정은 은근히 자극적이고 은밀한 쾌락을 떠올리게 하지만, 무대에서 적당한 수준과 수위를 적절히 활용하는 영악함도 잊지 않는다. 스테레오 타입화된, ‘변태스럽고 사악한’ 평론가 딕 존슨(김태한 분), 자유와 낭만을 추구하는 여성 문학회를 이끄는 여장 남자 로렐라이(지현준 분) 등은 참신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설정하는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수행해낸다.

요즘 대학로 뮤지컬계의 기대주로 손꼽히는 유리아의 연기와 이미지는 이번 무대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특유의 지적이고 발랄한 노래와 움직임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얼마 전 그녀가 선보인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과 살짝 겹쳐 보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감성의 여주인공을 그만큼 잘 묘사해내는 배우라는 의미의 방증일 것이다.

뮤지컬 ‘레드북’은 영화 ‘음란서생’을 떠올리게 한다. ‘성’에 대한 시대적 금기와 폭력으로부터 인간 사고의 자유와 본성을 되찾으려 한다는 줄거리가 엇비슷한 탓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는 남성적인 시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반면, 뮤지컬은 여성의 눈으로 보여주는 세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의 편견이 단지 ‘성적 차별’만이 전부가 아님을 눈치 챈다면 감상은 더욱 확장될 수도 있다. 좋은 첫걸음을 내디딘 제작진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Vibe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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