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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규연
음악은 어떻게 깊어지는가
글 국지연 기자, 서주원(음악 칼럼니스트) 1/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1월호 - 전체 보기 )




피아니스트 김규연은 예원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성으로 두각을 나타낸 연주자다. 당시 그와 함께 무대에서 주목받았던 음악도들 역시 지금 다양한 무대에서 활발히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추구하는 음악 세계는 서로 다르다. 화려한 피아니즘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기획 연주로 눈과 귀를 압도하는 연주자도 있다. 그에 비해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음악 세계는 천천히 흘러왔다. 시냇물처럼 잔잔히 흐르는 것 같다가 모퉁이를 돌아 휘몰아치기도 하고, 다시 고요히 더 넓은 강을 향해 쉼 없이 흘렀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음악이 진정한 음악의 정수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건 2011년 클리블랜드 콩쿠르 수상 이후였다. 그녀는 이후 국내에서의 획일화된 연주행보 보다는 유럽과 미국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배우고 여행하며 삶 속에서 오롯이 담아야 할 진짜 경험들을 쌓았던 것 같다. 그녀의 슈만 연주에서 느껴지는 청초함, 슈베르트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고상함은 시간이 쌓여 드러나는 연륜과는 다른, 순수한 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다.

현재 뉴욕 맨해튼 음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중인 김규연은 2016년 11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라모와 슈베르트 작품들로 독주회를 열었고, 라모의 클라브생 모음곡과 슈베르트의 네 개의 즉흥곡 Op.90이 수록된 자신의 첫 음반도 출시했다.

삼십대에 보여줄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을 담았다는 김규연의 음악은 마치 한 편의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서정적이고 단아하다.

“한국에서의 연주는 늘 기대되고 왠지 마음이 따뜻해요. 이번 무대는 특히 제가 좋아하는 라모와 슈베르트 작품을 연주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참 좋았어요. 한국 연주 전에 프랑스에서도 같은 레퍼토리로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 한국에서 연주할 때는 프랑스 무대에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무대였어요. 슈베르트 작품은 연주할 때마다 해석이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데 그렇게 변화무쌍한 게 슈베르트 음악의 매력인 것 같아요.”

라모와 슈베르트 작품을 녹음한 그녀의 첫 음반작업 과정은 무대에서의 연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고 무척 색다른 경험이었다.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었어요. 녹음하면서 확실히 느낀 건 ‘난 완벽주의는 아닌가 보다’였어요.(웃음) 돋보기로 확대해 음악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고 또 다른 차원의 집중력이 요구되었어요. 같은 음악 작업이지만 연주와 녹음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음반 녹음하는 과정은 마치 감정을 새기는 기분이었어요.”

음반 작업을 함께 한 톤 마이스터 마우고자타 폴란스카는 완벽하고 집중력 있는 작업으로 이번 녹음을 절제와 섬세함이 돋보이는 음반으로 탄생시켰다.

“라모의 클라브생모음곡집은 예쁜 모음곡이고 멜로디가 쉽고 명징하게 다가와 대중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피아노로 연주할 때 특히 공간감을 십분 활용해 운동감 있게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주할 때 공연장의 건축적 측면도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죠. 음악은 어느 공간에서 어떤 울림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이탈리아 성당이나 공연장을 다니면서 음악과 건축의 연관 관계를 더 실제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요즘 김규연은 ‘생각’이라는 주제에 빠져 있다. 근래 재미있게 읽은 미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은 음이 어떻게 내면화되고 표현되고 상상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라모의 음악만 해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연주가 많이 달라지거든요. 장소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내가 흐르게 하고 싶은 방향,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지점, 에너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흥미롭죠. 요즘 자꾸 생각이 생각을 낳는 그런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지난 무대에서 연주한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은 어머니인 이경숙 역시 무대에 올렸던 작품으로 딸의 연주를 들은 그녀는 슈베르트의 해석이 다양할 수 있는 건 알았지만 딸과 엄마의 연주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한다.

“엄마의 연주는 저와는 또 다른 에너지가 있어요. 거침없고 자신감이 넘치죠. 아무래도 성격도 다르고 연륜도 다르니 음악이 다른 건 당연한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슈베르트를 연주할 때 그가 음악 속에 담고 싶었던 조용한 여백들을 담담히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시적인 영화를 좋아하고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걸 좋아하는 그녀. 내면의 상상력, 그리고 그 순간의 에너지를 믿는다는 김규연의 음악은 그래서 순수한 자연과 많이 닮았다. 그녀가 유학중 여행했던 이탈리아의 베니스, 미국의 뉴욕,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유럽의 작은 마을까지 자연은 언제나 그녀에게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선물했다.

“2016년에는 좋은 일들이 많았어요. 학교에서 공부하는 과정과 연주를 함께 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별 탈 없이 잘해왔고, 공부를 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연주가 아닌 언어로 표현하는 걸 배운 점도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서른을 넘긴 제 모습, 제 생각을 담을 수 있었던 첫 음반이 나와서 무척 뿌듯해요. 그렇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렀네요. 여러 무대에서 했던 연주는 각각 다른 연주였지만 이제 그 순간의 제 상상력, 에너지를 믿게 되었어요.”

특히 2017년은 그녀에게 또 다른 의미를 남길 것으로 기대한다. 3월 17일 미국 카네기홀에서의 데뷔 무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규연이 연주한 라모와 슈베르트 음반을 꺼내 다시 들어본다. 고요하게 흐르는 목소리가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녀의 연주는 무엇이 음악을, 우리 인생을 깊게 하는 것인지 자꾸 생각하게 한다.

글 국지연 기자(ji@gaeksuk.com) 사진 오푸스

김규연의 새 앨범 | 라모와 슈베르트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실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화려한 수상소식과 함께 순간적으로 조명 받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주위가 쏠리는 까닭이다. 지나치게 짧은 환호만 탓할 수는 없다.

잘하는 연주자들은 많지만,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는 연주자는 많지 않다. 좋은 연주회는 드물지 않지만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 연주회는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이 잠시 소비된 후 없어진다. 내실을 다질 여유도 없이 자신을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김규연은 10대 시절부터 굵직한 콩쿠르에 입상하며 수많은 국내외 무대에서 연주활동을 했다. 겉으로는 여느 주목받는 피아니스트들의 행보와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음악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젊지만 깊고 격조 있다. 그녀는 도전적이거나 과시적이지 않다. 은근하지만 매혹적이다. 서서히 파고들어 어느 순간 완전히 사로잡는 연주력을 가졌다. 이제 30대 초반이 된 그녀가 2016년 11월 DUX 레이블에서 낸 첫 음반은 라모와 슈베르트이다. 그 음악에 고귀한 정신과 고결한 가치를 담아내는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다.

라모의 ‘클라브생 모음곡집’은 총 13곡으로 구성된 바로크 시대의 모음곡이다. 춤곡 4곡과 표제가 있는 성격소곡 3곡, 그리고 6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있다. 김규연의 연주는 라모의 작품에 담긴 아름다움을 진지하게 발굴하는 고고학자 같은 면모가 연상된다. 작품을 다루는 손길이 섬세하면서도 정성스럽다. 우아하고 견고한 알라망드, 대위법적 입체감이 돋보이는 쿠랑트, 그리고 진중하고 사색적인 사라방드 등 첫 세 춤곡에서 그녀는 트릴 하나 의미 없이 지나치지 않는다. 충분히 고심한 흔적이 정교한 몸짓에서 묻어난다. 묘사적인 제목이 붙는 ‘세 개의 손’, ‘의기양양한 여자’ 등에서는 유쾌하고 참신한 감각을 들려준다. 주제곡과 6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는 마지막 춤곡 가보트에서는 슬픔을 머금은 노래가 6개의 결을 따라 굽이친다. 되새길수록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듯, 그녀의 표현에 진부함이라는 이끼가 낄 틈이 없다.

슈베르트의 네 개의 즉흥곡 Op.90에서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균형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연주를 들려준다. 전체적인 흐름은 여유롭고 온화하다. 그러나 때때로 숨길 수 없는 격정들이 드러난다. 친밀하면서도 내밀하다. 내면의 풍요로움이 넘치는데 결코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1번은 첫 울림부터 청신한 매력이 가득하다. 2번은 고운 음들을 고르고 골라 엮어낸 듯 사랑스럽다. 3번은 관조적이다.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기보다 작품의 온전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한다. 그녀의 젊은 나이를 잊는 순간이다. 마지막 4번은 좀 더 고양되고 과감하다. 그러면서도 정제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라모와 슈베르트에는 공감과 동경이 담겨있다. 그녀에게 음악은 자신 안에 맺힌 것을 풀어내는 수단도, 완벽한 자신을 향해 몰아가는 도구도 아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찬탄하기 때문에 즐겁게 헌신한다. 그래서 이 음반 또한 웅변적이지 않고 시적이다. 완성도가 높지만 인간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만지는 음악에 감탄하고 귀하게 다룬다. 라모의 춤곡은 발을 땅에 견고히 디디고 있는 듯 충실하다. 슈베르트의 환상에는 깊은 곳까지 다다른 그녀의 시선이 느껴진다. 소위 소품들로 구성된 이 음반에 허황된 것은 결코 우리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이른 나이에 안 그녀의 성숙한 관점이 시종일관 드러난다. 그녀의 남다른 관심이 그녀에게 남다른 반응을 하게 한다. 겸손한 매혹의 세계다.

글 서주원(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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