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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20주년 허트리오
다시 떠나는 세 자매의 여정
글 국지연 기자 1/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1월호 - 전체 보기 )




2016년 12월 8일과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예술의전당 클래식 스타 시리즈 기획으로 허트리오의 연주회가 있었다. 2011년 개관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매년 개최되는 ‘클래식 스타 시리즈’는 최적의 공간에서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예술의전당 대표 실내악 프로그램이다. 2016년 창단 20주년을 맞은 허트리오(피아노 허승연, 바이올린 허희정, 첼로 허윤정)는 마르탱의 아일랜드 민요풍 멜로디에 의한 피아노 3중주와 이영조의 피아노 3중주를 위한 아리랑 페스티벌(위촉초연), 그리고 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 1번을 연주하며 세월과 함께 깊어진 자신들만의 앙상블을 선보였다. 허트리오는 1996년 예술의전당이 주최한 재외 유명연주자 초청연주회로 국내 데뷔했고 훌륭한 호흡으로 호평받아 이후 정기적으로 외교 통상부의 해외 파견 연주를 각 지역에서 가졌다. 2012년 첫 음반을 발매하고 그동안 다양한 무대에서 다양한 장르로 꾸준히 청중과 만나왔다. 연주가 있기 일주일 전 한참 연습 중인 허 트리오를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 피아니스트 허승연

창단 20주년을 맞는 소감이 어떤가요?

허승연 사실 저희는 한참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야 할 때 유학을 갔기 때문에 서로 친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허트리오 활동을 통해 음악을 함께 하면서 서로 더 잘 알게 되었고 가까워질 수 있었죠. 물론 연주회가 끝날 때마다 서로 ‘이게 마지막이야!’ 라고 말하며 헤어지곤 했지만요.(웃음)

허희정 언니 성격이 워낙 완벽주의자여서 허트리오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컸을지 몰라도, 전 창단할 때도 즐거웠고 20년 동안 함께 활동하면서도 힘든 순간보다는 행복하고 재미있는 순간이 더 많았어요. 1996년 10월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3중주를 처음 연주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땐 겁도 없이 어떻게 베토벤을 처음부터 연주하려 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저희가 데뷔무대를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했는데 이번 20주년 기념 연주 역시 특별히 홀의 울림이 실내악 연주를 하기에 좋은 IBK챔버홀에서 하게 외어 더없이 기쁘고 영광이에요.

허윤정 이런 마음을 표현할 때 감개무량하다고 해야 하나요? 그동안 우리가 함께해온 시간을 돌이켜보고 이번 20주년 기념 연주를 준비하면서 여기까지 오기 위해, 이런 보람과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 그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음악적인 것도 많이 배웠지만 연주가 있을 때마다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고 서로 들여다보며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과정 자체가 저에겐 축복이었던 것 같아요.

자매 트리오라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 텐데요.

허승연 저희 가족은 세 자매뿐 아니라 큰언니(허진선)가 하프시코드를 하고 부모님도 음악을 무척 좋아하세요. 어쩌면 서로 흩어져 있어도 끈끈하게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모두가 음악 안에 있었기 때문일지 몰라요.

허희정 가족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하고 이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전 그런 부담보다는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어요.

허윤정 트리오를 안 했다면 자매라도 서로 알아갈 기회가 적었을 거예요. 저희는 학창 시절부터 서로 떨어져 지낸 시간이 함께 있는 시간보다 훨씬 많았으니까요.

이번 창단 2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특별히 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 1번을 연주하는 이유가 있나요?

허승연 이번 무대가 그야말로 의미 있는 연주회이기 때문에 선곡했어요. 슈베르트 작품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갈증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슈베르트 후기 작품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아픔과 상처, 슬픔이 많이 드러나 있죠. 그렇지만 그는 그 아픔을 모두 아름다운 언어로 승화시키잖아요. 그런 메시지들을 이번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다면 저희 20년의 시간이 더 뜻깊게 새겨질 것 같아 선곡했어요. 앞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이 더 깊이 있는 음악이 될 것이란 걸 이번 연주로 확실히 말하고 싶기도 했고요. 지금 너무나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에 순수하고 고요한 평화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허희정 처음에 언니가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하면 어떨까 제안했을 때 ‘과연 우리가 이 곡을 잘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2016년 여름 스위스에서 합숙 연습을 하면서 오직 슈베르트에만 빠져 살게 되니 점점 슈베르트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슈베르트 음악은 마치 발가벗은 것처럼 아무 기댈 곳이 없어요. 특히 바이올린은 화려한 음색 때문에 슈베르트 음악 안에서는 자칫 소리가 뜰 수 있어서 어느 한순간도 집중력을 놓치면 안 될 만큼 긴장해야 해요. 함께 대화를 하는 것처럼 연주해야 그 아름다운 맛을 낼 수가 있죠.

허윤정 첼로는 마음의 소리와 많이 닮아서 깊은 것을 표현하기에 참 어울리는 악기예요. 슈베르트 역시 같이 연주를 하다 아름다운 어느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건 보통 첼로의 선율이 나왔을 때가 많아요. 슈베르트는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첼로의 선율을 많이 사용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두가 그 선율에 빠져드는 힘이 있어요.

허승연 슈베르트는 피아노 문헌에서도 중요한 레퍼토리를 차지하죠. 2년 전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들을 연주했을 때 만큼 슈베르트는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사랑하는 작곡가에요. 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를 연주할 때 피아노는 특히 모든 것을 내려놓는, 비운 상태가 되어야 해요. 물처럼 스며들어야 하죠. 지난 여름 이번 연주를 위해 유럽의 성을 빌려 오랜 시간 연습을 함께 하며 많은 땀을 흘렸어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이 가까워졌고, 슈베르트를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근래 허트리오가 한국에서 특별한 교육프로그램과 공연을 했었죠?

허승연 트리오 활동은 피아니스트로서뿐 아니라 교육자(스위스 취리히 음악원 종신 부총장)로서도 많은 상상력을 갖게 해요. 구체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지요. 2015년 ‘뮤직 알프스 in 성남’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스위스 취리히를 교류 도시로 삼아 성남시와 취리히 두 도시의 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상호 소통하는 문화예술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또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인 ‘뮤직 애니메이션 머신’ 콘서트 역시 어렵게만 느끼던 클래식 음악을 말 그대로 눈앞에 보여주는 이색 공연으로 많은 호응을 받았죠. ‘뮤직 애니메이션 머신’ 콘서트는 유럽과 미국에서 새로운 음악교육으로 떠오르는 공연이에요. 무대에서 하이든, 쇼스타코비치, 멘델스존, 피아졸라 등의 곡이 펼쳐지면 연주자들과 호흡하며 마치 함께 연주를 하듯 음들이 스크린에 그래픽 악보로 나타나죠. 클래식을 재밌는 시각으로 접하는 이색 공연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독특한 시도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허승연 제가 스위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재능 있는 아이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 여러 교육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재능 있는 영재가 많지만 어린 시절부터 행복하게 음악을 하기에는 너무 입시와 콩쿠르 위주의 교육이 중심을 이루고 있죠. 그러던 중 애니메이션 뮤직을 통해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접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형식의 프로젝트를 전하면 어떨까 싶었죠.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할 때 우린 쉬운 음악으로만 접근하려 하는데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거든요. 진짜 클래식 음악을 그대로,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할지가 중요하죠. 교육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문화예술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죠. 앞으로도 좋은 교육 프로젝트를 한국에 소개하는 다리 역할을 계속하고 싶어요. 동생들과 하는 음악, 그리고 무대에서 느껴지는 기쁨이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허희정 언니가 처음 뮤직 애니메이션 머신 음악회를 저희에게 제의했을 때 ‘정말 호응이 있을까?’ 싶었는데, 청중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큰 관심을 갖고 좋아해주시고 다른 음악 기획단체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많이 놀랐어요. 그만큼 우리나라에 새로운 음악 교육 프로그램과 다양한 공연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새로운 비전을 갖는 계기도 되었고요.


▲ 바이올리니스트 허희정

허트리오만의 아이덴티를 갖게 된 계기가 각각 있었나요?

허승연 서로 음악적인 색깔도 다르고 표현도 달라서 연습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갈등이 있었어요. 서로 헤어져 각자 돌아가면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스위스로 돌아가면 다음엔 무슨 연주를 할까? 다시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는 거예요. 그래서 동생들에게 ‘이거 할까?’ 하면 또 모두 좋다고 모이고요. 특히 이번에 스위스에 모여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를 연습하면서 우리만의 색깔, 깊어진 음악, 앞으로의 꿈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허윤정 승연 언니가 학구적이라면 희정 언니는 호기심이 많아요. 반면 저는 성격이 조용하고 평화주의자예요. 그러다 보니 혼자 연주하는 것보다 트리오 연주하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진 적도 있어요. 가족이 음악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요. 서로 싸우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진짜 가족이 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함께 한 20년이기에 이번 무대의 의미가 더 크고요.

허승연 서로 성격도 다르고 다른 문화 속에서 있고 해서 그런지 소통하는 방법이 많이 달랐죠. 전 직선적인 성격이라 필요한 말은 바로 하는 편인데 동생들이 그런 부분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저도 누군가와 함께할 때 필요한 소통 방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 시간들이었죠.

트리오 활동이 솔로 연주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허희정 배우고 싶은 것이 늘 많고 여러 장르를 함께 연주하고 기획하는 걸 좋아하는 저는 그동안 탱고, 기타, 국악과 융합한 무대로 색다른 즐거움을 무대에 전해왔어요. 공간도 고정된 연주회장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도 연주를 많이 했고 청중도 아이들이나 부모, 장애아, 소외 계층 등 좀 더 폭넓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왔고요. 음악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음악을 통해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도 많이 생각했죠. 그런 면에서 허트리오 활동은 그 생각의 범위를 넓히고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데 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어요. 악기가 다르니까 경쟁보다는 서로 같이 연주하며 즐기는 시간이 많았고 결국 그런 것들이 허 트리오를 결성하는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허윤정 첼로 솔로 연주뿐 아니라 첼로와 어울리는 곡을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갖다 보니 저 역시 다양한 연주자와 무대를 가졌어요. 좋은 뮤지션들과 소규모 음악회도 꾸준히 열었고요. 아무래도 첼로 음색이 가진 편안한 느낌 때문에 대중과도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 깊고 넓은 음악을 향해


▲ 첼리스트 허윤정

허트리오가 지금 있을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공도 큰 것 같아요.

허승연 사실 자녀들에게 예술을 시킨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예요. 아버지(허참. 명지유통 회장)도 어머니(홍애자, 수필가)도 워낙 음악 애호가셨고 어머니는 글을 쓰시며 문학과 음악의 아름다움을 늘 언어로 표현해오신 분이라 저희가 음악하는 걸 너무나 좋아하셨어요. 저희는 어린 시절 서로 다양한 악기를 배웠는데 각각의 운명은 따로 있는 건지 자연스럽게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악기를 골라 각자의 길로 간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누가 가장 연습을 많이 했나요?

허희정 승연 언니가 아닌가 싶어요.(웃음) 물론 저희도 연습을 많이 했어요. 언젠가 가족 여행을 갔는데 모두 악기를 가져갔을 정도니까요. 연주자에게 연습은 밥 먹는 것처럼 늘 숙제죠. 이제는 많이 즐기며 연습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엔 하기 싫은 순간도 많았어요.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허승연 학교와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있다가 남편과 딸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취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가끔은 모든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 오로지 자연을 느끼는 시간을 꼭 가져요. 그렇게 충전이 되어야 또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으니까요.

허희정 무엇인가를 배울 때 전 행복감을 느껴요. 얼마 전에는 해금을 전문적으로 배우려고 했는데 손가락이 상할 수 있다고 해서 잠시 멈췄어요. 혼자 있을 때는 시집도 읽고 평화로운 자연을 보며 걷는 걸 좋아해요.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해서 그렇게 걸으며 자연을 사진 속에 담기도 해요. 꽃, 돌멩이 모두 자세히 보면 참 예쁘고 아름다워요. 여름에는 제주도에 오랜만에 가봤는데 걸으면서 바다와 바람을 마음껏 느끼고 그 안에 빠질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사진 속에 담기도 하고요.

허윤정 저 역시 자연 보는 걸 좋아해요. 가끔 가족끼리 스키장에 가면 그냥 하얀 설원을 보는 걸 즐기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예쁜 커피 집에서 차 마시고 책 읽고 하는 일상의 평화를 사랑해요.

앞으로 허트리오의 새로운 20년은 어떤 여정이길 바라나요?

허승연 늘 노력하고 있으니 더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겠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싶고 더 깊이 있는 음악을 무대에서 들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허희정 음악으로 우리를 표현하는 부분이 시간과 함께 더 많아지고 깊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허윤정 음악 활동은 솔로나 트리오나 근본적으로는 모두 같죠. 많이 소통해야 하고 더 귀 기울여야 하고 내려놔야 하니까죠. 희정 언니가 얘기한 것처럼 저 역시 앞으로 우리가 무대에서 들려줄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가족이어서 더 깊이 나눌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음악 속에 녹여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고요. 돌이켜 보면 그동안 걸어온 20년의 여정은 우리에겐 축복이었어요. 앞으로 우리의 여정이 더 아름다운 길로 향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대합니다.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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