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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글 국지연 기자, 김선영 기자, 김호경 기자, 이정은 기자 1/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1월호 - 전체 보기 )



❶ ‌네 손의 음악은 다정한 대화가 되어


선우예권 & 앤 마리 맥더모트 피아노 듀오 콘서트
2016년 12월 15일
금호아트홀

2016년 금호아트홀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선우예권의 마지막 무대. 그는 일 년치 연주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금호 측에 일찌감치 ‘마지막 공연은 피아노 듀오로 꾸미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가 점찍은 파트너는 미국의 중견 피아니스트 앤 마리 맥더모트. 선우예권은 미국 유학 시절 마스터클래스 등을 통해 좋은 영향을 받아온 그녀에게 망설임 없이 러브콜을 보냈고, 맥더모트 역시 흔쾌히 수락해 이들의 만남이 성사됐다.

1부는 두 연주자가 한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포 핸즈(4 hands) 작품들로 채워졌다. 후원자였던 발트슈타인 백작이 제시한 주제로 베토벤이 작곡한 변주곡인 C장조 WoO67이 첫 곡으로 산뜻하게 연주됐다. 이어서 연주된 슈베르트 ‘네 손을 위한 환상곡’ F단조 D940은 jtbc 드라마 ‘밀회(2014)’의 남녀 주인공이 함께 연주하며 사랑을 키운 곡이기도. 포 핸즈 피아노 연주는 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사운드와 터치, 프레이징을 완벽히 이해해 하나의 악기로 녹여내야 하기에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왼쪽에 앉은 연주자 혼자 페달을 밟기 때문에 미묘한 뉘앙스에 대한 충분한 동의, 혹은 본능적인 포착이 필수다. 선우예권과 맥더모트는 신중하게 호흡을 맞추며 둘의 표현을 하나로 녹여갔다.

1부의 포 핸즈 피아노 무대가 두 사람의 친밀함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 피아노 두 대로 진행된 2부의 연주는 더욱 커진 스케일과 함께 서로에게 보내는 음악적 신뢰가 강하게 전해졌다. 생상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베토벤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35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1악장 주제와 18번 3악장의 트리오 주제 등이 재료로 사용된 흥미로운 변주곡으로, 맥더모트의 우아함은 선우예권의 정제된 연주와 편안히 어우러졌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2번 C장조는 관현악곡에 비견될 만한 화려하고 묵직한 사운드가 매력적이었다. 러시안 로맨티시즘의 극치를 담은 서정과 기교가 두 사람의 세련된 연주로 펼쳐졌다. 두 피아니스트는 마치 피아노 독주 무대처럼 각자 화려한 기교적 패시지를 선보이면서도 마주보는 짧은 눈짓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읽어내며 합을 맞췄다.

젊은 음악가에게 일 년 동안 집중적인 연주 기회를 제공하는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시스템은 연주자에게는 물론, 그의 성장을 관찰하는 입장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한 해 동안 소화해내는 레퍼토리와 각각의 무대 성격은 곧 그의 궤적이 되어 앞날을 점칠 단서가 된다. 선우예권의 마지막 상주음악가 무대였던 이날의 공연은 젊은 피아니스트로서 그 자신이 지닌 다양한 가능성을 어필한 무대인 동시에, 중년과 청년의 두 연주자가 빚어낸 여유 넘치는 음악적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정은

❷ ‌송년에 띄우는 음악 엽서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송년음악회
2016년 12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한 해를 보내며 듣는 음악 안에는 알 수 없는 추억이 새겨진다. 따뜻하고 정다운 것들이 그리운 계절, 문득 누군가를 포용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문 단체로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송년음악회는 전문성과 대중성이 잘 조화된 무대였다. 더구나 2016년은 화음쳄버오케스트라가 창단 20주년을 맞은 해여서 이날 공연은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무대였다. 그동안 창작 초연곡을 바탕으로 현대곡 등 다양한 레퍼토리와 사운드로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온 화음쳄버오케스트라가 오랜만에 대중과 친밀하게 눈을 맞춘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 ‘아마데우스’ 중 흐르던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1악장은 1980년대 클래식 음악 영화 속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아련한 추억에 젖게 할 만한 음악이었다. 단아하면서도 깨끗한 앙상블이 돋보인 모차르트 교향곡에 이어 영화 ‘굿바이 어게인’에 흐르던 브람스 교향곡 3번은 스크린 속 아름다운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탕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은 말러의 매력적인 선율을 덧입었다.

백영은과 문유진의 화음 프로젝트 ‘유로파’, 배동진의 화음 프로젝트 ‘사운드 플레이’는 화음쳄버오케스트라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한 앙상블이 돋보인 무대였다. 다양한 음악적 아이디어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영화음악들은 송년의 밤과 잘 어울렸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 ‘시네마 천국’과 ‘미션’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의 아름답고 따뜻한 선율은 한 해를 맹렬히 뛰어온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은 위로의 메시지였다. 마지막으로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러브스토리’와 ‘쉘부르의 우산’의 스산하고 감미로운 멜로디가 2016년,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마지막 엽서처럼 청중의 마음에 새겨졌다. 국지연

❸ ‌그들의 진실게임


연희단거리패 ‘황혼’
2016년 11월 11일~12월 4일
게릴라극장

드디어 노인의 열 손가락에 콘돔이 모두 끼워졌다. 빨강·노랑·파랑·초록의 알록달록한 콘돔. 하지만 그는 자신을 창녀라 소개한 야스민(김소희 분)의 목소리를 통해 손끝에 걸린 색을 인지하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할 뿐이다. 희극과 비극이 묘하게 교차하는 장면이었다.

2016년 한 해 동안 30주년 기념 공연을 이어온 연희단거리패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극작가 패터 투리니의 희곡 ‘알프스의 황혼(Alpenglühen)’을 윤시향의 번역으로 무대에 올렸다. 채윤일이 연출을 맡았고 ‘황혼’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이번 무대는 한국 초연이었다. 또한 그간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웠던 명계남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에겐 3년 만에 찾아온 연극 무대다.

알프스 산자락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산짐승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살아온 70대 맹인(명계남 분). 그가 오랜 세월 맹인 협회에 편지를 보내며 간절히 바라온, 젊은 여인이 앞에 섰지만 오직 심장만이 뛸 뿐, 그 밖의 육체는 별 반응이 없다. 고독의 끝자락에서 마주친 이들은 마치 허물을 벗어내듯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소개한다.

70대 맹인은 자신이 원자폭탄 투하 참관자로 갔다가 실명한 것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 연출가이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을 평생 찾아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현실은 점자로 된 책이 고전문학밖에 없어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온 맹인이자 노인일 뿐이다.

50대 여인은 자신을 창녀라 소개했지만 사실 맹인협회 직원이고, 그보다 더 솔직하게(?)는 30년 동안 줄리엣 역만 연습한 실패한 연극배우라고 고백한다. 속고 속이는 두 남녀의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일치하는 취향은 ‘로미오와 줄리엣’뿐이다. 두 사람은 발코니 장면의 대사를 서로 능숙하게 치며 상대방 본연의 모습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여인은 노인을 떠난다. 줄리엣이 되고 싶었던 여자, 로미오가 되고 싶은 남자는 동틀 녘에 꿈꾸듯 만나 해 질 녘 각자의 자리로 떠나고 돌아온다. 이렇게 극적일 수가 있을까 싶다가도, 극장 밖 현실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관계들을 떠올리면 이들은 만남은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감성으로 다가온다.

창녀에서 여직원으로, 실패한 배우로 옷 갈아입듯 자연스레 모습을 바꾸는 김소희의 숨결과 눈물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눌한 말투, 현실과 큰 간극 없이 캐릭터를 소화하는 명계남의 떨림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기사를 쓸 무렵 2017년 봄, 재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더불어 패터 투리니의 ‘알프스의 황혼’을 희곡집으로도 만날 수 있는 기회 또한 마련되길 바란다. 김선영

❹ ‌우리는 ‘파동’ 속에 산다


이소영 안무 ‘14 feet’
2016년 11월 25~27일
인디아트홀 공

현대무용과 신경과학이 결합된 ‘14 feet’는 ‘관계’와 그 의미에 대한 이야기다. 영등포에 자리한 인디아트홀 공은 로비의 기능을 하는 작은 공간과 문을 통과해야 하는 큰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연출 및 안무를 맡은 무용수 이소영이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작은 공간에 등장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중앙에 놓인 커다란 흰 종이 위에 자신의 머리, 어깨, 팔, 손, 다리 등을 이리저리 대면서 목탄을 이용해 선을 그었다. 이후 가위를 사용해 선을 따라 종이를 잘랐다. 이는 ‘해부’의 과정이었다. 육체의 해부이기도, 감정의 해부이기도 했다.

몇 분간의 행위가 끝나자 관객들은 안쪽 공간으로 안내받았다. 넓고 얕은 무대를 디귿 자 모양으로 둘러싸며 앉았고, 스태프가 돌아다니며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나눠 주었다. 이소영이 신경과학자 장재키와 함께 다시 등장했다. 두 사람은 여섯 살 아이가 할머니에게서 다도를 배우는 장면, 그리고 한 여인이 죽은 여인의 몸을 통해 해부 실습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어 장재키는 뇌와 심장에 관한 강의를 시작했다.

“14피트는 심장의 파장이 다른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거리로, 약 열네 발자국 정도의 거리입니다. 14피트 안에서는 특정한 표현 없이도 서로 정서가 공유될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듣다 보니 앞서 펼쳐진 퍼포먼스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다도와 해부 실습은 이상적인 관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소영의 독무가 이어졌다. 그녀의 몸짓에서 슬픔과 아픔이 묻어났고, 때때로 절규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는 현 사회 속 교감에 대한 절망, 타인으로부터의 상처를 표현하고 있었다. ‘과학적 접근’과 ‘감정적 울림’의 과정을 통해 사람간의 관계, 정서적 교류에 대해 깊이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새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움직임’ ‘박동’ ‘파동’ 등의 단어를 표현, 즉 연출을 통해 공연장 안 사람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기운’을 만들어낸 것은 특기할 만하다. 다만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위해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설명 대목은 과하거나 다소 거칠며 춤은 심장을 치는 등의 직접적인 동작이 많아 미학적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우리는 파동 속에 산다”는 메시지가 꽤 오래 가슴에 남았으니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김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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