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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의 종말
디지털 레코딩의 등장
글 황덕호(재즈평론가) 12/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2월호 - 전체 보기 )



록과 LP의 결합은 1970년대 초에 그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 시장은 점차 내리막을 걸었고, 1970년대 말 급기야 음반업계는 위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록을 대신해 많은 사람을 매혹시킬 수 있는 강력한 음악이 더 이상 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1950년대 전반기 LP의 출현으로 클래식 음반의 판매가 급성장한 예에서 볼 수 있듯,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지 않을 때 그것을 대신한 것은 새로운 기술과 포맷이었다. 이미 카세트테이프와 휴대용 재생 플레이어를 통해 막대한 매출을 경험한 소니와 그의 경쟁사인 필립스는 LP 시장이 하향세에 들어서자 이를 대신할 만한 새로운 포맷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한편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던 디지털 정보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와 경쟁사들의 협의 끝에, 디지털 음반 포맷은 지름 12센티미터의 원반 한 면에 2만 줄의 미세한 홈이 파여 있고 이곳에 디지털 정보를 심어놓아 한 장당 최대 78분의 재생 정보를 담을 수 있는 형태로 결정되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콤팩트디스크’라고 불렀고, 이는 CD라는 약칭으로 굳어졌다.

CD가 탄생하기 전부터 음반사들은 음악을 디지털 정보로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는지 여부를 먼저 시험했다. 다시 말해 소리를 릴 테이프에 고스란히 담을 필요도 없이 초당 4만 4100회로 쪼갠 숫자의 정보로 환원시킬 때 그 소리는 인간의 귀에 어떻게 들릴 것인가의 문제였다. 오늘날까지 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지만, 카라얀 같은 음악가와 음반업계 경영진 및 기술 담당자들은 이 새로운 방식의 등장에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그리고 이 녹음 방식은 여전히 LP로 음악을 재생하던 1979년부터 이미 가동되었다. 다시 말해 디지털로 녹음해 아날로그로 발매한 셈이다.

1977년 발족하여 스펙터클한 관현악 사운드에 유달리 열정을 보였던 텔락 레코드는 1979년 그 누구보다도 빨리 디지털 레코딩 방식을 수용했다. 디지털 녹음을 통해 더욱 선명하고 화려한 교향악단의 소리를 담고자 했던 텔락은 그 범위를 재즈로 넓히면서 당연히 빅밴드 사운드를 선택했다. 드러머 멜 루이스(1929~1990)는 편곡 악보만을 남기고 덴마크로 홀연히 떠나버린 동료 새드 존스의 공백을 메우며 그의 화려한 빅밴드 사운드를 디지털 레코딩 프로세서에 담았다.


▲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

버브 레코드를 매각하고 1973년 자신의 레이블 파블로를 다시 시작한 노먼 그랜츠는 ‘재즈 앳 더 필하모닉’ 음악회를 계속 주관하면서 이 실황을 음반으로 녹음하는 경제적 전략을 구상했다. 이때 그는 아날로그 녹음보다 훨씬 간편해진 디지털 녹음 시스템을 신속히 수용하고 1979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녹음부터 이를 활용했다. 오스카 피터슨(1925~2007)의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음의 행렬을 ‘불연속적인’ 디지털 신호체계(소니 디지털 시스템)는 아무런 무리 없이 기록했다.

그 해에 CD 플레이어를 생산하면서 디지털 음반시장을 주도해나가던 필립스 역시 이 녹음 방식을 재즈로 확대시켰다. 이 네덜란드 기업은 자국에서 열리는 북해(North Sea) 재즈 페스티벌에서 1945년 이래 트래디셔널 재즈를 고수해온 더치 스윙 칼리지 밴드의 실황을 디지털 방식으로 담았다. 가장 고색창연한 재즈 스타일이 첨단의 기술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1978년 피아니스트 데이브 그루신(1934~)과 드러머 래리 로젠(1940~2015)이 함께 설립한 GRP는 재즈 레이블 가운데 디지털 녹음과 CD 발매를 가장 먼저 모험적으로 시도한 레이블 중 하나였다. 깔끔하고 화려한 사운드를 지향하던 GRP는 디지털 녹음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그들의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었다.

CD의 출현은 잊혔던 재즈의 과거 명반들을 경제적인 가격에 재발매함으로써 1980년대 재즈의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클래식 음반이 그렇듯이 일거에 쏟아져 나온 과거의 카탈로그와 전집들은 10년 만에 그 시장을 과포화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이 무형의 정보는 인터넷의 확산을 통해 무차별 배포되면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던 음반의 종말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LP로 돌아가자는 일각의 주장은 디지털 시대가 끊임없이 과거의 유산을 캐냄으로써 만들어놓은 역설적인, 그리고 미미한 복고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음악은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며 또 문명은 뒤로 돌아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즈 음반의 역사는 근 100년 만에 막을 내릴 준비를 이미 하게 되었다. 너무 빨리 그 종말이 다가온 것 같기도 하지만, 20세기에서 21세기를 관통하던 광속과도 같은 문명의 변화를 생각하면 그나마 오래 버텼다는 느낌마저 든다. 앨범 커버에 적힌 연주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그들의 즉흥 솔로를 존경의 마음으로 감상하던 재즈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는 것이다.

이달의 추천 재즈음반


멜 루이스와 재즈 오케스트라 ‘Naturally’
Telarc CD-83301 | 1979년 3월 20~21일 녹음
멜 루이스(드럼)/새드 존스(편곡)/존 마셜·얼 가너(트럼펫)/딕 오츠(알토 색소폰)/게리 브라운(바리톤 색소폰)/존 모스카(트롬본) 외


오스카 피터슨 ‘Digital at Montreux’
Pablo PACD-2308-224-2 | 1979년 7월 16일 녹음
오스카 피터슨(피아노)/닐스 헤닝 오르스테드 페데르센(베이스)


더치 스윙 칼리지 밴드 ‘Digital Dixie’
Philips 800 065-2 | 1981년 7월 10~12일 녹음
로드 메이슨(트럼펫·수자폰)/딕 카르트(트롬본·바리톤 호른)/
후브 얀센(드럼) 외


데이브 그루신 ‘Dave Grusin & The NY/LA Dream Band’
GRP-D-9501 | 1983년 녹음
데이브 그루신(키보드·편곡)/앤서니 잭슨(베이스)/
조지 영(색소폰·플루트)/NHK 스트링스/도쿄 브라스 앙상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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