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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김용걸
몸을 열고, 춤으로 말하다
글 김호경 기자 12/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2월호 - 전체 보기 )




안무가 김용걸을 만났다. 그와의 대화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말로 귀결했다.

김용걸은 지난 10월과 11월에 각각 발표한 신작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과 ‘R, 107’에 자신이 바라보는 사회,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을 그대로 담아냈다.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에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무관심으로 세상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R, 107’에는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학생들과 함께 흘리는 땀의 의미를 담았다. 예술가, 스승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용걸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실한 삶을 사는 것뿐”이라 말한다.

국립발레단에서 5년,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9년, 그리고 다시 고국에 온 지 7년. 김용걸은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연습실에 처박힌 채 발레밖에 모르던 소년 시절을 보내고, 이국땅에서 무용수로서 훨훨 날아오른 청년 시기를 거친 그는 안무가로서 새 출발을 하며 내면의 기질과 성향을 새삼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겁이 나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중학교 때 힘이 센 친구가 약한 친구를 괴롭히면 앞장서서 막다가 얻어맞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과 공연장에서 보내다 보니 정치가 무엇인지, 내가 사는 사회가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다. 한국에 돌아와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작년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빛, 침묵, 그리고…’(2014)라는 작품도 만든 것이다.”


지난 10월과 11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서울무용제를 통해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이라는 제목의 신작을 발표했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다양한 원인이 등장하더라. 경박스럽게 표현된 코믹한 동작부터 동물 학대, 학교 및 직장 내 왕따 문제, 전쟁에서 비롯된 정치적 문제 등 포괄적인 주제를 담고 있던데, 무언가에 굉장히 화가 많이 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6개월 전 구상을 시작해 완성한 작품이다. ‘중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책임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는 좌도 우도 아닌, 중간 입장이야’라고 편하게 말하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이들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나이든 세대와 사회에 아무 관심이 없어 투표조차 하지 않는 어린 세대, 그리고 적당한 관심은 있지만 그저 그뿐인 대다수 사람, 모두가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물론 자기반성도 담겨 있다. 다리가 무너지고, 컨테이너에 갇힌 아이들이 타죽고,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왜 아무도 막지 못했을까. 현 한국사회의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사태도 이기심에서 비롯된 무관심이 빚어낸 일이라 생각한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어떤 사건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시작이라고 본다. 요즘 국민들이 광화문에 촛불 들고 나가는 것도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수치스럽다고 느끼니 하는 행위 아닌가. 이러한 마음 자체가 없으면 집에서 집회 영상 보며 ‘저 사람들 춥겠다’ 할 뿐이다. 함께 사는 사회이니 공감하고 행동하는 게 옳다고 본다.

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확히 전달되지만 미학적 측면에서 마냥 좋은 평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목적이 분명한 작품이었다. 관객들이 보기에 불편하고 찜찜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커튼콜도 하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미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보다 특정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지.

물론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작품이 이상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활동하던 10년 동안 훌륭한 작품을 많이 접했다. 유럽 사람들은 일찍부터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 어떤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진지하고 심각한 해석 안에 유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늘 나를 자극했다. 특히 동성애자인 무용수나 안무가들은 표현법이나 패션 감각 등 여러 면에서 아이디어가 넘치더라. 물론 그들도 동양의 예술에서 새로운 차원의 경지를 발견하지만 말이다. 현재 나는 사회비판적 시선을 담은 주제의식, 정서를 교화하거나 감흥을 주는 기술적 몸짓, 아름다운 무대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과정 중이다. 이러한 경험이 독창적인 경지에 다다르는 무대를 만나게 해주리라 믿는다. 예술가로서 취향은 2012년 이후 선보인 ‘워크’ 시리즈에 담겨 있다. 발레 동작에서 비롯된 기술적인 움직임, 그리고 조명을 다양하게 배치·활용한 화려한 무대를 통해 관객들을 감탄하게 하고 싶다.


파리 오페라 발레의 솔리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에 접한 현대무용 작품이 현재 안무가로서 활동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다.

그 시절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파리에 가지 않았다면 안무가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수많은 안무가 중 ‘기준’처럼 여기는 인물이 네 명 있는데, 바로 루돌프 누레예프, 윌리엄 포사이스, 피나 바우슈, 이르지 킬리안이다. 이 외에도 좋아하는 안무가들이 여럿 있지만, 결국은 이 네 사람의 특징과 비교해 생각하게 되더라. 네 명의 장점을 나만의 철학과 예술로 승화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각 인물의 어떤 점을 받아들이려 하나?

누레예프는 클래식 발레의 동작이 100개이던 시절에 만 개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다. 그는 단 네 개의 동작만으로도 100가지 다른 흐름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포사이스는 이러한 동작의 확장성을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무용수에게 도전의식을 준다는 점에서 좋은 안무가라고 말할 수 있다. 킬리안은 작품마다 자신의 철학을 보여주며, 바유수는 그 안에 연극적 요소를 담아냈다. 이 네 가지 요소를 생각하며 작업하다 보니 내 작품이 그들의 작품 일부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게 신경은 쓰지 않는다. 꾸준히 연구하고 시도하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독자적 영역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11월 5일, 한예종 정기공연에서는 ‘R, 107’이라는 작품을 올렸다. 한예종 무용원 107호 연습실을 표현한 제목과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작품 곳곳에서 학생들을 향한 김용걸 교수의 애정이 묻어나더라. 틀을 깨부수고 자유롭게 날아오르려는 젊은 무용수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불 켜진 107호 연습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한국 발레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수많은 무용수가 흘리는 땀의 의미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 같은 작품을 하면 학생들이 무척 힘들어한다. 힘이 넘치는 20대라 마음껏 뛰고 도는 걸 좋아하는데, 그 에너지를 실컷 발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포인, 턴 아웃 등 기술적인 부분은 살짝 배제하고 움직임 자체에 집중하도록 했다. 한국 학생들의 특성상 독무를 시키면 부담을 느끼고 어려워하는데, 스무 명 정도 같은 동작을 시키면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으니 각자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는다. 라벨의 ‘볼레로’에 맞추어 40명이 같은 동작을 추는 마지막 장을 준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내인 무용수 김미애 씨는 남편을 안무가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작품 올릴 때마다 공연장에 자주 오는데, 무척 날카롭게 비평한다. 내 주변에 칭찬하는 사람만 많다는 것을 알고 단점을 꼽아 이야기해준다.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별로 듣고 싶지는 않다.(웃음) 애정이 깃든 조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번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 같은 경우, 각 장면의 이음매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는데,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다.

이 인터뷰를 마치고 한 달 간 프랑스에 머물며 파리 국립 고등음악·무용원 학생들과 만날 예정이라 들었다.

올해 5월에 한·불 수교 130주년 사업의 하나로 파리 국립 고등음악·무용원의 교수들이 한예종에 방문해 학생들과 만났다. 그들이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워크 2 S’를 공연하게 되어 초청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파리 국립 고등음악·무용원은 매년 12월에 외국의 안무가 2, 3명을 초청해 학생들과의 무대를 마련한다며 그때 방문해줄 수 있는지 묻더라. 짧은 기간 동안 준비하기에는 규모가 커서 ‘레 무브망’(2015)을 하기로 했는데, 이 작품 또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나의 요청으로 그곳에 초청된 다른 안무가들에 비해 긴 기간인 한 달여의 시간을 얻었다. 새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건 무척 기쁜 일이다.

이제 40대 중반 나이에 접어든 김용걸은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 같은 학생들을 선도하는 자리에 서게 됐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를 둔 아버지의 삶을 살고 있다. 수상한 시국도 창작자로서는 영감이 될 것이다.

“그동안 뚜렷하게 무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이제는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다. 목소리를 냈을 때 많은 사람이 듣고,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말이다. 주제넘지만 사명감도 느낀다.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사진 박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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