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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한예리
춤, 진화하는 컬래버레이션
글 김호경 기자,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12/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2월호 - 전체 보기 )




과거에는 음악, 무대미술 등 여러 장치가 춤을 부각시키기 위한 부수적 기능만 했다면, 최근에는 동등한 영역으로서 상호작용을 이룬다. ‘실험’의 하나이던 예술가와 예술가의 소극적 만남에서, 더 넓은 의미의 결합으로서 하나의 ‘상품’을 이루어 대중과 만나는 것도 달라진 점으로 꼽을 수 있다. 다만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지 못하고 일회성 이슈에만 그치거나, 안무적 약점을 보완하기에만 급급하다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현재 무용계의 최전선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안무가 김보람과 한국무용을 전공한 후 영화배우로서 유려한 몸짓을 선보이고 있는 배우 한예리를 만나 컬래버레이션의 변화와 효용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12월, 각각 ‘바디 콘서트’(15~17일)와 서울시무용단 ‘우리춤배틀-더 토핑’(8~9일)으로 관객을 만난다. 이들의 인터뷰에 책갈피처럼 담긴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심정민의 글은 컬래버레이션이 대세가 된 무용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컬래버레이션’에 대해 들여다보자.

김보람, 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에 서다, 그리고 춤추다


“저는 컬래버레이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티스트입니다만.”

인터뷰의 취지를 설명하니 김보람은 대번에 이렇게 대답했다. 알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렇다면 김보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은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안무가 김보람의 독특한 이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백업댄스팀 ‘프렌즈’에서 방송 댄스를 췄고, 그 사이 2003년엔 서울예대 무용과에 진학해 현대무용을 공부했다. 방송 댄스를 그만둔 후 안성수 픽업그룹에서 현대무용수로 7년 간 활동하는 동시에 2008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를 창단해 안무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흔히 ‘예술 춤’에 ‘대중 춤’의 피를 수혈하여 새로운 혈색을 내고 있다.

올 한해 김보람이 이끄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활동을 돌아보니, 세 개의 신작 ‘애매모호한 밤’ ‘언어학’ ‘얼토당토’를 선보이고, 지난해 초연했던 ‘봉숭아’와 ‘예술을 위한 조화’를 모다페(국제현대무용제), 경기공연예술 페스타 무대에 각각 올렸다. 뉴욕 APAP에서 ‘인간의 리듬’(2013)으로 쇼케이스를 갖기도 했다. 김보람은 국립극단 ‘한국인의 초상’(연출 고선웅)과 국립창극단 ‘오르페오전’(연출 이소영)에 안무가로 참여했으며, 월간윤종신 6월호 ‘의미 없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래퍼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외에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 단체로서 여러 기획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좌우가 다른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요상한 모양의 안경, 모자를 걸치고 장르를 규정짓기 어려운 춤을 추는 김보람. 그는 다른 분야와 쉽게 결합하기 힘든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독창성이 다른 예술단체 및 예술가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어 혁신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컬래버레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예술가마다 성향이 다른데 과연 그것들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안무가와 무용수 간에도 생각을 공유하고, 설득하고, 동의하는 게 어려운 데, 음악, 미술 등 전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단 몇 달 간의 제작기간 만에 완전히 교류한다는 게 가능할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제안이 오면 고심한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배운 바가 있을 텐데.

물론 있다. 최근 고선웅 연출과 같이 한 연극 ‘한국인의 초상’을 통해서도 새로운 걸 많이 느꼈다. 이전에는 몸짓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 위해 말을 배제하는 건 물론, 얼굴표정까지도 모자와 안경으로 숨기곤 했는데, 연극에 참여해보니 ‘말’이 갖는 힘을 활용하는 것도 무언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이 작품 이후 안무한 ‘애매모호한 밤’에는 대사를 넣었다.

가장 최근작인 창극 ‘오르페오전’ 제작 과정은 어땠나?

연극 참여의 경험 덕에 전보다는 수월했다. ‘오르페오전’의 제작 과정은 오페라 장르의 그것과 비슷했다. 이소영 연출이라는 총 디렉터가 있었기에 작곡, 무대디자인, 안무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하면 됐다. 이소영 연출은 굉장히 철학적인 분이고, 매 장면마다 의미를 부여했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직관적인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나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이소영 연출은 나의 작업 방식을 존중해주었고, 나 또한 전체 그림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창작자들 간의 교류보다는 창극단 단원들과의 소통에 집중했다. 노래만 하던 분들에게 움직임을 주려니 쉽지 않더라. 자연스러운 몸짓을 끌어내는 데 몰두했다. 컬래버레이션은 창작자들 간의 관계뿐 아니라 창작자와 플레이어의 관계도 중요하다.

작업의 반경이 넓고, 만나는 장르도 다양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이란 무엇인가?

가장 기본은 좋은 ‘기획’이라고 본다.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이유, 수많은 예술가 중 왜 너와 내가 만났는지 정확한 이유가 필요하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야 그걸 함께 추구하면서 맞춰 나갈 수 있는데, 모호한 주제 아래 마치 컬래버레이션 그 자체만 중요한 것처럼 여기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이것이 성립되면, 이후에는 각자 자신의 역할을 영리하게 파악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각자 어떤 영역까지 해낼 수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또한 참여하는 모두가 금전적으로 불만이 없어야 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동등한 책임감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을 본인의 작업에 옮겨본 적이 있다면?

작년에 오케스트라 단원 25명과 함께 1시간 30분짜리 영상이 결합된 ‘예술을 위한 조화’를 선보였는데, 그때에도 전체 콘셉트와 그 외 꼭 필요한 요소만 정확히 정한 후 나머지는 각자의 영감대로 작업했다. 올 여름 월간윤종신 뮤직비디오 촬영을 할 때도 이 영상물 안에서 내가 어떠한 임무를 띠고 있는지 파악한 뒤 딱 그만큼만 열심히 임했다.


무용 장르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한국무용과 발레는 전승과 창작으로 나뉘거나 대중무용과 예술무용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국립발레단 무용수들과 ‘포이즈’(2012)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장르라는 단어 자체가 파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장르는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다. 물론 각 영역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결국 중요한 건, 몸의 언어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일반 관객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춤이 스트리트 댄스인지 현대무용인지 구분 짓는 것보다, 그래서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한다. 나 또한 그걸 고민한다. 몸의 언어란, 여러 종류의 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사람들의 일상까지 포함할 수 있다. 살다보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행동이나 몸의 떨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비슷한 맥락에서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좋은 방법을 찾을 뿐이다. 그게 발레인지 현대무용인지, 컬래버레이션 형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아 예상과 다른 반응이 오면 어떻게 하나?

실제로 반응이 예상과 달라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2010년 서울댄스컬렉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던 ‘공존’을 처음 선보였을 때다. 힘들고 괴로운 사람과 그걸 우습게 표현하는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동료 무용수와 둘이 이 작품을 준비하며 너무 진지한 게 아닌지 고민이었다. 호소력이 있는 무대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관객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거다. 분위기를 바꿔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주제와 조금 동떨어진 질문이지만,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무대를 보면 물안경 같은 소품과 빠른 음악이 흥겨움, 웃음을 유발하는데, 몸짓이나 작품의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많더라.

당시 공연을 마치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황과 감정에 초점을 맞췄는데, 사람들은 그 반대편의 인물을 본 거다. ‘공존’을 그동안 30회 정도 공연하며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간혹 너무나 슬펐다고, 눈물이 났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각자 이입하는 대상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오는 거다. 관객의 반응은 무조건 존중한다. 예를 들어 내가 종이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볼펜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볼펜이다. 봐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자신이 본 볼펜에 대해 생각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각자 보고 싶은 걸 보면 된다. 그게 맞다.

12월 15~17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일 ‘바디 콘서트’는 그야말로 몸짓의 향연이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부터 비욘세 ‘데자뷔’까지 11곡의 각기 다른 음악에 맞춰 온갖 춤을 선보인다. ‘바디 콘서트’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작품이라 들었다.

무용수라는 ‘역할’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무용 작품은 보통 짧으면 20분, 길면 1시간 이상의 길이로 구성된다. 20분 또는 1시간 안에 담기는 움직임, 이야기를 3~4분 길이의 11곡에 각각 압축해 보여준다. 처음 한 곡이 끝나면 무용수는 이미 숨이 찬다. 4~5곡 째가 되면 정신이 혼미하다. 무용수로서는 더 출 수 있을까, 연습한 걸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한다. 8~9곡정도 되면 무아지경 상태가 되는데, 바로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몸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그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거다. 멀쩡한 상태에서 뭔가를 보여주는 것과 무아지경 속에서 끈 하나를 간신히 잡은 채로 보여주는 것은 다를 것이다. 이 작품은 2008년 구상하기 시작해 2010년에 초연했고, 2012·2015년에 공연했는데, 연습할 때마다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만큼 ‘한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욕심이 담긴 작품이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 단체로서 내년에 큰 규모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일 예정이라 들었다.

컬래버레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꾸준히 하고 있다.(웃음) 단원 김홍도의 고향인 안산을 대표하는 대규모의 공연예술을 준비하고 있다. 단원의 그림을 무대예술로 재해석하는 작업인데, 5월 공연이라 아직 뼈대를 잡는 단계에 있다. 의미 있는 작품이니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다른 분야의 예술가가 있는가?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작곡가가 있다. 지미라는 이름의 친구다. 그동안은 대중가요나 팝, 클래식 음악 등 기존에 있던 음악으로 안무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그 친구에게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부탁해보고 싶다. 춤의 근원, 본질에 가까운 작업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전 세계의 예술가들 중 누군가를 꼽는다면… 다프트 펑크. 원래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좋아했고, 안무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알면 알수록 우리 무용단과 비슷한 지점이 많은 것 같더라. 헬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음악에만 집중하는 것도 그렇고. 그들의 사운드와 우리의 춤이 만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사진 박진호(studio BoB)

한예리, 배우로서 추는 춤, 무용수로서 하는 연기


배우 한예리는 현재 연기와 무용을 겸하고 있다. 세 살에 무용을 시작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영상원 친구의 졸업 작품에 쓰일 안무를 도와주다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무용수가 되는 것 외에 단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 없던 그녀는, 열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평범하지 않는 인물, 일상적이지 않은 동작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도록 최적화된 몸을 만든다는 점에서 연기와 무용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화 ‘코리아’ ‘해무’ ‘최악의 하루’ 등에 출연하는 가운데 정신혜무용단과 공연했으며, 오는 12월 8~9일에는 서울시무용단 소속 무용수 박수정과 ‘지나간 여인에게…’라는 제목으로 무대를 꾸민다.

사실 그녀의 활동 영역을 굳이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 그녀는 이미 극 위에서 춤을 추고, 몸짓 안에 삶을 담고 있다. 그녀와의 대화는 지난 10월 개봉한 영화 ‘춘몽’에서부터 시작했다.

극 안에서 시가 되다

“언니가 시예요.”

영화 ‘춘몽’(감독 장률)에서 예리를 좋아하는 한 소녀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 안에서 배우 한예리는 정말 시 같다. 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과하지 않고, 미묘하고 섬세하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운율 같다.

영화 ‘춘몽’은 꿈과 현실이 모호한 작품이다. 수색동에 사는 세 명의 친구―한물간 건달 익준과 공장에서 일하다 쫓겨난 정범, 뇌전증을 앓는 종빈―와 조선족 출신으로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예리의 이야기다. 이들은 서로를 아끼고 좋아한다. 영화는 이 이야기가 현실인지, 꿈인지, 만약 꿈이라면 예리가 꾸는 꿈인지, 세 남자가 꾸는 꿈인지 확신할 수 없도록 경계를 지운다. 한 예로, 세 남자와 수색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술을 마시던 예리는 취기가 오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예리의 춤사위를 따라 카메라가 천천히 한 바퀴를 돌면 세 남자는 사라지고 술을 마시던 흔적만 남아있다. 관객은 이전 장면들이 예리가 꾼 꿈인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꿈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무용수에서 배우가 된 사람은 무조건 믿는다. 몸은 사람을 속이지 못한다. 한예리는 묘하게 똑똑함과 소박함이 한 몸에 있는 친구다.”

영화감독 장률은 정성일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네 사람이 한 사람일 지도 모르는 영화”라고 감독 스스로 밝힌 이 작품에서 한예리는 세 남자의 욕망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인 인물을 영리하고 유연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모습은 자연스레 그녀가 한국무용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이 영화 자체가 장률 감독의 시”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추상적인 표현이 많은 작품이에요. 그래서 영화가 꼭 시 같다고 생각했죠. 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사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하는 장면은 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취한 느낌을 가지고 천천히 움직인 것뿐이죠. 영화를 보신 분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고 얘기를 하셔서 그만큼 작품 안에서 예리가 움직이는 게 자연스럽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주막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춤 맞아요. 춤에 ‘님아 님아’라는 이름을 붙였는데요, 예리가 이상형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주막 안으로 들어온 그 순간, 그 공간 자체가 마치 꿈같아서 좀 더 두루뭉술한 느낌, 몽환적인 분위기가 드러날 수 있도록 표현했어요.”

한예리가 영화 안에서 춤을 선보인 건 처음이 아니다. 이전 작품인 ‘최악의 하루’에서도 춤을 췄고, TV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춤추는 장면이 있었다. 드라마의 경우, 척사광이라는 캐릭터는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이었지만, 한예리가 캐스팅되며 무용을 하는 인물로 바뀌었다. 장률 감독과 김종관 감독은 일찍이 그녀의 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보여준 모든 동작은 한예리가 직접 구상한 것이다. 그녀는 각 장면의 콘셉트와 감독이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이해한 뒤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촬영에 임했다.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며 그녀는 상황마다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대극장에서 무용을 할 때는 에너지만으로 극장을 뚫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손끝과 발끝을 찢을 듯이 감정을 표현하거든요. 반면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아주 작은 움직임과 떨림까지 포착되기 때문에 필요한 감정을 그저 머금고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드러내려고 하면 오히려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한국무용이든 영화든 어떤 인물, 어떤 이야기를 표현하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생각과 방법을 취해야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흐름을 갖다

충북 제천에서 나고 자란 한예리는 세 살이 조금 안 되었을 때 사촌언니를 따라 무용학원에 처음 가게 되었다. 마치 놀이를 하듯 무용을 접한 그녀는 그곳의 사람들에 익숙해지고, 공간에 익숙해지며 무용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시험을 치렀고, 국립국악중학교에 입학하며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진학했다.

“어렸을 때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시기니까 다른 장르의 무용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깊이를 추구해야 하는 한국무용이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계속 가까이하다보니 점점 더 좋아졌어요. 몸이 반응하고, 마음이 따라가고, 음악에 멋과 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서에 취하게 됐죠. 현재 배우 생활도 최선을 다해 하고 있지만, 그때만큼 에너지를 쏟으면서 무언가에 몰두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한예리는 우연한 기회에 연기를 시작한 후에도 자신의 본업은 무용이라 여겼다. 연기는 그저 재미로 여겼고, 서른 살이 되면 무용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현 소속사인 사람 엔터테인먼트를 만났고, 비전을 공유한 끝에 2012년,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 길로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어 북한 국가대표 탁구선수 류순복을 연기하기 위해 안양으로 내려가 훈련을 시작했다.

“탁구 연습을 하니 오히려 고민이 사라지더군요.(웃음) 매일 무용 연습을 하던 때와 생활이 비슷했어요. 정해진 시간에 연습을 하고, 배운 만큼 노력해서 해내고, 또 다시 배우고… 영화 ‘해무’의 홍매를 연기하기 위해 연변 말을 배울 때도 비슷했고요. 무용만 했을 때는 오로지 내가 추는 춤, 내가 해야 하는 것과 되어야 하는 것만 생각했어요. 잘하는지, 못하는지만 중요한 환경에 있었죠. 영화를 하면서 주변에서 질문을 받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면서 생각을 확장하기 시작했어요.”

한예리는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연기와 무용을 병행할 생각이다. 무용에 필요한 연습을 쉬지 않고 있으며,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틈틈이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른다. 오는 12월 8~9일, 서울시무용단 ‘우리춤배틀-더 토핑’ 무대에서는 무용수 박수정과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다. 한예리와 박수정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로, 한예종 전통예술원 동기다. 두 사람은 ‘지나간 여인에게…’라는 제목으로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수정이가 안무를 맡고, 저와 함께 춤을 춰요. 처음부터 장르를 국한하지 않기로 이야기했어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죠. 배우와 무용수의 만남이 아닌, 김예리(한예리의 본명)라는 사람과 박수정이라는 사람의 만남에 의미를 두기로 했어요. 영역을 구분 짓는 것은 이제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두 색깔이 만나 어떤 빛깔을 이루는지가 중요하죠.”

인터뷰를 마치고 한예리는 ‘더 토핑’ 연습을 위해 박수정을 만나러 갈 채비를 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무용을 해온 두 친구 중 한 명은 안정적인 단체에 속해 농익은 몸짓을 만들어가고, 다른 한 명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춤을 추고 있다. 둘은 서로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삼십대가 되니 ‘흐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성실히 하다보면 기회가 찾아왔을 때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죠. 무리하게 애쓰기 보단 내면을 채우는데 집중하자고 말해요. 가까운 미래에 수정이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예술가 친구들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요. 어떤 형태의 예술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기운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사진 박진호(studio BoB)

+CRITIC

우리 무용계의 컬래버레이션, 그 성과와 과제

극장 무대에 오르는 무용은 본질적으로 종합예술의 성격을 지닌다. 춤을 중심으로 음악, 무대미술, 장치, 의상 등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하지만 전통적인 개념에서 이 같은 요소는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춤을 받쳐주는 부수적 역할만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분야가 춤과 동률적인 상호교류와 상호작용을 벌이고 있다.

현재 현대무용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질이라면 춤과 다른 분야의 융합·통섭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초기에는 혁신적인 무용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실험으로 시도되다가 작금에 이르러서는 무용계가 대부분 이러한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그만큼 보편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무용 단체들마다 각양각색의 형태로 컬래버레이션을 펼치는 실정이다.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 사이에 기본적인 장르 간 교류에서부터 힙합·스트리트 댄스·곡예·동양무술·운동·놀이 등 다른 영역의 신체 움직임까지 넘나든다. 그뿐 아니라 연극·영상·설치미술·라이브 연주·패션 디자인·마술·건축·테크놀로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과 통섭을 단행하고 있다.

예술적 수준, 대중적 수용 사이의 균형 잡기

무용계에서 이러한 컬래버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단체는 의외로 보수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다. 국립무용단은 한국무용 단체이면서도 신선하고 혁신적인 창작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노력을 차근차근 벌여왔다. 국내외 현대무용가들에게 안무를 의뢰하고 패션 디자이너나 작곡가에게 연출을 맡기는 등 파격적인 행보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를 창작 대작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고무적이다.

국립무용단은 현대무용가 안성수에게 안무를 의뢰한 ‘단(壇)’(2013)을 시작으로, 핀란드 현대무용가 테로 사리넨을 초청하여 ‘회오리’(2014)를 만들었고, 올해 초에는 프랑스 현대무용가 조제 몽탈보와 협업하여 ‘시간의 나이’를 제작했다. 현대무용가에게 안무를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의 상호작용을 이루어낼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패션 디자이너나 작곡가에게 작품의 전체적인 그림을 조율하는 연출을 맡기기도 했다. 사군자를 소재로 한 ‘묵향’(2013)과 강강술래를 재창조한 ‘완월(玩月)’(2015)이 각각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와 작곡가 장영규에 의해 연출된 것이다.

사실 한국무용을 하는 국립무용단이 여러 분야와의 융합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다. 작품의 성패를 논하기 전에, 21세기 창작 흐름에 발맞춰가려는 국립무용단의 노력을 높이 살 필요는 있다. 물론 국립무용단은 현대무용 단체가 아닌 한국무용 단체인 만큼 급진적인 컨템퍼러리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경향을 수용하여 ‘한국무용에 기반을 둔 동시대적 창작’을 실제화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한편 국립현대무용단은 더 작은 규모로 갖가지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가을 ‘춤이 말하다’라는 기획에서는 한국 전통무용의 김운태·오철주·김영숙뿐 아니라 파쿠르의 김지호와 스트리트 댄스의 김기헌을 무대에 세웠다. 현대무용 단체가 한국 전통무용의 21세기 전승에 대해 일반 관객과 함께 숙고하는 자리를 마련하는가 하면, 특히 파쿠르나 스트리트 댄스처럼 대중적인 움직임을 예술 무대에 올렸다는 점은 하나의 시도다. 이전에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오케코레오그래피’,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한 ‘퍼포먼스: 예기치 않은’처럼 각양각색의 컬래버레이션을 펼친바 있다.

12월 9~11일에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재공연으로 선보일 ‘어린 왕자’는 아이돌 그룹 위너의 김진우를 캐스팅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기에 홀로그램 테크놀로지를 통해 동화적인 판타지를 무대에 실현시킬 예정이다. 예술적 수준과 대중적 수용 사이에 균형 잡기를 의도하는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우리 현대무용의 지평을 넓히려는 목표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춤의 어휘를 확장하고 관점을 다각화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기획력을 갖춘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효용 가치를 갖기 위한 조건

이러한 적극적 협업은 분야 간 융합과 통섭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춤과 영상의 컬래버레이션을 단행한다고 할 때 그 융합과 통섭의 결과물이 각각의 분야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신선하고 혁신적일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을 종용하는 최근의 무용예술에서 컬래버레이션이 일종의 대세인 이유가 여기 있다.
컬래버레이션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지만, 유의할 점도 있다. 우선 무용에서 안무적 약점이나 부족함을 매우기 위한 수단으로 다른 분야를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끌어들인 타 분야에 압도되어 춤의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분야 간 융합과 통섭이라 할지라도 중심을 잡는 요소는 존재한다. 무용에서 시도하는 컬래버레이션이라면 아무래도 신체의 움직임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2007년 내한한 카롤린 칼송과 일렉트로닉 섀도우는 ‘두 개의 시선’이란 작품에서 춤과 영상의 컬래버레이션을 실현했는데, 현란하게 쏟아지는 영상 테크놀로지 속에서도 칼송의 움직임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작품을 ‘실험’이 아닌 ‘예술’로 승화시킨 바 있다.

또한 두 개 이상의 분야가 한 무대에서 별 의미나 접점 없이 나열되어서도 안 된다. 컬래버레이션의 시너지 효과는 단순히 여러 분야가 함께했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각각의 분야 예술가들이 전문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서로 충돌과 융해를 거쳐나가야 비로소 성취할 수 있다. 좋은 예로, 지난 11월 내한한 필리프 드쿠플레의 ‘콘택트’는 현대무용·뮤지컬·댄스·연극·영화·서커스·마술·그림자놀이·영상 테크놀로지의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컬래버레이션으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공연예술의 신세계를 펼쳐 보였다.

우리 무용계에서도 컬래버레이션은 상당히 진척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시도나 화제성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는 대표성을 띤 레퍼토리로 확립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 속속 나와주어야 한다. 컬래버레이션은 이미 대안이 아닌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까닭이다.

글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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