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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페라의 카발리 ‘엘리오가발로’ & 푸치니 ‘토스카’
파격과 전통을 오간 야심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11/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1월호 - 전체 보기 )



파리 오페라는 2016/2017 시즌 오프닝 무대로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엘리오가발로’(9월 16일~10월 15일, 가르니에 극장)와 푸치니의 ‘토스카’(9월 17일~10월 18일, 오페라 바스티유)를 선보였다. 카발리의 작품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엘리오가발로’를 카운터테너 버전으로 올린 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또한 리바이벌 작품이지만 마르셀로 알바레스, 아냐 하르테로스 그리고 브린 터펠이 캐스팅된 ‘토스카’는 화려한 이벤트였다. 과연 파리 오페라의 수장 스테판 리스너의 거대한 두 야심작은 성공이었을까?

공상과학적 연출의 ‘엘리오가발로’


▲ 조명 효과가 돋보인 토마 졸리 연출의 ‘엘리오가발로’. 좌로부터 에리테아, 고르디오, 젬미라, 체사레 ©Agathe Poupeney

9월 21일 관람한 ‘엘리오가발로’의 음악은 환상적이었다. 카스트라토 레퍼토리 특유의 고음 기교는 다소 적었지만, 단순한 멜로디로 사랑을 노래하는 여성 배역 3인의 퍼포먼스는 감미로우면서도 신선했다. 또한 “최고의 카발리 연주자”라는 평을 받은 레오나르도 가르시아 알라르콘/메디테라네아 카펠라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카라바조의 화폭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화성적 색채와 보이스 간의 삼투압을 절묘하게 전달했다.

최근 연극 ‘헨리 4세’(2015 몰리에르상 수상)와 ‘리처드 3세’(아비뇽 페스티벌 70주년 초청) 등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호평 받은 젊은 연출가 토마 졸리(Thomas Jolly)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특유의 조명 효과로 이목을 끌었으나, 다소 미지근한 청중의 반응과 더불어 “놀라울 것 없는” “쓸데없이 시끄러운”이라는 ‘르 몽드’지의 악평을 샀다. 

무대는 연기의 비중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배역진은 좀 더 성악에 집중했고, 음악적으로는 뛰어난 결과를 냈다. 젬미라 역의 소프라노 내딘 시에라(Nadine Sierra)는 “오래전에 쓰인 오페라를 이처럼 현대적으로 연출했다는 점이 놀라웠다”며 “마치 한 편의 록 오페라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엘리오가발로’는 14세부터 4년간 로마 황제로 군림한 실제 인물 헬리오가발로의 삶을 그린다. 살해된 폭군 칼리굴라의 사촌인 그는 부도덕한 여성 편력이나 동성애를 서슴지 않았다. 또한 축제를 열어 돌이나 먹을 수 없는 것들을 하객에게 먹도록 강요한 비인간적이고 변태적 인물이다. 그중 장미꽃잎을 가득 먹여 죽게 한 사건이 유명하다. 비행을 일삼던 그는 결국 살해당했고, 시신은 시민들에 의해 끌려다니다 테베레 강에 던져졌다.

작품은 황제 엘리오가발로가 퇴락한 삶의 절정에서 로마 시민의 반기를 사는 삶의 마지막 장을 다룬다. 등장인물인 세 여성 젬미라, 에리테아, 마크리나와 체사레 그리고 고르디오는 서로 사랑하는 얽히고설킨 관계다. 황제에게 강간당한 후 명예 때문에 그와 결혼할 수밖에 없는 에리테아는 고르디오를 흠모한다. 그의 여형제 젬미라는 황제가 곧 농락하려는 대상이며, 체사레는 젬미라를 사랑하고, 에리테아는 체사레를 짝사랑한다.

플롯은 에리테아의 강간 장면에서 시작해 ‘젬미라가 황제에게 희생되느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드라마틱한 상황에서 체사레와 고르디오는 그들의 사랑을 구하기 위해 충성과 정의 가운데 고민하다 결국 사랑의 힘으로 정의를 되찾는다.

토마 졸리는 이 작품을 영화 ‘칼리굴라’(1979) 같은 말초적 역사물 대신, 검은 무대와 앙투안 트라베르의 기발한 조명으로 영화 ‘스타게이트’(1994) 같은 공상과학적 분위기를 구상했다. 붉은 조명이 반짝이는 거대한 구형체가 그 예다. 티보 파크의 무대는 연단과 그에 오르는 계단뿐이었고, 나머지는 액세서리 수준으로 연회 장면은 식탁, 궁정 장면은 일부만 보이는 거대한 동상으로 표현했다. 덕분에 청중은 구체적인 장소를 상상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개러스 퓨의 의상은 황제의 가문이 시리아인 점에 착안해 동양풍 비단으로 제작했고, 태양신 아폴론을 숭상한 로마인의 특징을 살려 주인공의 머리 뒤에 해 장식을 후광처럼 달았다. 이 점 또한 ‘스타게이트’의 라(la), 즉 파라오 의상과 흡사하다.

연출은 무대의 연장으로 오케스트라 피트를 자주 사용했다. 첫 장면에서 엘리오가발로(파지올리 분)는 피트를 거쳐 무대로 올라왔고, 그가 지휘자에게 사인을 주자 비로소 오페라가 시작됐다. 어두운 조명 아래 황제의 심복이자 동성연인인 조티코는 금발의 여인을 붙잡은 채 피라미드 입구 같은 통로로 던졌다. 에리테아의 납치다. 이 로마 여인의 납치, 강간은 역사적 사실로서 오페라 대본상 첫 대사인 체사레와 젬미라의 2중창 이전에 벌어진 일이며, 연출은 일종의 프롤로그로서 이를 시각화했다.

폭군의 음모를 이겨낸 사랑



▲ 실제 엘리오가발로가 자행한 ‘꽃잎 살해’를 연상시킨 2막의 연회 장면 ©Agathe Poupeney

1막.
체사레가 황제 엘리오가발로에게 젬미라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자 음흉한 황제는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여성들을 위한 모임을 개최한다. 모임을 제안한 레나는 그의 유모로 심복 조티코와 함께 비열한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다. 마치 ‘스타 게이트’의 TV 시리즈에 나오는 틸크가 드레스를 입은 듯한 이 괴상망측한 역은 테너 에밀리아노 곤잘레스 토로가 맡았다. 

황제가 젬미라를 유혹하고자 벌이는 2막의 연회 장면은 화려함 그 자체다. 하얀 식탁에 가득한 해산물, 초록빛 와인, 백색으로 치장한 등장인물까지. 바닥에 흩어진 꽃잎은 앞서 언급한 ‘꽃잎 살해’를 연상시켰다. 황제는 체사레를 독살한 후, 젬미라가 수면제 탄 술을 마시고 잠이 들면 그녀를 농락하려는 음모를 꾸미지만, 시종이 대신 마시는 바람에 실패한다. 이어 마치 신의 노여움처럼 궁정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연출상으론 검은 새떼가 모여드는 것으로 처리됐다. ‘부엉이의 춤’이라 명명된 패시지로, 검은 털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를 만든 후 이리저리 퍼지는 것으로 형상화했다. 아주 압도적인 장면으로 이번 연출에서 유일하게 칭찬받은 부분이다.

3막. 에리테아와 젬미라가 근위대장 고르디오에게 황제를 죽이지 않으면 그녀들에게 불행이 닥칠 것임을 일깨운다. 고르디오 역에는 카운터테너 발레르 사바두스가 분했다. 전반적으로 연기는 무리가 없었지만 가르니에 극장을 채우기에 성량이 다소 빈약했다. 3막 3장, 황제가 하체만 가린 남성 창부들에 둘러싸인 목욕탕 장면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그가 황금탕에 팔을 담그자 팔이 곧 금으로 변했고, 자신의 힘을 황금에 비기며 노래한다. 그러나 멀리서 반란군의 외침이 들리자 무서워하며 금물을 이리저리 튀긴다. 물은 물론 금 조각이 되어 무대 이리저리 흩어진다. 연출은 황제를 잔인한 폭군 대신 아직 철이 덜 든 사춘기 소년으로 그린 듯하다. 



하이라이트는 젬미라와 황제의 2중창이었다. 결혼을 억지로 종용하는 이 장면에서 파지올리(엘리오가발로 역)처럼 아름답고 신실한 아리아를 부르는 사람이 어떻게 악인일 수 있을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젬미라의 거절로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 울고 웃는 한탄을 이으며 뛰어나가는 장면에선 파지올리의 목소리와 연기력이 더욱 돋보였다. 그는 3시간 동안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이 에너지 넘치는 성량을 자랑했다.

작품의 대단원은 체사레를 살해하려는 엘리오가발로의 의도에 반기를 든 군인들과 함께 체사레가 정의를 되찾는 장면이다. 레나와 조티코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로마의 처녀들은 ‘엘리오가발로’의 알파벳을 들고 나온다. 산산조각 난 그의 시신을 뜻할지도 모른다.

한 가지 조악했던 점은 마지막에 교수형 당한 두 캐릭터를 공중에 매단 인형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 아래서 체사레와 젬미라, 고르디오와 에리테아는 사랑의 2중창을 부르며 막이 내린다. 


파리를 전율시킨 화려한 조합 ‘토스카’


▲ 토스카 역의 아냐 하르테로스와 스카르피아 역의 브린 터펠 ©Elisa Haberer

9월 23일 지켜본 ‘토스카’는 예상대로 소프라노 아냐 하르테로스, 테너 마르셀로 알바레스, 베이스바리톤 브린 터펠의 조합이 이슈였다. 그 예로 “하르테로스가 등장하자 파리 전체가 전율했다” 혹은 “트리움비라(triumvirat, 삼두정치)의 승리”라며 언론들은 극찬을 연발했다. 피에르 오디의 연출은 거대한 무대에 등장인물을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관건은 고착적인 세팅을 피하는 것이었지만, 교회나 스카르피아의 방 등은 클래식했다. 단, 감옥은 불탄 고목으로 둘러싸인 을씨년스러운 전쟁터로 표현했다. 



공연장은 박수 소리와 이를 저지하는 소리가 오가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른 하르테로스가 마지막 단어를 끝내기도 전에 청중은 광적인 브라보를 외쳤으며, 쉬는 패시지에선 놓치지 않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녀의 퍼포먼스 때문인지 ‘토스카’라는 대중적인 오페라를 탐미하는 청중 때문이었는지 아연했다.

아냐 하르테로스는 필자가 들어본 그 어느 성악가들보다 아름다운 음성을 지녔다. 곱고도 균일한 음에 약간의 색채감과 굴곡을 더한 결, 그리고 거침없이 포르테로 상승하는 폭을 지닌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다. 단, 그녀의 드라마틱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토스카라는 인물 자체가 되었던 마리아 칼라스나 안젤라 게오르규의 독기어린 연기에 비해선 다소 고운 느낌이었다.

아쉬웠던 점은 소품으로, 토스카가 스카르피아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끝이 둥근 나이프로 배가 나온 스카르피아를 죽인다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졌다. 연출로서는 상관이 없다고 보겠지만 작은 소품 하나가 왠지 모를 우스꽝스러움을 낳았다.

스카르피아 역의 브린 터펠은 음폭이나 테크닉에서 그간 보여준 완벽함보단 덜했지만 카리스마 하나는 일품이었다. 특히 표정 하나만으로도 고약하고 음흉한 스카르피아를 훌륭히 표현했다. 마르셀로 알바레스의 고상하고 품위 넘치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도 환상적이었다.

대단원은 연인의 시체를 안고 울부짖던 토스카가 자살하느냐, 아니냐였다. 카바라도시의 피처럼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토스카는 고목사이로 걸어 나갔다. 직접적인 자살 장면보다 더욱 감정이입을 이끌어낸 연출이었다. 


사진 Opéra national d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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