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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신 ‘포세이돈’ & 죽음의 신 ‘하데스’
유형종의 MYTH+MUSIC
글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11/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1월호 - 전체 보기 )




▲ 아그놀로 브론치노의 ‘넵튠(포세이돈)의 모습을 한 안드레아 도리아의 초상’(1530)

포세이돈(로마신화의 넵투누스)과 하데스(로마신화의 플루토)는 제우스의 형제들이다. 원래는 제우스보다 먼저 태어난 형들이지만 부친 크로노스가 자신의 권좌를 자식에게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두 아들과 세 딸(헤라·데메테르·헤스티아)을 삼켜버렸기 때문에 이들은 크로노스의 배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만 모친 레아의 잔꾀로 크로노스의 시선에서 벗어난 막내 제우스가 있었고, 그가 영리하게도 크로노스를 속여 구토제를 먹인 덕에 형제자매들을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사실상의 서열이 뒤바뀌어버렸다. 두 형은 크로노스의 배 속에서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지만 동생 제우스는 이미 반듯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으니 말이다.

삼형제는 힘을 합쳐 크로노스의 일족인 거인 티탄 무리를 물리치고 세상의 주인이 된다. 그 후 세상을 삼분하여 제우스가 하늘과 땅, 포세이돈이 바다, 하데스가 지하 세계를 맡게 된 것은, 제비뽑기의 결과라고 하지만 한쪽에 하늘과 땅을 몰아준 걸 보면 처음부터 제우스 몫이 되도록 장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포세이돈은 바다를 차지한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겨우 죽은 자들이나 만나는 지하세계를 얻은 하데스는 크게 실망했다. 또한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올림포스 12신의 반열에도 오를 수 없었다. 올림포스 자체가 땅과 하늘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지만, 권력쟁탈전의 상대가 될 가능성이 있는 형제들을 아예 배제하려는 제우스의 의중도 작용했으리라.

폭풍 노도의 격정적인 해신, 포세이돈

포세이돈의 이름은 진 해크먼 주역의 미국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에도 이용된 바 있다. 여기서 포세이돈은 고급 여객선인데, 뉴욕과 아테네를 오가고 있어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한 이름임을 명확히 한다. 그러던 중 해저에서 발생한 거대한 지진으로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친다는 것이 ‘어드벤처’의 출발점이다. 그렇다. 그리스신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포세이돈의 행동은 분기탱천하여 큰 풍랑을 일으키는 것이다. ‘덕’보다는 ‘힘’에 의존하는 신이요, 성급하고 직선적이며 보복에 집착하는 성격이어서 포세이돈의 현실 감각과 정치력·외교력은 부족하다. 그러니 전략적인 행동을 하는 제우스에게 늘 질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남편의 바람기에 진력이 난 헤라가 잠든 제우스를 묶어버리는 일을 도와달라고 포세이돈에게 부탁한다. 포세이돈은 그 일에 가담했다가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인간인 라오메돈 왕의 지휘 아래, 트로이 성벽을 축조하는 일에 동원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포세이돈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은 삼지창이다. 조각상이나 회화에서 포세이돈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 또한 삼지창을 든 신을 찾는 것이다.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들고 상반신은 말, 하반신은 뱀인 동물들이 끄는 마차를 탄 모습은 그가 원래는 땅 위의 신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바다를 다닐 때는 물고기와 돌고래, 바다의 늙은 신 네레우스의 아름다운 딸들, 반인반어 트리톤, 물개 떼를 몰고 다니는 프로테우스의 호위를 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상상만 해도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관광객들이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한 로마의 트레비 분수는 바로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넵투누스(그리스신화의 포세이돈)가 서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 중 ‘로마의 분수’(1916) 세 번째 곡이 바로 ‘한낮의 트레비 분수’다. 레스피기는 “빛나는 수면 위에 넵투누스의 마차가 바다의 말에 끌려 인어와 트리톤의 행렬을 거느리고 지나간다. 멀리서 다시 울리는 트럼펫의 연주가 작아지면서 행렬은 점차 멀어진다”는 설명을 직접 붙였다. 고대 로마의 눈부신 영광을 포세이돈의 장려한 행진에 빗댄 것이리라.

이보다 앞선 두 번째 곡 ‘아침의 트리톤 분수’도 포세이돈과 관계된다. 해신의 가장 중요한 수행자이며 커다란 조개껍데기 나팔을 불어대는 트리톤이 아침 햇살을 받는 모습을 담은 분수다. 레스피기는 “분출하는 물줄기 속에서 물의 요정과 트리톤을 부르는 기쁨에 넘치는 소리”라고 적었다. 포세이돈의 공식적인 아내는 네레우스의 딸인 암피트리테인데,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인어의 원초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트리톤이다.

창작자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포세이돈과 자식들


▲ 마크 모리스 안무의 헨델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Robert Torres

포세이돈은 제우스 못지않게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외도를 통해 얻은 자식들은 대개 비정상적이거나 폭력적인 존재였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도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오디세우스 일행을 붙잡아 잡아먹다가 오디세우스에 의해 외눈마저 잃는데, 이에 분노한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더욱 악착같이 방해한다. 그런데 이 괴물의 거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음악극도 있으니 헨델의 ‘아키스와 갈라테이아’(1718)가 그것이다. 영어로 된 일종의 목가극, 전원극인데 지금은 오페라처럼 공연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취재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갈라테이아는 바다의 요정이지만 목동 아키스를 사랑했다. 그런데 외눈박이 폴리페모스도 갈라테이아를 늘 쫓아다녔다. 폴리페모스는 나름대로 갈라테이아를 기쁘게 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고 그녀가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미소 짓고자 했으며 괴물답지 않게 수염을 다듬는가 하면 세수도 했다. 어느 날 폴리페모스는 갈라테이아에게 들려주겠다며 100개의 갈대로 거대한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아키스의 팔에 안겨 시칠리아의 바다에 누워 있던 갈라테이아는 멀리서 들려오는 그 노래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폴리페모스는 격한 고함을 지르며 그곳으로 달려왔고, 갈라테이아는 재빨리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아키스는 폴리페모스가 산허리를 통째로 잘라 던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슬픔에 빠진 갈라테이아는 신의 혈통을 활용하여 아키스의 피를 물로 바꾸고, 마침내 죽은 연인을 새로운 강의 신으로 되살려낸다.

포세이돈은 그리스 로마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의 신화와 민담에서 바다 밑, 혹은 강 밑에 궁전을 둔 신으로 묘사되곤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용궁에 거주하는 용왕인 셈인데, 유난히 발레에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우리나라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심청’(1986)에 용궁 장면이 나오고, 덴마크 발레의 상징적 인물인 오귀스트 부르농빌의 발레 ‘나폴리’(1842)에서는 나폴리 인근 카프리 섬의 명소인 푸른 바다동굴 그로토를 지배하는 바다괴물 골포가 포세이돈과 유사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작으로서 초기 경력을 대표하는 ‘파라오의 딸’(1862)에는 나일 강 수면 아래에 강의 신이 사는 궁전이 나오는데, 역시 포세이돈과 닮은 느낌이다. 물론 포세이돈은 원칙적으로 바다의 신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강과 호수, 샘에도 권능을 행사하는 물의 신이다. 프레더릭 애슈턴이 안무한 물의 요정 이야기 ‘온디네’(1858)에서 주인공을 사랑하는 티레니오 역시 물의 세계의 지배자다.

땅속의 은둔자, 하데스


▲ 잔 로렌초 베르니니 ‘(하데스의) 페르세포네의 납치’(1622)

제우스의 또 다른 형제인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 자’란 뜻이다. 죽은 자들의 영혼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로마신화에서 불리는 ‘플루토’란 이름은 다른 의미다. ‘부자’ 혹은 ‘부를 주는 자’란 뜻이다. 어두운 인상보다는 땅이 안겨주는 자원의 풍요로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시각이다. 하데스의 대표 상징물은 쓰기만 하면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키네에’라는 투구다. 흥미로운 점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마법투구 ‘타른헬름’과 그 개념이 거의 같다는 점이다. 지하세계의 난쟁이족이 만든 변신 도구가 타른헬름 아닌가.

제우스에 비해 포세이돈의 일화가 훨씬 적지만, 하데스의 경우에는 포세이돈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스토리가 거의 없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신붓감을 찾다가 지친 나머지 올림포스 여신이자 농경을 주관하는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사건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지 4월호의 ‘데메테르’ 편에 상세히 기술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오페라에서는 하데스 혹은 플루토가 직접 등장하거나 지하세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특히 오르페오 이야기를 다룬 경우에 그러하다. 몬테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초기 역사의 명작 ‘오르페오’(1607) 3막에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의 모습이 보인다. 카론은 오르페오의 애끓는 호소에도 절대 살아 있는 사람을 배에 태울 수 없다고 고집한다. 그러나 오르페오가 슬픔으로 가득한 노래를 부르자 고집이 무너지고 곧 잠들어버린다. 장·단조 체계가 정립되기 이전의 음악이라 처음 들으면 생소할 수 있지만, 바로크 음악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다. 카론은 실제 잠든 것이 아니라 감동하여 잠든 척 눈을 감아준 것일지도 모른다. 4막에는 플루토가 페르세포네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플루토는 오르페오의 직접적 간청보다는 아내 페르세포네의 감동에 자극받아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다.

이보다 한 세기 반이 지난 후에 나온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는 지하세계에 대한 대조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머리가 셋 달린 사나운 개 케르베로스가 지키는 지옥의 입구 장면은 대단히 괴기스럽게 묘사된 반면, 난관을 극복하고 선량한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들어오자 모든 정경이 따사롭기만 하다. 그 유명한 발레 음악 ‘축복받은 정령들의 춤’과 오르페오의 노래 ‘얼마나 아름다운 하늘인가’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왜 오르페오가 아내를 다시 데려가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다만 오페라세리아(비극적인 내용의 정통 가극)의 장황한 면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오페라여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아예 배역에서 빠져 있다.

다시 한 세기가 지나 오펜바흐가 오페레타로 작곡한 ‘지옥의 오르페’(1858)에서는 플루토의 활동상이 대단하다. 에우리디체를 납치하여 지하세계로 데려온 것으로 설정했으니 신화의 페르세포네 납치 사건을 에우리디체로 패러디한 것이다. 오페레타답게 플루토를 무척 희극적인 캐릭터로 묘사한 점도 모든 인문학 장르를 통틀어 찾아보기 드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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