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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막후의 지휘자가 되다
황덕호의 JAZZ RECORDING HISTORY
글 황덕호(재즈평론가) 11/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1월호 - 전체 보기 )



전 주파수 대역 녹음, 릴 테이프, LP, 스테레오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10여 년 간의 기술적 변화는 결국 하나의 거대한 열매로 귀결된다. 바로 1960년대 ‘록의 탄생’이다.

1950년대에 로큰롤이란 이름으로 블루스의 변종이 탄생할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 음악을 10대를 위한 춤곡 정도로 인식했다. 하지만 대서양 건너 영국으로 간 이 음악은 10년 뒤 당대를 상징하는 예술품으로 변신해 모든 음악을 선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모든 녹음 기술과 음반 제작 진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클래식 음악은 그 성과를 고스란히 록 음악에게 바쳐야 했다.

물론 그 정점에는 비틀스가 있었다. 1965~1967년 발표한 3장의 음반 ‘Rubber Soul’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Apple)는 더 이상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었다. 1940년대 중반 투 트랙 녹음을 적용한 마그네틱테이프는 20년 뒤엔 16트랙 녹음으로 늘어났고 테이프 역회전, 편집, 복사, 에코 효과 등의 기술은 이제 녹음(record)을 ‘기록’에 머물지 않도록 했다. 다시 말해 소리와 녹음의 관계가 전도된 것이다. 녹음은 존재하는 소리를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실황 무대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소리를 어떻게 해서든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프로듀서는 아티스트의 소리를 녹음해 음반으로 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또 하나 아티스트가 되어 음악 그 자체에 깊이 개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폴 매카트니는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 1926~2016)을 ‘비틀스의 5번째 멤버’라고 불렀다.

이러한 경향은 재즈로 이어졌다. 이를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던 사람은 첨단의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1960년대 후반 그의 관심은 이미 재즈를 떠나 새로운 음악, 즉 록과 펑크 음악으로 옮겨가던 중이었고, 자신의 스타일도 그 흐름에 따라 급진적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피아노는 어쿠스틱에서 일렉트릭으로 바뀌었고 여기에 오르간이 더해졌다. 또한 그는 전통적인 할로 보디(공명통이 있는 보디) 재즈 기타 대신 블루스 혹은 록 성향의 기타 연주자를 밴드에 기용했다.


▲ 마일스 데이비스와 테오 마세로

더욱 중요한 것은 데이비스가 비밥 시대 이래 내려오던 복잡한 화성 구조의 주제를 갈수록 멀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69년 2월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그의 연주는 몇 개의 주제가 등장하는 약 35분가량의 즉흥 잼세션의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녹음 후 그는 음악의 절반을 거둬내고 18분 정도만 남겨두었다. 게다가 삭제된 부분은 대개 곡의 주제 부분으로, 나머지 분량으로는 도무지 음반 한 장을 채울 수가 없었다. 이때 프로듀서 테오 마세로(Teo Macero, 1925~2008)는 주어진 18분을 가지고 음악의 순서를 뒤바꾸고 특정 부분을 복사해 다시 반복 재생하는 편집 기술을 이용해 총 39분짜리 음반 ‘In a Silent Way’를 만들어냈다. 제목처럼 고요하고 미니멀하면서도 1960년대의 신비스런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가득한 결과에 마일스 데이비스 역시 만족했고, 음반은 그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이정표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프로듀서는 자신만의 사운드를 지닌 하나의 ‘상표’가 되었다. 베들레헴·임펄스·버브에서 재즈의 명반들을 제작해온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 1929~)는 이러한 흐름이 기회란 사실을 간파했고, 자신의 이니셜을 딴 레이블 CTI를 설립해 1967년 A&M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과장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화려한 사운드를 구현해낼 수 있는 편곡자를 늘 물색했는데, 한동안 할리우드 영화 음악에 전념한 퀸시 존스는 최적의 인물이었다. ‘Walking in Space’는 존스의 화려한 편곡과 일급 독주자들의 즉흥연주를 우주 개발 시대의 환상적 분위기로 표현한 걸작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 매료되었던 독일의 만프레트 아이허(Manfred Eicher, 1943~) 역시 그만의 독특한 넓은 공간감과 맑고 청아한 느낌의 스튜디오 사운드를 구축한 후 자신의 레이블 ECM을 1969년 발족했다. 그것은 장고 라인하르트 이후 유럽 재즈의 또 다른 독립 선언이었으며 이제 곧 출범 50년을 맞이하게 되는 최장수 재즈 독립 레이블의 시작이었다. 그 가운데 페달 이펙트와 오버더빙 기술을 과감하게 사용한 에버하르트 베버는 레이블의 성격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한 아티스트였다.

레이블 블루 섬을 설립했으며 리버티·A&M·컬럼비아 등에서 아티스트 및 레퍼토리 담당과 프로듀서로 일해온 토미 리퓨마(Tommy LiPuma, 1936~)는 1974년 워너브라더스의 프로듀서로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8년간 크리드 테일러와 작업해오던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조지 벤슨을 영입해 R&B 사운드와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한 음악을 제작했다. 슈퍼스타가 되고 싶었던 벤슨의 열망은 비로소 이때 완성되었다. 리언 러셀의 곡을 재해석한 ‘This Masquerade’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음반 ‘Breezin′’을 멀티플래티넘 레코드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것은 아티스트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프로듀서와의 공동 작품이었다.

이달의 추천 재즈음반


마일스 데이비스 ‘In a Silent Way’
Columbia-Legacy CK 86556│1969년 2월 18일 녹음
테오 마세로(프로듀서)/마일스 데이비스(트럼펫)/칙 코리아·허비 핸콕(일렉트릭 피아노) 외


퀸시 존스 ‘Walking in Space’
A&M 314 520 310-2│1969년 6월 18~19일 녹음
크리드 테일러(프로듀서)/퀸시 존스(편곡·지휘)/밸러리 심슨(보컬)/프레디 허버드(트럼펫) 외


에버하르트 베버 ‘The Colours of Chloë’
ECM 833 331-2│1973년 12월 녹음
만프레트 아이허(프로듀서)/에버하르트 베버(첼로·베이스·오카리나)/아크 판 루옌(플뤼겔호른) 외


조지 벤슨 ‘Breezin′ ’
Warner Bros 7599-27334-2│1976년 1월 6~8일 녹음
토미 리퓨마(프로듀서)/조지 벤슨(기타·보컬)/로니 포스터·호르헤 달토(건반)/필 업처치(리듬 기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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