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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 ‘맥베드’ 연습 현장
그들이 모인 이유
글 김선영 기자 11/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1월호 - 전체 보기 )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기념비적인 다양한 작품이 오르는 가운데, 11월 24~27일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건용)이 베르디의 ‘맥베드’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1979년 서울시오페라단 초연, 2008년 국립오페라단 공연 이후 국내에선 세 번째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베르디의 애정은 대단했다. 희곡 ‘헨리 4세’를 무대화한 ‘팔스타프’와 ‘오텔로’는 작곡가 말년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반면 30대에 작곡한 ‘맥베스’는 상대적으로 자주 만나기 어려운 편이다. 음악 면에서 상당한 기교를 요할뿐더러, 원작의 거칠고 어두운 면모를 무대에 드러내기 위해 드라마적 요소를 상당히 강조한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성을 음악으로 배가시킨 베르디의 ‘맥베스’는 그야말로 심오하고 통렬하다.

고선웅+구자범+α


지난 10월 중순, ‘맥베스’ 공연 한 달여를 앞둔 서울시오페라단 연습 현장을 찾았다. 때마침 본격적으로 시작될 연기 연습을 앞두고 연출을 맡은 고선웅이 제작진과 출연자 전체를 모아 작품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서로 인사하는 시간이 마련된 터였다.

대부분의 공연예술 장르가 그렇듯,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역뿐 아니라 무대 곁에서, 뒤에서 애쓰는 이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가장 많은 출연자와 스태프를 동원하는 장르를 꼽으라고 할 때 오페라는 단연 선두에 있다. 연출가와 지휘자,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무용단, 무대미술, 조명, 의상, 소품, 영상처럼 무대 위 시각적 영역을 맡아 조율하는 사람들 외에 객석에선 전혀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스태프까지 헤아리다 보면, 오페라를 공연한다는 것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거나 몇 개월에 걸친 대 항해를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대규모 스태프와 출연자들이 동시다발로,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들어가기 전, 작품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공유하는 것은 첫 오페라 연출을 맡은 고선웅에게 필수 과제와도 같았다. 그 때문인지 서울시오페라단의 지난 프로덕션들에 비해 이번 공연은 무대미술, 소품, 의상, 영상 등의 콘셉트가 상대적으로 빨리 확정된 편이었다.

극공작소 마방진을 이끌고 있는 연출가 고선웅은 연극 ‘푸르른 날에’ ‘홍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뮤지컬 ‘아리랑’,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는 연출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간 다채로운 장르의 극음악 연출을 섭렵해온 고선웅이 오페라에선 그만의 스타일을 어떻게 구현할지, 오히려 클래식 음악 외 타 장르 관계자 사이에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한편 몇 달 전 서울시오페라단 ‘맥베드’ 제작진이 발표됐을 때 클래식 음악계의 호기심을 자아낸 이는 지휘자 구자범이었다. 몇 해 전, 경기 필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던 그가 귀국 전 독일 오페라극장 지휘자로 경력을 쌓아온 것이나, 10여 년 전 국립오페라단 ‘투란도트’로 국내 오페라 데뷔를 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오랜만에 지휘봉을 드는 구자범의 이번 공연에 기대와 궁금증이 상당할 것이다. 게다가 각각 경기도립극단, 경기 필 예술감독 시절에 함께 시네마콘서트를 만들었던 경험 덕에 이번 ‘고선웅+구자범’ 조합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독, 눈을 감을 때 비로서 보이는 것들



인간의 어떤 행동과 잘못으로 비극은 벌어지는가. 거기에서 우리가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만큼 이것을 처절하고 선명하게 일깨워주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행동으로 성취하며 파멸 속으로 빠져든 맥베드의 이야기에서 고선웅은 ‘탐욕은 약물처럼 중독성이 강하고, 분별에 눈멀게 하여 자멸로 내몬다’는 주제 의식을 꺼내들었다.

“제게 강렬하게 다가온 ‘맥베드’의 시각적 모티브는 몽유병, 그리고 마녀들이었어요. 눈 뜨고 잠자는 몽유병, 탐욕에 눈멀게 하는 마녀들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을 일깨웠죠. 저는 마녀들이 맹인같이 보여요. 이전에 연극 ‘칼로 막베스’에선 마녀를 맹인술사로 내세운 적이 있죠. 마녀들이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들이 예지할 때, 맥베스 내면의 사악한 그 무엇이 꿈틀거려 부추김 당하고 휘둘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눈이 머는 과정에 중독이 있어요.”

중독은 계속 심화된다. 덩컨 한 명으로 족한 살인을 맥베스는 친구 뱅코우, 이후 맥더프의 처자식까지 이어간다. 살인은 심화되고 결국 몰락을 초래한다. 이 과정을 고선웅을 이미 공연 포스터를 통해 마약, 즉 ‘하얀 중독’으로 표현했는데, 무대 위에도 다양한 미장센으로 드러낼 예정이다.

“왕과 기사, 갑옷 같은 고전 시대 뉘앙스가 우리나라 사람에겐 억지 춘향처럼 보인다”는 고선웅은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현대의 어느 뒷골목으로 옮겼다. 무대 디자이너 이태섭은 콘셉트 스케치를 보여주며 “무대는 심리적이고 초현실적인 상황에 주목하게 될 것”이라며 “프로젝터를 탑재한 3개의 대형 스크린이 움직이며 작품에 필요한 공간을 은유적 영상과 함께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무대에 투사되는 영상은, 상당한 장면 전환을 요하는 극 전개에 적극 활용된다. 영상 디자이너 이원호는 “수작업으로 회화적 질감을 살려 극의 무게감을 유지하되,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 상징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작품 콘셉트 상 특정 장소나 공간을 면밀하게 드러내기보단 중의적으로 해석되도록 만들 예정. 여기에 도시, 마약, 환각, 권력, 욕망, 허무 등 주인공의 내면이 각 장마다 고유한 색감으로 표현될 예정이다. 검정과 흰색 톤을 기본으로 빨강, 보라, 파랑 등 캐릭터의 내면을 반영한 색상들은 의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의상 디자이너 김지연은 “현대의 의상을 기본으로 초현실적인 마녀들의 의상을 뒤섞어 욕망에 갇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인물을 나타낼 예정”이라며 직접 스케치한 의상 이미지를 스크린에 띄웠다.

고선웅은 아리아가 우리말도 아니거니와 악보도 잘 보지 못하지만 장면마다 필요한 감정선, 드라마에 대한 해석과 전개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갈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궁극적으론 성악가들이 ‘존재의 힘’을 갖출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이 각기 다른 감정과 정서에 충실한 시선, 제스처, 자세 가운데 부족한 부분들을 다듬기만 해도 캐릭터의 존재감은 한층 살아나죠. 여기에 액션―리액션만 잘 버무리면 훨씬 덜 지루할 것 같아요. 음악은 구자범 지휘자의 영역이니 전적으로 맡기고 있습니다. 저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절충 가능한 시도를 반영할 생각입니다.”

‘지나친 탐욕은 파멸을 초래한다’는 교훈을 17세기 텍스트로 써내려간 셰익스피어, 이 명제를 어둡고 거친 음악으로 고스란히 담아낸 베르디의 19세기 오페라, 그리고 이제 21세기 동시대 관객과 새롭게 통할 준비를 마친 서울시오페라단의 ‘맥베드’를 기대해본다.

바리톤 양준모 & 베이스바리톤 최웅조, 동갑내기 맥베스와 뱅코우를 만나다


11월 서울시오페라단 ‘맥베드’에서 주인공 맥베스를 맡은 바리톤 양준모, 마녀의 예언으로 친구 맥베스에게 살해당하는 뱅코우 역에 베이스바리톤 최웅조를 함께 만났다. 현재 뉘른베르크 슈타츠오퍼 주역 가수 양준모는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파르지팔’의 클링조르 역으로, 독일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최웅조는 2012년 창작오페라 최우정 ‘연서’의 재필 역으로 이미 국내 관객과 조우한 바 있다.

1974년생 동갑내기인 두 성악가는 지난해 독일 아이덴하임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맥배드’로 한 무대에 나란히 오른 데 이어, 올해 같은 작품으로 서울시오페라단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한낮 기온이 40도 정도까지 올라가는 여름 페스티벌 무대에서 가죽 바지와 점퍼를 입고 공연을 했죠. 연출가의 해석이 신선한 반면, 음악은 베르디적 느낌이 덜했는데, 이번 한국 공연에선 구자범 지휘자와 함께 연습하면서 작곡가의 의도를 살린 음악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최웅조)

테너는 주인공, 바리톤은 악역이나 조력자로 등장하던 19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계에서 베르디가 ‘맥베드’의 주역으로 바리톤을 내세운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드라마틱한 오페라를 마지막까지 동일한 컨디션으로 끌고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다.

“2009년 처음 ‘맥베드’ 무대에 올랐을 땐 정말 뭣 모르고 겁 없이 덤볐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무대가 참 두려워요. 원작에 쓰인 것을 가수는 음악으로 풀어내어 보여줘야 하고, 연극적 요소를 표현하는 것 역시 정말 힘들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처럼 큰 공간에서 모든 관객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알 수 있도록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것도 숙제 중 하나죠.” (양준모)

베르디 ‘오텔로’의 이아고처럼 욕심에 사로잡힌 캐릭터를 노래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는 양준모는 이번 무대에서 맥베스의 인간적 두려움과 내면에 사악함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불길한 예감 속 친구가 보낸 자객에게 죽임을 당하는 뱅코우의 정서를 최웅조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맥베드가 끝까지 힘들어하는 반면, 뱅코우는 2막 피날레 전에 죽죠.(웃음) 2막 뱅코우의 아리아는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에요. 그럼에도 베이스 대표 아리아 중 하나로 손꼽히죠.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고’를 부르다 보면, 베르디가 뱅코우를 죽이기 전 모든 에너지를 쏟아놓도록 음악적으로 의도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인터뷰 말미, 두 성악가는 국내 무대에 8년 만에 오르는 ‘맥베드’를 관객들이 흥미롭게 감상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먼저 읽고 극장에 올 것을 추천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오페라 1~4막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미리 파악하면 공연 관람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 최웅조는 오페라를 본 어느 어린이가 ‘왜 같은 말을 저렇게 많이 반복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며 “가수들이 어떤 내용과 의도를 전달하고자 반복하거나 강조하는지 유추하면서 공연을 본다면 공연이 좀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것”이라 전했다.

서울시오페라단 ‘맥베드’

11월 24~27일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예술총감독 이건용, 연출 고선웅, 지휘 구자범, 연주 오케스트라 디 피니
스칼라 오페라합창단·메트 오페라합창단
맥베스 양준모·김태현, 맥베스 부인 오미선·정주희, 뱅코우 최웅조·권영명 외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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