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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오페라앙상블
‘우리의 얼굴’을 찾아서
글 김선영 기자 10/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0월호 - 전체 보기 )



우리나라 대표 소극장 오페라 단체로 손꼽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지난날, 우리네 ‘소극장’ ‘오페라’와 관련된 몇 장면을 살짝 들춰볼 필요가 있다.

먼저 ‘소극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이가 떠올리는 것은 1977년 개관한 소극장 공간사랑일 것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온갖 형태의 공연예술 교차로이자 창작·실험의 산실, 소극장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작품으로서 답을 내놓은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한국의 ‘소극장 오페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연출가 문호근이다. 지휘자 홍연택과 함께 1980년대 우리 오페라계를 이끌어온 그는 1986년 12월 ‘우리시대 우리들의 음악극’의 필요성을 외치며 한국음악극연구소를 열었다. 오페라·뮤지컬·창극 등 음악극을 연구하고 전문 인력을 가르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였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연습을 통해 오페라를 소극장 무대에 올리면서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프로그램인 ‘오페라실습코스’를 만들었고 오페라 작곡워크숍, 연출교실, 음악극감상회도 운영했다. 오늘날 장르를 불문하고 국내 공연예술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신진 예술가 개발 프로그램의 원류 격이다. 1980년대 오페라상설무대(단장 김일규), 한국오페라소극장(단장 원지수) 등 여러 단체가 활동했지만, 예술가를 양성하고 창작오페라의 미래를 모색하고 실험했던 시도의 여러 흔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 때 한국음악극연구소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을 주 무대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 1980년대, 민간오페라단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화려한 대극장 오페라를 선호하는 풍토 속에 소극장 오페라는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립오페라단만이 간헐적으로 작품을 올리며 명맥을 이어갔다.

1993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개관으로 더욱 풍요로워진 국내 오페라 환경 속에 소극장 오페라를 위한 움직임은 1994년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늘어났다. 1993년 창단된 예울음악무대(예술감독 박수길)는 이듬해인 1994년 창단공연으로 푸치니 ‘잔니 스키키’를 번안한 ‘김달중의 유언’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렸고, 1994년 창단된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은 같은 해 창단공연으로 드뷔시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1995년 풀랑 ‘목소리’, 페라리 ‘수잔나의 비밀’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성공적으로 올리며 소극장 오페라 활성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소극장 오페라 운동에 참여한 오페라단들은 몇 백 년 전 유럽의 오페라가 탄생한 시기의 ‘극 중심 소극장 공연’을 연상케 하듯, 오늘날 관객의 눈에도 창의적이고 신선한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오페라의 새로운 매력을 선사했다.

1995년 국립오페라단과 민간오페라단들은 오페라의 질적 향상과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펼쳐나간다. 국립오페라단(단장 박수길)은 오페라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에 앞서 최소한 넉 달 이상의 오페라 워크숍을 실시했다. 연기·발레·한국무용 등을 통해 오페라의 기본이 되는 동작을 연습하는 프로그램으로, 오디션으로 선발된 출연진은 공연 작품 연습과 함께 워크숍 프로그램을 이수할 것으로 제시됐다.

김자경오페라단은 ‘호프만의 사랑 이야기’(1995) 공연 전 낮 시간대에 열리는 드레스 리허설을 이틀간 무료로 공개했다. 당시 공연 티켓 가격은 2만~8만 원이었는데, 타 장르 공연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학생은 물론 일반 직장인들도 쉽게 찾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마련한 것이었다. 창단 2년 차에 들어선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오페라극장 문턱 낮추기’를 모토로 레퍼토리 다양화를 위해 흡연, 해프닝 등 현대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소재로, 러닝타임 1시간 이하인 현대 오페라를 선보였다. 실연당한 여인의 극장적인 심리를 묘사한 장 콕토의 희곡을 바탕으로 프랑스 작곡가 플랑이 만든 ‘목소리’, 아내의 흡연이 빚어낸 부부갈등을 코믹하게 그린 볼프 페라리의 ‘스잔나의 비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소극장오페라연합회가 결성되고 1999년 소극장오페라축제가 국립극장에서 시작됐다. 첫해엔 국립오페라단과 국내 6개 민간오페라단이 모여 2월 한 달 간 7개의 작품을 올렸다. 국립극장이 공연을 위해 소극장과 국립오페라단의 기자재·의상을 무료로 빌려주고, 코리안심포니의 연주 비용을 국립오페라단이 부담했다. 당시 IMF로 인해 위축된 경기에서 비롯된 영향도 없지 않았다. 예울음악무대와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주도했던 소극장오페라축제는 올해 18회를 맞이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시작

1994년 5월 ‘창작오페라 발굴’과 ‘오페라 전문화’를 목표로 30~40대 음악가와 무용가들이 모여 창단한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은 같은 해 8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드뷔시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를 올리며 출생신고를 마쳤다. 20세기 현대 오페라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을 올리면서, 관객의 공감대를 넓히고자 다소 난해할 수 있는 대사를 우리말로 표현했다.
경향신문 1994년 8월 13일자 기사에서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개관 이후 무대에 오른 작품 상당수가 이탈리아 멜로 오페라였거니와 그마저 외국 연출가, 지휘자를 초빙하는 데 거액을 쓰고 한물간 무대장치와 의상을 대여해오는 등 국내 오페라계가 자체 발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한 번 무대를 올리는 데 2억원의 거액이 들어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페라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장수동은 “기존의 오페라 질서를 어떻게 비틀 수 있을지, 다르게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해외에선 오페라가 작은 극장부터 시작해 발전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오페라 초연작이 대부분 대극장에서 올랐죠.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로 대극장 무대에 섰는데, 모두가 조수미·정명훈처럼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초보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젊은 지휘자·연출가·가수들을 양성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곳이 소극장입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22년 발자취

1994년 창단, 올해 22주년을 맞이한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그동안 내놓은 그림은 예술감독이자 대표로 단체를 이끌어온 장수동의 땀과 눈물로 채색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립오페라단에서 연출 경력을 쌓은 장수동은, 경향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으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라 스칼라극장 아카데미에서 오페라 연출 전공, 문예진흥원 해외파견예술인 자격으로 헝가리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무대연출을 수학했다. 현재 다양한 현장을 오가며 연출가로 활동 중인 그는 (사)한국소극장오페라연합 이사장, 아시아태평양오페라발전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창작자이자 연출가인 장수동의 활동 반경 덕에 서울오페라앙상블의 공연 연보를 보면 번안 및 창작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그간의 역사를 약 10년 단위로 나눠 살피면서 장수동 예술감독과 함께 서울오페라앙상블을 빛낸 작품들을 꼽아봤다.


▲ 번안 오페라 ‘서울 라보엠’(1997)

1997·2001·2002·2014년 번안 오페라 ‘서울 라보엠’ 장수동이 번안을 맡아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 시리즈’로 내놓은 작품이다. 푸치니 원작의 주인공 미미와 로돌포는 수놓는 아가씨와 가난한 시인이지만, ‘서울 라보엠’에선 1980년대 광주의 병원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 전직 간호사 이하영와 계엄군 출신의 젊은이 노한솔이 등장한다. 로돌포의 다락방은 신촌에 자리 잡았고, 2막의 카페 장면은 신촌의 술집 ‘라 보엠’으로 바뀌었으며, 3막은 백마역 근처로 설정됐다. 번안에 대한 호불호는 확연했다. “푸치니를 욕하는 행위”라는 혹평이 있는가 하면 “관객의 피부에 와 닿는 오늘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풀어나갔고 그 결과로 관객을 설득시켰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오페라가 더 이상 케케묵은 과거에 머물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 셈이다”(‘객석’ 1997년 5월호)라는 평가도 있었다.


▲ 베르디 ‘리골레토’(2006)

2006·2010년 아시아 오페라 ‘리골레토’ 홍콩에서 우연히 만난 미얀마 사람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은 장수동은 아시아 버전의 번안을 구상한다. 배경은 20세기 말 난민들이 모여 사는 아시아의 한 항구도시 K, 베르디의 작품 속 계급 갈등은 검은 돈으로 부를 축적한 화교(두카와 그 일당)와 베트남 전쟁 난민(리골레토, 질다, 스파라푸칠레와 마달레나)의 인종 간 대립 구조로 대체됐다. 화교와 베트남 난민 간의 대립으로 설정된 이 작품은 범아시아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2006년 5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랐고, 2010년 베이징국제음악제에 초청됐다.


▲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2010)

2010·2014·2015년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그리스신화를 바탕으로 18세기 독일 작곡가 글루크가 작곡한 바로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내놓으면서 작품 배경을 서울의 지하철역 플랫폼으로 옮겼다. 지하철이 멈춘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오르페오가 홀연히 나타나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노래한다. ‘바리데기’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상복을 입히고, 씻김굿 의식이 등장하는 등 전통 요소를 활용해 원작과의 문화적 거리감을 좁혔다. 제12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 세월호 참사, 메르스 등의 사회적 이슈와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연출은 한국 땅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위한 씻김굿이자 레퀴엠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됐다. 2015년 밀라노세계엑스포 기간 중 ‘한국문화주간’ 공연으로 초청받아 밀라노 팔라치나 리베르티홀에서 공연됐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의 시작은 민간단체에서 시작됐으며, 이것은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매우 독특한 지점이다”라는 이야기로 시작된 장수동과의 대화는 즉문즉답으로 한참 동안 이어졌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이자, 30년 넘게 현장에서 오페라를 만들어온 연출가로서 겪어온 시간과 경험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는 단체가 지나온 과거보다 앞으로 오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공립오페라단과 민간 오페라단이 올곧게 동반 성장해야 한국 오페라의 내일이 있기에 민간 오페라단의 자생적 노력에 국가 정책이 뒷받침되길 바란다”면서 “논쟁이 없는 발전은 있을 수 없다”며 힘주어 이야기한 내용 중 일부를 그의 목소리로 들어본다.


▲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 장수동

현 제도권에서 지원을 받아 창작하거나 해외 투어하는 오페라 작품의 상당수는 ‘춘향’ ‘심청’ 같은 민족색과 지역색 짙은, 이른바 ‘영웅담’입니다. 그래야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한 단체가 장일남 ‘춘향’을 들고 가면, 다른 단체는 현제명 ‘춘향’으로 해외 공연을 가는 식이 됩니다. 해외 극장 관계자들은 “한국 단체들은 심청, 춘향밖에 할 줄 모르느냐”고 이야기합니다. ‘오페라’라는 장르로 해외에서 평가받고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그들의 문화에서 비롯된, 그들이 아는 레퍼토리로 교류하며 승부수를 띄운 뒤 우리 정서가 담긴 작품을 보여줘야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엔 글로컬(glocal, global+local) 오페라들이 나와야겠죠.

그런데 지금의 제도에선 영웅담이나 지역색 짙은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소재로 창작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해요. ‘창작’이라는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뮤지컬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창작을 위한 소재의 자유로움이 오페라계에선 유독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죠.

무엇보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2~3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북경, 상하이, 도쿄, 오사카, 타이페이, 홍콩, 방콕,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도시는 우리에게 좋은 오페라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작품을 창작하고, 프로덕션을 꾸릴 때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도전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오페라는 그동안 지독한 편식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유명 작품만 골라 가수 중심으로 무대가 세워졌어요. 소위 말하는 ‘한탕주의’ 공연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잘하는 가수 몇몇만 계속 불려다니고 그들의 수명은 단축되죠. 이제는 작품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새로운 프로덕션이 필요해요. 작품 개발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원에서 잘 알려진 고전 대신 현대 작품을 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장치를 마련하면 어떨까요.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개인이 현대 오페라 혹은 창작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에도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정책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신작 발굴, 새로운 프로덕션을 만들려는 분위기가 활성화되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국립오페라단을 중심으로 레퍼토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지금보다 더 다양한 지역을 두루 다니며 공연해야 합니다. 그것이 힘들다면 민간단체를 참여시켜 함께 공연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레퍼토리 구축 면에서 민간에서 주목받은 작품이 있다면 그것을 국립오페라가 사와서 더욱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우리 오페라가 건강하게 존속되기 위해선 양질의 공연을 계속 개발해 구축하고 무대에 올려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 일 년에 한 번 지방에서 제작된 공연이 도쿄 신국립극장 무대에 올라갑니다. 지역에 기회를 주는 것인데, 서류를 작성해 신청하는 방식이 아닌, 심사단이 직접 지방을 다니며 공연을 관람하고 좋은 작품을 선정해서 올립니다. 홋카이도 색채가 물씬 풍기는 ‘마술피리’, 아톰이 등장하는 ‘투란도트’ 같은 작품까지, 그야말로 글로컬한 작품이 양산되는 셈이죠.

반면 우리는 자꾸 외국에서 프로덕션을 사다 씁니다. 민간오페라단이 공연을 사오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공연 이후 그들이 국내 스태프와 아무런 교류 없이 끝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무엇으로 교류하고 그들이 지닌 자산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 연결 고리를 만들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사진 서울오페라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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