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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드라시 시프 & 머리 페라이어
살아있는 피아노 거장
글 국지연 기자 10/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0월호 - 전체 보기 )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과 다른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클래식 음악 안에 담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가치일 것이다. 수많은 작곡가가 이 가치를 악보에 담았고, 연주자들이 그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수많은 예술가에 의해 지켜지고 보존된 절대적 아름다움, 이것이 클래식 음악의 정신이다.

피아노 음악사의 황금기라 불리는 1950년 이후부터 40년 정도 기간 동안 활동하던 연주자들은 특히 이 음악의 핵심적 가치관을 공유하며 연주 활동을 했다. 호로비츠를 비롯해 루빈스타인, 리흐테르, 박하우스, 브렌델 등 모두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그 원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연주로 본질적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클래식 음악계에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연주의 내용만큼 외적 모습을 중요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주만큼 연주자의 외형적 이미지가 중요시되고 그에 따른 이미지 메이킹이 보편화되면서 음악계도 마케팅을 위한 다양한 전략적 시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현실이 되었다.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연주가 많아지고 과도한 콩쿠르 경쟁으로 인해 연주자도 자신을 스스로 홍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화려한 세상 속에서 더 큰 소리를 내야 하는 피아노의 존재는 이제 진정한 소리를 찾아야 하는 막중한 과제 앞에 서 있다.

10월에 내한하는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23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와 머리 페라이어(24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는 이 시대 피아니스트들이 지켜나가야 할 전통을 오직 소리로 말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소중한 음악 유산을 지켜가고 있는 그들은 음악 속에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투영했다. 자신의 전부를 다해 오직 음악의 아름다운 완성을 목표로 삼았던 전통적 피아니즘의 계승자. 언드라시 시프와 머리 페라이어는 이번 무대에서 각각 바흐와 베토벤 작품을 가지고 우리를 찾는다. 바흐와 베토벤은 두 연주자의 음악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자 연결 고리다. 그렇다면 그들의 묵직하고 담백한 음악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하는 21세기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온 것일까?

바흐의 탐구, 언드라시 시프


2008년 2월, 예술의전당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는 청중으로 가득했다. 고전 시대 레퍼토리의 최고 해석자 언드라시 시프의 첫 내한 독주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지한 탐구와 심도 깊은 해석으로 클래식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은 바흐 연주의 대가는 그렇게 한국 팬들과 만났다. 힘을 뺀 그의 연주는 정직하고 진솔했다. 그토록 큰 공간을 바흐 음악으로 압도해버릴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몇이나 될까? 

그는 성직자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듯, 지금도 바흐를 연주하며 아침을 맞는다. 바흐는 그의 인생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작곡가이자 스승이다. 그는 몇 년 전 인터뷰에서 바흐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라고 말한다.

“나는 결코 스스로를 바흐 스페셜리스트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바흐는 내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이며 나는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피아노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감성보다는 이성에 가깝고 정열이라기보다는 탐구에 가까운 그의 연주에 대해 뚜렷한 개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일부 평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음악의 본질을 파고들며 연주자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그의 꾸준함은 그런 평을 하는 이들에게도 신뢰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시프는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바흐의 ‘이탈리아 협주곡’ BWV971 ‘프랑스 서곡’ BWV 831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을 연주한다. 모두 시프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연주해온 레퍼토리로 바흐 음악을 자신만의 언어로 구현했던 작품들이다.

시프의 연주가 이토록 클래식 음악계의 보편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과거 쳄발로의 대가 조지 맬컴에게 쳄발로를 배운 것에서 비롯된다는 의견이 많다. 시프는 바흐 시대의 악기인 포르테피아노와 쳄발로를 연구함으로써 오늘날 피아노를 통해 그 시대의 연주법을 바탕으로 한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많은 연주자에게 교과서 같은 모범적인 연주로 평가받았다. 물론 악기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의 연습을 통해 쌓은 바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그를 지금의 바흐 음악의 최고 해석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들린다는 바흐 음악. 아름답고 경건한 경지로 끌어올린 바흐 연주를 기대해본다.

베토벤의 노래, 머리 페라이어


언드라시 시프가 탐구하는 연주자로 대표된다면 머리 페라이어는 노래하는 연주자다. 머리 페라이어를 좋아하는 음악 팬이 많지만 그는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더 존경받는 연주자로 유명하다. 그렇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5년 만에 리사이틀로 한국을 찾는다. 하이든, 모차르트, 브람스, 베토벤 등 고전과 낭만을 아우르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레퍼토리는 단연 베토벤 소나타 29번 ‘하머클라비어’다. 내한 연주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앞서 진행된 페라이어의 미주 연주 투어에서 ‘뉴욕 타임스’지는 ‘기다림이 아깝지 않는 공연’이라는 호평을 내놨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음유시인 페라이어 연주의 평에서는 흔치 않은 ‘즉흥적이고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연주’라는 평가다. 과거의 정통 연주 스타일과는 다른 평이 이날 연주의 새로운 변화를 예감케 한다. 

올해 69세가 된 그는 베토벤 소나타 29번 ‘하버클라비어’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무려 10년을 준비했다. 그가 10년 동안 준비한 베토벤의 ‘하머클라비어’는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이 베토벤 탄생 200주년인 1970년 12월 16일 카네기홀에서 연주했던 작품으로 당시 그의 나이 67세였다. 제르킨 역시 이 작품 연주를 위해 50년을 준비했다. 베토벤 ‘하머클라비어’는 전 피아노 레퍼토리를 통틀어 가장 난곡으로 여겨지는 작품으로 피아니스트들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빠른 템포는 물론 고도의 테크닉과 복잡한 작품 구성이 베토벤 후기의 깊은 내면의 철학과 어우러져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지난 4월 페라이어의 LA 공연에서 연주된 ‘하머클라비어’ 연주에 대해 ‘LA 타임스’는 “페라이어는 베토벤이 원했지만 피아니스트들이 대부분 실현해내지 못한 그 속도로 연주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대위법의 멜로디는 명징하게 들려왔다”고 평했다.

베토벤의 작품뿐 아니다. 1부 마지막 곡인 브람스의 발라드 3번, 피아노 소품집 Op.118-2 ‘인터메조’·Op.119-2·3 ‘인터메조’, 카프리치오 1번은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되어 그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을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는 매번 인터뷰에서도 “그저 아름다운 선율이 아닌 점진적으로 진화하며 완성된 음악을 만들어가고 싶다 ”고 밝힌 바 있다.

페라이어는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며 그것이 자신을 피아노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 페라이어가 10년 동안 준비한 베토벤의 ‘하머클라비어’.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더 깊고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는 그의 새로운 행보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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