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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국가대극원의 베르디 '맥베스'
중국에서 마주한 셰익스피어의 환영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10/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0월호 - 전체 보기 )




2016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이다. “세상은 거대한 연극 무대이고, 사람들은 연기자에 불과하다”라는 그의 말처럼 세계 각국에서는 셰익스피어를 기념하는 많은 공연과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오페라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희곡을 토대로 여러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의 작품이 단연 돋보이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맥베스’가 세계적으로 많이 연주되고 있다. 아마 베르디의 첫 셰익스피어 오페라인 이 작품으로부터 아직 연구하고 밝혀낼 것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 아닐까.

작품은 현재까지 파리 개정판(1865)으로 연주되어왔지만, 피렌체 초연 버전(1847)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두 버전 사이에는 18년의 간극이 있다. 그 사이 베르디가 음악적, 극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룬 만큼 길이도 길어지고 음악 또한 훌륭하다. 과연 두 버전이 같은 작곡가의 작품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파리에서의 초연을 염두에 둔 개정판에서는 3막에 마녀들의 발레 장면이 추가되고 4막 전쟁 장면에서는 푸가토가 등장하며 마지막은 합창이 가세한 행진곡으로 끝맺는다. 가장 큰 차이는 오케스트레이션인데, 확실히 개정판이 베르디적 느낌이 강하고 음악도 훨씬 능수능란하다. 특히 3막의 마지막, 맥베스와 부인의 2중창은 극적 긴장감이 넘칠 뿐 아니라 피카르디 종지(단조로 진행하다 장조로 끝나는 종지)를 통해 희망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 더불어 양쪽 버전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멜로디라도 조성을 바꿔 장면을 새롭게 환기시킨 대목들도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두 버전을 놓고 우리는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먼저 ‘맥베스’가 ‘과연 베르디의 초기작일까’라는 의문이다. ‘시몬 보카네그라’의 경우처럼, 초연에 비해 개정판의 음악적 완성도가 너무나 높아져 오히려 중기의 걸작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편 사랑의 중창이나 사랑을 갈구하는 아리아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주요 장면이 없고 시종일관 음모와 살인, 복수에 대한 처절한 장면들이 연속되는 만큼,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이 베리스모(사실주의) 스타일의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녀들의 마법 같은 초자연적 요소의 등장 또한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대단히 독창적인 기법이다. 3막 맥베스와 마녀들의 대화 장면은 모차르트 ‘마술피리’나 베버 ‘마탄의 사수’와 같은 독일 징슈필 레치타티보의 영향을 받은 듯 혁신적이다. 연출에 있어 실존 인물인 맥베스를 잉글랜드의 적으로 설정해야 할지 스코틀랜드의 영웅으로 삼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렇듯 텍스트와 장면에 따른 음악의 진정한 극화를 선보인 베르디의 ‘맥베스’는 여백의 미와 음악적 상징이 많아 전작들과 현격히 구분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르디의 의도를 적확하게 표현하도록 이끄는 지휘자의 해석과 연출가의 완성도 높고 신선한 관점이 그만큼 중요하다. 텍스트 묘사와 극의 자연스러운 호흡, 캐릭터들의 심리와 장면에 대한 상징까지 완벽하게 음악으로 표현해내야 한다. 원작 이상의 디테일과 극적인 긴장감 모두를 살려낸 베르디의 진정한 걸작으로서, 현대의 연출가들과 지휘자, 기획자들은 그동안 관습에 가려 있던 이 작품의 진정한 혁신성과 위대함을 재발견하여 다시금 조명하고 있는 것 같다.

갈채를 부른 노(老)대가의 예술혼

9월 초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NPCA)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진행된 베르디 ‘맥베스’는 오래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맥베스 역에 데뷔한 플라시도 도밍고가 연출가 우고 데 아나, 지휘자 다니엘 오렌과 함께 호흡을 맞춘 프로덕션이기 때문이다.


▲ 맥베스 역의 도밍고

지금까지 도밍고가 맡았던 다른 저음역 캐릭터들에 비해 타이틀 롤의 분량이 현격하게 많을뿐더러 성악적 표현의 폭과 연기의 수위 또한 남다른 만큼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도밍고 특유의 연기력과 공간을 가득 채운 발성은 여전히 청중의 폐부를 찌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고음역과 최저음역에 이르면서 극한의 표현력과 강도 높은 흡인력을 발산한 4막 아리아가 끝난 뒤, 청중은 노(老)대가의 뜨거운 예술혼에 5분이 넘는 갈채를 보냈다. 두바이 오페라 하우스 개관 갈라에 출연한 뒤 곧바로 베이징으로 날아왔음에도, 지친 기색이나 일말의 흔들림 없이 무대를 소화한 것만으로도 도밍고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9월 말 미국 LA 오페라와 11월 오스트리아 테아터 안 더 빈에서 ‘맥베스’를 이어간다.

지휘자 다니엘 오렌의 맹활약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까다로운 템포 변화와 다양한 다이내믹 조절, 강력하게 펼쳐낸 클라이맥스로의 돌진을 수반한 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솔리스트 모두를 정교한 필치로 이끌어 나갔다. 특히 다양한 지시를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며 스펙터클한 음악과 드라마의 향연을 선보였다.


▲ 맥베스 역의 도밍고와 부인 역의 쑨시우웨이

오렌의 지휘에 충실하게 부응한 NCPA 오케스트라도 지난해 정명훈과의 ‘시몬 보카네그라’ 때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현악의 질감과 전체적인 앙상블이 향상되어 흡족한 음향을 남겼다. 다만 합창단의 모아지지 않는 앙상블과 미스 템포가 아쉬움을 남겼다. 비브라토 가득한 발성으로 극에 동화되지 못한 채 도밍고의 페이스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던 맥베스 부인 역의 쑨씨우웨이가 공연 내내 마뜩치 않기도 했다.

라 스칼라 극장의 ‘일 트로바토레’를 연상케 하는 우고 데 아나의 연출은 고증에 따른 고급스러운 의상과 특유의 푸른색 조명, 현대적 구도의 배경이 돋보였다. 스케일과 디테일, 그리고 셰익스피어 대본에 의한 자연스러운 동선 등을 통해 역시 대단한 고전 연출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맥베스를 도덕률에 갈등하고 업보에 고뇌하는 리어왕처럼 강조한 점, 맥베스 부인의 무게감을 덜어낸 후 ‘오텔로’의 이아고적 역할로 재조명한 점, 합창단과 무용단을 일체화해 그 역할을 새롭게 부각시킨 점이 인상적이었다. 현대적인 가능성과 실험이 고전적인 구도 및 색채와 조화를 이룬,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우리 시대의 새로운 해석이었다.

무대 세트와 조명은 우고 데 아나의 해석을 더욱 스펙터클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아쉬운 점은 중국인의 눈높이에 맞춘 요소들이다.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내용을 설명하는 자막과 화려한 스크린 영상, 어지러울 정도로 중첩된 조명을 비롯해, 지극히 중국적인 뱅코우 유령 장면과 황금 깃발 같은 몇몇 소품, 중국의 무협물을 연상케 하는 3막의 예언 장면 등이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중국적 요소를 걷어내고 아나 고유의 콘셉트를 온전히 선보인다면 수준 높은 프로덕션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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