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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명작, 음반으로 곱씹어 감상하기
글 원종원 9/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9월호 - 전체 보기 )




▲ ⓒMichael Le Poer Trench

‘음악’으로 기억되는 뮤지컬을 떠올릴 때, 단연 손꼽히는 작품은 ‘레미제라블’이다. 1980년대 프랑스어 콘셉트 앨범을 기반으로 한 영어 버전 뮤지컬을 시작으로, 다양한 언어의 라이선스 공연이 거듭되기까지 ‘레미제라블’의 뮤지컬 넘버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또 적셨다.

지난해 말,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막을 올린 지 수십 년이 지난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왜 유독 한국에서 이렇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짐작컨대 스크린용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의 흥행과 맞물려 생긴 호기심인 듯싶다. 몇몇 언론에서는 진보 진영의 대선 패배에 대한 치유나 시대적 아픔에 대한 힐링이라는 계산된(?) 대답을 원하는 눈치였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이 인간성에 대한 속 깊은 탐구를 담고 있다는 것은 물론 불변의 사실이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의 흥행은 단순히 이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흥행되지 않았다면 더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1980년대 시작돼 30여 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손꼽히는 세계 4대 흥행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번안 공연이 한 번도 올라가지 못한 명작이었기 때문이다.
제일로 손꼽히는 흥행 비결은 단연 음악이다. 뮤지컬이 음악을 통해 주제 의식을 구현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형식적 특성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선율이 아름답고 시적인 가사가 영감을 일으키는 ‘레미제라블’의 흥행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인기를 얻지 못했다면 오히려 그게 더 놀랄 만한 일이라는 대답으로 기자들에게 답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최고의 목소리
음악만으로도 워낙 대단한 작품인지라, 한때 우리나라에서 ‘레미제라블’은 공연에 앞서 음반이 큰 인기를 누렸던 적이 있다. 대중이 장발장의 이야기로 만든 뮤지컬이 있는지도 잘 모르던 시절, 대학가에 소문난 음반 매장에서는 꽤나 들을 만한 음악이라는 설명과 함께 미국에서 밀수입한 LP나 CD가 제법 고가에 팔린 적도 있다. 어렵사리 음원을 구하면 브로드웨이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이라고 자랑하던 애호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음반은 브로드웨이 산도,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아니다. 공연계에서는 사운드 트랙이라는 용어조차 쓰지 않을뿐더러 회색 표지의 이 음반은 정확히 말해 오리지널 런던 캐스트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앨범 제작에 참여했던 배우들은 지금은 공연계의 전설로 통하는 인기 스타들이 됐다. 마리우스 역으로 등장했던 영국 출신의 뮤지컬 배우 마이클 볼은 이제 중년의 풍채를 지니게 됐지만 아직도 영국인들에겐 꽃미남 대학생으로 더 잘 통한다. 팡틴 역으로 나왔던 페티 루폰은 ‘에비타’의 오리지널 에바 페론을 연기했던 그 미성의 뮤지컬 여배우였고, 에포닌 역의 프랜시스 루펠은 이 역으로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모두 휩쓸고 토니상을 비롯해 수많은 시상식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최고의 화제는 역시 주인공인 장발장이다. 오리지널 런던 캐스트 음반에서 이 역으로 등장했던 아일랜드 태생의 명배우 콤 윌킨슨은 장발장 하면 가장 먼저 손꼽히는 전설의 뮤지컬 배우다. 타고난 미성도 그렇거니와 폭넓은 음역, 특히 두성을 활용한 그의 창법은 ‘집으로 안전히 돌려보내소서(Bring Him Home)’ 등에서 감히 흉내조차 내기 힘든 완성도를 이뤄냈다. 콤 윌킨슨은 런던 공연 이후 앞서 언급한 프랜시스 루펠과 함께 브로드웨이 무대로까지 진출해 절정의 가창력을 선보이며 신화적인 뮤지컬 배우로 유명세를 누리게 됐다. 훗날 캐나다에서 제작된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인공인 팬텀으로 등장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언제나 그의 이름 뒤를 수식하는 설명은 역시 ‘장발장’이었다.
그에 얽힌 재미난 뒷이야기도 있다. 브로드웨이 공연 당시, 미국의 배우 노조에서는 콤 윌킨슨의 출연을 막은 적이 있었다. 비노조원이던 그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외국 배우가 브로드웨이 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의 경력이 없으면 노조에 가입하기 힘들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경력을 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자인 캐머런 매킨토시는 단호했다. 브로드웨이의 흥행에서 콤 윌킨슨의 역할이 절대적일 것이라는 프로듀서로서의 감이 있었고, 그래서 그가 무대에 서지 않으면 공연의 막을 올리지 않겠다고 맞섰다. 결국 노조의 반대를 꺾고 콤 윌킨슨은 브로드웨이 무대에 등장하게 됐고, 그해 최고 인기를 누린 뮤지컬 배우로 손꼽히게 됐다.
콤 윌킨슨이 연기했던 장발장은 애호가들에게는 지금도 신화로 통한다. 지난 2010년 런던 오투 아레나에서 열렸던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마지막 커튼콜에 등장한 이가 바로 콤 윌킨슨이다. 그는 뮤지컬 영화에도 등장해 화제가 됐는데, 장발장의 영혼을 구해낸 디뉴의 신부가 바로 그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발장의 영혼을 거두며 보여준 그의 미소를 아는 이들에겐 그 자체로 이미 감동인 영화 속 풍경이었다. 비록 무대에서 그가 연기하는 장발장은 이젠 더 이상 만나기 힘들지만, 음반으로나마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다.


▲ ⓒCatherine Ashmore

‘진짜’ 오리지널은 따로 있다!?
‘레미제라블’ 음반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되는 재미있는 사실은 런던 캐스트 음반이 ‘진짜’ 오리지널 캐스트 음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어보다 훨씬 앞서 프랑스어로 만들어진 음원이 따로 있어서다. 1980년 프랑스 트레마(Trema) 사에서 제작한 두 장짜리 음반이 바로 그것이다.
‘레미제라블’의 작사와 작곡을 맡았던 알랭 부브릴와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는 모두 프랑스 국적의 예술가들로, 공연은 당연히 프랑스어를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 때문에 ‘진짜’ 오리지널 음원이라 불릴 수 있는 음반은 바로 이들이 처음 만들었던 1980년산 콘셉트 앨범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뮤지컬을 재미있게 보려면 음악을 통해 감상의 맛을 극대화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때때로 제작자들은 공연에 앞서 음반을 먼저 발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선율에 익숙하게 만들고, 공연을 통해 재미를 만끽하게 만들려는 의도의 반영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반이 콘셉트 앨범이다.
프랑스어로 만들어진 콘셉트 앨범의 구조는 훗날 영어로 번안된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코제트가 부르는 뮤지컬 넘버가 그렇다. 영어 버전에서 등장하는 ‘구름 위의 성(Castle on The Cloud)’에서는 천진난만한 꼬마가 장난감으로 가득한 구름 위 성에서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 누구도 울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 내용으로 가사가 이뤄진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불린 프랑스어 버전의 내용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내 왕자님이 오시네(Mon Prince Est En Chemin)’라는 제목으로, 훗날 영어로 번안된 노랫말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성숙한 느낌이다. 프랑스어가 도버 해협을 건너며 오히려 회춘(?)을 한 셈인데, 알고 보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언어 버전을 비교했을 때 영어 버전보다는 프랑스어 버전의 감성 표현이 훨씬 뛰어나다. 아마 언어가 지니고 있는 섬세함 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더불어 음악적 구조에서도 영어로 번안되면서 일대 수정을 이뤄졌음을 역추적할 수 있다. ‘하루만 더(One Day More)’의 조상 격인 ‘내일(Demain)’은 후렴구에서 영어 버전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판타지 같은 여운의 반복을 활용하고 있고,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원판인 ‘민중의 의지(A La Volonte Du Peuple)’는 한층 격앙된 프랑스 혁명기 민중 봉기의 결연함을 느끼게 해준다.
흥미로운 점은 뮤지컬의 흥행이 ‘진짜’ 오리지널 음반의 대중적 인기도 확산시켰다는 점이다. ‘레미제라블’을 보고 음악적 재미를 즐겼던 마니아들은 자연스레 ‘원조’ 음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프랑스어 음반 역시 덩달아 인기를 누리는 별난 기록을 낳게 됐다. 사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흥행은 1980년 제작된 콘셉트 앨범을 들은 캐머런 매킨토시가 그 성공 가능성을 보고 영어 버전으로 제작을 시도하며 이뤄진 일이었다. 그런데 그 발단이 된 프랑스 음원이 뮤지컬의 성공으로 다시 브랜드 가치를 얻게 된 것이니, 그야말로 ‘죽었던 자식이 되살아나는’ 기적 같은 흥행 신화를 잉태한 셈이다.

우리말 음반 제작에 대한 염원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세계적 유행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음반의 등장을 불러왔다. 지금까지 등장한 각 나라 언어별 음반으로는 영어·독일어·에스파냐어·히브리어·헝가리어·스웨덴어·네덜란드어·덴마크어·체코어·일본어·폴란드어 등이 있다. 1990년대 초에는 1980년 버전이 아닌 영어를 다시 번안해 만든 두 장짜리 프랑스어 음반도 등장했는데, 그래서 꼼꼼히 따져보지 않으면 과거의 음반과 혼동을 일으키는 일이 생기곤 한다.
기념 음반의 제작도 흥미롭다. 10주년 기념 콘서트 음반은 런던의 유서 깊은 로열 앨버트 홀에서 이뤄진 공연 실황을 담았고, 25주년 기념 콘서트 음반은 앞서 언급한 오투 아레나에서 열린 공연 실황이다. 뮤지컬 영화 음반도 등장했는데, 앤 해서웨이나 휴 잭맨의 노래는 뮤지컬의 그것에 비해서는 가창력이 부족하지만 나름 날 것의 묘미를 담고 있어 흥미롭다.
특별하게는 뮤지컬 넘버 전곡을 수록한 세 장짜리 음반도 있다. 모든 노래를 공연 그대로 수록한 음원인데, 각각의 배우를 전 세계 프로덕션에서 선발해 꾸민 드림팀이어서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물론 전곡을 수록하고 있어 다른 음반에서는 만날 수 없던 특별한 노래들, 예를 들어 장발장이 어린 코제트를 여인숙에서 데리고 나와 파리로 향하며 함께 부르는 아름다운 화음의 허밍 멜로디는 이 음반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월드 캐스트 중에는 일본 배우 시마다 가호가 에포닌을 맡아 흥미롭다.
지난해 정식 우리말 버전 공연이 처음 무대에 올라간 탓인지 아직 한국어 음반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저작권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 롯데월드 예술극장의 ‘짝퉁’ 공연 음원을 수록한 음반이 한때 제작됐으나 제대로 유통되진 못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정식 우리말 버전도 공연이 되었으니 한국어 음반도 제작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욕심도 생긴다. 붉은 악마의 월드컵 홍보문구처럼, 뮤지컬 공연계에서도 오랜 바람 끝에 꿈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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