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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괴벨스 극장'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10/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0월호 - 전체 보기 )




9월 8~11일
연우소극장

괴벨스 망령에 빗댄, 날선 풍자

지난 6월부터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특별한 기획이 진행 중이다. 2015년 문화계 전반에서 자행된 다양한 검열, 그중 팝업씨어터와 창작산실에 가해졌던 직접적 연극 검열을 화두로 삼아 20개 극단과 한 명의 개인이 21편의 연극을 10월까지 매주 공연하는 ‘권리장전(權利長戰)2016-검열각하’가 그것이다. “연극인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장기 릴레이 발언대”인 만큼 이 기획에 참여한 작품들은 검열이라는 키워드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극단 파수꾼의 ‘괴벨스 극장’(작 오세혁·연출 이은준)은 그중 15번째 작품이다.

앞서 공연된 작품들은 대체로 공동창작 혹은 연출가가 작가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고, 연극 검열에 대한 실태 보고와 그것을 둘러싼 토론의 장을 선보이는 다큐멘터리 연극 혹은 포스트 드라마적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기획 자체가 연극인들의 발언대이기에 각자에게 검열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들이 문제 삼는 검열이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를 관객과 교감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기도 하고 공연 중 진행되는 토론 내용 역시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건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관객들이 이 긴 싸움의 현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건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연극의 언어, 예술의 언어로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응원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괴벨스 극장’은 그동안 답답하던 관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작품이었다.

독일 나치스 정권의 대중 선전과 선동을 주도한 파울 괴벨스의 행적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현실 문제에 민감하고 풍자에 능한 작가 오세혁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괴물로 낙인찍힌 괴벨스가 히틀러의 부하가 되어 실행한 각종 선동의 궤적을 작품의 큰 줄기로 삼되, 거기에 우리의 상황을 부분적으로 덧씌웠다. 정권의 미디어 장악, 정권에 부합하는 예술의 장려, 화합이 아닌 적대적 분노와 분열을 기반으로 한 정책, 분서갱유 등 독재를 위한 괴벨스의 행동은 곧바로 이미 실체가 드러난 언론에 대한 정부의 외압, 예술 지원에 대한 선택적 강요, 여론의 분열 조장을 통한 문제적 사건의 물 타기 같은 우리의 현실로 치환된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제되어 있지만 이것을 무겁게 그려내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고 오세혁 작가의 재능이다. 괴벨스의 맹목성, 비합리성이 강조되고 그것을 실천하는 행동이 과장되어 있어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하는데, 이 웃음은 독재와 검열의 논리에 대한 조소이며 동시에 괴벨스라는 거울에 반사되는 우리의 민낯에 대한 씁쓸한 확인이다.

이러한 풍자적 정서를 구축하는 데에는 연출과 배우도 한몫을 했다. 연출가 이은준은 큰 드럼통과 찌그러진 냄비, 폐타이어로 무대를 구성하여 독재의 풍경을 비루하고 낡은 것으로 만들었고 배우들은 그 속에서 과거의 것이지만 현재도 살아있는 괴벨스의 망령을 입체화했다. 특히 괴벨스 역의 배우 박완규는 일반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검열 주체의 논리를 얄밉도록 능청맞게 연기하여 관객의 집중과 호응을 적극 이끌어냈고, 좋은 배우의 존재감과 진가를 확인하는 만족감을 주었다.

검열로 인한 연극인들의 상처에 집중하기보다는 검열 주체의 전면화로 검열의 존재 기반을 환기하고 있다는 것, 이것을 직설이 아닌 풍자의 웃음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은 ‘괴벨스 극장’이 풍자극으로 성취한 중요한 성과다. 지난 독재의 시대, 우리 연극사는 풍자와 신명을 핵심 정서로 삼은 마당극의 출현을 목격했다. 새로운 검열의 시대, 우리 연극에서 필요한 것은 영상과 녹취를 직접 제시하는 포스트드라마보다 예술의 언어로 실체를 대면하여 그것을 한껏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풍자의 정신임을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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