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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대진
독주와 합주로 음악을 빚다
글 국지연 기자 9/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9월호 - 전체 보기 )




누구에게나 스스로와 마주해야 할 자신만의 방이 있다. 김대진의 음악방엔 지휘봉과 낡은 피아노가 놓여 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지 45년. 그동안 그 방에서 만들어낸 소리가 세상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던가

김대진을 무대에서 처음 본 것은 15년 전 신입기자로 음악 잡지에 입사한 첫날이었다. 공연 취재였는데 취재라기보다는 기자로서 처음 현장에 나가보는 일종의 신고식 같은 것이었다. 당시 그는 12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된 명동성당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 중이었다.
깨끗하고 청초한 모차르트 선율이 마음으로 스며들었던 그날 이후 김대진은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신진 연주자들의 등장으로 새 역사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피아니스트와 교육자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그가 2008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이제 내년이면 김대진이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를 맡은 지 햇수로 10년을 맞는다.
강산의 변화만큼 수원시향의 도약은 눈부신 것이었다. 그 눈부신 성장 중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해외에서 수원시향의 연주를 높이 평가해 그동안 초청 연주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가 해외 무대에 당당히 서는 것은 꿈조차 꾸기 어렵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수원시향은 오는 9월에도 19일 브루크너 페스티벌과 20일 메라노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각각 연주를 앞두고 있다. 11월에는 그의 리사이틀 소식도 들린다. 11월 20일 베토벤 소나타 중 표제가 있는 곡 ‘월광’ ‘고별’ ‘템페스트’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 앞에 다시 앉는다.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지휘자. 건반 위의 진화론자. 열정과 인내가 공존하는 김대진의 치열한 시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지금까지 그의 음악처럼.

지휘자의 시간, 음악을 만나는 순간


“무대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험을 한 사람은 결코 무대를 떠나지 못한다. 그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영적 인센티브다. 나는 지휘자로서 단원들에게 그 영적 인센티브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작년 수원시향이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연주와 녹음을 마치면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2016년 가을 시즌에도 많은 연주 일정이 있던데요.
얼마 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서머 캠프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갖고 에틀링겐 콩쿠르 심사에도 다녀왔습니다. 예전에는 시차 적응이 필요 없을 만큼 몸이 거뜬했는데 요즘은 시차 때문에도 힘들고, 몸도 젊은 시절 같지는 않네요.(웃음) 8월에는 수원에서 격년제로 하고 있는 수원국제음악제가 있어요. 수원국제음악제는 문화적 향유나 감상이 지방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좋은 선례가 되고 있어 단원들도 무척 자부심을 느끼는 무대죠. 수원은 워낙 역사 유물도 많아 한국의 문화를 외국에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수원국제음악제를 마치면 가을엔 수원시향 해외 초청 연주 일정이 있는데요.
9월 19일 브루크너하우스에서 브루크너 페스티벌 초청 연주와 메라노 쿠르잘에서 메라노 페스티벌 초청 연주를 가지게 됐습니다. 의미 있는 연주여서 저 역시 감회가 새롭고 자랑스럽네요.

오스트리아에서 펼쳐지는 브루크너 페스티벌은 어떤 페스티벌인가요?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리는 브루크너 페스티벌은 1974년 지휘자 카라얀의 지휘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브루크너 심포니 7번을 연주하며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후 유명한 연주자들이 이 페스티벌에 협연자로 다녀갔고요.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개막식 선포를 할 정도로 중요한 행사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올해 브루크너 페스티벌 프로그램은 ‘코리아’를 주제로, 한국 연주 단체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던데요.
4주 동안 약 40개 정도 공연이 펼쳐집니다. 2013년부터 한 나라의 음악단체를 소개하는 ‘주빈국’ 프로그램이 마련됐는데, 이번에 한국이 이 페스티벌의 세 번째 주빈국이 되었지요. 페스티벌 기간 동안 한국 음악가 500여 명이 참가할 만큼 큰 행사입니다.

이탈리아 메라노 페스티벌은 예전에도 한 번 초청된 인연이 있으신데요.
2014년 폐막 연주회 초청으로 처음 연주했습니다. 이탈리아 북쪽 휴양도시인 메라노에서 펼쳐지는 이 페스티벌은 8월 말부터 9월까지 한 달여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현재 런던 심포니·체코 필하모닉 등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도 초청될 예정이라 저희가 이번에 다시 초청된 것이 더 의미 깊게 느껴집니다.

페스티벌에서 연주할 작품들 중에서 우리나라 창작곡도 보이는데 그곳의 반응이 많이 기대됩니다.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도 연주하시네요.
최성환의 ‘아리랑 판타지’는 우리만의 정서로 아리랑을 잘 표현한 곡이고 지난번 메라노 페스티벌 때 연주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김화라)은 특히 브루크너 페스티벌에서는 처음 연주되는 곡이라 하더군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인간의 감정을 본능적이고 원초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고요. 그동안 베토벤·차이콥스키·R.슈트라우스·시벨리우스 연주를 통해 수원시향도 이제 다양한 감정 변화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이번 무대에서 우리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늘 빨리 앞으로만 가는데 몰두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현재 우리 모습은 언제나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차근차근 한 발자국씩 내딛다보니 이제 어느새 출발점을 훌쩍 지나 언덕 비탈길, 그렇게 우리는 묵묵히 전진해 왔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함께 한 그 여정만으로도 행복하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처음 시작했던 곳보다 지금 우리는 훨씬 더 많이 와 있지 않은가. 그런 우리가 자랑스럽다”


수원시향을 이끈 지 얼마 있으면 10년이 되어가는데요.
가장 어려웠던 건 피아니스트와 교육자로서 늘 혼자 또는 소수와 소통하던 제가 많은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거였습니다. 처음 수원시향을 맡았을 때 저의 목표는 오직 하나, 수원시향의 발전이었죠. 물론 단원들에게 이런 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고 진정한 믿음을 주기까진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작년 수원시향이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연주와 녹음을 마치고 나서쯤 부터 비로소 우리가 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결국 서로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단 얘기겠지요.

이번 페스티벌 초청도 그 결과의 열매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오케스트라가 개런티를 받고 제대로 초청받아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 연주한다는 건 의미 있고 고무적인 일이죠. 다시 말해 이제 우리만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곡 연주를 비롯해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연주와 녹음까지 묵묵히 우리만의 소리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수원시향을 맡았을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물론 훌륭한 단원도 많았지만 처음부터 새로운 구성원으로 오케스트라를 짜고 싶다는 유혹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보다는 기존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 변화하기를 기다리고 서로 알아가며 소리가 어우러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단원들을 기다려주는 걸 선택했습니다.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서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중요한 건 연주했을 때의 그 짜릿함을 경험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까요. 그 경험을 한 사람은 절대 그 행복감을 잊지 못하거든요.

무엇이 단원들을 한 마음으로 공감하고 노력하게 한 건가요?
열정과 인내지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인내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것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모든 단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이 세상에는 어떤 것도 억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상황이 경제적으로나 복지적으로 어려운 환경인 건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에게 우리가 좋은 연주를 위해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어떻게 음악에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방법은 ‘음악가만이 느낄 수 있는 무대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무대에서 연주한 후 청중과 소통된 느낌을 받았을 때 그 감동을 경험하면 그건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절대 잊지 못하고 다시 찾게 되지요. 제가 단원들에게 주려했던 영적 인센티브, 그 희열이 우리를 계속 이어가게 했고 지금도 우리를 더 도전하고 성장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현실적인 걸 초월할 수 있는 힘은 음악가로서만 맛볼 수 있는 영적 순간의 기쁨에서 나오지요. 그리고 그걸 느끼는 음악가만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고요.

단원들의 변화가 직접 느껴지셨나요?
변화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들이 나를 믿고 있다는 것. 그것이 열정을 갖고 인내할 수 있게 하고, 제 자신도 리더로서 그들을 이끌어가는 의미가 되는 거죠. 사실 가르치는 것도 지휘하는 것도 학생이나 단원이 나를 믿지 못하면 결코 진정한 소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보여줘야 하죠. 말이 아닌 평소 행동이 그들에게는 더 깊이 각인되고 진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요. 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어야 리더로서 선생으로서 실수가 있어도 그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는 거니까요. 어쩌면 그동안 제가 오히려 단원들과 학생들에게 그 테스트를 받았던 시간이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테스트를 통과한 거네요?
그런 건가요?(웃음)

지금 수원시향만의 음악 색깔은 어떤가요?
자신의 색깔이란 찾으려고 해서 찾아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 노력하고 호흡하며 비로소 우리의 스타일, 우리 것이 생기는 것 같아요. 얼마 전 헤렌킴제 페스티벌에서 연주가 끝나고 음악감독이 수원시향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항곡’을 듣고 실연에서 환상교향곡을 이토록 자극적으로 감정의 극과 극을 대비시킨 연주는 처음 들었다고 하더군요. 다른 어떤 칭찬보다 우리의 색깔을 찾은 것 같아 무척 기뻤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연주를 듣고 감동을 받는 걸까요?
호소력이 있는 연주겠지요. 무엇인가를 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간절해야 호소력이 있어요. 메시지가 강력할 수 있는 건 그만큼 그걸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걸 전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기 때문이죠. 그 간절함은 소리로 나타나는데, 그건 오케스트라든 피아노든 다 똑같아요. 심지어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학생들의 목소리만으로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니까요.

어느 때 그런 걸 느끼세요?
학생이 아파서 레슨을 못 가겠다고 전화하면 사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다 알 수 있습니다.(웃음) 그만큼 소리의 힘은 진실하죠. 예전에 정명훈 선생님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협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이 제게 ‘진심으로 연주하세요!’라고 하셨어요. 사실 그때 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것이 간절히 연주하라는 의미였는데 말이죠.

피아니스트이고 교육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생 선배이기 때문에 단원들과 나눌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그건 제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고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연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주자로서 어떻게 연습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방법도 전해줄 수 있고, 선배와 선생의 입장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거든요.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기 위해 작년부터 오케스트라 수석과 실내악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무척 가까워졌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피아니스트, 지휘자, 교육자의 영역이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요즘은 부쩍 나와 제자들, 단원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요.

수원시향과 앞으로 어떤 꿈을 함께하고 싶으세요?
지금까지 함께 길을 걸어오며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었기에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금껏 함께 걸어왔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그래서 우린 앞으로도 이 길을 묵묵히 또 함께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시간, 나를 발견하는 순간


“피아노를 치는 시간은 편안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피아노, 지휘, 교육.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와 음악, 나와 단원들, 나와 청중. 내 인생은 그 연결된 조각들로 인해 더 풍요로워졌다”

11월에는 피아노 독주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오랜만에 독주 무대에 서는 소감이 어떠세요?
무척 설레고 떨리고 그러네요.(웃음)

피아노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우습게도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쳐왔는데 요즘에서야 악기를 하는 게 뭔지 좀 알 것 같아요. 손을 움직여 접촉해서 음악을 만드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이제야 느꼈다는 게 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할 정도예요. 지휘는 음악과 만나는 것이고 악기는 저 자신과 만나는 것이지요. 진정한 내 모습과 만나는 시간이 고향에 온 것처럼 편하고 무척 기다려집니다.

늘 많은 사람과 음악을 함께 만들다 혼자 연주하게 되면 어색하지는 않으신가요?
예전부터 혼자 뭔가를 연구하고 연습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혼자서는 깨닫지 못하던 걸 지휘를 하면서 많이 알게 되었죠. 여러 면에서 타인에게 다가가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감사한 건, 악기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된 점이에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비로소 악기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이번 독주회에서는 표제가 있는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시던데요.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 중 부제가 붙은 소나타 ‘월광’ ‘고별’ ‘템페스트’ ‘열정’을 연주합니다. 물론 예전에도 연주했던 곡이고 워낙 좋은 곡들이지만 요즘 다시 악보를 보면서 새로운 메시지들이 보이는 걸 느꼈어요.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에 감정 보다는 사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부제가 붙은 이 작품들은 그의 극적인 감정의 변화를 잘 나타내 주는 작품이죠. 이런 스타일의 사조를 독일 용어로 ‘슈투름 운트 드랑’이라고 하는데 당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의 폭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문학 사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번역하면 ‘질풍노도’라는 뜻이죠. 그래서 이번 공연의 부제를 ‘베토벤의 슈투름 운트 드랑’이라고 했어요. 베토벤이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들이 저만의 소리로 잘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자신만의 소리,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다는 건 모든 예술가의 꿈이겠죠?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지요. 그걸 기억한다면 누구를 따라 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알게 될 거예요. 연주자도 마찬가지죠. 오직 소리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해야 하지요. 음악의 시작과 끝은 결국 소리예요.

소리를 느끼는 것에 예전과는 다른 변화가 있으신가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소리에 대한 감각이 더 섬세하고 예민해진 것 같아요. 피아노를 치면서 그런 걸 더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진실한 소리를 만들고 오직 나만의 오리지낼러티를 살리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오리지낼러티는 교육자로서도 강조하는 가치인데요.
교수가 된지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앞으로 3분의 1 정도 가르칠 시간이 남은거죠. 남은 시간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정말 훌륭히 가르쳐보고 싶습니다. 처음엔 악마 쌤이었지만 마지막은 멋진 쌤으로 남아야죠.(웃음)

하지만 그동안에도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가르치셨는데요.
물론 모든 열정을 바쳐 가르쳤지만 사실 학생들을 가르친 초창기에는 저 역시 아이들의 모난 부분을 깎기에 바빴지요. 그런 부분이 지금 와서 많이 후회되기도 합니다. 그때 학생들을 다르게 가르쳤다면 어땠을까 싶고요.

“우리는 진실한 내면을 성찰하고 진리를 향해 인내를 갖고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소리를 내야 한다. 열정을 가지고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소리를”

오리지낼러티에 대해 강조했는데 우리나라 교육 환경은 독창성을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많이 멀어보입니다.
그런 부분도 있지만, 전 요즘 친구들의 독특한 옷차림을 보면서 어떤 희망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패션은 자기를 가장 일차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인데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신발을 신었던 예전 학생들과는 다르게 요즘 아이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많이 엿보이는 것 같아서요.

다양한 국제 콩쿠르 심사 때 만난 요즘 세계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수준은 어떤가요?
뛰어난 연주자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개성이 뚜렷한 연주가가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다행인 건, 오리지낼러티는 사람들이 결국 다 알아본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젊은 연주자들이 음악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진실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제자들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이제 성인 연주자로서 클래식 음악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스승으로서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떠신가요?
솔직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모두들 감동이 있는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겠지만,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요. 연주자가 무대의 화려함과 자신을 드러내는 데 힘을 쏟다 보면 음악의 본질을 잃어버리기가 쉽지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연주는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연주는 금세 잊혀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동시대를 사는 젊은 연주자로서의 연대감이 좀 부족해 보인다는 겁니다. 자신의 개인 연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계에서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사명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우리 세대가 가르친 제자들이기도 해서 무거운 책임감 같은 것도 느껴집니다.

미국 유학 후 귀국했을 당시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물론 그때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 세대는 어떤 연대감 같은 것이 끈끈했어요. 서로 이끌어주고 함께 정말 열심히들 연주했죠. 그때 전곡 연주 열풍도 굉장했고요. 학생들도 열심히 가르쳤지요. 모두들 사명감이 있었어요.

우리 음악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건 좋은 음악기획자가 너무 부족하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기획과 홍보를 맡아줄 전문가들이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세계를 향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콩쿠르 입상과 명성에만 매달려 왔어요. 이제 세계 각 나라에 우리의 클래식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도 뛰어난 아이디어를 지닌 문화 기획자가 절실히 필요하고요. 어쩌면 지금 우리 젊은 연주자들이 음악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일부 원인도 좋은 기획자와 홍보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일 거예요.

많은 연주자가 성공이라는 신기루 앞에서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졸업식 때 학생들에게 ‘성공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늘 말하곤 합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구나 성공은 할 수 있죠. 하지만 꼭 훌륭한 연주자가 되어야 성공한 인생은 아니에요. 어디서든 자신의 진심을 나눌 수 있고 또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겠지요.

연주자라면 자신의 청중과 음악으로 진심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연주라는 건 어쨌든 재생할 수 없고 그 순간에 이루어졌다 소멸되어버리고 우리에게는 하나의 느낌으로만 남는 그런 것이죠. 절대 한 번 연주한 것과는 똑같이 연주할 수 없어요. 그러니 연주를 하고 있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리지널한 순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지요.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처럼요. 그래서 무대에 서면 설수록 그 신비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연주를 하기 전엔 또 어떤가요.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그야말로 ‘노심초사’라고 표현할 수 있지요. 설레고 불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의미와 신비를 찾아가는 가장 독창적인 순간. 이 모든 것은 무대에서 내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가 되어야 한다는 걸 말해줍니다. 연주자는 그렇게 작곡가, 그리고 청중과 연결되어 있어요.

어떤 연주가 좋은 연주일까요?
진실하게 진리를 찾으려는 연주겠죠. 사람들은 그걸 추구하는 과정을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연주자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요. 연주는 언제나 그 사람을 닮기 마련이거든요.

“자신을 내려놓고 영혼을 살찌우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교육자 중 가장 잘 맞고 어울리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교육자요.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가르쳐왔고, 새로운 신진 연주자를 키워내는 보람이 정말 크거든요. 지금의 제 자신을 있게 해준 것 역시 스승이라는 명성을 통해서였고요. 모든 선생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아이들이 나보다 백배 더 잘 연주해주길 바라지요. 이제 품을 떠난 제자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클래식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음악가이기를 기도하고, 지금 함께하는 제자들은 그들만의 색깔을 찾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싶습니다.

많은 시간을 바쁜 일정 속에서 보내면서 내적인 충전은 어떻게 하시나요?
오케스트라 리허설하면서 교육자로서 충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는 연주자로서 충전을 하고, 심사를 하면서 또 충전을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너무 일에만 빠져 있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하나요?(웃음)

그동안 음악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제가 워낙 성격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편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성격도 좀 변하는 것 같더군요. 평소 존경하는 이강숙 교수님은 추진력과 집념이 무척 강하신 분이셨는데 특히 그분의 긍정성이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함께 있을 땐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까 알겠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내 스스로 더 긍정적이고 마음이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합니다. 되도록 사람들의 좋은 점을 격려하고 배려하고 따뜻하게 살고 싶어요. 세상이 아름답다는 믿음. 희망이 있다는 믿음이 결국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니까요. 음악으로, 삶으로 그 힘을 보여주고 나누고 싶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무대에서 청중과 교감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요.

음악이 추구하는 마지막은 무엇일까요?
감동이지요. 얼마 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후 설문조사를 해서 로봇이 하기 힘든 일을 조사했는데 음악가, 소설가, 화가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신의 선물이죠. 그 창조의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 과정 속에서 감동을 받는 거고요. 한계를 극복하고 성취한 음악은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갖고 있는 본질, 저도 그 진실함을 언제까지나 추구하고 싶습니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고독한 행위다. 내면의 진정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화려한 명성과 인기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예술가가 그 진리를 찾기 위해 스스로 고요한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김대진의 시간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진화를 꿈꿔 왔다. 지금도 그는 지휘봉을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음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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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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