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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임세경
적막을 깨는 단단한 소리
글 김지희 인턴 기자 9/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9월호 - 전체 보기 )




지난 8월 9일 소프라노 임세경이 오페라 갈라 콘서트 ‘테너를 사랑한 여인’ 무대에 올랐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을 거쳐 라 스칼라 극장에서 솔리스트 전문 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2005년 비오티 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지난해 1월 빈 슈타츠오퍼에서 ‘나비부인’의 주인공 초초상 역을 맡았고, 그해 8월 베로나 아레나 페스티벌에서는 ‘아이다’의 주역을 맡으며 소프라노로서 탄탄한 가도를 걸어왔다.

그녀는 이날 무대에서도 어김없이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작은 체구에서 거대한 음악을 뿜어내는 임세경을 보며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삶과 음악이 궁금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사흘 뒤, 그녀와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2015년 8월 9일 한국인 최초로 베로나 아레나 페스티벌에서 베르디 ‘아이다’의 주인공 아이다를 맡았다. 그 후 정확히 일 년 만에 한국에서 같은 작품의 아리아를 노래했다.

우연히 같은 날 같은 작품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 내게 ‘아이다’는 운명 같은 작품이다. 작품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를 맡았을 때 감동을 고스란히 한국 관객에게 전할 수 있어 기뻤다. 이날 공연에서는 베로나 공연 때보다 좀 더 생동감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관객이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도록. 특히 한국 콘서트 무대에서는 처음 ‘아이다’를 선보이는 자리였기에, 저만의 감정과 해석을 더욱 많이 실었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뚫고 나올 수 있도록 발성과 음량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이날 ‘가면무도회’ 중 아리아 ‘이곳이 그 두려운 장소’에서 아멜리아가 지닌 여러 감정을 모두 강조한 해석이 인상 깊었다.

아리아의 배경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그 장면에서 아멜리아는 늦은 밤 황량한 들판에서 차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신비한 풀을 찾는다.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신에게 의지하는 아멜리아는 불안함과 애절함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결국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절규한다. 이러한 감정을 모두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해 저음, 중음 그리고 고음에 모두 다른 감정을 실으려고 애썼다.

베로나 아레나 페스티벌의 ‘아이다’ 오디션 당시 마리아 칼라스를 연상케 한다는 평을 받았는데.

칼라스는 무척 세심하고 폭넓은 연기를 한다. 그녀는 다양한 감정이 지닌 미묘한 차이를 알고 매우 직설적으로 이를 표현한다. 격한 감정은 마치 비수를 꽂는 듯, 애절한 감정은 대사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같이 표현한다. 나 역시 무대에서 관객이 대사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발성도 칼라스와 조금 비슷한 편이다. 뾰족한 소리, 즉 스핀토와 단단하고 큰 소리, 멀리 전달되는 소리를 내는 것이 그러하다.

3년 전에는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이영조 ‘처용’에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처용’은 굉장히 색다른 오페라였다. 가실 역을 맡았는데, 너무 강하고 선정적인 캐릭터라 연습 초반에는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다른 어떤 오페라에서도 그런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가실을 연기하던 어느 순간 토스카가 떠올랐다. 강한 외면과는 달리 가실은 처용만을 사랑하는, 매우 여린 심성을 소유한 인물이다. 그 이중적 성향이 마치, 프리마돈나로서 화려한 삶을 살지만 사실 외로움도 많고 한 남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토스카의 캐릭터와 비슷했다. 두 오페라 모두 주인공이 사랑에 실패한 후 후회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는 스토리라는 점도 조금 닮았다. 또 ‘처용’은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편성해 마치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상케 했다. 모든 점을 종합해볼 때 ‘처용’은 해외에서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작품인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외국인들에게 한국 오페라의 깊이를 선보이고 싶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무티가 지휘하는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에 캐스팅됐지만 연습 첫날 번복될 뻔했다던데.

라 스칼라 데뷔 작품이었다. 배역을 맡은 후 긴장도, 준비도 많이 했다. 그런데 첫 연습에서 무티가 노래를 듣자마자 마구 웃었다. 마치 베르디 ‘맥베스’의 첫 장면 같다며, 갑자기 가수를 바꾸자고 말했다. 당시 나는 대사가 딱 한 마디 있는 노파 역을 맡았는데, 목소리가 너무 크고 낭랑해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무티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한 뒤 하루 만에 목소리를 바꿨다. 일부러 몇 시간씩 노래를 불러 목을 쉬게 만들었고, 이런 노력 끝에 결국 여덟 번이나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반주를 하던 피아니스트는 내게 배역을 포기하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다가 목이 상할까 봐. 나 역시 서러웠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싶어 이탈리아에 왔는데, 지금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 스칼라에서 2년간은 주로 단역을 맡아 때론 주역들을 시기하기도 했다. 인종 차별을 심하게 당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2011년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의 주인공으로 국립오페라단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자연스러움 속에 배어 나오는 음악적 에너지


▲ 2010년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 ‘메피스토펠레’에서 마르게리타를 열연한 임세경 ⓒHyeok-Jun Jang

지금껏 여러 무대에 서면서 겪어온 어려움을 이겨낸 비결은 무엇인가?

힘들 때마다 내 안에 떠오르던 말이 있다. “다르면 된다.” 예전에는 남과 늘 경쟁하려고 했다. 소프라노 중에서 제일 뛰어나지 않으면 무대에 오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고 삶에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들과 다른 나만의 목소리를 찾았다. ‘세상에 임세경이라는 사람은 오직 하나’라는 생각을 하니 노래하기가 점차 수월해졌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뼈아픈 충고도 큰 도움이 됐다. 학생들에게도 연습할 때 절대 유튜브를 보지 말라고 얘기한다. 참고 자료를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의 해석과 느낌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나만의 것을 표현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신만의 개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마치 드라마처럼, 내용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대사를 하는 것이다. 음정에 가사가 붙는 것이 아니라 가사에 어울리는 소리를 내려고 한다. 화려한 기교로 말을 가리지 않는다. 대신 모든 대사를 작가의 말이 아닌 나의 언어로 바꾸려고 한다. 상황과 뉘앙스 하나하나를 느끼는 대로 말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테크닉도 좋아졌다. 무대 위임에도 과하지 않게, 마치 평상시처럼 움직이고 노래한다.

노래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는가?

‘시작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오페라가 시작되려는 찰나에는 두려움이 밀려오게 마련이다. 그때 정신을 집중해야 무대에서 정제된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래서 적막 속에서 마치 요가를 하듯 숨을 내리쉬며 소리를 준비한다. 이렇게 해야 오페라가 진행되는 동안에 자연스레 에너지를 갖게 된다. 소리는 마치 외줄타기 같다. 음악이 시작될 때부터 균형을 갖고 에너지를 조절해야 한다. 이런 에너지를 생각하지 않고 무대에 오르면 지루한 소리가 나온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이번에 함께 호흡을 맞춘 테너 정호윤과 동유럽에서 순회공연을 연다. 10, 11월에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푸치니 ‘나비부인’ 무대에 오른다. 이후 스페인에서 ‘운명의 힘’, 일본에서는 ‘아이다’ 공연이 있다. 내년 1월에는 노르웨이의 국립극장에서 독창회를 열 예정이다. 이곳에서 시즌 프로그램으로 소프라노 독창회를 넣은 것은 처음이라 기대가 크다. 이어 다미아노 미키엘레토와 새로운 프로덕션의 ‘나비부인’을 선보인다. 미키엘레토는 청바지에 헬로 키티 티셔츠를 입은, 철없는 나비부인을 연출했다. 기존과 다른 연출에 맞추기 위해 많은 연습을 하며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강태욱(Workroom K)

해외에서 활약 중인 우리 성악가들

임세경과 함께 ‘테너를 사랑한 여인’ 무대를 꾸몄던 메조소프라노 이아경과 테너 정호윤, 나아가 테너 강요셉까지 현재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성악가 3인방을 소개한다.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2003년 빈센초 벨리니 벨칸토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작년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에 이어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과 호흡을 맞추며 폭넓은 음역을 소화하는 가창력과 관객을 집중시키는 카리스마를 선보여왔다.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고, 슈만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담은 독일 가곡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테너 정호윤 2001년 베르비에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빈 슈타츠오퍼 솔리스트를 거쳤다. 지난 7월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파우스트를 연기하며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표현력으로 호평을 받았고, 이후 레알 마드리드 극장,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무대에 오르는 등 국내외를 오가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얼마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 후 토리노 극장 데뷔를 준비 중인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테너 강요셉 2000년 잔 바티스타 비오티 콩쿠르 등에서 입상했고, 지난 6월 동양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음악극장상 남성주연상을 수상하며 음악계에 주목을 받았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베를린 도이치 오퍼 전속 주역가수로 활동해왔다. 깨끗한 음색과 고음을 소화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세비야의 이발사’의 알마비바, ‘윌리엄 텔’의 아르놀트, ‘파우스트의 겁벌’의 파우스트 등을 비롯한 수많은 오페라 무대의 주역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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