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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쇼이 발레, 3년만의 런던 투어
파격과 섬세한 감각의 향연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 9/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9월호 - 전체 보기 )



최근 재건에 힘 쏟는 볼쇼이 발레의 저력을 런던 진출 60주년 투어에서 확인하다

2016년 여름, 볼쇼이 발레가 3년 만에 런던 코번트가든에 돌아왔다. 올해 초 세르게이 필린에 이어 볼쇼이 발레 신임 예술감독에 부임한 마하르 바지예프 휘하의 볼쇼이 발레는 모스크바 현지 공연처럼 발레단원과 오케스트라, 무대 기술자 등 200여 명 규모의 인원을 런던으로 보냈다. 이들은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13일까지 3주간 21회에 걸쳐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말괄량이 길들이기’ ‘파리의 불꽃’ ‘해적’ 투어 공연을 가졌다.

올해는 볼쇼이 발레가 런던에 첫 진출한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1956년 당시 영국은 수에즈 운하 위기와 옛 소련의 헝가리 침공으로 공산권의 움직임에 예민했다. 우여곡절 끝에 볼쇼이 발레 단원들이 탄 비행기가 켄트의 공군기지에 내리자, 영국 미디어들은 “스물여섯 명의 금발 간첩들이 내렸다”고 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볼쇼이 발레의 방영(訪英)은 영국 발레 역사에 큰 자극이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한 마흔여섯의 갈리나 울라노바를 보려고 관객들은 코번트 가든에 장사진을 이뤘다. 당시 로열 오페라하우스 감독 데이비드 웹스터는 볼쇼이 발레의 방문을 ‘역사적인 교류’로 평가했고 청년 시절의 케네스 맥밀런, 마고 폰테인도 객석에서 1956년의 볼쇼이를 지켜봤다.

냉전 이전부터 소련 출신 클래식 연주가를 영국에 소개해온 기획자 빅토르 호흐하우저는 1961년 마린스키 발레를 시작으로 1963년부터 볼쇼이 발레의 모든 영국 공연을 유치했다. 올해 아흔셋이 된 호흐하우저가 나탈랴 베스메르트노바·니나 아나니아시빌리·스베틀라나 자하로바·나탈랴 오시포바로 이어지는 볼쇼이 발레 스타 계보를 런던에 소개한 창구였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2016년, 볼쇼이 발레의 공연은 발레단과 영국 문화계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내우외환 이후, 볼쇼이 발레의 현재

볼쇼이 발레는 2010년대 들어 모스크바에서 단체 역사상 유래 없는 내우외환을 겪었다. 2011년 3월 겐나디 야닌 극장 부단장은 자신의 동성애 관련 사진이 유포되면서 사퇴했다. 2000년대 초반, 과체중으로 퇴출당한 볼로치코바는 “정치인과 무용수 사이의 부적절한 만남을 사무국이 주선한다”면서 리더십의 공백을 맞이한 볼쇼이 발레를 맹공했다.

가십 수준에 머물던 발레단 주변의 각종 추문이 봇물 터지듯 폭로됐다. 미국에서 볼쇼이 발레로 온 무용수 조이 워맥은 “솔로 역할을 맡으려면 수뇌부에 1만 달러를 뇌물로 제공해야 한다”며 단체의 도덕성에 직격탄을 날렸다. 2005년부터 시작된 극장의 보수공사가 늦어지면서, 러시아 검찰은 공사 과정의 비리를 포착했고 볼쇼이 발레의 대외적 이미지는 하염없이 추락했다.

행정적 리더십이 흔들리자 스타 무용수들의 엑소더스도 뒤따랐다. 2000년대 후반부터 발레단의 간판 커플로 자리 잡은 오시포바‐바실리예프는 “볼쇼이에선 예술적 창조성이 제한받는다”면서 2011년, 인지도에서 한참 처지는 미하일롭스키 발레로 이적했다. 결국 영국 로열 발레로 옮기기 위한 중간 기착지였지만, 볼쇼이 발레의 자존심은 크게 상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듀오에게 2007·2010년 영국 투어의 인기는 런던 이적의 지렛대였다.

스캔들의 절정은 2013년 1월, 볼쇼이 발레의 예술감독 세르게이 필린을 겨냥한 황산 테러였다. 모스크바 법원은 테러를 기획한 혐의를 인정해 볼쇼이 발레의 전 무용수 파벨 드미트리첸코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표면적으론 드미트리첸코가 당시 연인이던 여자 무용수의 캐스팅 소외에 격분해 범죄를 사주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내부에선 필린의 예술적 방향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점증한 것으로 보기도 했다. 볼쇼이 발레의 또 다른 스타 스베틀라나 룬키나도 남편을 따라 캐나다로 근거지를 옮겼다. 테러 이후 볼쇼이 발레의 현황은 8월 중 국내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볼쇼이 바빌론’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리더십에 필요한 지상 과제는 볼쇼이 발레에 남은 무용수들의 사기 진작이었다. 발레단의 주력들이 줄줄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신임 감독 마하르 바지예프는 투어 전부터 “런던이라고 오시포바의 공백을 의식한 캐스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어진 다섯 작품을 건드리는 대신, 실력 위주의 캐스팅을 통해 향후 자신의 예술 노선을 확실히 한다는 메시지였다.

볼쇼이 극장장 블라디미르 우린 역시 바지예프의 재건 의지에 힘을 실었다. 런던 투어 기간 중 모스크바에서 가진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바지예프는 세계에 알려야 할 러시아 발레를 고전 작품으로 인식하는 사람”으로 정리했다. 2004년부터 4년간 예술감독을 역임한 라트만스키 스타일의 현대작 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인다는 의지였다.


▲ ‘말괄량이 길들이기’ 카타리나 역의 크리사노바와 페르투치오 역의 란트라토프

파격과 신선함이 돋보인 캐스팅

바지예프의 런던 캐스팅에서 가장 두드러진 무용수는 예카테리나 크리사노바로, 다섯 작품에 모두 주역으로 올랐다. 크리사노바는 1985년 모스크바 태생으로 볼쇼이 아카데미를 거쳐 2011년 12월 라트만스키 안무의 ‘맑은 시냇물(Bright Stream)’을 마치고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볼쇼이 아카데미 출신인 오시포바·코체트코바·세묘노바와 함께한 프로젝트 ‘리플렉션스(Reflections)’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2007년, 도쿄에서 열린 볼쇼이‐마린스키 발레 합동 갈라 무대에서 솔리스트 신분으로 양 진영의 쟁쟁한 수석 무용수들 속에서 주목받던 무용수는 오시포바와 크리사노바였다. 오시포바는 ‘파리의 불꽃’ 2인무를, 크리사노바는 ‘백조의 호수’ 흑조 파드되를 추면서 일본에서도 일찍부터 조명받았다.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미인의 생김새는 아니지만 작은 키에 귀여운 매력이 온몸에 흐르며, 부드러운 동작을 지향하지만 심지 굳은 테크닉이 선명하다.

군무 등급의 마르가리타 슈라이너가 ‘돈키호테’ 키트리 데뷔한 것도 파격적인 캐스팅이었다. 얼굴과 몸에서 서정적 품위가 돋보이는 올가 스미르노바를 키트리로 기용하는 인선도 신선했다. 스미르노바의 우아함 속에 숨겨진 다이내믹을, 바지예프는 캐스팅으로 존중했다. 향후 발레단 내 바가노바 스타일의 무용수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지 주목할 만하다.


▲ 마요는 ‘길들이기’보다는 ‘말괄량이’의 성격에 초점을 둔 안무를 선보였다

장 크리스토프 마요 안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에 이어 8월 3일 코번트 가든에 올려진 작품은 장 크리스토프 마요 안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였다. 2014년 7월 볼쇼이 발레 초연작으로 마요가 몬테카를로 발레 밖에서 볼쇼이 발레 단원들과 호흡하며 세기를 다듬은 작품이다. 원전에 대한 마요의 이해는 간명했다. 기존의 여러 안무가는 문학의 텍스트를 강요된 결혼으로 이해했지만, 자신은 결혼이 셰익스피어 시대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에 작품의 방점을 두었다. 배우자에게 굴종을 반복하는 행위가 현대적 맥락과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해를 위한 행동임을 캐릭터들에 투영시켜, ‘길들이기’보다는 ‘말괄량이’의 성격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 맥락에서 주역 카타리나를 연기한 크리사노바는 더 이상 희생양이 아니었고 그래서 애써 슬픔을 희화화하지 않았다. 마요의 작품이지만 크리사노바는 조안무가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의 페르소나에 머무르지 않았다. 성적 욕망을 독백하는 장면과 곧 이어지는 정사까지 표백제를 처리한 듯 새하얀 배경에서 벌어지는 육체의 향연이 영화의 미장센처럼 계산된 구도로 진행됐다.

작품에서 톡톡 튀는 캐릭터로 분한 인물은 페르투치오 역의 블라디슬라프 란트라토프였다. 탕아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바닥에서 도약하는 높이와, 그래서 일그러진 표정이 보통의 클래식 발레에서 느낄 수 없는 유희를 전달했다. 파트너가 섬세한 손끝으로 자신을 터치하면 그에 무조건 반응하는 패시지를 마요의 여타 버전에서의 애정신과 비교해봤을 때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시절보다 단단한 몸통으로 스미르노바를 시종일관 리드한 세미온 추진의 달라진 신체가 눈에 띄었다. 쇼스타코비치 음악과 문학을 재료로 저급함을 쏙 뺀, 섹슈얼 코드를 창조하는 데 있어 볼쇼이 발레는 라트만스키 이외에 또 다른 안무가를 자산으로 품게 됐다.


▲ ‘파리의 불꽃’의 크리사노바와 츠비르코

바이노넨-라트만스키 안무의 ‘파리의 불꽃’

8월 5일 시작된 ‘파리의 불꽃’은 바이노넨 버전을 2008년 라트만스키가 재안무한 버전으로 3년 전 공연 당시 오시포바의 열연이 런던을 들썩이게 했다. 제롬 역에 데니스 샤분, 필립 역에 바실리예프가 연기한 2010년 볼쇼이 발레 공연은 DVD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5일 공연의 주역 젠 역은 크리사노바가 맡았다. 오시포바가 빠진 공백을 그동안 누가 커버했는지 캐스팅이 증명한 것이다.

박력 넘치는 민중의 춤과 극중극 형식으로 ‘리날도와 아르미다’가 삽입되고 무대 세트가 계속 바뀌면서 관객들의 몰입력이 꾸준히 유지됐다. 객석의 관심은 갈라를 통해서나 보던 크리사노바와 연인 필립 역의 이고르 츠비르코가 나누는 2인무에 집중됐다. 오시포바‐바실리예프가 볼쇼이 발레에서 나누던 마루운동의 러닝 점와 같은 고탄력은 없었다. 그러나 세면대의 물이 개수구로 빠져나가듯 종반으로 가면 더욱 빨라지는 크리사노바의 날카로운 푸에테는 장관이었다. 로켓이 발사되듯 준비 동작 없이 수직으로 솟구치는 츠비르코의 점프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 민중의 춤과 극중극 형식의 ‘리날도와 아르미다’가 삽입된 ‘파리의 불꽃’

프랑스 혁명 당시의 정치적 갈등과 계급투쟁을 냉전 이후 러시아 안무가가 바라볼 때의 관점은 흥미로웠다. 소비에트 혁명을 겪었던 세대의 시각과도 달랐고 2010년대가 클래식 발레의 개작 버전에 원하는 그림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격동의 현장에서 뜬금없이 피어오르는 사랑이 아니라, 무용수들의 다양한 비르투오시티를 보다 보면 발레 언어를 다루는 안무가의 섬세한 감각에 탄복하는 순서였다. 새로운 예술적 리더십이 미래를 바라본다면 라트만스키는 빼놓지 않고 가져가야 할 귀중한 인재다.

2016년 볼쇼이 발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 ‘볼쇼이 바빌론’에서 볼 수 있듯이 발레단이 흔들리더라도 묵묵히 본분을 지키고 있던 이들은 다름 아닌 무용수였다. 무용수들의 질투를 발레단의 건강함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적 리더십이 볼쇼이엔 절실하다. 볼쇼이의 미래를 그리려면 승급과 시즌 레퍼토리, 캐스팅에서 그 감을 먼저 잡을 수 있다. 빠르게는 내년 일본 투어를 통해 그 경과를 가깝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Dave M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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