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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베르비에 페스티벌
세계 음악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음악학교
글 김동준(재불음악평론가) 9/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9월호 - 전체 보기 )



세 개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선보인 진정성 있는 음악, 그리고 트리포노프 무대의 아쉬움

어려운 때다. 올여름 규모가 큰 페스티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축소되거나 아예 취소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올해 23회째를 맞이한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도 예외는 아니다.
7월 22일 개막 연주회 때 페스티벌의 총감독 마르틴 트손 엥스트로엠은 예산을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티벌은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의 수준 높은 연주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의 꽃이 피어나는 현장이었다.


▲ 샤를 뒤투아/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정경화 ⓒAline Paley

7월 22일 샤를 뒤투아/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외 (협연 정경화)

정경화는 페스티벌 개막 연주회에서 샤를 뒤투아/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정경화와 샤를 뒤투아는 오래전부터 함께 연주와 녹음을 해온 바 있는 매우 긴밀한 음악적 동반자 사이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베르비에 체임버 오케스트라·베르비에 주니어 오케스트라, 이렇게 세 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이 중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페스티벌의 꽃 가운데 하나다. 이 오케스트라는 거의 직업 음악가 수준의 연주를 하는 전 세계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암보한 정경화의 연주를 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손가락 통증으로 5년의 공백기를 보냈고, 2년 뒤면 칠순이 된다. 정경화의 연주를 최상의 연주였다거나 불꽃같으면서도 완벽한 연주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대에서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음과 자신이라는 존재 사이에 아무런 간극이 없는 듯 보였다. 뚜렷하고 정직한, 나아가 진실한 힘이 있는 연주를 선사했다. 또 정경화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음악적인 예민함을 그대로 간직했고, 오케스트라와의 긴밀한 호흡을 유지했다.


▲ 대니얼 하딩/베르비에 페스티벌 주니어 오케스트라 ⓒAline Paley

7월 23일 대니얼 하딩/베르비에 페스티벌 주니어 오케스트라의 슈만 ‘게노베바’ 서곡 외

23일 오전 11시 베르비에의 교회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벤저민 베일먼과 피아니스트 알레시오 박스의 듀오 연주회는 페스티벌의 수준을 직접적으로 말해주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6번·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2번·슈베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을 연주한 이들의 음악성과 기술적인 완성도는 정말로 놀라웠다.

이날 오후 2시 30분에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주니어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있었다. 베르비에 페스티벌 주니어 오케스트라는 18세 이하 청소년들로 구성돼 있다. 지휘는 다음 시즌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게 될 대니얼 하딩이 맡았다. 그는 슈만 ‘게노베바’ 서곡·말러 뤼케르트 가곡(바리톤 슈테판 겐츠 협연)·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서곡과 ‘사랑의 죽음’ 등 야심찬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날 연주는, 눈을 감고 들으니 마치 여느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느껴졌다. 관악기들의 독주에서 역량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대니얼 하딩 역시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지휘를 했다. 그는 슈만 ‘게노베바’ 서곡 뒤에 청중을 향해 짤막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니어 오케스트라의 첫 연습 때 이미 연주회에 대한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만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교감을 나눌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선발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분명 신동에 가까운 연주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또 다른 것이다. 뛰어난 개인들이 모인다고 해서 꼭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연주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서로 들을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이 전체에 기여한다는 의식을 공유할 때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음색은 상상력과 감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을 뿐이다.


▲ 가보르 타카치 나지/베르비에 체임버 오케스트라 ⓒNicolas Brodard

베르비에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이날 저녁 모차르트 작품들로만 구성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거의 매년 실내악 지도를 하고 있는 가보르 타카치 나지가 지휘를 맡았다.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는 타카치 나지는 열정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며, 단원들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휘자다. 베르비에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베르비에의 세 개의 오케스트라 가운데 평균연령이 가장 높으며, 또한 가장 프로페셔널한 오케스트라다.

그들은 전반부에 모차르트의 교향곡 1번과 41번을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해석으로 들려주었다. 연주를 감상하며 타카치 나지에게 모차르트의 음악은 무엇보다도 순수한 기쁨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차르트는 우리가 순수한 동심을 되찾는 것을 도와준다. 또 모차르트의 음악을 모차르트답게 하는 것 역시 순수한 감각과 기쁨으로서 동심이다. 후반부에는 모차르트 C단조 미사를 들려주었는데, 소프라노 에뫼케 버라트의 표현적인 목소리가 빛났다.


▲ 다닐 트리포노프 ⓒAline Paley

7월 24일 다닐 트리포노프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외

24일 오전 11시에는 정경화가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포레 바이올린 소나타 1번·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올랐다. 정경화가 해석한 포레 작품의 연주는 음색이나 프레이즈 처리 등에서 설득력을 갖지는 못했다. 그러나 프로코피예프 작품의 연주는 색채와 분위기 그리고 음악적 깊이를 모두 드러내는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 중간휴식 뒤에 연주된 프랑크 소나타도 감동적이었다. 우선 음색부터 전반부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다. 정경화는 프랑크 소나타 연주를 마치고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날 저녁 다닐 트리포노프의 독주회가 있었다. 트리포노프는 분명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파리에서 이미 여러 차례 그가 독주회와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트리포노프는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타협 없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기질 때문에 만장일치의 호평을 얻지는 못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는 확실히 흥미로운 연주자다.

그러나 오랜만에 베르비에에서 들은 그의 독주는 여러 의문을 갖게 했다. 브람스 ‘왼손을 위한 바흐 샤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 D894, 브람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전반부 프로그램이었다. 우선 아무리 이 프로그램들을 모두 연주할 수 있는 기술과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해도, 전반부에 보여주기에는 작품들이 너무 길었다. 슈베르트의 소나타 다음에 다른 작품을 또 연주한다는 것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더욱이 트리포노프의 슈베르트는 매우 지루했다. 이 곡은 깊고 섬세한 감성과 시적인 상상력에 음악적 영감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 진가를 발하지 못하는 작품이다. 트리포노프는 불행하게도 이러한 예술적인 세계와 연결돼 있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집중하는 모습은 오히려 하나의 연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메디치 TV가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주요 연주회들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또 일정 기간 다시 보기를 제공하는 오늘날의 상황이 연주자들에게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어떤 때에는 이러한 인터넷 중계 때문에 사람들이 연주회장에서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삶은 매 순간이 유일하다고 느낄 때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트리포노프는 후반부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을 연주했다. 매우 지루한 연주였다.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좋은 해석과 음악을 들려주지 못한다면 그 기교는 쓸모가 없다. 푸르트벵글러는 지휘자를 포함한 모든 연주자는 매번 영혼을 새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리포노프뿐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연주회를 하는 음악가들은 내면을 새롭게 하거나, 충전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이는 음악성이나 역량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문제다. 오늘날 익히 알려져 있는 음악가들은 명성과 돈과 자기 존재의 증명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으면서도 연주를 계속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파리와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수많은 연주회를 들었지만, 정말로 감동을 준 연주회는 몇 안 되었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현실이다. 과거와는 달리 주요 연주회장과 페스티벌의 기획자들은 연주회장을 채우는 것을 첫째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이들은 명성이 있는 연주자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 이러한 모든 상황으로 인해 현재 음악이 충만해야 할 곳에 정작 음악이 부재한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이미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몇 차례 와봤지만, 이 페스티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연주자들이 이곳에서 매일같이 연주회를 열고 있기에,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진짜 음악적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베르비에 페스티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거대한 음악학교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세 개의 오케스트라는 이 페스티벌의 진정한 꽃이다.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온 젊은 음악가들이 오디션을 거친 후 오랜 경험을 지닌 음악가들의 조언, 그리고 세계적 지휘자들과의 작업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현장이었다. 실제로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매년 전체 예산 가운데 최소 20%를 세 오케스트라 운영에 사용한다고 한다.

음악은 나누기 위해 존재하고, 만남에 의해 음악은 이어진다. 기술과 명성에 의존하는 음악계는 곧 저물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를 잊는다. 고도의 기술이 위대한 음악의 울림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한없이 깊은 사랑을 지닌 음악가의 내면이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일깨울 때 음악의 위대한 힘이 되살아난다는 진리 말이다. 발전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허황된 신기루이고, 진정한 발전은 진리를 지키는 항구적 노력에 있다는 것을 잊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깊은 내면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가들의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사진 Verbier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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