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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오페라단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오페라
글 김선영 기자 9/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9월호 - 전체 보기 )



“수화야, 난 몇 년을 노력해도 못 갔는데, 넌 무슨 수로 그리했니?”
우리나라 민간 오페라단의 뿌리인 고(故) 김자경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창작 오페라 ‘춘향전’으로 일본에 가는 글로리아오페라단 양수화 단장에게 건넨 말이다. 우리나라 오페라단으로선 첫 일본 공연. 이후에도 미국, 프랑스에서의 해외 공연에서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이름 옆에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다녔다. 이뿐 아니다. 그간 글로리아오페라단이 올린 프로덕션 중에는 로시니 ‘모세’(2000)의 국내 초연을 비롯해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1996), 메노티 ‘시집가는 날’(2002)같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과 ‘원술랑’(1994), ‘원효’(1995) 같은 창작 오페라까지, 글로리아오페라단엔 용기와 도전으로 건너온 시간이 가득하다.


▲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1996)의 국내 초연


▲ 베르디 '가면무도회'(1994)

글로리아오페라단의 단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양수화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해 자연스레 음대에 진학하고 성악을 전공했다. 기독교 신자인 그녀는 어느 날 시편을 읽던 중 거기에 묘사된 구절을 보면서 가슴이 뛰는 걸 느끼게 된다. 노래와 악기와 춤이 등장하는 장면이 마치 오페라 같다고 생각했다. 오페라단 이름이 ‘글로리아’가 된 것도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1991년 12월 2일 창단된 글로리아오페라단은 이듬해 6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창단 기념 갈라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뿐 아니라 지금 보기에도 이색적으로, 유명 오페라단의 단장들‐국립오페라단 단장 박성원, 김자경오페라단 단장 강화자, 민간오페라단협회 회장이자 서울오페라단 단장 김봉임 등‐이 무대에서 아리아 한 곡씩을 부르며 오페라단의 탄생을 축하했다. 1993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개관 즈음하여 민간 오페라단 창단은 더욱 활발해졌고,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이어졌다. 문화오페라단, 한국로열오페라단 등 여러 민간 오페라단이 글로리아오페라단과 비슷한 시기에 창단됐다. “1990년대는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대중에게 생소하던 시기예요. 여러 단체가 생겼지만 당시 무대에 오르는 레퍼토리는 대부분 ‘라 보엠’ ‘춘희’ ‘나비부인’ 같은 작품이었죠. 글로리아오페라단 연혁에는 이러한 작품들이 창단 후 10여 년 무렵에야 등장합니다. 당시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겠다는 마음으로, ‘관객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새로운 작품을 찾는 데 여념 없었죠. 어떻게든 오페라를 알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의욕도, 열정도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의 25년 발자취
1991년 창단, 올해 25주년을 맞이한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시간에는 가능성에 대한 물음표와 도전이라는 느낌표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그간의 오페라단 역사 가운데 기록적인 작품과 인상적인 순간들을 양수화 단장과 함께 살펴봤다.
1993·2005년 푸치니 ‘투란도트’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첫 오페라 프로덕션이다. 당시 국내에는 1972년 국립오페라단, 1986년 영국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1988년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페라가 ‘투란도트’를 이미 무대에 올렸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 문화행사의 하나로 열린 공연은 라 스칼라 극장에서 모든 무대장치를 공수하고, 400여 명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터다. 당시 인터뷰에서 양수화 단장은 “라 스칼라 무대가 있었기에 더 조심스럽고 부담이 됐다. 때문에 이번 공연에선 전혀 색다른 무대를 선보일 것”이라 이야기했다.
이탈리아 출신 연출가 다리오 미케리는 동화적인 전설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연출을 선보였다. 공연의 전 막이 용의 입속에서 이뤄진 것도 특색 중 하나였다. 공연을 위해 300여 명의 인원과 의상 270벌이 동원되는 등 상당한 제작비가 투여됐다. 당시 175㎝ 이상의 남성 엑스트라 60여 명이 동원된 것 또한 숱한 화제와 뒷이야기를 남겼다. 이후 2005년 ‘투란도트’는 글로리아오페라단·서울오페라단·한강오페라단 민간 오페라단 3곳이 뜻을 모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보름간 장기공연으로 올려졌다.


▲ 민간 오페라단 3곳이 공동제작한 푸치니 '투란도트'(2005)

▲ 1995년 도쿄, 1996년 애틀란타에서 공연된 창작 오페라 장일남 '춘향전'


▲ 창작 오페라 장일남 '춘향전'(2004) 프랑스 파리 공연

1995·1996·2004년 창작 오페라 장일남 ‘춘향전’ 1995년 5월 도쿄 히도미홀에서 광복 50주년, 한·일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이뤄진 우리 창작 오페라 최초 공연이었다. 당시 성악가와 합창단, 무용단, 오케스트라 단원, 스태프 등 200여 명이 비행기를 탔고, 무대도 공수됐다. 장수동이 연출을 맡고, 작곡을 맡은 장일남이 지휘봉을 들었다. 상당수 오페라가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삼았기에 한국의 대표적인 러브스토리 ‘춘향전’을 고른 양수화 단장의 선택은 우리의 문화와 의상을 외국에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이어졌다. 연출가 장수동은 4막 2장 춘향의 옥중 장면을 노래로 일관하는 대신 소복을 입은 춘향의 독무와 형리들로부터 고통받는 모습을 담은 군무로 처리해, 춘향의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이 장면에서 일본의 많은 여성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이후 ‘춘향전’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기간에 현지에서 공연됐고, 2004년 파리 모가도르 극장에도 올라갔다. 한국의 오페라단으로선 모두 처음이었다. 서구 관객들은 ‘양반이 무엇이냐?’ ‘춘향이 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조를 지켜야 하느냐?’고 묻는 등 한국의 풍습과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춘향전’은 그간 글로리아오페라단이 가장 많이 무대에 올리고, 다양한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2011년 창단 20주년 기념, 제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 벨리니 ‘청교도’ 1996년 국립오페라단의 국립극장 공연 이후 15년 만에 글로리아오페라단이 국내 무대에 선보였다. 벨리니의 마지막 작품이자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양수화 단장이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여러 오페라 중에서도 ‘청교도’가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 작품이 국내 오페라 관객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워 이탈리아 제작진과의 합작을 통해 대중에게 다소 낯설지만 새롭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더불어, 함께 오페라를 향유하도록


▲ 글로리아오페라단장 양수화

양수화 단장은 그 자신이 성악을 전공한 사람으로, 또 제작자이자 애호가로서 오페라를 다양한 각도에서 마주해왔다. 그 가운데 더 많은 이와 더불어, 함께 오페라를 향유하는 것에 대한 구상과 실천에 대한 고민이 짙어졌음은 물론이다.
이에 대한 첫 걸음으로 양수화 단장은 지난 2011년 창단 20주년을 기점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성악 콩쿠르를 시작했다. 공연예술계에서 20년간 자리를 지켜온 것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알거니와, 그간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후배들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해서다.
“제 스스로 ‘이름’을 내세우는 것에 쑥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책임감을 갖고 후대까지 이어가기 위해 과감히 결정을 내렸어요. 그간 5회의 콩쿠르를 치르면서 입상자들에겐 글로리아오페라단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습니다. 콩쿠르를 통해 능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고, 이들과 기존 성악가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우리 모두가 더욱 발전할 수 있겠죠.”


▲ 창단 20주년 기념, 2011년 부터 시작된 양수화 성악 콩쿠르

지난해 콩쿠르 수상자들은 올해 5월에 공연된 비제 ‘카르멘’에 출연했고, 오는 10월 초 치러지는 제6회 양수화 성악 콩쿠르의 수상자는 내년 6월 9~11일에 공연 예정인 푸치니 ‘마농 레스코’ 무대에 서는 기회가 주어진다. 양수화 단장은 매년 상반기에 오페라 1편을 올리고, 하반기에 콩쿠르를 개최해 입상자를 이듬해 예정된 작품에 발탁하는 것으로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순환 고리를 안착시켰다.
양수화 단장의 발걸음은 무대 아래에서도 분주하다. 미8군 기지 안에 있는 공연장에서 무료 음악회를 10년 넘게 열었고, 몇 해 전부터는 군인과 서울시 경찰, 의경들을 매번 정기 공연에 초청해 젊은 날 애쓰는 이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문화생활을 향유하도록 돕는 데 힘쓰고 있다. 나눔을 소리 없이 실천해온 오페라단 사무실에 나란히 자리한 감사패들이 나눔을 소리 없이 실천해온 양수화 단장의 노고를 증명해주고 있다.
양수화 단장이 글로리아오페라단을 창단하고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그녀는 이제 원로이자 선배로서 지금의 무대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과거 너무나 열악하던 우리 오페라계 환경을 떠올리면, 지금은 누리고 있는 많은 것에 감사한 마음이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있다.
“민간오페라단 회장을 맡았던 7년 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민간 오페라단 활성화를 위해 추진됐는데, 매년 공연을 보면 참여하는 단체마다 완성도 면에서 기복이 커요. 오페라는 제작비에 따라 많은 여건이 좌우되는데, 예나 지금이나 문광부의 예산 증액에 어려움이 많지만 정부에서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기 바라며, 참여하는 민간단체들 역시 정성 들여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현재 전국에 오페라단으로 간판을 내건 곳은 100개가 넘지만, 단체로서 실제 운영이 이뤄지고, 정기적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공연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해마다 주어진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 국공립 단체라면 매년 새롭고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민간 오페라단은 개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으로 재정이 마련되니, 1년에 한 편을 올리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에요. 2~3년에 한 번씩이라도 괜찮으니 재정도 탄탄히 마련해, 완성도 높은 작품을 준비하고 정성껏 올려서 관객도 만족하고, 민간 오페라단 전체가 다 같이 발전할 수 있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글로리아오페라단 공연 연혁

1990년대 한국 오페라 ①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를 계기로 성사된 대형 공연으로 인해 국내 관객의 안목은 높아졌다. 여기에 1980년대 말 외국 유학에서 돌아온 국내 성악가들이 눈부신 활약을 보이면서 1990년대의 시작을 앞두고 국내 오페라계는 세계 오페라 무대의 조류에 눈을 떴다. 이 무렵 민간 오페라단 창단도 활발해졌다. 1989년 5월, 정명훈이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감독 자리에 오른 후, 5년만인 1994년 4월 12일 바스티유 오페라를 이끌고 서울을 찾았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정명훈은 바스티유 극장 측의 부당한 재계약 요구, 즉 퇴진 압력을 받으면서 정치권력 다툼에 희생됐다는 의혹으로 한국까지 술렁였고, 정명훈은 결국 바스티유를 떠났다. 정명훈의 바스티유 취임 기간 5년은 일반 대중에게 ‘오페라하우스’ 시스템에 대한 관심 및 문화와 권력의 상관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1993년 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이 개관했으나, 개막 공연을 치르자마자 보수공사를 이유로 문을 닫았고 같은 해 10월 재개관하여 연말까지 ‘93음악극축제’로 재개관을 알렸다. 1990년대 창작 오페라는 1998년 한국 오페라 50주년을 기점으로 정점에 다다랐다. 특히 1999년에는 정화갑 ‘산불’, 이영조 ‘황진이’, 이동훈 ‘백범 김구와 상해임시정부’, 김경중 ‘둘이서 한발로’, 공석중 ‘결혼’, 박영근 ‘보석과 여인’, 이종구 ‘매직 텔레파시’, 백병동 ‘사랑의 빛’, 장일남 ‘녹두장군’, 정부기 ‘아미타불’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창작 오페라 중에는 한국 또는 지역색을 담은 인물 중심인 것이 많았다. 오페라라는 서양 장르에 단순히 우리의 소재를 담기에만 급급하던 일련의 작품에 대한 비난이 없지 않았다. 연출가 장수동과의 인터뷰에는 당시 우리 오페라 제작에 대한 음악계의 고민과 출구가 담겨 있다. “작곡가들부터 창작 오페라가 꼭 우리 것을 걸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여러 작곡가와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것을 변용할 때, 꼭 우리의 형식을 반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대부분의 작곡가가 얽매여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옷을 걸친 오페라가 아닌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를 만들어야 한다.” - ‘객석’ 2011년 9월호 ‘이 땅의 오페라 1948’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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