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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곰의 아내’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8/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8월호 - 전체 보기 )




7월 1~17일
남산예술센터

곰과 인간, 다른 언어의 충돌

남산예술센터의 ‘곰의 아내’는 고연옥 작가의 신작이자 제5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인 희곡을 요즘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 고선웅이 무대화한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기대와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공연 속에서 고연옥 작가를 찾아내기엔 그녀의 색채가 도드라지지 않았고, 고선웅 연출작이라 하기엔 놀이성과 풍자성이 밋밋했다. 잘나가는 작가와 연출가의 조합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던 공연은 두 사람의 개성을 서로 지워내며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하고 맹숭맹숭한 모습이었다.

공연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은 작가와 연출가가 마치 곰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소통할 수 없듯 서로 다른 세계관의 합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연옥 작가의 희곡 ‘처의 감각’은 곰의 언어다. ‘지하생활자들’부터 ‘내 이름은 강’ ‘칼집 속에 아버지’로 이어지는 그녀의 설화적 세계가 신화 속 웅녀를 만나 신화적 상상력으로 더욱 확장되었다.

길을 잃어 곰의 아내가 된 여자는 곰의 아이를 죽이고 인간 세계로 넘어갔고 인간의 아이를 죽임으로써 곰의 세계, 자연과 원형의 세계로 돌아간다. 먼 길 떠나는 사람을 위해 장례를 치러준다는 마을의 풍습은 곧 여자의 삶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야 더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그녀의 감각이다. 소중한 것에는 자식은 물론 자신의 목숨도 포함된다. 소멸을 통해 생명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섭리가 여자를 통해 성취되는데, 그래서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인간 세계를 떠나 동굴에서 곰을 찾아 죽음을 맞으려는 여자의 행동은 제의적이다. 물질만능의 현실 세계에 신화적 원형의 생명력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기원인 것이다. 따라서 희곡은 죽음과 현실에 대한 비유와 상징, 은유가 가득하며, 이성과 논리보다 원형적 감각이 앞선 곰의 언어다.

이에 반해 연출가 고선웅이 각색한 공연 ‘곰의 아내’는 더욱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언어다. 고선웅 연출은 낙관적 리얼리스트다. 그의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은 모두 현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연극적 난장을 치는 것 같지만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딸들을 장총으로 쏴 죽이는 리어(‘리어외전’), 칼로 잡은 권력에 도취되었다가 그것보다 더 강한 총에 무너지는 맥베스(‘칼로막베스’), 장승들과 한판 붙어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옹녀(‘변강쇠 점찍고 옹녀’) 등 그의 전작들은 모두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다. 거기에 한국의 현실을 직설로 풀어내면서도 일단 “해보자”(‘한국인의 초상’)고 하는 낙관을 잃지 않는다. 지극히 인간적인 언어를 취하는 고선웅 연출에게 동굴로 돌아가는 여자의 자기희생적 엔딩은 동의하기 어려웠을 터이고, 그래서 희곡과 가장 많이 달라진 지점도 결말 부분이다. 공연 내내 반복되는 “곰같이”는 짐승을 닮아가는 인간의 삶을 그려내고, “왔던 길로 돌아가라”는 근원의 회귀를 목적하고 있다. 그래서 여자는 사람의 아이를 품은 채 곰과 만난다. 시청각에 강한 연출가인 만큼 노래가 삽입되고 영상이 활용되며 상당히 공들여 만든 거대한 곰이 등장하는 등 무대는 다채로웠지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나 ‘홍도’처럼 그가 보여준 각색의 능력과 연극적 놀이성이 십분 발휘되지 못한 것은 공연의 출발인 희곡의 원형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연출적 강박 때문이다.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가 모두 흥행하는 것은 아니듯 ‘스타 작가’와 ‘스타 연출가’의 작업이 완성도 높은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전혀 다른 개성의 작가와 연출가 간 협업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곰의 아내’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극장과 극단의 기획자는 ‘잘나가는’ 작가와 연출가를 아끼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할 듯하다.

사진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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